머리말
죽음 공부가 삶 공부다
예부터 사람들은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말하였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그 하룻밤의 의미가 만리장성처럼 높고 깊다는 뜻이다. 하룻밤의 소중함은 이리 잘 알면서 하루 삶의 소중함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루를 사는 동안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뚫어 우주 정신과 이어져야 한다. 온통(전체)이신 하느님과 이어지지 못하면 낱동(개체)인 사람은 살아 있어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사람은 하느님과 이어져 하느님의 생명인 얼로 소통되어야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에는 못 먹어서 비쩍 마른 사람 없이 경제적으로 넉넉한데도 우울증에 빠진 이가 많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자연 우울해지는 것이다. 인정받는 일에 목을 매면 그만큼 삶이 힘들어진다. 인심은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탓이다.
사람이 여느 짐승보다 나은 것은 사상(思想)을 내놓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한마디로 온통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온통인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사실을 적어놓은 것이다. 예수가 “구하라(ask), 받을 것이다. 찾으라(seek),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knock), 열릴 것이다.”(마태오 7 : 7)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주신다. 사람에겐 하느님이 삶의 기쁨이요 보람인 것이다. 예수가 또 한 번 분명히 말하였다. “하느님 나라는 침노하는 이가 차지한다.” 마태오복음 11장 1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침노한다’는 말은 들이친다는 말이다. 들이친다니? 이것은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르는 짓이 아닌가? 예수는 하느님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였고 마지막엔 목숨까지 바쳤다. 그런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침노하라고 하다니 무슨 말이 이런가? 예수의 말은 반쪽 예수라도 되어야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 류영모는 하느님 아버지께 부자유친(父子有親) 하자고 들이덤벼야 한다고 말하였다. 침노하라는 말이나 들이덤비라는 말이나 똑같다. 류영모는 하느님 나라를 들이치는 법을 일러주었다.
제 숨 끊다
제 밥 먹고 제 밑 제가 씻어야 그누는(말숙한) 누리인데
제 머리를 제 못 깎지만 제가 깎는 이도 더러 있다
제 목(숨) 제 끊는다는 건 위(하늘)를 뚫을 것 같아
— 《다석일지》(1959. 11. 30.)
나, 곧 제나(ego)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침노하는 길이다. 이 제나는 없음(無)이요 빔(空)인 영원 무한 속에 잠시 일어서 꺼지는, 생사(生死)의 거짓 존재다. 이 제나의 근원이요 귀처(歸處, 돌아갈 곳)인 하느님께 나를 돌려 드릴 때 존재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영원 무한의 없음(無)·빔(空)이 참나이다. 이것은 제나의 생사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러니 삶도 삶이 아니요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 예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영원한 생명(얼나)을 얻고자 멸망의 생명(제나)을 버림이라.”(요한 10 : 17, 박영호 의역) 이것은 또한 석가 붓다의 사성제(四聖諦)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장자(莊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없음(無)을 머리로 삼고 삶(生)을 등뼈로 삼고 죽음(死)을 꽁지(尾)로 하였다. 그 누가 알리? 죽고 나고 있고 없음이 하나인 것을.”(《장자》 대종사 편) 없음(無)에 달린 꼬리 같은 제나는 있어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죽음 공부는 죽지 않는 생명인 얼나를 깨닫고자 하는 공부다. 이것은 석가·예수·노자·장자가 가르쳐준 공부이기도 하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웰빙(well-being)’이니 ‘웰다잉(well-dying)’이니를 말할 수 있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나의 말은 죽을 때 필요하고 죽은 뒤에 필요한 말이다. 내 말은 죽음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죽음 공부야말로 마지막 공부요 귀중한 공부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이제까지 ‘다석 사상’에 관한 책을 여남은 권 썼다. 스승님인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가 아무런 저서도 남기지 않고 일기(다석일지)만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 일기는 영원한 생명(얼나)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따라서 필자가 쓴 ‘다석 사상’ 글은 모두가 이편에서 말하면 ‘제나의 죽음 철학’이요 저편에서 말하면 ‘얼나의 생명 철학’이라 하겠다. 그래서 따로 ‘죽음 공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정순 님이 ‘죽음 공부’에 대해서 따로 글을 써주기를 청하여, 다석낱말사전 만들기를 잠시 밀쳐 두고 ‘죽음 공부’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죽음 공부’ 책을 쓰고 보니 죽음과 생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독자께서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밝아졌다면 그것은 서정순 님의 공이라 하겠다. 또한 출판을 맡아준 한예원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이하 중략)
2012년 4월 박영호
1장 죽음 생각
죽음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는 길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태오 6 : 22~23)
예수가 ‘마음의 빛’이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얼생명을 말한다. 얼나의 눈이 밝은 이는 이 우주의 자연현상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박동을 느낀다. 그러나 얼나의 눈을 뜨지 못한 이는 신맹(神盲)이라 영성(靈性) 불감증을 앓는 이다. 짐승처럼 하느님이 계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를 민망히 여겨 얼나의 눈을 뜨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류영모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빛은 자연계를 비치는 해와 달의 빛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비치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진리의 빛, 곧 적광(寂光)이다. 이 빛을 가지고 인류가 깨어나 대우주의 무한히 찬란한 빛처럼 이 세상에도 찬란한 정신 문명의 얼빛이 밝아졌으면 한다.”(류영모, 《다석어록》)
이 무한한 대우주를 쳐다보면 너무 넓어서 까마득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가장자리 없는 영원 무한한 허공에도 해처럼 빛나는 광명체가 너무 많아서 그것이 별구름(星雲)을 이루고 있다. 그 별구름의 모습이 마치 가지가지 꽃으로 만발한 꽃밭과 같다. 그런 별꽃밭의 임자(하느님)가 생각난다. 19세기 사람인 미국의 초월주의자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도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 하느님을 느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밤하늘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너무도 안타까워, 밤마다 별이 나타나지 않고 천년마다 하룻밤씩 별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밤새 뜬눈으로 밤하늘의 신비로운 별빛을 만끽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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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태생의 캐는 이(哲人),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 1677)는 우주의 질서에 감격하여 하느님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을 곧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연 그 이상의 빔(허공)과 얼(성령)이다. 예수 · 석가 · 노자 · 장자는 없음(無), 빔(空), 얼(靈)이 참나인 하느님이심을 깨달았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사람,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자연 속에서 하느님과 숨바꼭질을 하였다. 소로는 “나의 직업은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이 숨어 계시는 장소를 알아내며 자연의 모든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에 귀 기울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늘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는 길벗 박동선은 바닷물이 생겨나 저리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고 했다. 그 바닷물에서 지구 위의 생명이 생겨났으니 생명의 어머니로 여겨져 거룩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박동선은 날마다 바다를 보면서 하느님을 생각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생은 한정된 곳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 무한한 하느님 나라에 뜻이 있다. 정신과 신앙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것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현상 속에서 산 우주가 지니고 있는 얼생명의 율동을 느껴야 한다. 하늘에 머리를 두고 있는 사람은 하늘을 우러르며 우주에서 얼생명의 고동을 느끼면서 살라는 것이다.(류영모, 《다석어록》)
하느님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몸이 닿아 있는 빔(허공, sunyata)이 하느님이고, 내 맘이 닿아 있는 얼(성령)이 하느님이시다. 얼이 충만한 빔이 하느님이시다. 《다석어록》에 실린 류영모의 말이다.
① 장엄은 정말이지 허공이 장엄하다. 허공의 얼굴인 공상(空相)이 장엄하다. 이 우주는 허공을 나타낸 것이다. 이 만물이 전부 동원해서 겨우 허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붓끝 같은 몬(物)만 보고 허공을 못 보다니 제가 좀팽이 같은 것이 되어 몬밖에 못 본다.
②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빈탕 한데(허공)이다. ‘빈탕 한데’란 ‘허공’을 순우리말로 말해본 것이다. 백 칸짜리 집이라도 고루고루 쓸 줄 알아야 하듯 우주 또는 그 이상의 것도 내 것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빈탕 한데인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늘 스스로 반성하면서 좋은 일에 힘을 다하면 마음이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악해질 리가 없다. 악한 사람이 길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세상은 거의 세기말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아들들이 살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악에 무릎을 꿇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악한 세상에 무슨 하느님의 아들들의 시대가 오겠느냐고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들의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③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는 허공이다. 색계(色界, 물질계)는 단일(單一) 허공에 눈의 티검지와 같이 섞여 있다. 이 사람은 단일 허공을 확실히 느끼는데 하느님의 마음으로 느낀다. 허공은 우리의 오관으로 감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수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공은 테두리 없이 영원 무한한 것이다. 잣알 하나 깨어보고서 빈탕이라는 그따위 허공이 아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라도 단일 허공을 알아야 한다.
④ 빈탕 한데(허공)에 맞춰 놀이를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나는 해와 달에 맞춰서 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맘과 몬(物)을 생각한다. 몬(물질계)에 맘이 거하면 맘속의 얼나가 어두워지고 참된 생각이 사라지고 만다. 몬에 마음이 살면(집착하면) 맘의 자격을 잃고 만다.
⑤ 참은 상대 세계인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다. 빈탕 한데에 들어가야만 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은 모두가 거짓이다. 거짓에 마음 붙잡힐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잠깐 빌려 쓰는 것이다. 절대(絶對)의 허공을 사모한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야 참이 될 수 있다. 허공이 참인 하느님이다. 허공 없이 실존이고 진실이고 어디에 있는가? 우주조차도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허공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늘을 보고 하느님을 느끼고, 바다를 보고 하느님을 느끼고, 산천의 자연을 보며 하느님을 느끼는데 이 사람은 사람을 보며 하느님을 느낀다. 예수·석가 같은 영성(불성)의 사람을 보면 신비하여 하느님이 저절로 느껴진다. 예수·석가의 이름만 들어도 하느님이 생각난다. 60조 세포로 이뤄진 몸뚱이에서 온통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는 ‘정신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신비가 아닐 수 없다. 몸에서도 신비한 일이 많다.
여러 사람이 모인 데서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면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러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게 드러난다. 이 지구상에는 무려 70억이나 되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모두 다르게 생겼다.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서 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낀다. 만일 한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처럼 사람들의 생김새가 꼭 같다면 인류 사회는 ‘너, 나, 그’를 구분하지 못하여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고, 사회가 유지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70억이 넘는 사람이 다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이 기적적인 신비가 아니고 무언가.
개인의 가정으로만 보면, 딸 부잣집이나 아들 부잣집이 있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성비가 엇비슷하다. 누군가가 남녀의 수를 맞추고 있는 듯하여 신비하기 그지없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느님의 섭리가 깔려 있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하늘, 땅,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계심(存在)을 느낄 수 있는 얼나의 빛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나의 빛을 못 지닌 사람이 있다. 얼나의 빛을 지닌 이는 ‘얼나를 깨달은 사람’, 즉 깨달은 이(覺人)다. 얼나의 빛을 못 지닌 이는 ‘그밖의 보통 사람’, 즉 여느 이(俗人)다. 죽음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이 둘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얼나의 빛을 지닌 이는 이미 생사(生死)에 갇힌 제나를 넘어선 이다. 그러므로 제나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이는 멸망의 생명인 제나의 생사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몸삶밖에 모르는 짐승인 제나의 사람들은 짐승의 성질인 탐욕(avarice), 진에(anger), 치우(lust)라는 삼독의 조종을 받아 끌려만 다닐 뿐 임자로서 생각을 못한다. 짐승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달아나듯이 여느 이는 죽음에 관한 일은 보지도 듣지도 않고, 말하려 들지도 않는다. 죽음은 숫제 금기(터부)다. 그러나 금(禁)줄을 친다고 죽음으로부터 안전지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둘레에서 얼마든지 죽음이 일어날 수가 있다. 비단 내 둘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직접 일어나기도 한다. 죽을 고비를 한번 겪고 나면 신경과민이 된다. 뿐만 아니라 끔찍한 상상이 번개처럼 날아든다. 그래서 두렵기만 한 죽음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싫어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말벗, 놀이벗이 필요하다. 벗이 없으면 반려 동물을 대리 벗으로 삼는다.
예수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홀로 기도하라고 말하였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오 6 : 6) 골방이 무엇인가? 예수는 머리 둘 곳 없는, 집 없이 사는 노숙자라 골방조차 없어 산속에 들어가 혼자서 기도하였다.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외로이 홀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홀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골방이란 바꾸어 말하면 고독의 방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제나의 사람들은 고독한 골방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면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표층적인 기복 신앙(샤머니즘)만 좇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오락이나 도박, 구경거리 그리고 작업에 몰두한다. 거의 중독되다시피 한다. 아니면 건강 염려증에 빠져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병원 순례를 일삼는다. 요즈음 죽음을 잊게 하는 그럴듯한 도피처가 생겼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이 그것이다. 아, 이것들을 못 보게 하고 못 다루게 하면 불안해한다. 심하면 병리적인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에 몰두하는 것이 바로 일종의 우상숭배다. 그래서는 올바른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기 어렵다.
“죽음은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나는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특징은 바로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달아나려고 하는 태도이다.”(사이먼 크리칠리, 《죽은 철학자들의 서》)
예수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오 11 : 28~30)
요즘 신학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 답을 구했더니, 예수의 삶은 존경하나 예수처럼 살기는 싫다고 하였다. 그토록 힘든 인생을 산 예수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고 했을까? 사람들이 예수의 처지를 뻔히 아는데 어찌 예수의 말만 믿고 예수한테로 가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예수는 말만 앞세우는 허풍쟁이였단 말인가? 예수의 인격으로 봐서는 그런 허풍을 칠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왜 뒷감당도 못할 것을 알면서 큰소리를 쳤을까? 예수가 말한 무거운 짐은 결국 ‘죽음’이다. 죽음을 없애고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게 해주겠다는 것이 예수의 말이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은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뒷면이 죽음이고 죽음의 앞면이 삶이다. 그런데 어떻게 삶이 죽음을 떼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삶이 시작되었을 때 죽음도 시작되었고, 삶이 끝날 때 죽음도 끝난다. 하느님의 얼나라에는 이따위 삶도 죽음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죽음의 나라가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생사를 초월한 영생의 얼나라다.
사이먼 크리칠리는 말했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도망가려 하는 태도가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특징이라고.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람만이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느 이(俗人)는 죽음에서 도망치려다가 죽음에 붙잡혀 죽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여느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짐승과 다른 점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무엇에고 비는 기복 신앙(샤머니즘)을 생각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복 신앙은 재물을 바치고는 안 죽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한데 그렇게 빌어서 안 죽은 사람이 있었던가? 모두 다 죽었다. 그래도 비는 순간만큼은 불안감이 덜했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과학 시대라 호언하는 오늘날에도 기복 신앙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복 신앙의 맹점을 아는 이들은 대신 병원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병원의 의사가 샤먼 노릇을 해주는 셈이다. 물론 평균 수명을 30살에서 80살까지 끌어올린 것은 의학의 크나큰 공로라지만 평균 수명을 80살까지 끌어올리고 나니 늙은이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말았다. 이래도 탈, 저래도 탈인 것이 세상 이치다. 이제는 오래 안 살고 죽어주는 것이 이 사회를 돕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병원을 찾지 않으려고 한다. 죽음은 자연현상이니 그저 자연스레 죽기를 바라서다. 비록 더 살 수 있다고 해도 몸에 자꾸 칼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약을 밥처럼 자꾸만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이기는 바른 길은 제나로는 죽고 얼나로는 영생하는 것이다. 몸뚱이로 몇십 년 더 살게 되었다고 무에 그리 만족스럽겠는가? 백 년을 산다 해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이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에서 펼친 주장은 표층 종교에서 심층 종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표층 종교는 기복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고, 심층 종교는 영성 신앙을 가리킨다. 예수와 석가가 가르치고 간 얼나의 깨달음만이 유일한 생명의 구원이요 목적의 완성이다.
죽음을 너무도 두려워한 나머지 죽음이란 말만 나와도 ‘나는 살아야지’ 하면서 달아나던 사람들 가운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캐는 이, 곧 철인(哲人)이 비로소 나타났으니 바로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69~기원전 399)였다. 고대 그리스 사람인 소크라테스는 삶이 선하면 죽음도 선하다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죽음을 직시하는 철인들이 이어져 나왔다. 그러나 철인들은 예수 · 석가처럼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난 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깨달은 이, 곧 각인의 본보기는 예수 · 석가라 할 것이다. 예수는 짐승이요 멸망의 생명인 제나를 버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얼나로 솟났다. 제나 쪽에서 말하면 깨달은 것이고, 얼나 쪽에서 말하면 솟난 것이다.사람들이 얼나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멸망의 생명인 제나는 거짓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온전히 버리면 얼나는 저절로 깨닫는다.
앎과 삶이 하나로 일치한 우리 겨레의 큰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6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8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류영모는 생활에서도 성인의 삶을 실천했다. 51세에 믿음에 깊이 들어가 삼각산에서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로 꿰뚫리는 깨달음의 체험을 하였다. 이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세 끼를 합쳐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 하였다. 얇은 나무판에 홑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거친 옷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가족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1981년 2월 3일 18시 30분, 이 땅에서 90년 10개월 21일을 살다가 숨졌다.
생전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알려졌으나, 지금은 독특한 신관과 인생관을 지닌 철학자로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7년 10월 5일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종교학자, 재야 학자들이 모여 ‘재단법인 씨알’을 만들었다. (출판사 보도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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