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혼 서류를 들고 찾아온 건 그녀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집을 떠나 증도로 온 뒤 두 달이 지난 뒤였다. 남편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던 그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혼하고자 하는 사유는 대충 이랬다. 그렇게 많은 부담을 그녀에게 지울 수 없다는 거였다. 그녀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남편은 굳건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가다가는 첫 번째 아내처럼 자기 곁을 또 떠나갈 게 틀림없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녀가 힘들었던 건 시아버지의 치매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 속 어둠이었다. 시아버지의 우아한 치매는 물론 마주 대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이전에 없었던 숭고한 마음을 지니게 하기도 했다. 남편의 자기학대적인 어둠은 숫자를 사랑하는 그녀에겐 너무 무겁고 캄캄했다. 그렇게 그들은 너무 쉽게 헤어졌다. 숫자로 표현하면 결혼은 0이고, 이혼도 0일지 모른다. 하긴 삶도 0이고 죽음도 0이다. 수없는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려왔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둥, 미친 짓이라는 둥,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진짜 사랑이란 결혼해서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소금언어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어른이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이혼을 하게 되는 이런 경우도 있을까? 원시 부족들도 이혼이라는 걸 했을까? 그녀는 서로 많이 증오하는 사람끼리만 이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고, 하긴 살뜰히 사랑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남편은 대단히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는 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이혼을 한 뒤 남편은 아프리카 남 수단으로 떠났다. 그녀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낯선 곳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곳은 그녀가 어느 다큐 영화에서 본 신부님이 굶주리고 병든 아프리카 아이들을 돌보다 돌아가신 곳이기도 했다. 집을 짓는 일에 경험이 없지 않던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절친한 친구 건축가를 따라 남 수단으로 건너가 학교와 병원을 짓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같이 살던 시내의 작은 아파트를 그녀 명의로 해주었다. 그 집은 사실 수학교사였던 시아버지가 근검절약해 모은 돈으로 산 집이기도 했다. 그녀는 시아버지를 증도에 두고 서울로 올라와 강남의 안경원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된 그녀에게 세상은 날아갈 듯 가벼웠지만, 가끔 보고 싶은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시아버지였다. 아니 시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증도의 갯벌 풍경이었다. 주말마다 그녀는 증도를 향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다 남편으로부터 이메일이 오기도 했다.
헤어진 사람들이라는 걸 잊은 듯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가끔 궁금해했다. 그녀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시아버지의 서재 방에 들어가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그 방에는 수많은 책이 꽂혀있었다. 그중에서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알지도 못하면서 뽑아 들은 수학 잡지 중의 한 권이었다. 그 중의 모르는 누군가가 쓴 한 페이지에 그녀의 마음이 꽂혔다. “만일 영원성이 한없이 계속되는 시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고, 무한성이 끝없이 계속되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면? 아인슈타인은 특별 상대성 원리에서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수학적 구조로 보았다. 그 하나의 구조인 시공간 속에 시간도 공간도 없고, 단지 사이(인터벌)만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면서도 그녀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문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수학적 시공간 구조 속에 하나로 결합된 무한성의 영원성, 혹은 영원성의 무한성”이었다. 그녀가 못내 바라던 순도 백 프로의 사랑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바로 무한성의 영원성, 영원성의 무한성이 되고 말리라. 시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책들에는 그렇게 알쏭달쏭한 언어와 기호와 숫자들로 가득했다. 치매의 증후가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일이라면 뭐가 그리 나쁠 것인가? 시아버지는 요즘도 하루 종일 책을 읽었지만 뭘 읽으셨는지 물으면 아무것도 읽은 게 없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는지 이상하게도 수학에 관한 책만 읽었다.
그녀는 신문에서 읽은 치매에 걸린 화가의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다. 치매에 걸린 미국의 어느 유명한 노화가는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캔버스에 밑칠을 했다. 결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벽에 페인트칠을 하듯 캔버스에 밑칠을 했다. 그가 칠한 캔버스의 사진도 떠올랐다. 그냥 누구나 칠할 수 있는 평범한 밑칠이었다. 중요한 건 일어나서 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칠을 한다는 거였다. 시아버지의 책 읽기도 그런 식이었다.
그녀 역시 틈날 때마다 서재 방에 들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수학책들을 읽는 낙이 생겼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녀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마치 어릴 적 맨 처음으로 시력검사표를 보았을 때,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그런 느낌과도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