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19세기 이후 소국의 존재방식으로서 ‘소국연합’의 구상(스칸디나비아주의, 발칸연방 구상 등)이나 군사력의 취약성을 전제로 한 ‘전통적 중립’화의 움직임이 보편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대국의 힘 앞에서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부까지는 소국이 바로 그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조선은 소국사상으로 일관해온 전형적인 국가였다. 유교에서는 《맹자》 양혜왕 편에 “큰 것으로써 작은 것을 섬기는 자는 하늘을 즐겁게 하는 자이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섬기는 자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늘을 즐겁게 하는 자는 천하를 보존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존한다”라고 했듯이, ‘사대事大’는 말할 것도 없고 ‘사소事小’조차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소국은 오히려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패도覇道를 배척하고 왕도王道의 입장에 서는 것이 유교의 이상적 국가상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부국강병’ 사상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제창된 것은 ‘자강自强’ 사상이다.
한국사 연구자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부국강병’과 ‘자강’을 혼동해서 쓰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조선에서는 ‘부국강병’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설사 ‘부강’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에도 그 내용은 ‘자강’이라는 뜻이다. ‘자강’이라는 것은 민본을 기초로 하여 내정內政과 유교적 교화의 충실을 도모하는 것이며, 그것이 잘되면 침략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군사력 증강의 길은 민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군사력은 방어하는 데 족한 최소한의 수준이면 된다는 것이다. ‘자강’은 왕도론의 발현 형태이며, 따라서 패도론의 발현 형태인 ‘부국강병’과는 명확히 다른 개념임이 틀림없다. 원래 중국에 대해서 종속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조선에서는 대국사상은 거의 자라지 않았고, 그것은 근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말미에
이상과 같이 조선에서는 소국사상은 근대 초두부터 큰 흐름으로 일관되게 존재해왔다. 그것은 유교적 전통사상에 뒷받침된 사상 조류이며, 단지 약소국으로서의 자기인식만을 전제로 발현된 것이 아니다. 확실히 그것은 한일합방에 의해서 ‘미발의 계기’로 끝나고, 조선에는 비극이 닥쳐왔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현실을 거쳐서 그것은 한층 더 단련되고, 자신 있게 이야기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소국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우리는 당연히 묻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보다 더 물어봐야 할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의 소국사상을 ‘미발의 계기’로 봉인해버리고 만 근대라는 시대의 존재 방식일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교과서는 “일본의 근대사회는 메이지유신을 거쳐 혁명적인 변화를 수행하였”고,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일청·일러 전쟁에 이어서 제3의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이 대국화하는 기점이 된 메이지유신의 문제성을 전혀 묻지 않고, 일본의 대국화는 무조건 ‘성공’이라고 보고 있다. 굳이 대국을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소국이 됨으로써 민중의 생활을 풍족케 하고, 또 ‘광기의 근대’에 경종을 울리려고 한 사상적 모색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국제사회가 협조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현대라는 시대에 소국사상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크다.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자국 근대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간주되고 있다. 물론 ‘성공’이라고는 당연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근대에 패배했다 하더라도, 성인들이 적어도 해방 직후까지 소국사상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에서는 메이지유신이라는 모델에 따라 근대화를 구상했던 김옥균에 대한 평가가 높지만, 역사적 문맥을 무시한 일방적인 사대주의 비판과 함께 그 근대주의적 역사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또 한국의 경우에는 1960년대에 베트남 파병을 행하여 그것을 고도성장의 계기의 하나로 삼았고, 현재는 경제대국화를 노리고 있다. 단호히 침략행위를 부정하고 생산력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했던 김구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인기가 높은 역사적 인물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이러한 현대사의 전개나 오늘날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소국이면서도 문화적으로는 대국을 지향하는 것이 김구의 이상이었다. 근대사의 대안적 길로서 굳이 소국을 선택하려고 했던 조선 근대의 사상적 모색은 일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 북한에게도 무거운 의미를 당연히 던져주고 있다.
(조경달(지음), 김종철(옮김), <근대 조선의 소국사상>, 《녹색평론 14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