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기벤라트의 목과 발은 말짱했지만 그 불행한 날 이후 더 진지하고 성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영혼은 다른 세계로 옮겨간 것 같았다. 그 세계에서 그의 영혼은 낯설고 불안하게 날개를 파닥이며 아직 편히 쉴 곳을 못 찾고 헤맸다.
(…) “제발, 하일너! 이렇게 네 주위를 맴도느니 차라리 꼴등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만 괜찮다면, 우리 다시 친구가 되자. 그래서 다른 아이들한테 우리는 걔네들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걸 보여주자.”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113~114쪽.
교사들에게 완전히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힌 하일너는 이제 학생들로부터도 고립된다. 이때 한스는 교사들의 눈치를 보며 하일너에게 좀처럼 용감하게 다가가지 못한다. 말썽쟁이 하일너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곧 함께 ‘불량학생’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일너는 한스의 외면 때문에 큰 상처를 받는다. 자긍심이 강한 하일너는 이런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고독을 즐기며 ‘박해받는 순교자’의 행복을 만끽했다.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은 뭔가 특별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 믿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신학교에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동급생 힌딩거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힌딩거의 죽음은 한스의 내면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쓸쓸하게 실려나가는 힌딩거의 작고 여린 주검을 바라보며, 한스는 고통스러워한다. 힌딩거가 만약 하일너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다시는 하일너에게 사과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한스는 하일너에게 다시 다가가 친구가 되려하지만 하일너는 야멸치게 거절한다. 교사들의 엄벌과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자존심을 너무 심하게 다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 친구 하일너가 나를 거절했다. 나를 버렸다. 나를 외면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한스는 한없이 슬퍼진다. 들 것에 누워 실려가는 것이 힌딩거가 아니라 친구 하일너 같았다. 하일너가 한스의 배반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싣고 멀리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듯 했다. 성적과 시험과 성공만이 평가받는 이 무서운 세상이 아니라 양심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다른 세상으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살아 있는 두 사람을 영원히 가로막는 느낌이다. 한스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학생들도 힌딩거의 시체를 붙잡고 망연자실해하는 힌딩거의 아버지를 보며, 자신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이렇게 아이들은 커다란 대가를 치르며 타인의 아픔에 ‘나’를 은유하는 법을 배운다. 공동생활은 타인의 아픔을 거울삼아 내 삶을 반추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변수, 더 많은 상처, 더 많은 우연이 함께 하기에.
이제 한층 성숙해진 한스는 자신의 그림자와 용감하게 대면하려 한다. 그것은 ‘모범생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기 위해 ‘친구의 우정’을 저버린 자신의 이기심을 인정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하일너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사과한다. 한스가 하일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기도 하다. 한스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림자와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한스가 의식의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발, 하일너! 이렇게 네 주위를 맴도느니 차라리 꼴등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만 괜찮다면, 우리 다시 친구가 되자. 그래서 다른 아이들한테 우리는 걔네들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걸 보여주자.” 한스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은 물론 일상과 축제의 균형을 잡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 친구를 사귄다고 해서 꼭 공부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데, 한스는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극단적인 성향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의 그림자와 ‘대화’하는 것이다. 그림자에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그림자와 대화하고 그림자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식에, 그림자에 의식의 운전대까지 모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가장 반대되는 ‘대극’을 통합하는 지혜다. 우리는 저마다 무의식 깊은 곳에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극단적인 성향을 함께 지니고 있다. 자신의 그림자와 친밀해진다는 것은 바로 그 극단적인 성향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섬세하고 유약한 한스는 하일너와 친구가 되느라 일상의 리듬을 놓쳐버리고 만다. 하일너의 영웅적인 행동은 멋지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다. ‘의식’의 운전대 없이는 무의식의 바다를 헤쳐나갈 수 없다.
친구와 친해지고 행복해질수록 한스는 학교와 멀어졌다. 새로운 행복이 갓 담근 포도주처럼 발효하며 피와 생각 속을 돌아다니자, 그 옆에서 리비우스와 호메로스는 중요성과 광채를 잃었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이었던 기벤라트가 문제아가 되고 수상쩍은 하일너의 나쁜 행동에 영향을 받자 기겁했다. 청년의 발효가 시작되는 위험한 시기에 조숙한 소년이 보이는 이상한 모습을 교사들은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안 그래도 교사들은 전부터 하일너의 천재적인 기질을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천재와 교사들 사이에는 예로부터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 교사들은 천재적인 아이들을 학교에서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들이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에게 천재란 교사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고, 열네 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열다섯 살에 사랑에 빠지고, 열여섯 살에 술집에 드나들고, 읽지 말라는 책을 읽고, 도발적인 글을 쓰고, 교사들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노려보고, 교무수첩에 선동가와 감금형 후보로 기록되는 존재이다.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115~1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