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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인류에게 일어난
최상이자 최악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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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동지들이여,
우리의 발언은 우리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무지몽매한 정치의 그릇된 흐름을 고발하고자 함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치적 방향을 언명하고자 함이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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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럽,
그리고
세계
우리 나라는 외부와 단절돼 있지도 요지부동의 세계 속에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지구적 운명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류 전체는 핵무기 확산, 민족적·종교적 갈등 분출, 생태계 파괴, 통제 불능인 세계경제의 양면적 흐름, 금권의 횡포, 태곳적부터의 폭력과 산업적ㆍ경제적 이해관계 특유의 차가운 폭력의 결합이 야기한 치명적 위험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20세기에 전체주의의 폭력을 겪고 난 인류는 이제 금융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덤벼드는 동시에 갖가지 민족적·국가적·종교적 흑백논리와 광신이 위세를 떨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인류는 그 자체로 인간을 인간적인 삶으로 이끌지 못하는 대공황을 일으킬 만한 온갖 위기들의 총체에 직면해 있다.
폴 발레리는 대공황이 지속되던 1932년에 이보다 더 시사적일 수 없는 통찰력으로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인류가 이토록 막강한 힘으로 이토록 많은 혼란, 이토록 많은 근심과 희생자들, 이토록 많은 지식과 불확실성을 이끌어낸 적은 없었다. 불안과 무의미함이 오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두 축이다.”
얼마 후, 이번에는 콘라트 로렌츠가 이런 의문을 품었다.
“오늘날 인간의 영혼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에 대한 맹목적 집착인가, 아니면 열띤 조급증인가.”
정답은 둘 다이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에겐 두 가지 의무가 있다.
그 하나는 지구의 운명에 동참하고 보편적 원칙을 지켜나가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이다. 이 보편적 원칙은 오늘날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11절과 12절에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
(11절)
유럽이 찬미하는 프랑스가
자유를 되찾았다
이제 각 시민은
평등의 법칙 아래 숨 쉰다(반복)
언젠가 존귀한 프랑스의 이미지가
전 세계로 확장되리라
민중들이여, 속박의 쇠사슬을 끊으라,
그리하여 조국을 얻으라!
(후렴)
(12절)
초기 로마를 지배했던
로마 군대가
인권을 짓밟으며
국민들을 노예화했다(반복)
우리는 가장 원대하고 가장 현명한
목표를 위해 전쟁에 뛰어든다
우리 프랑스인들이 무기를 휘두를 때는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야 할 때뿐
1944년에 프랑스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채택한 개혁안과 그로부터 4년 후에 르네 카생의 활약으로 파리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도 이와 같은 열망이 펄떡거리고 있다.
지구의 운명을 우리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노랫말과 개혁안과 선언문에 명시된 원칙들에 의거하여, 우리 프랑스를 포함한 세계 각국을 병합하고 존중하는 지구나라(Terre-Patrie), 즉 지구라는 하나의 조국을 향해 넓고 길고 험난한 길을 닦아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국이 다른 영역에서는 각자의 주권을 철저히 수호하되, 지구촌 시대의 총체적 문제들에 직면해서는 주권을 초월하여 협력해야 한다.
이데올로기 행세를 하는 경제자유주의는 실패한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자유방임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풍요보다는 빈곤을 초래했다. 경제자유주의 시스템 하의 세계화, 개발, 서구화(똑같은 현상의 세 가지 이름)는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을 다루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스스로 초래한 치명적 문제점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경제자유주의 시스템은 존속하는 동시에 변화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변모하는 환경을 창출해내지 않는 한, 와해되고 퇴보할 운명을 면치 못하리라.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이 시스템은 변모하지 않으면 붕괴할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변모는 하천들이 모여 거센 강물을 이루듯 개혁과 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과정들이 결합한 끝에야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변화 중인 현재야말로 진정한 시대 교체의 서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가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것인 동시에 최악의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최상이라 함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를 지탱하는 모든 영역이 상호의존적이 되었다는 점에서이다. 인류는 운명공동체가 되었고 이로써 지구라는 하나의 조국, 지구나라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때의 지구나라는 개별적 국가들을 부정하지 않되 병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자.
최악이라 함은 연쇄 재앙으로 향하는 광적인 질주의 출발이라는 점에서이다. 파괴적인 과학 및 기술이 통제 불능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두고 이윤 경제가 전방위적으로 맹위를 떨침으로써,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20세기의 전체주의를 계승하여 한계를 모르는 금융자본주의의 횡포가 국가와 국민을 금권에 굴복시켰으며, 외국인 혐오, 타 인종과 민족, 영토에 대한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흐름이 다시금 부상했다. 금융투기에 무분별한 맹신과 흑백논리가 합세한 폐해는 재앙을 예고하는 일련의 절차들을 증폭시키고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오늘날 추진되고 있는 개발이 ‘서구식으로’ 세계 인구의 일부에게만 번영을 가져오는 반면, 그 밖의 수많은 지역에는 불행을 양산하고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화와 탈세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치명적 위기에 처한 전 세계 모든 인간이 어우러진 운명공동체를 우리 인류에게 선사하는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이 지구의 운명에 연대를 느끼고,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를 수호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화에서 비롯된 모든 상호 연대와 문화적 풍요로움을 발전시키고 영속시키는 동시에, 국가·지방·지역의 시급한 자치권을 복원하기를, 세계 도처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장려하기를 제안한다. 한편 농업 경제를 수호하고 식량 생산 농업과 그에 직결된 식품 공급 및 지역의 수공업과 상업을 보호함으로써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과 곤경에 처한 도시 외곽지대의 공공시설 부족을 막기 위해, 사회연대경제에 모든 자리를 내주는 탈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획일화된 개발이 연대감과 전통적 사회가 보유한 지식 및 역량을 자칫 간과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동체를 감싸안는 연대감을 보존하는 방식의 개발을 거듭 고민하고 다각화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프랑스를 필두로 우리는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성장지상주의의 편향된 요구를 복합적인 요구로 대체해야 한다. 즉 친환경 에너지, 대중교통, 사회연대경제, 학교, 문화, 대도시의 인간화를 목표로 하는 개발 등을 지향하는 한편, 농업의 산업화, 화석연료와 원자력 에너지, 기생적인 유통업계, 군수산업, 소비중독, 경박한 과잉경제, 낭비하는 생활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이제 성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의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되었다.
다극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유럽에 통일성, 자치권, 정치적 의지를 부여함으로써 국가 간 응집력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유럽이 현 세기의 모든 중대한 문제점들을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평화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이민자들의 사회 편입을 위한 공동의 정책을 고심하여 입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비극적 분쟁처럼, 세계 도처에서 발발하고 연장되어 폭력을 증폭시키는 분쟁의 첨예화를 저지하기 위해 개입해야 하리라.
우리가 정한 유럽의 거대한 목표는 이렇다. 15~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가 그리스 철학의 이상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명을 창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도 다른 문명의 도덕과 정신, 특히 동양의 지혜를 흡수함으로써 새로운 르네상스 출현에 공헌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 지금 그대로의 서구화를 지속할 것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문화적 특수성 및 빈부의 격차를 고려하여 모든 문명의 장점을 집대성하는 데 주안점을 둔 인간적 정책을 실현해가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바로 그러한 문명의 공생이야말로 문명 간 충돌이나 전쟁을 결정적으로 방지하는 길일 것이다.
유럽은 인도주의, 실질적 민주주의,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계속해서 발전시켜가는 동시에 국경 안팎에서 자신들의 문명에 의해 자행되는 날로 폐해가 커지는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프랑스는 자국에서부터 먼저 ‘문화정책’을 위한 운동을 실시하는 것으로 이러한 흐름의 선봉장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대적인 변모는 여러 형태의 과정과 발전을 거쳐야만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알았으니, 우리는 이제부터 유엔을 개혁하고 재정비하는 일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확산, 생태계 파괴, 기근의 재발과 식량 부족,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키는 국제투기금융자본의 폐해를 줄이는 실질적인 경제 규제의 필요성 등 시급한 현안들을 처리하도록 국제결정기관을 창설할 수 있는 국제정부를 세우자고 전 세계에 제안하는 바이다.
파멸을 향해 치닫는 인류의 질주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위태로운 상황들을 유발했고, 이러한 상황들은 분노한 민중의 움직임이 지리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설명하고 정당화한다. 불평등의 증대, 오만하고 파렴치한 부패, 만성적 실업. 바로 이것들이 지난봄에 혁명을 일으킨 아랍인들과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 칠레 등지의 분노한 민중,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여타 대도시의 폭도들, 이스라엘의 저항자들, 인도의 반란자들이 한목소리로 성토하던 공통된 몇 가지 문제점들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에게 지극히 중대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인식하자. 이 시대의 양면성, 위험과 위기뿐만 아니라 기회 또한 인식하자.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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