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서울의 봄이니 뭐니 하며 서울이 시끄럽고, 나아가 온 나라가 시끄럽다더니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그나마 새 대통령이 나라 밖에 나가 있어서 다시 들어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대학생들이 결정했기에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시끄러운 건 독재자 대통령이 죽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에 이미 부산과 마산에서 못살겠다고 시민들이 거세게 거리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독재자 대통령과 그의 부하들은 군인들을 풀어 힘으로 시민들을 몰아붙이며 깔아뭉갰지요. 그러나 자기들 힘을 보여 줄 만큼만 몰아붙이고 안 죽을 만큼만 깔아뭉갰습니다. 그럼에도 독재자 대통령은 결국 그 일로 부하한테 총을 맞고 죽었답니다.
광주도 봄 내내 시끄러웠습니다. 올봄은 특히 더 시끄러웠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선 대통령이 나라로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이른바 신군부라고 일컬어지는 군인들은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다른 지역은 기왕 조용히 지내기로 했으니 속으론 못마땅하면서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광주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제주도까지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군인들이 힘을 뻗치겠다고 발표하자 바로 학생들은 학교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군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이와 학생 들을 낚아챘습니다.
군인들이 이상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만나더라도 하지 않을 짓을 빈손뿐인 시민들에게 마구 해 댔습니다. 알고 보니 공수부대라는 군인들이었습니다. 공수부대 군인들은 시민을 마치 짐승이나 되듯이 다루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화려한 휴가’라는 말도 안 되는 작전명까지 붙였습니다.
본디 공수부대는 적진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서 산이나 도시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거나 주요 지역을 수색하고 의심 가는 건물 등을 폭파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 군인입니다.
그런 군인이 광주에 들어왔다는 건 광주를 적지로 보고 시민들을 적군으로 여김으로써 패거나 죽여도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공수부대 군인들은 작전명 그대로 그들의 ‘화려한 휴가’를 거침없이 즐겼습니다. 그것도 아무 죄 없는 시민을 상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광주의 하늘이 이상합니다. 탓! 탓! 탓!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헬리콥터 여러 대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헬리콥터는 마치 병아리를 채 가려는 솔개처럼 하늘을 빙빙 돌았습니다.
헬리콥터가 솔개와 다른 건 하얀 종이를 시민들 머리 위로 마구 뿌려 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진 종이는 이른바 ‘삐라’라는 전단지였습니다. 삐라엔 이런 말이 주로 씌어 있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바깥에서 많은 폭도들이 들어와
여러분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가오면 바로 신고하시거나
얼굴 생김과 옷차림을 잘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졸지에 젊은이는 물론 시민들 모두 ‘폭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선무방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무방송은 점령지에서 흥분한 사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적군을 꼬드기는 말이지요. 그래야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자신들이 한 짓도 두루뭉술하게 옳다며 포장시킵니다. 아무튼, 두말할 것 없이 광주는 정치군인들의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점령지, 즉 적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헬리콥터는 계속 삐라를 눈송이 떨어뜨리듯 하늘에 날리면서 더불어 이상한 방송까지 해 댔습니다.
폭도들은 자수하라. 그러면 생명은 보장하겠다!
사람들은 마구 흥분했습니다.
“누가 누구 보고 폭도라는 것이여? 시방!”
“꼭 똥 싼 놈이 방귀 뀐 놈 나무라는 격이네!”
“폭도들 생긴 꼬라지하고 옷차림 같은 거 잘 기억해 두라네! 나 원 참. 신고하라는디?”
“신고할 것도 없이 본인이 알어서 자수하라는디! 스스로 폭도라는 걸 인정하라는 말이잖여! 자수하믄 살려는 준다네.”
헬리콥터는 삐라를 뿌리고 방송을 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 낮게 날면서 프로펠러를 사정없이 돌렸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헬리콥터의 거센 날갯짓으로 일어난 바람과 먼지 때문에 눈을 못 뜨고 머리를 무릎에 파묻은 채 자리에 엎드리거나 흩어져야 했습니다.
큰길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헬리콥터가 나타나면 일단 골목으로 달아났습니다. 마치 병아리들이 솔개가 마당 위에 나타나면 하늘의 솔개를 피해 얼른 닭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공수부대 군인들은 솔개보다 더 지독했습니다. 이번엔 땅 위에 숨어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골목으로 달아난 사람들을 뒤쫓습니다. 손에는 곤봉을 든 채 군화 소리를 내며 몇 명씩 떼를 지어 달아난 한 사람을 끝까지 쫓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다급해져 주변의 건물이나 주택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공수부대 군인들도 건물이나 주택으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끝까지 뒤쫓는 것입니다. 병아리가 닭장으로 들어가 버리면 사나운 솔개도 더는 어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수부대 군인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평소에 사람 사냥하는 훈련만 받은 군인들입니다.
독재자 대통령의 최후를 가져온 부산과 마산 시위 때도 군인들이 투입되었지만 이러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나 광주에선 달랐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이미 독재자 노릇을 하며 혼자 모든 힘을 다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히’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로 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싶은 군인들은 적당히 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센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 줄 ‘본보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때 마침 광주가 눈에 들어왔겠지요.
게다가 광주는 지난 세월 내내 독재자 대통령에 맞선 정치인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욕심을 낸 군인들은 광주를 본보기 삼아 눌러 버리면 다른 지역은 아무 소리 내지 못하고 조용하리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광주는 도청이 있을 정도로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광주를 둘러싸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학교나 직장 때문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 서울이나 부산과는 달리 서로 비슷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삽니다. 학교나 지역으로 얽히고설켜 한 집 건너면 다 알 만한 사이여서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처럼 여깁니다. 따라서 이웃집 자식이 다치면 내 자식이 다친 것처럼 같이 아파했지요.
애국가 부르는 시간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공수부대 군인들의 죄없는 시민을 향한 노골적인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른바 신군부라는 정치군인들은 자신들의 검은 잇속을 채우기 위해 광주를 본보기 삼기로 결정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고문을 발표하기도 했겠지요.
지난 18일에 광주 지역에 난동이 일어나 질서 유지가 어렵습니다. 계엄군은 시민들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시민들은 가슴을 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습니다.
“뭔 소리여? 시방 광주 지역에 난동이 일었다고?”
“그 난동 때문에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하네? 그래서 공수부대가 계엄군으로 광주에 들어온 것이여?”
“허, 진짜 난동은 지들이 부려 놓고선! 내참, 지들이 부린 난동 때문에 안전과 질서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디, 애먼 시민들한테 덮어씌우고 있어. 내 이것들을 그냥…….”
“뭐? 지들헌티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고 있다고? 이것이 뭔 말이여? 맘대로 패고 죽일 수 있단 말 아녀?”
“우린 지들헌티 그런 권한 준 적 없는디, 시방 궤변을 늘어놓고 있구만. 에라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엔간히 해라!”
이런 경고문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고,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수부대 군인들의 만행을 직접 보고 들은 터라 정치군인들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광주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군인들은 경고문을 계속 발표하였습니다.
지금 광주 지역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킨 폭도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애국심을 가진 선량한 국민입니다.
군인들은 ‘선량한 시민 여러분은 난폭한 폭도들로 인해 뜻밖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가능한 한 거리로 나오지 말고 집 안에 꼭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집 안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슴속에 열불이 나서 집에 못 있겠더구만!”
“지들이 폭도면서 덮어씌우는 것 좀 봐! 복날 개 패듯 한것도 모자라서 칼로 쑤시기도 했단께!”
“여기서 이라고만 있지 말고, 우리 모두 도청 앞으로 갑시다!”
“거긴 벌써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있는갑더라고요.”
“우리헌티 애국심 많이 있다는 것 보여 주게 태극기도 가지고 갑시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도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청 앞 분수대와 광장은 어느새 수만 명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공수부대 군인들이 저지른 짓을 본 대로 들은 대로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엔 대학교 앞에 학생들이 몇 명 안 되었제, 공수부대 군인들이 학교로 못 들어가게 한께 학생들이 하나둘씩 교문 앞에 모인 것이제.”
“근디 어느 순간 갑자기 공수부대 군인이 곤봉질, 발길질에 이어 대검을 총에 꽂고선 뛰쳐나오더니 학생들을 잡으려고 날뛰더라고!”
“처음엔 학생들도 도망갔지만 나중엔 돌멩이 들고 맞서더란께! 나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던디 학생들은 오죽했겄어!”
사람들은 학생들이 어떻게 시내까지 진출하게 되었는지도 말했습니다.
“눈사람 만들라고 첨에 눈 굴릴 땐 주먹만 하잖여. 고걸 더 굴리믄 크게 되는 것 아녀. 학생들도 처음엔 몇 사람 안 되었단께. 공수들 하는 짓 보고서 안 되겠다 싶어 모이다 본께 불어난 거제.”
“그란께 공수부대가 닭 잡는 디 소 잡는 칼 들고 설친 꼴이구만.”
“그런 셈이제. 모기 잡는 디 칼 들고 설친 군인들이 우스운 거제. 군인들이 가만히 있었으믄 학생들도 휴교령 내린 줄 알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여. 근디 아무 무기도 없는 학생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대검 들고 쫓아가더라니께.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제!”
“학생들도 살란께 돌멩이라도 들어야 했제.”
“아까 누가 눈덩이 이야기했제만 첨엔 한주먹도 안 되었는디, 거리로 나간께 젊은이들이 마구 늘어나더란께. 그렇게 해서 점차 커진 것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어느새 자신들도 시위 군중의 한 사람으로 섞여 들어갔습니다.
아빠도 처음엔 일하러 가지 못하고 집에서 죽치고 있는게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걸어서라도 공사 현장으로 가 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의 거친 행동을 보고 듣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시방 일이 문제여!”
아빠는 집을 빠져나와 거리로 묻어 들어갔습니다.
도청 앞 분수대로 가자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누군가가 앞에 나가 지금의 시국에 대해 알기 쉽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깨를 서로 겯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이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출렁이자, 아빠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찍이 맛보지 못했던 감동이었습니다.
도청을 비롯한 여러 관공서 건물에서 펄럭이던 국기를 내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국기 하기식 시간입니다. 사람들 머리 위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 반듯이 서서 왼 가슴에 오른 손바닥을 붙임으로써 저마다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앞줄 군인들이 앉아쏴 자세를 취하는가 싶더니 그다음 줄 군인들은 서서쏴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군인들 모두 계급장은 물론 이름표도 없었습니다. 가렸는지 떼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탕! 탕! 탕!
느닷없이 총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시위대 앞에 있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애국가> 소리에 맞추어 군인들이 공식적으로 총을 쏘아 댄 것입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걸 집단 발포 명령의 신호로 삼은 걸 보니, 정말로 애국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군인들이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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