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아버지가 물어물어 모자를 찾아왔을 때, 어머니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금 장인이 된 나중 남편과 목사였던 옛날 남편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굳이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한 며칠 묵고 가려던 옛날 남편은 한 달 두 달 지나자 그냥 눌러앉아, 그들은 다 함께 살게 되었다. 옛날 남편과 나중 남편은 쩍하면 갯벌에서 치고받고 싸우기 일쑤였지만, 막걸리 한 사발씩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금세 친구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그날의 풍경들을 기억했다.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갯벌에는 언제나 ‘따각따각’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짱뚱어 농게 칠게 고동 등 수많은 생명체들이 사람의 기척만 들려도 재빠르게 갯벌 속으로 숨어버렸다. 기억 속에서 시아버지의 유년은 끝없는 갯벌과 염전으로 넓어졌다. 그들 네 식구의 식사는 언제나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시아버지는 행복한 얼굴로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들에 관해 회상했다.
염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소금장인인 새아버지의 노력으로 섬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그들 이상한 가족에 관해 이러니저러니 소문을 퍼뜨리던 섬사람들은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았다. 빈 교회 의자에 앉아 만삭이 되어가던 아내를 위해 기도하던 두 아버지의 기억을 시아버지는 잊을 수 없었다. 시아버지의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시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기억이 조작되거나 변형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바닷가 절벽 아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어린 시아버지는 아마도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절벽 아래로 밀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아무 말도 없이 섬을 떠나버린 친아버지로 인해 그의 심증은 굳어졌다. 섬사람들은 남은 두 사람만 보면 입을 다물었지만, 뒤에서는 별 소리를 다 수군대곤 했다. 시신을 분명히 보았는데 사람을 부르러간 뒤 다시 가니 없어졌다는 둥,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업고 도망가듯 섬을 빠져나가는 걸 보았다는 둥, 그 수군대는 소리들은 바닷바람에 실려 온 섬을 떠돌았다. 두 사람이 떠나간 뒤, 시아버지는 새아버지인 소금장인의 아들로 살았다. 새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온 염전에 갖은 소문이 다 파다하게 퍼졌지만, 새아버지는 늘 따뜻하게 아들을 감싸 안았고 섬사람들의 거친 말들로부터 아들을 보호해주었다. 아무도 그들이 남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기막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시아버지의 눈동자에 눈물이 어렸다. ‘저 눈물을 숫자로 표현하면 몇이나 될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지금은 남편이 된 친구 오빠가 가르쳐주던 삼각함수의 정의가 떠올랐다. “삼각함수는 한마디로 원운동을 직선으로 바꿔주는 거야. 순간의 곡선을 직선으로 표현하는 거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만큼 사랑해’하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삼각함수야. 세상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수학의 승리지.”
하지만 시아버지의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복잡한 세상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결과물을 다 숫자로 표현하면서 산다. 월급은 얼마이며, 전화번호는 몇 번이고, 자동차 번호는 몇 번이며, 인구는 얼마이고 평균수명은 얼마이며, 주민등록번호와 여권번호와 의료보험증 번호, 버스와 지하철의 번호, 모든 거리들과 모든 주소들의 번호, 그러고 보니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건 하나도 없었다. 문득 며칠 째 소식이 없는 남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숫자로 표현하면 얼마 만큼인지 궁금해졌다. 거꾸로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몇이나 될까? 그 숫자에도 그녀는 슬며시 자신이 없어졌다. 아버지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며칠째 소식이 없는 남편, 며느리를 아내로 착각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질투하는 남편, 그 남편을 지금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0이하로밖에는 답안지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0이하로도 숫자는 무궁무진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수학은 승리했을까? 그녀는 슬며시 마음속의 서랍에서 자기만의 안경을 꺼내 썼다. 안경 속으로 시간이 거꾸로 흘러 시아버지가 작은 소년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