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통해 미국 사회의 성격 변화를 분석하는 틀을 만들었다. 개인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도구와 훈련이라는 의미의 물리적 자본과 인적human 자본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사회자본 이론의 핵심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스크루드라이버(물리적 자본) 혹은 대학 교육(인적 자본)이 개인적 집단적 생산성 모두를 향상시킬 수 있듯, 사회적 접촉 역시 개인과 집단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리적 자본이 물리적 사물, 인적 자본이 개인의 특성을 가리키듯, 사회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사회자본은 몇몇 사람들이 ‘시민적 품성civic virtue’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민적 품성은 호혜적 사회관계의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사회자본’은 주목한다. 바로 이것이 단순한 시민적 품성과 사회자본의 차이점이다. 시민으로서의 품성은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면서 서로 연결되지 못한 고립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사회자본이 풍부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는 20세기 동안 각자 독립적 맥락에서 최소한 여섯 차례 고안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매 경우 이 용어는 우리의 삶이 사회적 유대에 의해 보다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세상과 담을 쌓은 공론가가 아니라 1890년대에서 1920년, 즉 미국 역사에서 ‘진보의 시대Progressive Era’라고 불리던 시기에 사회개혁가로서 적극적 활동을 펼쳤던 리다 하니판Lyda J. Hanifan이었다. 당시 그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임명한 농촌학교 감독관 직책을 밑고 있었다. 성공적인 학교 교육과 운영을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던 하니판은 1916년의 글에서 그 이유를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설명했다. 하니판에게 사회자본은 다음과 같다.
(사회자본이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형의 실체, 예를 들면 사회 단위를 구성하는 개인과 가족들 사이의 호의, 동료애, 동정심, 사회적 교섭 같은 것을 말한다. (…) 개인들은 홀로 고립되면 사회적으로 속수무책이다. (…) 한 사람이 자신의 이웃과 접촉하고, 이 사람들이 또 다른 이웃들과 접촉하는 식으로 계속 확대하면 사회자본이 축적될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자본으로 인해 개인의 사회적 욕구는 즉각 충족될 수 있으며, 공동체 전체의 생활 조건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에 충분한 사회적 잠재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전체로서의 공동체는 모든 부분들의 협조로 인해 이익을 누릴 것이고, 개인은 자신의 접촉이 만들어내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웃들의 도움, 동정, 동료애가 주는 장점을 찾아낼 것이다.
하니판의 설명은 사회자본에 관한 그 이후의 해석에서 나타나는 사실상 모든 중요한 요소들을 전부 포함하고 있었는데도, 이 새로운 개념은 다른 사회평론가들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이 흐르고 모래가 드러나면서 가라앉은 보물이 다시 발견되듯, 이 개념 또한 1950년대 캐나다의 한 사회학자에 의해 독자적으로 재발견되었다. 벼락부자가 되어 교외의 고급 주택가로 이주한 사람들이 그 지역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상을 규명하는 데 그는 이 개념을 사용했다.
1960년대에는 현대 거대 도시에서 이웃 간의 친밀한 유대 관계를 높이 평가한 도시 신개발주의자urbanist 제인 제이콥스가, 70년대에는 노예제도가 남긴 사회적 유산을 분석하는 연구에서 경제학자 글렌 로리가 각각 그 개념을 재발굴해냈다. 80년대에는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 담겨 있는 사회 경제적 자원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독일 경제학자 에케하르트 슐리히트Ekkehart Schlicht가 이 개념을 다시 끌어냈다. 마침내 1980년대 말 사회학자 제임스 콜먼James S. Coleman은 (하니판이 최초에 사용했던 의미 그대로) 교육과 사회 환경의 밀접한 관련성을 부각시키는 데 이 개념을 동원하면서 지식사회에 확고하게 정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