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이 사고로 인부 몇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9시 뉴스의 끝에 몇몇 불행한 이들의 사고 소식이 짤막하게 들린다. 이 소식은 포털 사이트에도 잠깐 등장했다가 연예인 사생활 뉴스에 밀려 이내 사라진다. 산업재해는 그렇게 ‘인부 몇 명’의 문제가 된다. 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공사에서 발생한 화재부터 10월 파주 장남교 붕괴 사고까지, 그간 노동자들은 하루도 안심할 수 없었다. 산업안전 관리공단이 ‘조심조심 코리아’ 캠페인에서 말하듯, 그저 노동자 개인이 '조심조심'하면 되는 것일까? 안전 수칙을 따랐는데도 사고가 났다면,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일까?
우리나라의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근로자 10,000명 당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은 0.96명이다. 사망만인율이 가장 낮은 영국과 비교해 19배의 수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의 노동자보다 한국의 노동자가 19배 더 부주의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치기 위해, 죽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은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에 필요한 필수적 요소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는 살인자와 같다는 것이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에 따르면 기업과 정부기관이 규정을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해당 조직은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의회 지침에 의하면 벌금의 금액은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부과된다. 법원이 기업의 범죄 사실을 국가와 지역 언론에 광고하게 하는 ‘공표제도’도 활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산업안전 관리에 소홀한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 더해, 돈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이라면 산업안전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게끔 무거운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지난 8월 노동자 4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 화재에서, 수주 기업인 GS건설은 현 산업안전관리법에 따라 벌금 2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만에 하나 있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난간과 비상등을 공사 현장에 설치하는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이쯤 되면 기업이 취할 조치는 분명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벌금 좀 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듣는 노동자 한 명의 죽음은 단순히 어느 인부의 죽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실은 한 가정의 파괴이고, 산업재해로 발생하는 직·간접적 경제 손실액은 연간 18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을 적당히 책임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현재의 정책과 법체계로서는 필연적이다. 정부는 스스로 척척 해내지 못하는 기업들을 힘주어 독려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부디 일하다 죽는 일만은 새삼스럽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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