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군요. 당신 맞아요.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당신을 발견했어요.
박경아, 그게 당신의 이름이군요. 한글 번역기가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께 한글로 편지를 쓸 수 있으니. 아니 혹시 당신이 영어로 읽을 수도, 쓸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신을 처음 본 게 1990년 소호에 있는 어느 화랑에서였으니까. 어언 26년이 흘렀네요.
당신은 단발의 파마머리에 인상적인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어요. 아마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나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나서 자란 외과 의사예요. 부모님들은 아프가니스탄이 고향인 이민 2세들이죠.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화가가 꼭 아니더라도 예술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든지 싱어송라이터가 되든지 춤을 추든지 뭐 다 같은 거겠죠.
그중에서도 그림, 생각하면 설레는 단어죠. 90년대 초 소호에서 제일 유행한 건 설치미술이었죠. 나는 당신의 그림이 그림이라서 좋았어요. 때로 그림은 그 어떤 현대적 예술 장르와는 다른 그림만의 위안을 주죠. 첨단 현대미술인 설치 미술이나 영상 설치 같은 것과는 다른,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가 느끼는 편안함의 기억 같은 거랄까? 전시장에서 본 당신의 그림은 그냥 딱 내 마음 같았어요. 나는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에게 주저하며 다가가서 물었죠. “Where are you from?” 당신은 한국에서 온 화가라고 답했어요.
그 어눌한 영어 발음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 뒤로 다시 전시장을 찾았지만 당신은 없었어요. 그 뒤로 맨해튼을 갈 때마다 혹시나 당신을 만날까 설렜죠.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생각나네요. 우리들의 SNS 만남의 장소를 ‘바그다드 카페’라고 이름 짓고 싶네요. 당신도 보았을까요? 그 영화 ‘바그다드 카페’, 왠지 당신의 그림 속에서 나는 ‘바그다드 카페’를 보았어요. 그래요. 우리가 만날 곳은 ‘바그다드 카페’ 맞아요. 그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연락처라도 받았더라면, 그래서 우리가 사랑해 결혼했더라면, 내가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에서 매일 총에 맞아 들어오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을까? 수도 없는 환자들의 환부를 열어 수술을 하고 꿰매어 닫는 나는 미국 적십자 소속 외과 의사로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까지 왜 이 먼 곳까지 왔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요.
어느 비 오는 토요일 오후, 당신이 전시를 하고 있는 맨해튼의 화랑에 들렸어요. 이미 전시는 끝났고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죠. 쓸쓸한 마음에 소호 거리를 거닐다가 혼자 들어가 보았던 영화가 ‘바그다드 카페’였어요. 며칠 전에 다시 그 영화를 보았네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보여준 영화가 바로 그 영화였어요.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엉뚱하게도 내게 떠오른 얼굴은 인상적인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한국 여자, 당신이었어요. 박경아라고 불리는 당신, 그 시절 그때는 그저 ‘bak’이라고만 기억했던 그 이름, 그 얼굴을 그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나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당신 박경아라고 불리는 이름, 그 얼굴 정말 보고 싶네요. 사진으로 본 당신 얼굴은 좀 통통해지긴 했지만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림에서 맡을 수 있었던 그 영혼의 향기, 그립네요.
아직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니, 당신은 행운아예요. 이 세상에서 화가보다 행복한 직업이 있을까요? 돈을 못 번다고요? 하긴 그림을 그려서 밥벌이를 하지 못한다면 그건 직업이기보다는 사치스런 취미? 하지만 그림처럼 사치스러울 수 있다면 그건 천국의 선물이죠.
마침 바그람에서 같이 근무하는 한국에서 온 의사가 있어 한국에 관해 많이 알려주네요. 참 살 만한 나라라고. 당신이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걸 알게 돼서 난 참 행복해요.
굿나잇, 당신. 오늘은 이만. 잘 자요.
─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엘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