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 주3) 코먼웰스commonwealth라는 말은 ‘공공의 복지’commonwealth라는 뜻으로 ‘공공의 복지’를 위해 결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영국사에서는 1649년 청교도혁명으로 찰스 1세(재위 1625~1649)가 처형되고 크롬웰Cromwell의 공화정이 성립된 후부터 1660년 반동혁명에 의해 찰스 2세가 즉위하여 왕정이 회복될 때까지 영국의 국가를 부르는 말로 ‘코먼웰스’the Commonwealth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공화국’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홉스의 이 책은 크롬웰의 공화정이 성립된 직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홉스는 이 용어를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등 통치형태와 관계없이 정치공동체 일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
제17장 코먼웰스의 원인, 생성 및 정의에 대하여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코먼웰스 속에서의 구속을 스스로 부과하는 궁극적 원인과 목저고가 의도는 자기보조노가 그로 인한 만족된 삶에 대한 통찰에 있다. 다시 말하면, 비참한 전쟁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전쟁은, 제 13장에서 본 바와 같이, 인간 본래의 정념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어서 인간이 그 힘을 두려워하고, 처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각자가 체결한 신의계약들을 이행하고, 제 14장과 제 15장에서 말한 여러 자연법들을 준수하지 않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정의’, ‘공평’, ‘겸손’, ‘자비’ 등, 요컨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자연법 그 자체는 어떤 힘에 대한 공포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연적 정념은 그 반대의 방향, 즉 불공평·자부심·복수심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칼 없는 신의계약은 빈 말에 불과하며, 인간을 보호할 힘이 전혀 없다. 자연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지키려는 의지가 있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때에는 지켜져 왔다) 어떤 권력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혹은 확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족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품게 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힘과 기량에 의지하려 들 것이다. 이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사실상 사람들이 소가족으로 생활을 영위해온 모든 지방에서 강탈과 약탈은 인간의 생업이었고, 자연법에 반한다고 비난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전리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명예로운 일로 여겼다. 그들이 지킨 법은 명예법laws of honour뿐이었다. 이 명예법이 잔학행위는 삼가도록, [약탈을 해도] 목숨과 농기구는 빼앗지 않도록 할 뿐이었다. 그 시절 소가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큰 가족이라 할 수 있는 도시나 왕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 침략의 위험이 있다, 혹은 침략할 우려가 있다, 혹은 침략자를 도와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영토를 확대한다. 또한 공공연한 무력행사나 은밀한 계책으로 인접한 도시나 국가를 제압하고 약화시키려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역시 달리 [가상적假想敵을] 경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이며, 그 명예가 후세에까지 전해진다.
또한 소수자가 단결하더라도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소수의 경우에는 어느 소수[집단]이건 약간의 힘만 더 보태도 강력한 힘이 되어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을 조장한다. 안전하다고 믿기에 충분한 수는 어떤 일정한 수가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저고가의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전쟁의 승패가 쉽게 판가름 날 정도로 적敵의 우세가 현저하면, 적은 전쟁의 충동을 받기 쉽다. 이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수를 확보하고 있을 때 비로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많은 다수라 하더라도 각자 자신의 판단과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면, 공동의 적에 대한 방위를 전혀 기대할 수 없으며, 또한 상호간의 권리침해에 대한 보호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법에 관한 의견이 제각각일 경우에는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고, 무익한 내부대립으로 말미암아 힘을 소진하게 된다. 따라서 극소수가 단결한 집단과 대적해도 쉽게 제압당할 뿐만 아니라, 공동의 적이 없을 때에는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내란이 벌어진다. 만약 다수의 인간이, 두려워할 권력이 없어도 정의를 지키고, 자연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할 수 있다면, 인류 전체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종이 없어도 평화가 있기 때문에 어떤 시민정부도, 혹은 코먼웰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단일한 판단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일회의 전쟁이나 전투에서처럼 제한된 기간 동안에만 존재한다면 인간이 원하는 안전은 확보되지 않는다. 인간은 평생의 안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기간 동안에만 단일한 판단이 존재하는 일회의 전쟁이나 전투의 경우, 전원일치의 노력으로 외적外敵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공동의 적이 없거나, 혹은 일부 사람들이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를 다른 사람들은 친구로 여기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하여 그들은 필연적으로 분열하게 되고, 다시금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확실히 벌이나 개미 같은 동물들은 서로서로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을 정치적 동물 속에 포함시켰다.) 이 동물들은 각 개체의 판단과 욕구 이외에는 따라야할 명령이 아무것도 없다. 또한 언어가 없기 때문에 한 개체가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를 다른 개체에게 알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명예와 지위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지만, 그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인간들 간에는 바로 그 때문에 시기와 증오가 발생하고 결국에는 전쟁이 일어나지만, 그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둘째, 동물들의 경우에는 공동 이익과 사적 이익이 다르지 않다. 본능적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 공동이익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 데에는 기쁨을 얻기 때문에 우월감 이외에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셋째, 동물들은 인간과는 달리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의 일을 하면서 과오를 찾아내는 일도 없고, 또한 과오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공동체’를 다스리는 일에 자기가 남들보다 현명하고 유능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이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개혁과 쇄신을 추진하고자 노력하는데 이로 인해 혼란과 내전이 초래된다.
넷째, 동물들도 욕망이나 기타 감정들을 서로 알리기 위해 어느 정도 음성을 사용하지만, 언어를 사용할 줄은 모른다. 그러나 인간 중에는 언어의 기술을 이용하여 선을 악처럼, 악을 선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들이 있으며, 이렇게 선악의 외견상의 크기를 가감加減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불평을 품게 하고, 제멋대로 평화를 교란하는 것이다.
다섯째, 이성이 없는 동물들은 ‘권리침해’와 ‘손해’의 개념이 없으므로 자기가 안락하기만 하면, 동료들에게 반감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안락할 때 가장 까다로워져서 자신의 지혜를 과시하고 코먼웰스를 통치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끝으로, 그 동물들의 화합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화합은 오직 인위적인 신의계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화합을 항상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신의계약 이외의 어떤 것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두렵게 하고 공동이익에 맞게 행동하도록 지도하는 공통의 권력common power이다.
공통의 권력은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고, 또한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열매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쾌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one Man 혹은 ‘하나의 합의체’one Assembly에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지니는 한 사람 혹은 합의체를 임명하여, 그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백성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하든, 각자가 그 모든 행위의 본인이 되고, 또한 본인임을 인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들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 혹은 화합 이상의 것이며, 만인이 만인과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단 하나의 동일 인격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만인이 만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과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권리를 이 사람 혹은 이 합의체에 완전히 양도할 것을 승인한다. 단 그대도 그대의 권리를 양도하여 그의 활동을 승인하다는 조건 아래.’ 이것이 달성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Commonwealth - 라틴어로 키위타스Civitas - 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바로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아니, 좀 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 불멸의 하느님’immortal God의 가호 아래, 인간에게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지상의 신은 코먼웰스에 살고 있는 모든 개인이 부여한 권한으로, 강대한 권력과 힘을 사용하여 국내의 평화를 유지하고, 단결된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사라들을 위협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의지를 하나의 의지로 만들어 낸다. 바로 여기에 코먼웰스의 본질이 있다. 코먼웰스의 정의定義는 다음과 같다. ‘다수 사람들이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하여 세운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들 각자가 그 인껴이 한 행위의 본인이 됨으로써, 그들의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사람의 힘과 수단을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인격을 지닌 자가 주권자sovereign라 불리며, ‘주권적 권력’sovereign power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외의 모든 사람은 그의 백성subjects이다.
주권을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연적 힘에 의한 것으로서, 예컨대 자식이나 자손들을 복종시켜 지배하면서, 복종을 거부하면 멸하는 경우나, 혹은 전쟁으로 적을 정복하여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복종을 조건으로 살려주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또 하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믿고, 어떤 사람이나 합의체에 대한 자발적 복종에 각자가 동의하는 경우이다. 후자는 정치적 코먼웰스, 또는 ‘설립’institution에 의한 코먼웰스라고 부를 수 있고, 전자는 ‘획득’aquisition에 의한 코먼웰스라고 부를 수 있다. 먼저 설립에 의한 코먼웰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