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페어레이디」 vs 『전원교향악』 7회
나는 증오한다, 나를 구원한 당신을
리자: 당신을 죽이고 싶어, 이 이기적인 냉혹한. 나를 그곳에 그냥 놔두지 그랬어? 빈민굴에 말이야. 끝났다고 신에게 감사했으니까 나를 다시 거기다 처박으면 되겠네, 그렇지? (…) 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히긴스: 네가 어떻게 될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알아? 네가 어떻게 되든지 내가 무슨 상관이야?
리자: 당신은 상관도 안 해. 난 알고 있었어. 내가 죽어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저 슬리퍼만도 못해.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147쪽.
정확하게, 더 정확하게. 이것이 히긴스의 표어라면.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이것이 목사님의 표어다. 히긴스는 더욱 정확한 영어발음이 더욱 행복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라 믿는다. 목사님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편집하고 채색하여 들려주면, 제르트뤼드의 마음도 그렇게 아름답고 순수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히긴스와 피커링의 ‘일라이자 숙녀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황리에 끝난 날. 그들은 축배를 들며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들만의 승리’인 것처럼 환호성을 지른다. 일라이자는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들 실험에 이용당한 모르모트란 말인가. 일라이자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추스르며 말한다.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나를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난 뭘 해야 하죠? 나는 어떻게 될까요?”
히긴스는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가볍게 충고한다. 이제 결혼이든 취직이든 넌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넌 그렇게 못생기지도 않았으니까. 너 정도 외모라면 괜찮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일라이자는 믿을 수가 없다. 단 6개월의 트레이닝이 내 운명을 이렇게 바꾸어놓을 수 있다니. 그는 일라이자의 영어발음만을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일라이자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물론 그것은 교육의 효과를 넘어 일라이자 스스로의 내적 발전이었다. 일라이자는 자신을 이용한 후 헌신짝처럼 버릴 태세인 히긴스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히긴스도 모르는 사이에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훌륭한 비서가 되어 있었다. 일라이자는 이제 히긴스의 가정부보다도 히긴스에 대해 더 잘 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줄줄 꿰고, 그가 잊어버린 것들을 척척 챙겨주던 일라이자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히긴스는 모른다. 단지 비서로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목사님은 히긴스보다는 훨씬 예민하고 섬세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목사님은 제르트뤼드가 목사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함을 인정한다.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도, 그녀는 꿈꾸고 사랑하고 생각한다. 스펀지보다 더 빨리 세상을 빨아들이는 그녀는 이미 목사님이 말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도 눈치를 챈다. 목사님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그녀는 목사님의 슬픔을 눈이나 귀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 줄 안다. 목사님과 함께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녀온 제르트뤼드는 감격에 겨워 꿈꾸기 시작한다. 이 세상을 귀로 들을 때 이렇게 아름답다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목사님은 아이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 아이야. 그 음악 속의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뜨면 추악한 현실도 피할 수 없단다. 그 음악 속의 세상은 죄도 악도 없는 세상, 죽음조차 없는 세상, 완전한 세상이야. 눈을 뜨면, 그렇지 않단다. 어쩌면 목사님은 소녀가 ‘진실’에 눈뜨기를 원치 않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계속 죄도 없고, 악도 없고, 죽음도 없는 세계에서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 세계의 추악함을 배울까 봐 두렵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목사님의 눈으로 편집된 세상만을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목사님께 의미심장한 부탁을 한다. “저를 속이려 하셔선 안돼요. 목사님도 아시잖아요. 눈먼 사람을 속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일이라는 걸요.”
연주회장을 다녀온 뒤에도 오랫동안 제르트뤼드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황홀경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애는 이윽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께 보이는 것들은 정말 그것만큼 아름다운가요?”
“무엇만큼 아름답다는 말이니? 사랑스러운 내 아이야.”
“그 ‘시냇가의 풍경’만큼 말이예요.”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교향곡의 화음들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있을 수도 있었을, 만일 죄와 악이 없었더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즉답을 피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제르트뤼드에게 감히 악과 죄와 죽음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 상태였다.
(…)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는 행복을 모른단다.”
“그렇지만 볼 수 없는 저는 듣는 행복은 알아요.”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4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