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는 일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면 구직을 포기했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서는 생산적 노동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이런 니트 같은 XX’라는 말은 거의 최상급 혐오 발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서로 경멸할 처지가 아닌 것입니다. 머지않아 일하는 사람이 소수자가 되고 오히려 니트 상태가 평범하고 당연한 사회가 온다면, 이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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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0여 년 전부터 청년 니트의 수는 청년 실업 인구를 넘어섰습니다. 통계를 집계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청년 니트 인구는 대략 100만 명에서 16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15세~29세 청년의 9퍼센트에서 18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니트 상태는 이미 청년들의 삶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그저 사회가 직시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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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평범한 청년들의 노동 환경과 생활 환경이 니트 상태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슷한, 혹은 보다 더 심각한 곤란함에 봉착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노오력형 니트’, ‘소진형 니트’, ‘간헐적 니트’로 표현한 이 상황들은 이른바 ‘일반적인’ 청년들도 빈번하게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노력하다가 마모되고 분쇄되고 소진되어 휴식과 노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청년의 삶에 대해, 이 책은 니트라는 지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계급이나 부채, 조직과 문화 등 다른 지점에서 접근 중일 것입니다. 특히 《잉여사회》, 《사표의 이유》,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등 우리 시대 청년의 처지와 시각에 대한 30대 젊은 연구자들의 저작들은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노력들이 하루빨리 서로 연결되어 지금 청년들이 자리한 일과 삶에 대한 지도가 완성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