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는 민을 이용 가능한 물질자원으로 보았다. 민은 고유한 내재적 가치는 없고 군주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였다. 법가는 민이란 군인과 경작자로 쓸 수 있는 자원일 뿐이라고 독자인 군주에게 거듭 강조했다. 부국강병과 군주의 부귀영화는 민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 군대를 조직하고 군량에 쓰일 곡물을 생산하려면 노동력이 필요한데 민은 이를 위한 자원이다. 군주에게 민은 사유물이며 목적 달성에 불가결한 도구이므로 군주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민을 소중히 여기고’ ‘민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더 많은 민을 원하는 이유는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는 백성을 이용하려고 아낀다.(《관자》 <명법明法>)
법가에게 민은 가축이다.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 가축을 아끼는 것처럼 군주는 민을 아끼고 사랑한다.
뛰어난 군주는 백성을 길들이는 고귀한 존재이다. 백성은 각기 다른 유용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뛰어난 군주는 사람의 재주를 자원으로 다루고 그들 모두를 길들인다.(《신자愼子》 <민잡民雜>)
법가는 군주를 목자牧者로, 관료와 민은 모두 길들일 가축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법가는 ‘목민牧民’ · ‘목신牧臣’ · ‘축신畜臣’ 등의 표현을 쓴다. 법가의 논설 중 상당수는 민을 가축처럼 길들이는 기술을 말하고 있다. 짐승을 길들이려면 당근과 채찍, 둘 다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과 벌이다. 법가는 상과 벌을 주는 기고에도 많은 공을 들여 논했다.
민을 향한 군주의 ‘애정’은 목자가 양떼를 ‘아끼는’ 것과 같다. 법가는 인의가 군주와 나라에 해로운 것이라 비난하면서도 인정을 드러내어 ‘민심을 얻는 일’의 실용성은 잘 알았다. 오기吳起(오자를 말함)의 유명한 일화는 법가가 인간가축인 민에게 갖는 동정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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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문화가 잔존한 한국사회에서 신실하게 공익을 추구하는 정치집단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공익을 가장한 집단 사익추구 행위가 여러 분야에서 폭 넓게 재현되었다. 그 결과가 양극화의 심화이고 새로운 기득권집단 세력의 공고화였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양극화는 빈부격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직에 해당하는 직업과 역에 해당하는 직업의 차가 심화된 것을 의미한다. 고도성장기에는 직과 역의 차이가 줄어드는 듯했는데 87년 이후 커지고 있다. 아울러 직에 해당하던 직업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전문직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 87년 이전의 전문직은 확실히 이조의 ‘직’에 해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전문직 종사자의 양극화가 심해져 2만이 넘는 변호사의 90%는 직이 아니라 역을 맡게 된 실정이 되었다. 교수도 일부 대학의 교수만 사람들이 생각해온 교수 이미지에 걸맞은 존재이다. 의사 등 다른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87년 이전에는 대졸자가 그리 염두에 두지 않던 하급 공무원과 교육공무원이 지금은 직이 된 세상이다. 국영기업체와 공사의 취업도 직을 얻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대기업 정규직은 직이고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종사자는 역을 맡은 꼴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용불안으로 대기업 정규직도 역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어 늦은 나이에 노량진의 학원가로 가는 대기업 사원들도 있다. 한마디로 정부와 관련된 직업은 직이 되고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는 직업은 역이 되어가고 있다.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간 줄 알았던 어휘가 실감이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