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젊은 친구,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을 텐데 말이지.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주겠나?”
한스는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력한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을 잡았다.
“그럼, 그래야지. 친구,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 테니까.”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119쪽.
한스의 눈에 비친 새로운 친구 하일너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존재다. 한스가 지금까지 억압해왔던 모든 욕망들을 거침없이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일너는 걸핏하면 권위에 도전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욕망을 발산한다. 성적을 향한 불안도 없고 미래를 향한 공포조차 없어 보인다. 그런 하일너가 부러우면서도 한스는 그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향한 본능적인 공포인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Schtten)’는 우리 무의식 속에 억압된 부정적인 요소들의 총합을 가리킨다. 한스가 하일너에게 유독 강렬한 매혹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그림자를 오랫동안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한스는 완벽한 모범생이 되기 위한 준비에 지쳐 그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할 놀이, 사랑, 우정의 욕망을 무조건 억눌러왔다. 하지만 하일너는 한스가 즐기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누리고 있다. 하일너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나의 그림자와 친밀해지는 것’이다.
하일너가 한스에게 갑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 그것은 한스가 자신의 숨겨진 그림자와 극적으로 조우하는 순간이다. 한스는 하일너가 ‘멋지다’고 느끼면서도 그와 친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규범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일너는 학교에서 ‘아름답고 신성하다’고 가르치는 모든 것들을 비웃는다.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우습게 보고, 자신은 여자와 키스해 본 적도 있다며 아무런 성경험이 없는 한스를 어린 아이 취급하기도 한다. 만약 한스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 균형감각을 일깨워줄 사람이 있었다면, 한스는 하일너를 두려워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융은 그림자를 단순히 억압하지 말고 그림자 자체를 의식으로 불러와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자와 빛,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진정한 ‘개성화’가 완성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금기나 규범을 파괴하는 순간의 짜릿한 쾌감. 하일너는 그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고, 한스는 그 모습을 은근히 부러워한다. 하지만 처음에 한스는 하일너의 우정을 일종의 위험한 유혹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금방 친해지지는 않는다. 하일너와 친해졌다가는 성적이 떨어지고, 교사들의 신임도 잃고, 아버지의 기대도 충족할 수 없다는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일너가 교사들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 격리되기 시작하자, 한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일너를 은근히 부러워하던 아이들까지도 하일너에게서 등을 돌린다. 하일너는 점점 고립되어간다. 한때 자신이 유일하게 호감을 느꼈던 친구 한스마저 자신의 외로움을 모른 척 하자 하일너 또한 크게 실망한다. 한스는 하일너의 곁으로 가서 그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지만, ‘자신이 금지해온 모든 것’을 대변하는 존재,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존재와 진정으로 맞닥뜨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매혹적인 색깔로 채색된 우정의 나라가 황홀하게 지평선에 나타났다. 애타게 그리운 그 우정의 나라가 조용하게 한스를 잡아끌었지만 수줍음이 가로막았다. 어머니 없이 엄격하게 자랐기 때문에 남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기대는 능력이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열정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