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헤겔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역사, 정신, 자유의 개념을 토대로 시민의 탄생을 설명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시민이 역사의 필연적 귀결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 자유 그 자체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 거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역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초에 독일에서 활동했던 헤겔도 이런 부류 중 한 명이었다. 역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헤겔은 이렇게 대답한다.
“역사는 절대정신이 자신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절대정신’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기본적으로는 말 그대로 ‘정신’을 의미한다. 물질에 반대되는 말, 바로 그 정신.
정신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있다. 이를 ‘주관적 정신’이라고 한다.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는 나의 정신 말이다. 다음으로 사회가 가진 정신도 있다. 법, 정의, 도덕, 인륜이 그것이다. 헤겔은 이를 ‘객관적 정신’이라고 불렀다. 맞는 말 같다. 법이나 도덕은 물질이 아니고,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어느 정도 고정된 정신적인 것이니까, 객관적 정신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헤겔은 두 가지로 구분한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을 다시 통합한다. 이 통일된 정신이 절대정신이다. 개인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정신적인 것 전체를 아우른다고 하겠다. 헤겔에게 세계 전체는 절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헤겔은 물질보다는 정신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관념론자였다.
이러한 정신으로서의 세계는 스스로 성장해나간다. 정신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 우선 정신은 자신과 모순되는 것을 상정한다. 다음으로 이것과 자신을 통합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계속 반복한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자신을 기준으로 반대되는 역을 상정한 뒤에 이를 통합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해가는 운동 과정을 헤겔은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도대체 헤겔은 이런 변증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절대정신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 즉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역사다. 이것은 인가의 정신이 성장해나가는 과정과 대응한다. 아이의 어린 정신이 성인의 성숙한 정신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처럼, 절대정신은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며 드러낸다.
헤겔에 따르면 절대정신이라는 어마어마한 근원적 정신이 태초에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역사를 이룬다. 그래서 이렇게 규정한다. “역사는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다.”
이제 점점 절대정신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도대체 절대정신이 무엇이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것일까? 헤겔은 절대정신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자유’다. 절대정신은 역사 속에서 자유의 확장으로 드러난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어온 것이다.
실제로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보면 절대정신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고대 사회에는 단 한 명의 자유인만이 존재한다. 그는 왕이다. 왕은 홀로 구속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아무리 신분이 높은 귀족이라 하더라도 개념상 그는 왕의 노예일 뿐, 자유인이 아니다. 이후 중세 시대가 되면 장원을 소유한 영주들이 등장하면서 여러 명의 자유인이 탄생한다. 이제 세계에는 소수의 자유인이 존재한다. 자유인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중세 봉건시대를 무너뜨린 프랑스혁명 이후가 되면 자유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유인이 된다. 이 다수의 사람들이 부르주아다. 부르주아가 자유를 획득한 것이다.
자유를 기준으로 본다면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진보해온 것으로 드러난다. 역사는 자유인의 확대, 같은 말로 자유의 확장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여기서 자유가 확장된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 절대정신이 확장되고 있음을 말한다.
헤겔이 살던 시대는 근대였으므로, 그는 생전에 부르주아가 자유를 획득한 사건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르주아의 등장이 역사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역사는 종결되었다. 이제 절대정신은 끝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부르주아 혁명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만약 역사가 헤겔의 말대로 자유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이제 자유는 한 명, 소수, 다수를 지나 ‘모두’의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헤겔의 철학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자유를 획득한 이후에도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자유를 획득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세계가 실패한 것이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분분하다. 어쨌거나 이와는 무관하게, 현대에 이르러 형식적인 측면에서나마 모든 개인이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계급이나 신분이 더 이상 개인을 억압하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 이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역사의 마지막에 도달한 인류, 자유를 획득한 모든 이를 지칭할 언어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시민’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혼란스럽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크게 두 가지가 구분 없이 사용된다.
(ㄱ) 자본가 계급이 부르주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겨우
(ㄴ)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분 없이 정치적 권리를 가진 사회 구성원 전체를 지시하는 경우
두 가지 사용 방식 중에서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는 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사용되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다만 우리는 더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ㄴ)을 앞으로 사용할 ‘시민’에 대한 개념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정리해보자. ‘시민’은 ‘자유’ 그 자체다. 시민은 역사 속에서 그저 우연히 탄생한 존재가 아니다. 세계의 역사를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던 절대정신의 필연적 귀결이 바로 시민이다. 시민은 거대한 역사의 목표이자, 종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