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은 아내가 자신을 바오밥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이후로는 주변의 친한 사람들도 그를 바오밥이라 불렀다. 비행기에 오르면 아내인 엘리노어는 늘 “바오밥, 이제 또 우리의 위대한 여행이 시작되는군요.” 하고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이 사람들은 오지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죠.” 그녀는 존경스런 눈빛으로 세치머리가 근사하게 회색으로 물결치는 바보밥을 향해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손수 뒤에 탄 사람들의 안전벨트가 제대로 메어졌는지 하나하나 세심히 점검했다. 바오밥이 하던 일을 아내가 대신해주는 탓에 그는 혼자서 비행하던 때 보다 훨씬 마음이 평화로웠다. 늘 하는 일인데도 그는 비행을 시작할 때 마다 조금쯤 긴장했다.
엘리노어와 같이 비행을 한 뒤로 그 긴장감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그 달콤한 고독감이 살짝 그립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람들을 실어다주고 혼자 밤에 돌아올 때는 달에다 발을 딛는 암스트롱의 고독을 즐기기도 했었다. 낯익은 달도 달일까?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여긴 지구야.” 누군가 그를 툭 치며 말하는 것도 같았다. 엘리노어와 함께 하면서 그 고독감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낯익은 지구는 그를 전처럼 설레게 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일이 아니라서, 매일이 새날이기 때문에, 마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뒤뚱거리던 예전의 바오밥이 가끔 그리워지기도 했다. 늦다면 늦은 나이 일곱 살에 입양되어왔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혼모이던 어머니는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많이 아팠고, 외할머니가 그를 고아원에 데려갔다.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데려간 건 사진만 보고도 왠지 이 아이가 남 같지 않다고 생각한 시카고에 사는 미국인 양부모였다. 어쩌면 그는 늘 운이 좋았다. 그렇게 큰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다 커서 미국에 간 그는 한동안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는 일은 깜깜한 밤에 별을 올려다보는 일처럼 늘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나이 들어 미국생활에 꽤 적응하기 시작한 뒤에도 시카고의 한국음식점이나 학교를 같이 다니던 한국학생들 집에 놀러갔을 때, 한국인 어머니가 한국음식을 내올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게 밀려오곤 했다. 스무 살 시절 그는 한국 여자와 사귄 적이 있었다. 이민을 온지 얼마 안 된 세탁소집 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기억이 떠오르지도 않지만 그 때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부모님이 사시는 퀸즈에 있는 집으로 초대를 했을 때 그는 너무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영어가 서툰 여자 친구가 부모님과 그 사이의 통역을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잘못 전달된 부분도 있을 터였다. 그 날 이후 여자 친구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가 여자 친구의 아버지 물음에 대답한 것 중 결정적인 건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고, 미래의 꿈이 조종사라고 말한 것이었다. 경비행기를 지니고 있을 만큼 부자라는 사실도 말했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잘난 척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후로 그는 여자를 사귀기가 힘들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유난히 무언가로부터 거절당하는 게 싫었다. 자신의 출생부터가 그렇지 않던가?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버린 아이, 하지만 너무 좋은 양부모를 만난 이후 두 분 다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는 오래도록 불행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지상에서의 삶보다는 하늘을 날 때가 훨씬 행복했다. 오래도록 아내 대신 개 한 마리가 그의 곁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그는 언젠가 여행길에서 만난 남이 버린 개를 데려다, 소련 우주선을 타고 최초로 달나라를 향해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한 떠돌이 개 ‘라이카’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들의 행복한 동거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거의 이십 년 가까이 같이 살다가 자연사한 라이카의 부재를 위로해준 건 지도에도 없는 작은 사막 마을 ‘시리’에 사는 천사처럼 눈동자가 맑은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