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1회
피그말리온의 연인,
갈라테이아의 딜레마
히긴스: 난 저 지저분한 밑바닥 인생을 공작부인으로 만들겠어요.
-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중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달콤한 희망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한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조각상에 생명이 깃들게 하고,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는 피그말리온. 그의 욕망 깊숙한 곳에는 ‘내가 창조한 것이 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집착이나 소유욕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버나드 쇼와 앙드레 지드는 일찍이 이 ‘피그말리온의 폭력성’을 예리하게 간파한 것 같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으로 유명한 『피그말리온』, 그리고 『좁은 문』과 함께 앙드레 지드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전원교향악』. 이 두 작품은 멀리서 보면 모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구원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감동적인 미담이거나, 아슬아슬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읽힐 수도 있다. 『피그말리온』의 히긴스는 거리에서 꽃을 팔며 연명하는 가난한 처녀를 모두가 ‘공작부인’처럼 추앙하는 대단한 숙녀로 만들고, 『전원교향악』의 목사는 문명의 빛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맹인 소녀를 교양이 넘치는 숙녀로 빚어낸다.
여기까지는 피그말리온 신화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한 발짝 더 나간다. 피그말리온이 아니라, 피그말리온의 피조물, 갈라테이아의 입장에서 이 아름다운 신화를 비틀어보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원거리에서는 ‘감동적인 미담’으로 보이는 ‘구원의 서사’를, 근거리에서는 피 튀기는 ‘남녀 간의 파워 게임’으로 그려낸다. 『전원교향악』은 구원자의 은밀한 폭력을 너무도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려서, 독자들은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도 미처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맹인 소녀를 향한 목사의 헌신은 더없는 ‘사랑’과 ‘자비’의 목소리로 포장되어 있기에, 그것이 ‘일방적인 사랑’이었다는 사실도 철저히 은폐되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이 코믹 로맨스와 유쾌한 풍자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는 데 비해, 『전원교향악』은 멜로드라마의 감성과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 사랑의 슬픔으로 무장하고 있다. 『피그말리온』과 『전원교향악』의 결정적인 교집합은 바로 ‘갈라테이아의 슬픔’이다. 피그말리온을 사랑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것은 의무감 혹은 부채감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현대의 갈라테이아들은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말끔하게 정의할 수가 없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그는 나를 구해주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지도 몰랐던 나 자신의 꿈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구해주는 데 성공하자, 나는 예전의 나와는 너무도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진정 사랑일까. 이것이 진정한 구원일까.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에서 ‘나’는 존경받는 목사이며, 책임감 강한 아버지이고,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노파를 보살피러 갔다가, 그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눈먼 소녀를 발견한다. 목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노파는 사망한 뒤였다. 홀로 남은 아이는 마치 문명의 이기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늑대소년처럼 보였다. 목사는 소녀를 발견하자마자 강한 연민과 책임감을 느낀다. 신의 사랑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녀에게, 자신이 매일 만끽하고 있는 신의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 맹인소녀는 ‘잠을 자는 것’과 ‘깨어있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영혼 없는 살덩어리’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목사는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는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집에는 육아와 살림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아내, 아멜리가 기다리고 있다. “당신 또 무슨 짐을 짊어지고 오신 거예요?” 아내는 낯선 소녀를 보자마자 본능적인 적대감을 느낀다. 남편에게는 ‘자선’이지만 아내에게는 ‘부담’인 맹인소녀와의 뜻하지 않은 동거.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눈먼 아이는 아무 의식도 없는 짐꾸러미처럼 끌려왔다. 이목구비는 반듯하고 꽤 예뻤지만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 마차 안에 불을 켠 뒤 나는 내게 바짝 기댄 몸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온기가 아니었다면 살아있다고도 믿기 힘든 이 영혼 없는 살덩어리와 함께 다시 출발했다. (…) 이 아이는 자고 있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캄캄한 잠을…….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잠을 자는 것과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이 다를까? 주여,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이 캄캄한 육체의 주인인 영혼은 분명 당신의 은총의 빛이 내려와 어루만져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사랑이 이 영혼으로부터 캄캄한 암흑을 쫓아버리도록 허락해주시겠지요?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1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