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매일매일 일을 하는 것이 행복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쇼윈도 안의 갖가지 안경들을 써보곤 했다. 다른 안경을 쓰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맥스 영화관에 가서 입체 안경을 쓰고 3D영화를 보는 일은 그녀를 행복하게 했다. 서울과 증도 외에는 그 아무 곳에도 가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아이맥스 3D 영화관은 마치 다른 우주에 착륙한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 했다. 그즈음 아이맥스 영화관에 가서 그녀가 본 3D도 아닌 4D영화는 그 유명한 ‘아바타’였다. 입체감이 있는 것뿐 아니라 의자가 흔들리고 연기가 나고 냄새까지 나는 4D영화는 그녀에게 살아있다는 떨림을 주었다. 영화 아바타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행성 판도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판도라는 지구에서 4.4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인류가 발견해낸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었다. 300미터에 달하는 나무들이 우림을 이루고 언옵타늄이라는 물질이 지닌 자기장 속성으로 인해 거대한 산들이 공중에 뜬 채 끊임없이 이동한다. 밤이 되면 판도라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내부의 화학반응을 통해 뿜어내는 형광 빛으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는 증도를 떠올렸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밤, 별들의 움직임을 들을 수 있는 캄캄한 증도의 밤은 행성 판도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녀만의 특별한 안경을 끼고 바라다보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나가며 목숨을 이어가는 삶의 현장 갯벌이 그녀에게는 행성 판도라와 다름없었다. 물이 넘쳐 들어왔다가 거짓말처럼 싹 빠져버리는 갯벌은 그녀에게는 언제나 마치 판도라의 움직이는 산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영화의 내용은 이랬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획득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 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 원격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링크 머신을 통해 인간의 의식으로 아바타 몸체를 원격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바타는 토착민 나비와 똑같은 모습과 동일한 신체 조건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 족은 파란 피부에 3미터가 넘는 키, 뾰족한 귀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입체 안경을 낀 그녀는 문득 영화 속 나비 족 여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주인공과 나비 원주민의 행성을 뛰어넘은 사랑, 그녀는 문득 남편의 아바타가 아프리카 남수단에 가있는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진짜 남편은 증도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가면서 그녀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착각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영화 아바타에 겹쳐졌다. 그렇다면 자신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시어머니의 아바타일까? 아니 어린 시절 갑자기 수증기처럼 세상에서 증발한, 시아버지의 그리운 어머니의 아바타는 아닐까? 그녀는 문득 시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던 낡은 잡지에서 본 알듯 모를 듯한 수학에 관한 정의들이 영화 ‘아바타’를 설명하는 것 같아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영원성이 한없이 계속되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고, 무한성이 끝없이 계속되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면?” 영화 ‘아바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따로 있지 않았다.
하나의 수학적 구조로서의 시공간 속에 있는 사이(interval), 그 사이에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