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은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풍경들을 사랑했다. 과일과 채소들과 고기와 생선과 온갖 먹을거리들을 가득 태우고 기우뚱 기우뚱 춤추듯 걸어가는 택시들은 관광객들에게 ‘탁시 블루스’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춤추는 걸 좋아했다. 바오밥은 누군가의 결혼식이 진행 중인 안타나라리보의 거리 한가운데서 선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렇게 선이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한 다섯 낳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늙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롭게 살아온 바오밥은 많은 형제들 속에 파묻혀 시린 코를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겨울잠을 자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다. 선이를 닮은 누나, 어머니를 닮은 선이, 그녀 곁에서 그녀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바오밥은 그녀를 위해 만든 장신구들을 이제야 그녀에게 주었다. 아프리카식 목걸이와 팔찌와 반지를.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쉬리의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이들의 엄마들이 축제날에 착용하고 나오는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모방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의상들과 장신구들로 근사하게 차린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집은 깜짝 놀랄 만큼 초라했다. 그건 집이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로 얼기설기 꿰맨 선진국의 예술가들이 만든 설치미술품 같았다.
어쩌면 아주 옛날 옛적에 그들의 조상들은 최고의 예술가들이었다. 이십세기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 피카소도 모딜리아니도 자코메티도 다 위대한 아프리카 예술의 모방자들이었다.
알고 보면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잘날수록 잘난 척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게 인류의 초상이었다. 바오밥은 어릴 적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육이오 동란이 나지 않았다면 바오밥은 떵떵거리며 평생 부자로 살았을 것이었다. 지주라는 죄로 남편이 빨간 완장을 찬 나이 어린 동네 청년에게 사살당한 뒤 논 답을 다 버리고 자식 둘을 데리고 피난을 내려온 바오밥의 할머니를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수제비나 칼국수의 맛을 기억할 뿐. 가끔 기침을 심하게 했던 어머니의 기억과 단발머리를 한 누나의 기억이 꿈처럼 아련했다 그리고 또렷한 얼굴은 헤어진 전처의 얼굴도 아니고 오직 세상을 떠난 양부모의 얼굴과 선이의 얼굴이었다. 사랑하는 선이와 함께 바오밥은 생전의 사무엘이 꼭 보고 싶어 하던 바오밥나무를 보러 ‘무른다바’를 향해 떠났다. 바오밥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양부모의 혼을 묻은 곳이었다. 바오밥나무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자 바오밥은 가슴이 뛰었다. 서로 얽히고설켜 하늘 가까이 뻗어 오른 ‘아무르 바오밥’도 거기 그대로 있었다, 이름 그대로 ‘사랑의 바오밥’이라 이름 지어진 그 특별한 바오밥나무는 운 좋게 만난 어느 두 사람처럼 영원히 얽혀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바오밥은 사랑하는 선이가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아무르 바오밥’을 올려다보는 그 슬픈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죽은 사무엘을 질투했다. 바오밥나무를 보러 온 건 사실 선이와 함께 단 둘이 바라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들 곁에는 늘 사무엘이 있었다. 죽은 사람을 질투하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결코 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히 젊고 아름다우며 절대 늙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늙음이란 인간이 타고난 형벌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먹으면 늙음이란 어떤 정신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바오밥은 양부모님의 영혼을 묻은, 오직 자신만이 기억하는 특별한 바오밥나무 아래 꿇어앉아 한국식으로 절을 했다. 절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행한 선이도 같이 절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황혼 무렵 바라보는 바보밥나무들은 사춘기 시절 양부모님들을 따라 여행했던 라오스나 미얀마의 불상들처럼 장엄했다.
그 불상 조각들을 기억하는 순간, 바오밥은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갔던 그 작은 절이 떠올랐다. 선이를 닮은 어머니, 아니 선이를 닮은 어린 누나와 함께 했던 그 추운 겨울, 그곳에도 아주 인자한 미소를 띤 불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바오밥은 선이를 데리고 어머니와 누나의 나라 한국에 가고 싶었다. 어릴 적 떠난 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라 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