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은 그 재건을 가져온 파괴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건설은 파괴된 건축 환경을 이어 붙이거나 예전 삶의 결을 하나로 엮는 데 사용된다. 집단 기억에는 새로운 시금석이 놓인다. 한 때 비의도적인 기념물, 곧 일상의 예배 장소와 도서관과 분수였던 것은 재건을 통해 파괴를 야기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의도적인 기념물이 된다. 역사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대내적, 대외적 평화를 위해 어디까지 기념하고 어디까지 기억해야 할까? 용서와 망각의 범위는? 고통의 기억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이를 구체화한 장소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재건의 또다른 측면은 재건의 주체가 가해자든 희생자든 역사의 증거인 균열과 빈 공간, 잔해를 제거함으로써 과거를 은폐한다는 점이다. 재건이 파괴 이후의 전후 맥락을 반영한 역학 관계 아래서 이뤄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과 망각은 동전의 앞뒷면이며 둘 사이의 갈등도 이 관계를 떼어놓지 못한다. 망각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으로 우리 삶의 대부분은 망각되어 사라진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기억되는 건 극히 일부이며 의미 있고 일관성 있는 서사나 정체성은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질문화를 파괴해 망각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재건은 특히나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재건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일상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 재건 외에도 기억할 필요, 해명을 요구할 필요, 파괴의 반복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건설로 진실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건설되고 있는 것은 누구의 진실인가? 혹시 거짓된 기억들이 세워지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