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트위터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변영주 영화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부류의 멘토 서적에 대해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청년세대가 걱정이라면 공짜로 해줘라.”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책의 저자 김난도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불쾌감을 표했고, 몇 마디 말이 오간 뒤 서로 사과하는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이 설전 중에 김난도 교수는 “제가 이 사회를 만들었나요?”라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이 논쟁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선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류라고 불릴 만큼 비슷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흥행 이후 각계각층의 이른바 ‘멘토 세대’의 사람들이 청년세대를 걱정하는 책을 내놓았고, 김난도 교수 역시 하고 싶은 조언이 남았던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을 또 출간했다. 최근에는 스님들까지 이 열풍에 가세했다.
이 책들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열망을 따라가라.’, ‘힘들수록 돌아가라.’, ‘너의 인생을 살아라.’ 출구가 안 보이는 불황과 불확실한 현실에서 멘토들의 이런 힐링의 언어는 독자에게 분명히 위로가 되어준다. ‘참아라, 버텨라, 성공해라.’ 같이 인생선배라고 자칭한 구시대 멘토들의 조언에서 보이는 이른바 꼰대스러움도 없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든다. 위로를 받고 힘이 나긴 하는데 내 앞에 놓인 조건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스펙이 아닌 스토리를 만들어라.’ 식으로 조언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국, 멘토 서적의 메시지가 공허한 이유는 그들의 치유 담론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 때문이다.
멘토 서적 열풍의 이면에는 불경기와 취업난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답을 찾지 못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멘토 서적은 현실의 문제를 은연중에 혹은 고의로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현실에 기생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는 상황이다. 멘토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도 결국 사회 구조 변화라는 본질을 애써 외면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멘토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사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거리로 나오라고 주문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멘토들이 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조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이 사회’와 그들이 살았던 ‘그 사회’의 조건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사회가 어떤 구조였으며 자기 세대는 그 조건 속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지금의 사회구조는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 규명하고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담담히 풀어낸 그들 자신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치유가 될 수도 있고 사회 변화의 단서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처를 받게 된 조건을 개선하지 않는 힐링은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제는 무의미한 힐링팔이를 할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독자 개인에겐 하나의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고 사회에는 유의미한 해설서가 될 것이다. 더불어 청년세대를 향한 멘토들의 진정성이 장삿속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본 기고글은 <나비>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