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작년 6월 8일 잠실야구장. LG가 한화를 1점 차로 앞서고 있던 9회 초, 한화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2사 3루 상황. 3루 주자가 홈스틸(3루 주자가 홈플레이트로 들어오는 도루)을 시도했고 마운드에서는 상대편의 홈스틸에 당황한 투수가 보크(주자가 루에 있을 때 투수가 규칙에 어긋나는 투구 동작을 하는 것. 보크가 선언되면 베이스에 있던 주자는 모두 다음 베이스로 자동 진루할 수 있다.)를 하였다. 그런데 네 명의 심판들은 일제히 이것을 보크라고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 오심이 없었다면 한화가 동점을 만들거나 혹은 역전을 할 수도 있었기에 많은 팬에게 진한 아쉬움과 억울함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오심을 내린 심판들에게 거센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 다음날 KBO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 글이 폭주하였고 관련 기사도 백 개가 넘게 작성되었다. 이 오심이 거센 비난을 받은 데에는 승부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간에 수많은 사람은 보크를 보크라고 보았는데 네 명의 심판들은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보크가 일어나자마자 한화 더그아웃에 있던 감독, 코치, 선수들은 보크라며 더그아웃을 뛰쳐나왔다. 방송 해설자도 보크라고 말했다. 충분히 오심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오심이 나온 것이다.
야구에서 심판은 규칙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관리의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규칙을 습득해서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오심이 나온다. 보크라고 판정하지 못한 오심의 원인은 후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판 학교의 전문적인 교육과 실전 경험 후에 선발된 전문심판이니, 보크의 규칙에 대해서 몰랐다고 보긴 어렵다. 경기 후에 심판들이 비디오를 보고 바로 보크를 인정한 것만 보아도, 보크가 뭔지 모른 것은 아니다. 그들은 투수의 투구동작을 보고도 그것에 보크의 규칙을 적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오심은 심판이 규칙을 실제에 잘 적용하지 못해서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프로 야구에서의 정의를 묻는다면 아마 정확한 규칙이나 공정한 경기 정도를 대답할 것이다. 정확한 규칙은 이미 존재한다. 공정한 경기가 이루어지려면 그 정확한 규칙이 잘 적용되어야 한다. 팬들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오심이 일어날 때 팬들이 무엇을 탓하는가 보라. 규칙을 탓하지 않는다. 규칙에 무지한 심판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규칙을 잘 적용하지 못한 심판을 탓한다.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신아람 선수의 멈춰버린 1초가 화제가 되었다. 1초를 멈춰버리게 한 것은 누구인가. 비단 프로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 스포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의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요즘, 녹색의 다이아몬드에서부터 정의의 참 의미를 찾고 정의실현을 위한 노력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 노력의 중심에는 누구의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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