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셈인에 의해서 발명되고 고대 희랍인에 의해 완성된 표음 알파벳phonetic alphabet은 소리를 시각적인 모습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모든 쓰기체계 중에서 월등히 뛰어난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알파벳이 모든 주요한 쓰기체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리라. 아름답게 도안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자만큼 정교하게 할 수는 없다. 알파벳은 민주주의적인 스크립트로 누구나가 간단히 배울 수 있다. 한자 쓰기는 그 밖의 많은 쓰기체계와 마찬가지로 엘리트주의적이다. 즉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의 여유로움을 필요로 한다. 알파벳의 민주주의적인 성격은 한국에서 제시되었다. 한국의 책이나 신문에는 알파벳(한글 자모: 옮긴이)으로 철자화된 단어와 몇 백 개의 갖가지 한자가 혼합되어 쓰인다. 그러나 모든 공공적인 표기는 알파벳으로만 씌어지고, 알파벳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완전히 습득되므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표기를 읽을 수 있다. 다만 한국의 대부분의 문헌을 읽기 위해서는 알파벳 이외에 1800개의 ‘한자’가 최소한 필요하며 그것들을 전부 터득하는 데는 중학교 수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알파벳의 역사에서 아마 가장 주목해야 할 유래 없는 성과는, 한국에서 1443년 조선의 왕 세종이 한국인을 위해서 알파벳을 고안하라는 칙령을 내렸을 때 이룩되었다. 그때까지 한국어는 한자만으로 씌어졌다. 한국어는 중국어와는 전혀 유연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의 어휘에 한자를 애써 적용(그리고 상호조합) 시켰던 것이다(한국어에는 중국어로부터의 많은 차용이 있으나 상당히 한국어화되었기 때문에 그 대부분의 내용은 어느 중국인도 이해할 수 없다). 대대로 수많은 조선인, 즉 쓸 수 있는 모든 조선인들은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복잡한 중국-조선식 철자법을 익히기 위해 소비해 왔다. 그들은 새로운 쓰기체계를 거의 환영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로운 쓰기체계로 해서 그들이 애써 습득한 기능이 시대에 뒤진 것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권력은 강대했으며, 세종은 많은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칙령을 내렸다. 이 점에서 그가 비교적 강인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음을 간취할 수 있다. 어떤 언어에 알파벳을 적용하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몇 년이나 몇 세대가 걸린다. 세종이 모아들인 학자들은 앞서 준비기간을 거치기는 했지만 한국식 알파벳을 3년 만에 완성했다. 그 성과는 매우 훌륭한 것이어서 조선어의 음운체계에 거의 완전하게 적합하였고, 한자로 씌어진 텍스트의 외양과 유사하게 알파벳의 스크립트를 쓸 수 있도록 아름답게 도안되었다. 그러나 이 주목할 만한 성과도 수용의 측면에서는 예상대로였다. 그 알파벳은 실제적으로는 학문 이외의 비속한 목적에만 사용되었다. ‘진지한serous' 작가들은 고통스런 훈련 끝에 터득한 한자의 쓰기 체계를 계속 사용했다. 진지한 문학은 엘리트주의적이었으며 엘리트주의적으로 보여지기를 원했다. 20세기가 되어서 한국이 한층 민주화됨에 따라 비로소 알파벳은 현재의 우위(아직 전적이지는 않지만)를 획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