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우리의 산업 문명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산업적 생활방식을 구성하는 석유 및 여타의 화석연료 에너지는 마치 일몰과 같이 서서히 지고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들을 토대로 움직이는 수많은 기술 또한 시대에 뒤진 구식이 되었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구축한 산업 인프라 역시 전체적으로 노화하고 있으며 점점 황폐해진다. 그 결과 세계 전역에서 실업률이 위험한 수위로 치솟고, 각국의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는 빚에 허덕이며, 생활수준은 모든 곳에서 곤두박질쳤다. 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 중 7분의 1에 달하는 10억 명의 사람이 지구 곳곳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화석연료에 기초한 산업 활동의 결과로 기후변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우리를 덮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현재 지구의 기온 및 화학작용이라는 잠재적 격변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금세기 말에는 동식물이 대멸종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따라서 갈수록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우리를 안내할 새로운 경제 내러티브가 아주 절실하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화석연료가 주도하는 산업혁명은 정점에 이르렀고 인류가 야기하는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지구에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증거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30년간 나는 탄소 후 시대(post-carbon era, 탈탄소화 시대)를 안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 결과, 내가 깨달은 것은 역사상 거대한 경제 혁명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결합할 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에너지 체제는 더욱 상호 의존적인 경제활동을 창출하며 상거래를 확대할 뿐 아니라 보다 밀접하고 폭넓은 사회적 관계를 촉진한다. 여기에 수반되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시간적·공간적 동력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수단이다.
1990년대 중반, 나는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의 새로운 수렴 현상이 목전에 닥쳤음을 인식했다. 인터넷 기술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들이 곧 서로 융합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3차 산업혁명(Third Industrial Revolution, TIR)을 위해 새롭고 강력한 기반을 창출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수억의 사람이 가정이나 사무실 또는 공장에서 자신만의 녹색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며, 현재 우리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창출하고 교환하듯 ‘에너지 인터넷’으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에너지 민주화는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 비즈니스와 정치, 자녀 교육의 방식은 물론이고 시민 생활에 참여하는 방법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워튼 스쿨의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Advanced Management Program, AMP)에서 3차 산업혁명이 지닌 비전을 소개했다. 워튼 스쿨은 내가 지난 16년간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과 기술, 경제, 사회 등의 새로운 트렌드를 강의한 경영대학원이다. AMP는 5주 교육프로그램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CEO들과 기업 경영자들에게 21세기에 직면할 여러 현안 및 도전을 가르친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소개한 3차 산업혁명의 개념은 곧 여러 기업의 내부로 흘러들어갔고, EU의 정상들 사이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정치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00년경, EU는 지속 가능한 경제 시대로 이행하기 위해 탄소 의존도를 현격히 줄이는 여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유럽인은 그에 따라 목표와 벤치마크를 준비하고 연구개발 우선 사항을 재설정하며 새로운 경제적 여정을 위한 규약과 규정, 표준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실리콘밸리에서 내놓는 ‘킬러 앱(killer app)’과 최신 장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주택 보유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바람을 넣은 부동산 시장 호황에 흥분과 기대감에 빠져 있었다.
당시 원유에 대한 불안한 예측과 끔찍한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 그리고 수면 아래에서는 사실상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여러 징후에 관심을 가진 미국인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전국적으로 만족하는, 심지어 안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자 국민은 미국은 역시 운이 좋으며 다른 국가에 비해 우월하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이러한 조국에서 다소 이방인이 된 나는 1850년 호러스 그릴리가 불만 가득한 이들에게 전했던 “서쪽으로 가게 젊은이, 서쪽으로.”라는 현명한 조언을 무시하고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어 유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미국과 달리 유럽은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많은 미국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잠깐, 유럽은 무너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네잖아! 그냥 하나의 큰 박물관일 뿐이라고. 여행하기에는 좋은 곳일지 몰라도 세계 무대에서는 더 이상 강력한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 대륙이야.”
나 역시 유럽의 수많은 문제와 결함, 모순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멸적인 비방은 미국이나 여타 국가의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들이 지닌 많은 한계를 지적하자면 말이다. 그리고 미국인은 자만심에 도취하기 이전에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EU가 세계 최대의 경제기구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EU 27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50개 주의 GDP를 초월한다. 국제적으로 군사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지 않지만 EU는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여러 정부 가운데서 미래 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큰 질문을 던지는 곳이 오직 EU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동쪽으로 향했다. 지난 10년간 내 시간의 40퍼센트 이상을 EU에서 보내며 때로는 주 단위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양 대륙을 오갔고 여러 정부와 비즈니스 공동체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협업하여 3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2006년 나는 EU 의회의 리더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3차 산업혁명 경제개발계획의 초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7년 5월, EU의회는 공식 선언문을 작성해 3차 산업혁명을 EU의 장기적인 경제 비전이자 로드맵으로 공인했다. 현재 EU 회원국은 물론이고 EU 집행위원회 내의 다양한 기관에서 3차 산업혁명의 비전을 구현하고 있다.
EU 의회의 선언문이 나온 지 1년 후, 다시 말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불과 몇 주 지난 2008년 10월, 나는 서둘러 워싱턴 D.C.에서 모종의 회합을 주최했다. 이 회합에는 재생 에너지, 건설, 건축, 부동산, IT, 전력설비, 운송 및 물류 등에 종사하는 세계 각국 대표 기업들의 CEO와 최고 경영진 80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우리는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모임에 참석한 기업 리더들과 동업자 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고 3차 산업혁명 네트워크를 결성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글로벌 경제를 광범위한 탄소 후 시대로 진입하게 유도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네트워크가 있어야 각국의 정부와 지역 기업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과 공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필립스, 슈나이더 일렉트릭, IBM, 시스코 시스템스, 악시오나 에너지, CH2M 힐, 아럽(Arup), 에이드리언 스미스 앤드 고든 길 건축, Q-셀 등을 포함하는 경제개발 그룹을 결성했다. 이 그룹은 동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개발 네트워크로, 현재 각국의 경제를 3차 산업혁명 인프라로 전환하는 마스터플랜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도시와 지역 그리고 중앙 정부들과 공동 작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의 비전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각 나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2011년 5월 24일, 나는 34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경제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나는 각 나라에서 탄소 후 시대의 산업사회를 준비할 때 본보기로 이용할 수 있는 OECD 녹색 성장 경제계획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책은 3차 산업혁명의 비전과 경제개발 모델을 내부 관계자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그것의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각국의 정상과 글로벌 CEO, 사회적 기업가, 비정부기구(NGO) 들과 같은 참가자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성향까지 고찰한다.
3차 산업혁명을 위한 EU의 청사진을 설계하면서 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이탈리아의 로마노 프로디 총리,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 EU 집행위원회 마누엘 바호주 위원장, 그리고 유럽이사회의 다섯 정상 등을 포함해 다수의 유럽 지도자와 함께 일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렇다면 우리 미국인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없을까? 나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다. 먼저 우리의 유럽 친구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시도하는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긴 해도 유럽인은 적어도 화석연료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녹색 미래로 진입하는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인은 대부분 과거에 너무도 훌륭했던 경제체제가 이제는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계속 부인하는 행태만 보인다. 우리도 유럽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유럽이 먼저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야기 만들기와 그 전달에 관해서라면 미국만큼 재능 있는 나라가 없다. 매디슨 애비뉴와 할리우드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특히 그 방면에 탁월하다. 그동안 미국에 우위를 안겨 준 것은 생산 및 제조 감각이나 군사력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생생하고 명확하게 그려 내는 묘한 능력이었다. 이러한 능력으로 기차역을 떠나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미국인이 진정으로 3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분명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인은 예의 그 월등한 능력을 발휘하며 발 빠르게 움직여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을 것이다.
위대한 산업혁명의 마지막을 장식할 3차 산업혁명은 부상하는 협력의 시대를 위한 기초적 인프라를 마련할 것이다. 40년에 걸쳐 구축할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수십만 개의 사업체와 수억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이번 산업혁명을 완성하면 근면한 사고와 사업 시장, 대규모 노동력을 특징으로 200년에 걸쳐 회자된 영리주의 전설은 종결될 것이다. 동시에 협력적 행동 방식과 소셜 네트워크, 창의적 전문가 및 기술 인력이 특징인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릴 것이다. 다가오는 반세기에는 1차, 2차 산업혁명의 전통적인 중앙집권화 경영 활동이 3차 산업혁명의 분산 사업 관행으로 점차 대체될 것이다. 또한 경제 및 정치 권력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계급 조직이 사라지고 사회 전반에 걸쳐 교점 중심으로 조직되는 수평적 권력(Lateral Power: 이 책에서 power는 힘이나 권력 또는 동력이나 전력을 가리킨다. 문맥에 따라 ‘권력, 힘, 파워, 동력, 전력’ 등으로 표현했다. ─ 옮긴이)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 수평적 권력의 개념은 우리가 전반적인 역사에서 경험한 권력 관계와 너무 심하게 모순된다고 느낄 수 있다. 권력은 어쨌든 위에서 아래로 피라미드처럼 구성되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 기술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융합으로 생겨난 공동 권력은 근본적으로 인간관계를 상하 구조가 아닌 수평 구조로 재조정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심오한 변화를 안겨 줄 것이다.
21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점점 더 많은 상업 활동을 인공지능을 갖춘 기술적 대체물이 관리 및 감독할 것이다. 그로 인해 인류의 상당수는 일에서 해방되어 비영리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데 주력할 것이고, 더불어 세기 후반부에는 사회적 자본 창출이 지배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상업은 여전히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이겠지만 더 이상 인간의 염원을 정의하는 무엇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만일 다음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인류의 물질적 니즈를 충족하는 데 성공한다면(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필수조건이다.), 인류 역사의 다음 시기에는 초월적인 관심사들이 훨씬 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본문에서 우리는 3차 산업혁명 인프라와 3차 산업혁명 경제의 근본적 특징 및 작용 원리를 탐구하고 다음 40년 동안 우리가 밟을 가장 가능성 높은 행보를 예측한다. 한편 세계 각국과 공동체에 혁명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장애와 기회도 살펴볼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금세기 중반에 다다르기 전에 비극적인 기후변화를 피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탄소 후 시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준다.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 전략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너무 늦기 전에 저 앞에 놓인 경제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곳에 도달할 의지를 끌어모을 수 있느냐 여부일 뿐이다.
1장
모두가 놓친
진짜 경제 위기
새벽 5시. 나는 러닝 머신 위를 달리면서 한 케이블 방송의 아침 뉴스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때 리포터가 흥분한 목소리로 자칭 ‘티 파티(Tea Party)’라는 새로운 정치 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러닝 머신에서 내려섰다. 텔레비전을 보니 노란색 바탕에 똬리를 튼 방울뱀을 그려 놓고 그 밑에 ‘나를 건드리지 마라.’라고 쓴 깃발을 든 중년의 미국인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어떤 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대표 없는 과세 없다.’, ‘국경을 봉쇄하라.’,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이밀었다. 리포터의 목소리는 시위자들의 구호와 섞여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 운운하며 유권자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배만 불리기에 급급한 진보적 정치인들과 워싱턴 D.C.의 거대 정부에 저항하는 그 운동이 지금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내가 보고 듣는 내용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내가 거의 40년 전에 조직했던 무언가의 왜곡된 반전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 무슨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1973년 보스턴 오일 파티
1973년 12월 16일, 동이 트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보스턴 시내의 패늘 회관을 향해 걸어가는 내 얼굴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쳤다. 패늘 회관은 한때 조지 3세와 그의 법인체들이 펼치는 식민지 정책에 대항했던 샘 애덤스 및 조지프 워런과 같은 급진파가 모이던 아지트나 다름없던 곳이다.(그들은 악명 높은 영국 동인도회사를 가장 큰 증오의 대상으로 여겼다.)
도시는 벌써 몇 주간 궁지에 빠져 있었다. 평소 교통체증이 심했던 도심 지역은 기름이 동이 난 주유소가 늘어나자 며칠 사이에 무척 한산해졌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몇몇 주유소에는 자동차들이 몇 블록에 걸쳐 길게 늘어서서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렸다. 운 좋게 기름을 넣은 운전자들은 주유기에 적힌 가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2~3주 만에 휘발윳값이 배로 뛰어 당시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던 미국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인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할 만했다. 미국이 20세기의 주도적 위치에 올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풍부한 석유 매장량과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국민에게 저렴한 자동차를 안겨 주던 약빠른 능력 덕분이었음을 알기에 특히 그랬다.
미국인의 국민적 자부심에 충격을 준 사건은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두 달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미국이 4차 중동전쟁 동안 이스라엘 정부에 군용 장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석유금수조치를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일 쇼크’는 파문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12월에 이르러 국제 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1.65달러까지 치솟으며 월 가와 중산층을 극심한 공포에 빠뜨렸다.
새로운 현실은 가장 먼저 동네 주유소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많은 미국인은 거대 정유회사가 뜻밖의 횡재를 누리고자 독단적으로 기름값을 올려 상황을 악용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자 보스턴 및 전국 각지의 운전자들의 분위기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19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구에서 일어난 격렬한 사건의 배경이다.
이날은 영국 왕조를 향한 식민지 민중의 반심에 불을 지른 보스턴 티 파티(일명 보스턴 차 사건)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200주년 기념일이었다. 모국에서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로 수입되는 차와 여타의 상품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한 것에 분노한 샘 애덤스는 일단의 불만 세력을 규합했고, 그들 중 일부는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화물선을 급습하여 차 상자를 깨뜨리고 그 안의 차를 모조리 바다로 던져 버렸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표현은 곧 급진파들의 플래카드 구호가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최초의 공개적인 저항은 군주국과 13개 식민지 사이에 일련의 반발과 역반발을 야기했고 결국 1776년의 독립선언과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기념일을 앞둔 몇 주 동안 거대 정유사를 향한 분노는 갈수록 쌓여만 갔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와 같이 기본 권리로 여겼던 저렴한 휘발유와 자유로운 이동성에 대한 권리가 바가지요금을 부과하는 거대 정유사들 때문에 위협받는 사실에 많은 미국인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 나는 1960년대의 시민평등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참여했던 28세의 젊은 사회운동가였다. 그 1년 전에는 몇 년 후면 맞이할 1776년 독립선언 200주년 기념일에 맞춰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닉슨 행정부가 설립한 ‘미국 200주년위원회’에 대한 급진적 대안으로 ‘민중 200주년위원회’라는 전국적인 조직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대안을 만들어 낸 부분적인 이유는 뉴레프트(New Left: 1960~1970년대의 신좌익) 운동에 동참한 동료에게서 점점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상인과 정비공, 경찰관, 소방관 그리고 가축시장이나 철도 조차장, 인근의 제강소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주로 거주하는 시카고 남부의 노동자 계층 동네에서 자랐기에 애국심이 핏속에 흘렀다.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은 동네 곳곳의 현관마다 걸려 있는 성조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동네는 1년 365일이 국기 다는 날이었다.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자라면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페인, 조지 워싱턴 등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닌 급진적 의식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이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걸고 삶과 자유에 대한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한 혁명적인 사상가들이었다.
뉴레프트 운동에 참여한 동료들은 대부분 미국의 엘리트 교외 거주지에서 자란, 나보다 집안 배경이 좋은 친구들이었다. 사회정의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데 헌신하긴 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외의 혁명적 투쟁에서, 특히 2차 세계대전 후에 발생한 반식민지주의 투쟁에서 점점 더 많은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 모종의 지침을 세우고 이타적 행위를 독려하기 위해 마오쩌둥과 호치민, 체 게바라의 사상을 논하던 수많은 정치 모임들이 떠오른다. 지난 200년 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반식민지주의 투쟁은 우리 미국의 혁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라고 믿으며 성장한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매우 낯설기만 했다.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행사는 젊은 세대에게 미국의 급진주의 약속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터였다. 특히 닉슨 대통령과 일단의 영리 목적 후원자들이 주도하는 백악관 공식 기념행사가 우리가 기념해야 할 미국의 영웅들에게 보다 어울리는 경제적·사회적 정의보다는 귀족적 특권에 대한 군주적 과시를 근본으로 삼는 것으로 보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우리는 보스턴 티 파티 기념일을 정유사에 항거하는 시위의 날로 계획했다. 거리로 나와 시위에 동참해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거대 정유사에 반대하는 시위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예측할 방도도 없었다. 눈까지 내리기 시작하여 참가자 수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점점 깊어만 갔다. 1960년대에는 반전 시위를 계획할 때 일정을 항상 봄철로 잡았다. 당연히 보다 많은 군중을 끌어모으기 위한 의도였다. 사실 경험 많은 사회운동가들 중에서도 한겨울에 집단 시위를 조직했다는 기억은 없다.
모퉁이를 돌아 패늘 회관이 있는 길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천 명의 인파가 회관을 향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정유사가 책임져라.’, ‘거대 정유사를 타도하자.’, ‘미국 혁명 만세’ 등의 격문이 적힌 플래카드와 팻말을 들고 ‘엑슨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회관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내가 먼저 연단에 올라 시위자들에게 오늘을 ‘에너지 독립’을 위한 또 다른 미국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기억할 것을 촉구하는 짧은 열변을 토했다. 그런 후 우리는 200년 전 ‘티 파티 시위자들’이 그리핀스 항구로 향할 때 이용했던 노선을 그대로 밟으며 거리 시위에 돌입했다. 부두로 향하는 우리의 행렬에 학생과 노동자,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가족 전체가 나선 그룹 등 수천 명의 보스턴 시민이 추가로 동참했다. 살라다 티 컴퍼니의 선박(원래의 배를 재현해 놓은 것)이 정박해 있는 선창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시위대가 2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들은 모두 부둣가에 늘어서서 ‘거대 정유사를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쳐 댔다. 시위는 세심하게 준비한 200주년 기념행사를 압도했다. 멀리 북쪽의 글로스터 지역과 여타의 지역에서 온 낚싯배들이 일종의 함대를 이뤄 경찰의 봉쇄를 뚫고는 연방 및 지방 고위 관리들이 공식 행사를 기다리는 살라다 티 컴퍼니의 선박으로 향했다. 낚시꾼들은 선박에 올라 선상을 장악했으며, 어떤 이들은 돛대 꼭대기에 올랐고 또 어떤 이들은 차 상자 대신 빈 휘발유 통을 강으로 내던졌다. 이를 지켜보던 시위자들은 연신 환호성을 질러 댔다. 다음 날 《뉴욕 타임스》를 위시한 미국의 여러 신문은 이 사건을 ‘1973년 보스턴 오일 파티’라 칭했다.
2차 산업혁명의 종반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35년이 흐른 2008년 7월의 어느 날, 유가는 국제 원유 시장에서 배럴당 147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도달했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배럴당 24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001년, 나는 수년 안에 유가가 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며 석유파동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나의 의견에 많은 이가 회의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조롱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대부분의 지질학자와 경제학자는 물론 석유업계 관계자들까지 나서서 적어도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7년 중반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어서자 전 세계적으로 전반적인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또한 동반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경제의 모든 상업적 활동이 사실상 원유나 여타 화석연료에 의존한다는 매우 단순한 이유에 기인했다. 우리의 식량 대부분은 석유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여 재배한다. 시멘트나 플라스틱 등과 같은 대부분의 건설자재와 제약 제품도 화석연료로 만든다. 우리가 입는 옷 대부분 역시 석유화학 합성섬유로 만든다. 교통과 동력, 난방, 전력 또한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세계의 전체 문명은 석탄기의 탄소 퇴적물을 토대로 건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가정했을 때 5만 년 후 태어나서 살아갈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분명 우리를 ‘화석연료 사람들’이라 부를 것이며 우리가 과거를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같은 이름을 붙였듯이 현시대를 탄소 시대로 정의할 것이다.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다시 말해서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터지자 곡물 가격이 차례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22개의 나라에서 각종 시위와 폭동이 발발했다. 멕시코의 토티야시위, 아시아 몇몇 지역의 쌀 폭동이 그것이다. 확산된 정치적 불안은 공포를 낳았고 결국 원유와 식량의 연결성에 관한 범세계적인 논의를 촉발했다.
인류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인구가 하루 2달러 이하의 금액으로 살아가는 까닭에 주요 식량 가격의 변화는 그 수준이 미미하더라도 크나큰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2008년경 콩과 보리 가격은 두 배나 뛰었고 밀은 거의 세 배, 쌀은 네 배나 올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사상 초유로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배고픈 채 잠이 든다고 밝혔다.
선진국의 중산층 소비자들까지 유가 폭등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자 두려움은 더욱 확산되었다. 기본적인 품목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기름값과 전기요금이 오르고, 건설자재와 의약품, 포장자재 등의 가격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식으로 가격이 오른 상품의 목록이 끝없이 이어졌다. 봄이 끝나갈 무렵 물가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상승했고, 구매력은 지구 곳곳에서 빠르게 하락했다.
2008년 7월, 글로벌 경제는 일제히 멈춰 섰다. 바로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거대한 경제 지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60일 후 발생한 금융시장의 붕괴는 여진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국가원수와 경제학자, 비즈니스 리더 들은 지금도 세계를 뒤흔든 경제 붕괴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신용시장 거품과 정부 부채가 유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굳게 믿는다. 이 두 가지가 석유 시대의 종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용 위기와 부채 위기는 단지 규제가 철폐된 금융시장을 잘못 관리해서 발생했다는 사회적 통념이 지속되면 될수록 세계 각국의 리더는 위기의 근원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근본적인 치유책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은 잠시 후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2008년 7월에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을 세계화의 정점으로 정의한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화석연료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글로벌 경제성장을 확대할 수 있는 최댓값, 즉 그 외곽 한계에 도달해 있다.
현재 우리는 석유 시대와 그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의 종반전에 접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여야 할 냉정한 현실이다. 인류의 모든 구성원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전혀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새로운 산업 모델로 옮겨 가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명의 종말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 측면에서 우리가 문제에 직면한 이유는 ‘글로벌 피크 오일 생산’ 때문이 아닌 ‘1인당 글로벌 피크 오일’ 때문이다. 글로벌 피크 오일 생산은 석유지질학자들이 세계 석유 생산이 이른바 허버트 종형 곡선의 정점에 도달하는 단계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피크 오일 생산은 최종적으로 채굴 가능한 석유 매장량이 절반 정도 고갈되었을 때 발생한다. 곡선의 윗부분이 석유 채굴의 중간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생산은 증가했던 속도만큼 빠르게 하락한다.
매리언 킹 허버트는 1956년도에 쉘 오일 컴퍼니에 몸담았던 지구물리학자였다. 그는 미국 48개 주의 석유 생산이 1965년에서 1970년 사이에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예상은 동료들의 비웃음을 샀다. 미국의 위대한 강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개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바로 묵살되었다. 그러나 허버트의 예언은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1970년, 미국의 석유 생산은 정점에 달했으며 이후 기나긴 시간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40년간 지질학자들은 글로벌 피크 오일 생산이 언제 발생할지 그 시점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펼쳐 왔다. 낙관론자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토대로 아마도 2025년에서 2035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세계 최고의 지질학자 몇몇을 포함한 비관론자들은 2010년에서 2020년 사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리에 사무국을 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주요 석유 소비국들이 설립한 OECD 산하의 에너지 집단 안보체제로서 각국 정부에 에너지에 관한 정보와 예측을 전달하는 기관이다. IEA는 2010년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글로벌 피크 오일 생산에 관한 논란을 잠재우는 듯한 내용을 밝혔다. 즉, 원유의 글로벌 피크 생산은 추정컨대 2006년 하루 생산량이 7000만 배럴에 다다르면서 이미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 인정은 국제 석유 공동체에 큰 충격을 던지며 원유에 중점적으로 의존하는 글로벌 기업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IEA는 글로벌 경제의 급격한 붕괴를 막으려면 석유 생산량을 하루 7000만 배럴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할 수 있으려면 향후 25년간 기존 유전에서 남아 있는 원유를 최대한 추출하거나 찾아는 놓았지만 생산량이 적을 것 같아 손대지 않던 유전까지 파헤치고, 갈수록 찾기 힘든 새로운 원전을 찾아내는 등의 작업에 8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1979년 2차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일어난 ‘1인당’ 피크 오일에 관한 부분이다. 영국석유회사(BP)가 시행한 연구와 이후 동일한 결과를 보여 준 다른 연구에 따르면,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전제 아래 이용 가능한 원유가 바로 그해에 1인당 피크 오일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더 많은 유전을 찾아냈지만 동시에 세계 인구는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 현재 세계에 알려져 있는 모든 원유를 지구상에 생존해 있는 68억 인구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면 1인당 이용 가능한 양은 1979년보다 더 적을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중국과 인도의 경제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탔다.(2007년 인도는 9.6퍼센트, 중국은 14.2퍼센트 성장했다.) 이는 곧 인류의 3분의 1이 새로 석유 시대에 합류했음을 의미했고, 결국 기존의 석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유가가 치솟아 앞서 언급한 배럴당 147달러까지 올랐으며, 그 직접적인 여파로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가 하락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멈춰 선 것이었다.
2010년, 경제는 주로 고갈된 재고 물량을 보충하기 위해 조금 회복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장을 시작함과 동시에 유가가 따라 움직였고, 2010년 말에는 배럴당 90달러까지 올랐다. 결국 다시 연쇄적인 생산 및 공급 과정 전체에 걸쳐 가격이 상승했다.
2011년 1월, IEA의 수석 경제학자인 파티 비롤은 경제적 생산량의 증가와 유가 상승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주목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경제 회복에 탄력이 붙으면 “유가가 위험 지대에 진입하여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 경고했다. IEA에 따르면 대부분 부유한 선진국인 OECD 34개 회원국의 2010년 원유 수입은 연초 2000억 달러 수준에서 연말에는 790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EU의 2010년 원유 수입 상승폭은 7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 비용은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재정 적자를 합친 금액과 맞먹었다. 미국만 해도 원유 수입 상승 폭이 720억 달러였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OECD의 GDP가 0.5퍼센트 손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 개발도상국은 원유 수입 비용이 200억 달러 정도 증가하자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GDP의 거의 1퍼센트에 달하는 수입이 사라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특히 GDP 대비 원유 수입 비용의 비율은 2008년에 보였던 것과 동일한 수준에 육박했다. 글로벌 경제의 붕괴 직전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IEA는 “원유 수입 비용의 증가가 경제 회복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라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IEA가 2010년 보고서를 공개한 바로 그날, 《파이낸셜 타임스》의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서구 열강 사이에 일고 있는 ‘1인당 생산량’의 역사적인 수렴 현상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컨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서 2009년 사이에 미국의 1인당 생산량 대비 중국의 1인당 생산량 비율은 3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증가했고, 인도의 비율은 3퍼센트에서 7퍼센트로 올랐다.
울프는 미국의 1인당 생산량 대비 중국의 1인당 생산량이 2차 세계대전 후 경제 회복을 개시했을 무렵의 일본과 유사하다고 썼다. 일본의 1인당 생산량은 1970년대 미국의 70퍼센트 수준까지 올랐으며, 1990년에는 미국의 90퍼센트 수준까지 상승했다. 만약 중국이 이와 유사한 궤적을 밟는다면 2030년에 미국의 70퍼센트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와는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2030년이면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의 세 배 규모가 될 것이며,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를 합친 것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벤 버냉키는 2010년 11월의 한 연설에서 2/4분기에만 신흥 경제국들의 실질 총생산량이 2005년 초 수준에 비해 41퍼센트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 기간에 중국의 총생산량은 70퍼센트, 인도의 총생산량은 55퍼센트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 경제 생산량이 21세기 초 8년 동안과 같은 속도로 다시 증가한다면(지금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나 그 이상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갈 것이다. 이는 여타의 모든 재화와 용역의 비용을 급상승시킬 것이고 또다시 구매력 하락과 글로벌 경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10년간 경제적 탄력을 되찾기 위해 쏟아부은 각각의 모든 노력이 배럴당 150달러 수준의 유가를 만나면서 멈출 것이라는 얘기다. 재성장과 붕괴 사이의 이러한 거친 선회는 글로벌 경제의 종반전을 고할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유가 상승 원인이 공급에 대한 수요 압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큰돈을 벌기 위해 원유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드는 투기꾼들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투기꾼들 때문에 문제가 악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새로 발견하는 원유 1배럴 대비 3.5배럴에 해당하는 원유를 소비해 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 현실이 우리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다.
오늘날, 점차 고갈되는 원유에 대한 수요 증가의 압력은 중동의 정치적 불안 때문에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11년, 튀니지·이집트·리비아·이란·예멘·요르단·바레인 등 중동 여러 나라의 수많은 젊은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혹은 수세대에 걸쳐 이어져 온 부패 독재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60년대 서구 젊은이들의 저항을 연상케 하는 중동 젊은이들의 모반은 막대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세대교체이다.
종족에 대한 전통적 충성은 물론 페이스북 프로필과도 동질감을 느끼며 글로벌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상하는,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세대에게 예전의 방식들은 그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구세대의 가부장적 사고와 엄격한 사회규범, 국수적 행동 방식 등은 투명성과 협력적 행동방식, 개인 간의 관계를 중시하며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 내에서 성장한 신세대에게는 너무도 낯설기만 하다. 이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의식 자체에 역사적인 분열이 일고 있음을 뜻한다.
국민의 궁핍을 대가로 자신의 배만 불리는 독단적이고 잔악한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으며 실력보다는 배경이 좌우하는 부패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진력이 난 젊은이들은 변화를 요구했다. 불과 몇 주 만에 그들은 튀니지와 이집트 정부를 몰락시켰고 리비아를 내전으로 몰아넣었으며 요르단과 바레인 정권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갔다.
중동 지역이 그토록 피폐해지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석유다. ‘검은 황금’으로 통하던 석유는 오히려 음울한 저주로 작용했다. 중동 지역 대부분이 소수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단일 자원 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수장들은 석유를 유통하여 억만장자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은 빈약한 복지 지원금과 정부 고용 정책으로 국민을 침묵시켰다. 그 결과 이들 나라는 탄탄하고 다면적이며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경제와 이를 관리할 만한 인력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결국 수세대에 걸쳐 수많은 젊은이가 자신의 잠재 능력을 제대로 계발하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렸다.
구세대에 비해 자율적이며 대담한 오늘의 신세대는 나약한 어른들의 사고와 관습에서 탈피하여 권력에 맞서면서 그들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승리를 맛보았다. 구체제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으며, 비록 발전이 더디고 고통스러운 긴축이 따르겠지만 수세대에 걸쳐 아랍 세계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기나긴 가부장적 통치가 향후 10년 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현재 우리가 중동에서 목도하는 것은 계층적 권력에서 수평적 권력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대형 미디어 복합 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음악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작된 인터넷 세대가 중동에서는 독재 정부의 중앙집권화 통치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수평적 권력을 선보인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중동의 정치적 불안은 앞으로 수년 동안 세계시장의 유가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2011년 초, 리비아에서 정치적 대격변이 발생하자 자국 내 수많은 유전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하루 160만 배럴에 해당하는 원유 생산을 중단하면서 유가를 배럴당 120달러로 끌어올렸다. 석유 산업 분석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에서 원유 생산에 이와 같은 비슷한 차질이 생긴다면 하룻밤 사이에 유가가 20~25퍼센트 상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글로벌 경제 회복에 대한 그 어떠한 희망조차도 처참하게 뭉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서론, 본문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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