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책장 속에 가득히 꽂힌 시아버지의 책들과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들을 정리했다.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전혀 기억이 없는 시아버지의 삶을 되돌려보고 싶었다. 그래야 남편의 삶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생은 수많은 단어들로 조립된 사전이다. 우선 그녀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숫자, 안경, 사막, 별, 증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다큐필름이나 영화, 혹은 꿈속에서 본 풍경들, 뉴올리언스의 가면무도회, 우유니 소금사막, 티베트의 소금호수, 아바타, 행성 판도라. 시력검사표, 영원한 사랑 등등. 그녀는 문득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온 그 많은 단어들 중 자신과 관련 있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허무한 생각에 이르렀다. 가본 적도 없는 낯선 나라의 풍경, 해본 적도 없는 사랑, 입체 안경을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영화 속 우주의 미로, 도수가 맞지 않는 수많은 안경들, 한 번도 이유 있는 그녀의 삶을 설명해주지 못한 시력검사표. 그녀의 삶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한 번도 구체적인 사실화인 적이 없었다.
늘 아득한 추상화였다. 점과 선과 원과 직사각형과 아득한 수평선들로 마무리되는 그런 추상화........ 그렇다면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은 어떨까?
그녀는 시아버지의 삶의 사전 속 단어들을 나열해보았다. 전쟁, 흥남부두, 피난민으로 가득찬 배, 염전, 소금, 아버지, 어머니, 의붓아버지, 만삭의 어머니, 절벽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증도의 작은 교회, 그 안에 앉아 기도하던 네 사람, 사라진 어머니, 사라진 친아버지, 착한 의붓아버지, 수학, 책,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별, 증도, 죽은 아내, 살아 돌아온 아내(며느리와 착각하는), 살아 돌아온 어머니(펜션 주인아주머니와 착각하는) 등등. 시아버지의 삶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치매에 걸린 이전과 이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었다. 치매에 걸린 이전은 구상, 이후는 추상이었다. 아니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초현실주의였다. 그녀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남편의 삶 속의 단어들도 떠올려보려 애썼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내를 여의고 온 삶을 받쳐 두 아이를 길러낸 정말 좋은 아버지,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린 그리 늙지도 않은 아버지, 아들의 첫 번째 아내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와 착각하는 아버지, 아들의 두 번째 아내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와 착각하는 아버지, 아프리카, 말라리아, 대학 시절 수학을 가르치던 고등학교 시절의 앳된 그녀를 다시 만난 강남의 안경점, 크고 작은 운명들 등등.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그 많은 단어들과 자신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은 무엇인가? 모래성이었다. 그녀의 눈앞에 마치 3D 영화관에서 입체 안경을 쓰고 바라보듯, 어린 모습의 시아버지가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 어린아이는 시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남편의 어린 시절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가 언제 만났었던가?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던 남편의 풋풋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 때 그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미분과 적분과 삼각함수가 다 모래성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알았을까? 그가 발견해낸 상대성 원리가 바로 모래성을 쌓는 일이었다는 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가 어느 날 영원히 마지막을 고할 때, 그래도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단어가 ‘사랑’이라고 그녀는 믿고 싶었다. 그런 수많은 생각들 사이로 그녀는 마치 시각장애인이 점자책을 읽어내듯 책장 서랍 속에서 편지 뭉텅이를 찾아냈다. 누렇게 바랜 종이가 금방 부스러질 듯 서걱거렸지만, 잉크로 써내려간 글씨만은 또렷했다. “아들아. 이 애비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너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해야할 것 같아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네 어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 같다. 꿈속에 수없이 나타나 미안하다며 울더라. 네가 너무 보고 싶다 한다. 그 때 네 친아버지가 네 어머니를 데리고 같이 섬을 떠나는 걸 본 건 바로 나였다. 절벽에 떨어져 죽은 줄만 알던 네 어미를 업고 섬을 떠나는 네 친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해라. 이제 곧 세상을 떠나려 하니,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암호들로 가득한 낯선 곳이었다. 평생 소금쟁이로 살아온 내가 그래도 정성을 다한 건 소금과 내 아들 바로 너였다. 그러니 네가 바로 소금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라. 내 사랑하는 아내, 아니 네 어머니, 그녀를 업고 가는 네 친아버지인 목사님을 말리지 못한 건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우리 가족을 다 먹여살려주던 목사님의 선친을 생각하면 정말 면목이 없었다. 이게 다 그 전쟁 탓이었다고 이 아비를 용서해주길. 어쩌면 이 세상 어디엔가 살아있을 네 어머니와 그 때 만삭이던 뱃속에서 무사히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네 동생을 꼭 찾아주길 바란다.” 편지는 이렇게 끝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