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미국과 한국 (최장집_고려대 교수, 정치학)
민주주의의 핵심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래하는 말뜻 그대로 데모크라시(demo(s)+kratia), 즉 시민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지배체제로서 인민의 힘을 실현하는 것 내지는 인민 스스로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러한 원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문제는 헌법에 의해 틀지어지고 규정된다. 헌법은 인민의 정치적 참여와 실천 나아가 그 결과를 규율하는 제도 중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헌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인민의 힘, 인민의 의사를 제약·구속하는가? 그것은 민주주의와 대비하여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라고 일컬어지는 정치학의 또 다른 중심 문제를 가리킨다. 현실에서 민주주의 체제는 헌법으로 구체화된 제도적 형식성 즉 헌정주의와, 인민의 지배라고 하는 민주적 규범 사이의 긴장과 괴리, 모순과 갈등을 포괄하기 때문에 복잡한 다이나믹스를 창출한다. 평상시 다수의 사람들은 자유롭고 공정하고 주기적인 선거, 평등한 투표권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 참여의 권리, 선출된 대표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 의사표현의 자유, 다수지배의 원리가 실현되는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헌법은 이러한 민주주의를 규범적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라고 보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이렇다 할 갈등이나 괴리가 있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헌법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리 및 규범과 충돌하는 사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헌법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헌법은 과연 민주주의에 복무하는가? 그럼으로써 정당성을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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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미국 헌법을 소재로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약간의 우회적 방법을 빌리고자 한다. 헌법이란 우리가 보통 헌정주의라고 표현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제도화 내지는 그 기본적인 제도의 틀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중 스스로의 통치를 의미하는 그 말 자체가 어원을 두고 있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실현된 민주주의와, 근대 서구에서 발전한 자유주의와 결합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내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두 이념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민주주의 원리와 정신은 프랑스혁명의 이념적 기초로서 근대 프랑스의 공화주의 이념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루소의 ‘일반 의지’는 이 공화주의 이론을 가장 추상적으로 집약한 것으로 인민 주권, 평등한 정치참여, 다수에 의한 지배를 그 이념의 실천적 요소로 포괄한다. 반면 후자의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17, 18세기 이래 자유주의의 발전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우리가 오늘날 헌법으로 제도화된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헌정적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는 이 자유주의의 이념과 실천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유형의 민주주의는 1787~1789년 제임스 메디슨의 중심적 역할과 더불어 미국 헌법으로 제도화되었고, 이후 모든 헌정적 민주주의의 원형이 되었다.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위에서 말한 민주주의의 두 흐름, 두 이념형을 로버트 달이 명명하는 바에 따라 ‘민중적 민주주의’populistic democracy와 ‘매디슨적 민주주의’Madisonian democracy라고 부르기로 하자.
필자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그 형태와 내용이 어떠하든, 민중적 동력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적 민주주의의 요소를 중심에 포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중적 동력의 중요성은 두 가지 계기에서 요구된다. 하나는 군부권위주의 혹은 귀족주의 체제나 전제정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역할이다.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전의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민중의 집단적 행위 없이 가능하지 않다.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Sheldon S. Wolin은 이를 ‘민주적 모멘트’라는 말로 표현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 아테네의 경우에서든, 로마 공화정 혹은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든, 민중적 동력을 결여한 경우 엘리트의 기득이익이 체제 속으로 쉽게 침투하여 확대, 강화되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화되면서 이내 그 역동성을 상실하게 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퇴행과 급기야는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퇴행의 경향을 저지함에 있어 민중적 동력의 투입은 일정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지금 말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양태가 어떠하든 민중적 동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안으로 폭넓은 사회적 요구와 힘이 투입되고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 혹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사회적 기반을 중시하는 관점이라 하겠다. 둘째는 민주주의라는 정치경쟁의 게임 규칙과 제도가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 경쟁의 제도화가 결과의 (한정된) 불확실성을 창출함으로써 게임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민주주의를 지속시키게 된다는, 이른바 제도의 효과를 중시하는 관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가 더 비중있게 고려하는 것은 첫 번째 이해방법이다. 제도는 그것이 작동하는 토대이자 실질적 효과의 내용으로서 사회적 기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지 않는 한, 그 원래의 목적을 쉽게 상실하고 빠르게 쇠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중적 요소의 투입과 참여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게임규칙은 사회적 기반 위에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민중적 요소의 투입과 참여를 필요조건으로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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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의 민주주의관은 자유주의의 이념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립과 더불어 어떤 통치체제를 건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당면한 문제해결의 산물이기도 했다. 사회경제적 구성원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 헌법은 대체로 다섯 그룹, 즉 ① 뉴잉글랜드 상인, ② 제펀슨이나 메디슨 자신이 속하는 농장주, ③ 친영 왕당파, ④ 자영업자, 장인 및 노동자, ⑤ 소농 등 정치적·경제적 세력들의 타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배제하지 않고 하나의 통치체제로 통합하여 제도화하는 문제는 지난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매디슨의 창의성은 갈등하는 이들의 이익과 권리를 배제하지 않고,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청치참여를 최대한 허용하는 데서 출발하되, 다수 지배를 스스로 견제하는 체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민주주의가 전혀 지배적인 이념이 아니었던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매디슨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굉장한 진보주의자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매디슨적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세력과 일반 대중들의 폭넓은 정치참여를 한편으로 하고, 어떤 그룹이든 그들간의 결합이 다수로 결집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兩者의 균형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제도디자인을 통해 민주적 경쟁의 틀을 만든 다음, 이 제도의 효과에 의해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헌정적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체제의 최초 모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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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견제-균형의 원리와 삼권분립의 원리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두 원리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구현되었던 양태도 달랐다. 견제와 균형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의 정치체제에 경험적 기초를 갖는 혼합정체를 작동시키는 원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다 역사적인 기원을 가진 말이다. 그러나 삼권분립은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미국적으로 변용한 또는 창의적으로 응용한 원리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우스는 혼합정체의 장점을 이론적으로 설파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의 중우적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체제로서 군주정적 요소와 귀족정적 요소를 결합한 체제라는 이유로 혼합정체를 강조했다. 폴리비우스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절묘하게 결합된 로마의 공화정을 혼합정체라 칭하고 그것을 각 체제의 장점을 모두 배합한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체제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마키아벨리와 도나토 지아노티는 고대 로마와 베니스를 각각 다른 이유로 혼합정체의 모델로서 강조했다. 매디슨의 제도디자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몽테스키외의 견제와 균형의 이론은 18세기 당대의 영국을 경험적 모델로 한 것이다. 프랑스의 전제정하에서 살았던 그의 눈에 국왕, 귀족원, 평민의 의회로 구성된 영국의 체제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균형적으로 대변하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비쳤다. 이렇듯 균형체제의 이론가들에게 고대 그리스, 고마로부터 18세기 영국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체제적 성격을 결합한 혼합정체의 구조는, 곧 사회의 기본적인 세 신분집단을 대변하는 기구의 혼합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들 대표기구간의 견제와 균형, 달리 말해 중심적 사회집단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체제의 안정을 창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국왕과 귀족, 평민으로 구분되는 신분2집단을 갖지 않는 신대륙에서 청교도 이민자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 사회의 정치적 표현으로서 미국의 공화정은 유럽의 전통사회를 모델로 삼을 수 없었다. 매디슨의 독창성은 사회적 힘들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부의 기능분업을 대표하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변용한 데 있다.
미국 헌법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견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견제의 구조를 통해 균형을 성취하려는 원리다. 즉 상호견제가 불균형적이라면 균형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미국의 헌정체제는 한 부서가 다른 두 부서로부터 견제 받는 동시에 다른 두 부서를 견제하는 상호성의 제도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미국의 정체는, 매디슨이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이라 불렀다 하더라도, 인민 주권과 정치적 평등이 구현되고 인민의 의사가 선거를 중심 수단으로 하는 대표의 체계를 통해 표현되고 결정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의미로는 민주주의 체제이다. 풀어 말하면 인민의 의사에 따라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됨으로써 인민 주권의 대표성에서 그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선출된 대표이기 때문에 인민에 대해 직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방법원으로 제도화된 사법부의 지위이다. 즉 그들은 누가 선출하고 누구를 대표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물론 연방대법원의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며 또 의회에서 탄핵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에 대한 사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과 민주적 통제는 지나치게 약하고 애매하다.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가장 애매하고 민주적 통제와 거리가 먼 사법부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 즉 헌법해석권을 중심으로 한 헌법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야말로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며, 제도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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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헌재의 재판관과 선관위의 위원은 6년이라는 임기와 선임방법이 동일하다. 즉 대통령에 의한 임명, 국회에 의한 선임,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3인씩 모두 9인으로 구성된다. 미국의 경우 연방최고법원의 9인 판사를 포함하여 모든 연방법원의 판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연방최고법원 판사의 경우 대통령의 임명과 상원에서의 청문회를 포함하는 인준절차는 그 자체가 정당간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제도와는 달리 한국의 경우, 이들 두 중요한 사법기관의 재판관과 위원에 대한 임명권은 대통령, 의회, 사법부로 3인씩 분할된다. 이러한 방식은 매우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한국에서 이 방법은 분명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동기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식 제도에서 연방법원은 대통령의 임명과 상원의 인준이라는 방식을 통해 행정부와 의회 두 부서에 대한 수평적 책임석을 부과받는다. 동시에 이들 두 부서가 국민의 대표기구라는 점에서 비록 간접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국민에 대해 수직적 책임성의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세 부서가 임명권을 분할해 갖는 것이긴 하지만 상호견제하는 기능 즉 수평적 책임성의 구조를 갖지 않는다. 수직적 책임성의 구조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임명권은 그렇다 해도, 국회에 의한 임명권은 정당간의 배분을 통하여 임명되곤 하기 때문에 책임성의 소재가 애매해진다. 그러나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임명권, 즉 사법부 자체에 의한 임명이다. 이는 국민과 타 부서 어디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표와 책임의 고리로부터 이탈해 있음을 의미하며, 사법부의 자율적 역할, 나아가 역할 비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매디슨은 ‘논설 10번’에서 ‘어떤 사람도 그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스스로가 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부는 견제되지 않은 채 견제자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그 어떤 민주주의 이론을 통해서도 사법부의 이러한 지위와 역할이 정당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사법부를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불편부당한 수호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수호자는 누가 감독하는가? 이 수호자는 누구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