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7세기에 덴무天武 천황이 살생을 금지한 이래 1,200년 동안 소와 같은 육고기는 먹지 말도록 철저히 교육받았다. 다행히 일본은 수전도작水田稻作 농경문화권에 속하는 천혜의 기후풍토를 누리고 있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역이어서 북쪽에서 남쪽에 이르기까지 음식자원의 종류와 양이 매우 풍부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각 지방마다 그곳에서 나는 어패류나 채소를 가장 맛있게 조리하는 음식가공법이 발달했다. 일본식 조리법과 독특한 발효기술 덕분에 적어도 에도 시대 정도의 인구까지는 자급자족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급속히 근대화를 추진해 서구의 선진국가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서양문명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육식을 해금해 체격을 키움으로써 일본인의 체력에 대한 열등감을 불식함과 동시에 서양요리의 보급을 통해 서구의 뛰어난 음식문화, 나아가서는 문명을 섭취·흡수·동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육식을 하면 심신이 모두 부정을 탄다는 금기가 엄격하게 지켜진 결과로 일본인은 어패류와 채소류만 즐기는 민족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좋아하지도 않는 냄새나는 육고기를 하루아침에 표변해서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육식반대론도 거세었다.
한편 육식을 지향하는 세계에서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육식의 풍조는 1883년 로쿠메이칸이 완성되면서 한층 더 성행하고 정부나 지식인들의 노력은 대성공으로 보였지만, 연일 계속되던 무도회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막을 내리고 만다. 서양요리는 서민들에게 더욱 인연이 닿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육식은 역시 일본인에게는 무리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윽고 때가 되자, 서민들이 서양요리를 일본식으로 만들어낸 일품一品 양식들이 속속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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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정부가 1872년에 육식을 해금하고 서양요리를 예찬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자 서양음식은 빠른 속도로 엘리트층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러나 민중에게는 여전히 소원한 존재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수많은 고민과 궁리의 결과로 메이지 시대로부터 60년이 지난 쇼와 시대 초기에 돈가스가 탄생하면서 육식은 서민생활 깊숙이 스며들었다. 밀가루, 계란, 빵가루로 입힌 세 겹의 튀김옷이 뜨거운 기름과 고기를 격리시켜 육즙이 유출되는 것을 막고 육질을 부드럽게 유지한다. 그리고 빵가루에 적당히 스며든 기름이 풍미를 더해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양식의 왕자王者 돈가스의 탄생, 그리고 돈가스가 그 발상지 우에노上野와 아사쿠사淺草에서 전국으로 급속하게 퍼진 일이야말로 일본 서민이 서양요리를 소화하고 흡수했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에 육식이 침투한 것은 육고기를 일본식으로 조리한 쇠고기전골과 스키야키에서부터였다. 돈가스를 중심으로 한 일양절충 요리 ‘양식洋食’이 출현하기까지의 먼 도정은 소만큼이나 느릿한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