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숭이의 본성에서 벗어나 살기 시작한지 거의 오년이 되었습니다. (…) 제가 만일 죽을 때까지 원숭이로 살겠노라 생고집을 부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에만 매달려 있었더라면 지금의 이러한 성과는 절대로 거두지 못했을 겁니다. 고집을 모두 내버리는 일이 제가 자신에게 내린 최고의 계명이었습니다. 저는 자유로운 원숭이로서 스스로 굴레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렇게 일부러 굴레를 뒤집어쓰자 옛 기억은 점점 멀어지다가 기억에서 잊혀져갔습니다. (…) 지금 저는 사람들의 세상이 내 집처럼 편안합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 집, 2008, 137쪽
사람들은 흔히 원숭이가 인간을 ‘흉내낸다’고 말한다. 우리가 모방의 대상이고 그들이 모방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가끔 ‘인간처럼’ 행동하는 원숭이나 앵무새를 보면, 저들이 우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풍자나 조롱조차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인간으로 길들여지는 데 성공한 원숭이, 원숭이의 본성은 거의 없어지고 ‘인간화’되는 데 성공한 원숭이의 자기 고백이다. 이 담담하고도 냉철한 자기고백을 듣고 있으면, 동물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이 어쩌면 ‘인간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자기합리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 사냥꾼들에게 포획되어 인간세상에 동화된 이 원숭이는 지금 ‘원숭이가 인간화되기 위한 표준 지침’을 고매하신 학자분들께 보고하는 중이다. 원숭이는 “원래 원숭이었던 제가 어떻게 해서 인간 세상으로 편입되어 탄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 표준 지침을 알려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그런 표준지침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 보고서를 읽으며 ‘이 원숭이가 인간의 머리꼭대기에 있구나’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원숭이는 초장부터 인간의 자부심을 건드린다. “고매하신 학자 여러분들, 예전에 여러분도 원숭이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정하면, 여러분이 원숭이 근성을 벗어난 정도나 제가 원숭이 근성을 벗어난 정도나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그것이 땅 위를 걸어다니는 모두의 발꿈치를 간질이고 있습니다. 위대한 영웅 아킬레스든 한낱 침팬지든 말입니다.” 요컨대 위대한 영웅 아킬레스든, 한낱 침팬지든, ‘원숭이 근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피차일반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었던 과거로부터 한사코 벗어나기 위해 각종 문명을 발명해냈지만, 원숭이가 보기에 인간은 여전히 원숭이에 가까운 것이다. 아마 외계인이 나타나 원숭이와 인간을 비교하더라도, 인간이 스스로를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각종 문명의 탈을 벗겨놓고 보면, 인간과 원숭이는 여전히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많을 것이다.
그럼 이 놀라운 원숭이, 아니 스스로 인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원숭이는 어떻게 인간들의 손에 포획되었을까. 하겐베트 회사의 사냥 원정대가 이 원숭이에게 총을 쏘았을 때, 원숭이는 필사적으로 숨고,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엉덩이 아래 심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원숭이는 이내 사방이 꽉 막힌 궤짝 속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원숭이는 필사적으로 출구를 만들려 한다. “저에게는 출구가 없었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출구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옴짝달싹못하게 만드는 이 저주받은 궤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원숭이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궁리 끝에 생각해낸 묘안이 바로 ‘원숭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원숭이이기를 그만두자. 내가 원숭이이기를 그만두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나에게 작은 출구가 생기지 않을까.
저는 난생 처음으로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처지가 되었던 겁니다. 최소한 똑바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코앞에 나무 궤짝이 버티고 있었고, 궤짝의 판자는 촘촘히 짜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판자 사이로 비집고 나갈 틈새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 틈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저는 어리석게도 행복에 겨운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틈새는 간신히 꼬리를 쑤셔 넣기에도 턱없이 좁았고, 그 틈을 벌리자니 원숭이가 가진 힘을 다 써서 낑낑대봤자 어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들려준 애기로는, 제가 그때 이상하리만치 너무나 조용해서 금방 죽어버리든지, 혹은 처음에 당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게 되면 아주 길이 잘 드는 원숭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더군요. 저는 그 시기를 이겨냈습니다. 흑흑 흐느끼고, 따가운 벼룩을 잡고, 힘겹게 코코넛 열매를 핥고, 머리통으로 궤짝 벽을 쾅쾅 처박고, 누군가 가까이 오면 혀를 죽 빼면서 말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 집, 2008, 1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