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사문의 그 좁은 길을 떠나 이 도시로 왔는데,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에 맨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그대였소. 카말라여, 내가 그대에게 온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요. 그대는 싯다르타가 눈을 내리깔지 않고 말을 거는 최초의 여인이오. 앞으로는 행여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결코 눈을 내리깔지 않을 것이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83쪽.
고향을 떠나 삼 년 동안이나 수도자의 생활을 했던 싯다르타는 이제 처음으로 그 혹독한 금욕의 공동체를 떠나 큰 도시로 왔다. 싯다르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3년 동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고도의 추상적인 사유 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싯다르타. 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는 그 평범하지만 숭고한 생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갈망 또한 되살아난다. 아직 한 번도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어본 일이 없는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를 만난 후 이성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싯다르타는 카말라를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배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장안의 유명한 기생이었던 카말라에게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세상 온갖 공부에 목마른 그에게는 사랑의 기술마저 배우고 깨달아야 할 지혜의 일종으로 비쳤던 것이다. “카말라여, 그대에게 나의 친구가, 나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바이오. 나는 그대가 도통한 그런 방면의 기술에는 아직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오.”
카말라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초라한 행색을 한 남자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스승이 되어달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그녀를 찾아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여겼다. 금은보화로 그녀의 환심을 사서 결국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남자들의 흔해빠진 유혹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카말라를 완전한 인격체로 대접했다. 모두가 유혹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녀를 배움의 대상으로 우러러보며 스승으로 삼고자 한다. 이런 싯다르타의 진솔한 모습에 내심 감동한 카말라는 그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한다. 자신을 찾아오는 남자들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멋진 신발을 신고, 지갑에는 돈을 두둑이 넣어 가지고 온다고. 당신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몸뿐인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그러자 싯다르타는 순진하게도 카말라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냐고. 그러자 카말라는 ‘할 줄 아는 일’이 뭐냐고 되묻는다. 이에 대한 싯다르타의 대답이 해맑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사색할 줄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할 줄을 아오.”
사색하기, 기다리기, 단식하기.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미루고, 끊어내고, 부정함으로써 그는 세상을 향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법을 배웠다. 그는 그렇게 세상과 멀어졌으며, 세상을 멀리서 관조하는 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단련해왔다. 하지만 그런 지혜로는 돈을 벌 수가 없다는 것조차, 그는 모른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완전히 잊고 살았던 것이다. 기가 막힌 카말라는 싯다르타에게 묻는다. 정말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냐고. 그러자 싯다르타는 말한다. 시를 지을 줄은 안다고. 자신이 아름다운 시를 지어준다면 입맞춤을 해줄 수 있냐고. 카밀라는 ‘시가 마음에 든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싯다르타의 꾸밈없는 마음이 빚어낸 아름다운 사랑의 즉흥시는 기어이 그녀를 감동시킨다. 그녀의 입맞춤은 한 번도 여자와 키스를 해 본 적이 없는 이 순진한 싯다르타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고 만다. 싯다르타로서는 가족과 친구 외에, 그리고 배움과 수행 외에 처음으로 애착의 대상을 갖게 된 것이었다. 사랑이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번뇌의 근원이라는 것을 이토록 순진한 싯다르타는 아직 몰랐던 것일까. 그는 투우사에게 돌진하는 투우소처럼 그렇게 사랑을 향해,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돌진한다.
신들에게 자신을 바치느니, 그 젊은이 생각하였지, 차라리, 아름다운 카밀라에게 자신을 바치는 편이 차라리 나으리.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