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교육청이 주최하고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후원하는 '2014 강원 고교생 인문학 독서토론 캠프'가 2014년 9월 19~20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습니다. 이 캠프는 고교생들과 저자들이 함께 모여 1박 2일 동안 질문하고 소통하며 생각과 마음을 넓히는 비경쟁 상호 협력 방식 캠프입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았으며, 올해의 주제는 '틀, 그 한계를 허물다'입니다. 주제도서는 강수돌의 『팔꿈치 사회』,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사이』, 이옥수의 『개같은 날은 없다』, 이희수의 『이슬람』입니다.
첫날 '저자와의 북 토크' 시간에 이뤄진 질의응답 내용을 요약하여 올립니다.
저자별 질문
이옥수
Q) 강의 횟수가 많은 편입니다. 책으로 학생을 만나는 것과 현장에서 만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A) 책으로 만나는 건 짝사랑 같고,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는 것은 굉장히 황홀합니다.
이일훈
Q) 이일훈 작가님은 건축가 같기도 하고 평론가 또는 사진가 같기도 한데, 본업이 무엇인가요?
A) 제 본업은 건축가입니다. 건축가가 집만 짓는다는 고정관념은 깨셔야 해요. 건축가가 왜 집만 지어야 합니까? 글도 쓰고 사진도 찍을 수 있죠.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일을 탐색하는 것은 건축가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는 일을 할 때 가장 보편적 인식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보편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보편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집은 보편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공간은 보편적으로 사회에 기부되어야 합니다. 독점하거나 아주 특별하게만 소수에게 사용되어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아주 보편적으로 널리 유익하게 쓰이고 공동의 이익으로 기능하는 것이 건축의 본래 기능이거든요. 그렇게 기능할 수 있게 일을 하는 사람이 건축가에요. 그런 건축가의 무의식을 아주 다른 방법으로 계속 탐색하는 거죠. 글을 통해서도 그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도 그 것을 표현할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다른 장르의 방식을 통해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여러 가지 책을 읽은 사람에게 너는 뭐하는 학생이냐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질문이 너무 틀에 얽매인 질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네요.
강수돌
Q) 2014년에만 해도 ‘『자본주의와 노사관계』, 『잘 산다는 것』,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기업 경영과 노동법』 총 4권의 책을 내셨는데, 작가님 특유의 글 쓰는 시간이나 방법은 무엇인가요?
A) 하루에 한 시간, 하루에 한 시간씩만 쓰세요. 일기도 좋고 일기가 아니어도 돼요.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꼭 메모하고 싶은 것 들을 나중에 정리하면 책이 되요. 꼭 기억하세요. 하루에 한 시간 이에요.
이희수
Q) 한국에서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가 되셨는데, 이슬람 관련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서울대학교에 한 번 가고 싶어서 4수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대를 가야할 나이가 되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미달된 학과를 고르다 터키어과에 들어갔습니다. 4수를 하다 보니 똑똑한 천재 동기생들이 날고 기는데, 앞으로 내가 취직공부를 해도 친구들이 과장이 되었을 때 나는 평사원일 테고, 고시 공부를 해도, 유학 공부를 해도, 뭘 해도 평생 친구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게 생겼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사회에서 3~4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남들이 안하는 것이 저한테 차례가 올까요? 남들이 싫어하고 철저히 버린 것을 찾아야만 하잖아요. 그게 이슬람이었습니다. 저는 70년대 내내 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가 유신체제였고 학교는 탱크가 지켜서 공부할 틈도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가 다 휴교하니까 공부하지 않아도 학점은 A를 받았어요. 그 어렵다는 국비 유학생 시험을 쳤는데 제가 붙었어요. 왜냐하면 아무도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에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나온 천재들은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국비유학생으로 가려고 경쟁률이 7대1, 8대1 하는 시험을 봤어요. 그때 한국과 터키 간 문화교류협정이 체결되어 국립이스탄불대학 국비유학생을 한 명 뽑았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 곳에는 동그라미를 안 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곳을 지원했고, 천재 친구들이 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저는 반대편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가게 되었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었고요.
여러분들이 남들이 잘하는 것을, 지금 인기 있는 것을 철저히 피하는 것도 성공하는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에 대한 소개 중에 하나 고쳐야 할 것이 있는데요, 신문마다 패널마다 저를 최고의 전문가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제가 처음 이스탄불에 갔을 때 이스탄불의 도시 인구가 600만 명이었습니다. 한국 교민이 한명도 없고, 제가 1번 교민이었어요. 이스탄불 대학이 1453년도에 설립된 이래 제가 첫 한국인 유학생이었고요, 박사학위 하니까 첫 한국인 박사, 교수 생활하니까 첫 동양인 교수가 되었는데요. 혼자밖에 없는데 뭐……. 그 다음에 한 10년쯤 지나니까 최초, 최초, 최초 하다가 한 할 일 없는 기자가 최초를 최고로 바꿔놨더라고요. 혼자 밖에 없는데 최초면 어떻고 최고면 어떻습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통질문
Q)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희수
고정관념과 편견은 버리면 버릴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제가 이슬람이라는 편견을 버렸을 때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었잖아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틀에 박혀 있었을 거예요. 제가 유학공부를 하면서 항상 창의력 얘기를 많이 했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종 집단에서는 창의력이 절대 안 생깁니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면서 생기는 모순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 여러분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것이 아마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 분노를 가라앉히는 내공을 키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1979년에 중동으로 날아갔으니까 삼십 몇 년동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이슬람에 대해 고정관념에 갇혀있어 아쉽습니다. 15억, 57개국이 이슬람인데, 지구촌 인구의 1/4인데 이쪽 분야에 사람이 없다는 거죠. 지금 장사 잘되고 취업 잘되는 것을 버리세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할 5년, 10년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개성이 존중되고, 판에 박히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존경받고 보람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틀을 깨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지만 보람 있고 내 자존심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번 독서토론이 여러분들의 고정관점을 깨고 남들이 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는 큰 자극의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옥수
제가 이틀 전에 동대문 DDP라는 곳에 가서 미인도를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그란 얼굴과 아담한 모습, 그래서 제가 정말 뿌리 찾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 성형외과 학회 회장님이 신문 전면에 인터뷰한 것을 봤어요. “들어가는 순간 다 거짓말이다.” 저는 이 틀부터 좀 깨면 좋겠어요. 상업자본에 의해 우리가 우리 몸을 농락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세뇌되었다는 거죠. 저는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아도, 꽁치를 손질해도, 국회에서 예·결산을 처리해도 뭘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저는 10년 안에 이 나라의 주체적인 주인으로 살아갈 여러분들이 지금껏 세뇌당하고 농락당한 이 틀을 좀 깨면 좋겠어요. 여러분, 눈 안 찢어도 괜찮아요. 원본의 아우라라는 것이 있잖아요. 물론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대다수는 괜찮아요. 여러분 우리 몸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다. 멋있잖아요.
이일훈
틀을 깬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다르다는 것은 소중한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으로 다른 것을 ‘틀리다’라고 얘기해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에요. 다른 것은 소중한 것이고, 창의가 있는 것이고, 변별성이 있는 것이고, 각기 고유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면 늘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어요.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그 틀 안에 구속당하지 않고 자유로우려면 유연한 틀을 가져야 해요. 유연한 틀을 가지면 여러분의 상상력이 자유로워져요. 그런데 틀린 틀에 갇히면 여러분들이 그 틀을 깨지 못해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방향을 보고, 계속해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하면 틀이 깨져요.
강수돌
저는 독서토론 캠프 같은 이런 만남의 장이 대학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한자로 쓰면 큰 공부에요. 큰 공부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살고, 내가 80년 후에 인생을 마무리 할 때 ‘보람 있게 살았노라’, ‘행복하게 살았노라’라고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정말 큰 공부에요. 그런데 요즘 대학은 등록금만 큰 학교에요. 공부는 소학이고, 등록금만 대학이다. 좀 있으면 잘릴 것 같죠? 평소에 그런 소신을 갖고 있고요. 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 중 한 한기에 한두 명은 결심을 해요. 어떤 결심을 했냐고 물으면 “학교를 그만 나오기로 했습니다.”라고 얘기해요. 그럼 얘기하죠. “그래 잘했다. 드디어 큰 경험을 얻었구나.” 라고요.
토끼와 거북이 얘기 아시죠? 무슨 얘기죠? 경주하는 얘기죠. 왜 경주해요? 늑대인지 여우인지가 늦게 오는 녀석을 잡아먹겠다고 해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기려고 경주 하는 얘기죠. 근데 또 다른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어요. 토끼와 거북이가 손잡고 가는 얘기죠. 산은 토끼가 잘 올라가니 토끼가 거북이를 업고 오르고, 물을 건널 때는 거북이가 수영을 잘하니까 토끼를 업고 건너고 해서 함께 손잡고 똑 같이 들어오니까 늑대인지 여우인지가 황당해서 도망갔다는 얘기에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팔꿈치 사회라면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 손을 잡고 들어온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아름다운 협동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틀을 깨는 또 다른 방법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어떤 학교를 졸업한 것도 저는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일류 대학을 가야하고 일류 직장을 가야한다고 어른들이 굉장히 많이 이야기 하세요. 근데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옥죄는 굉장히 강한 감옥이 될 수 있어요. 그럼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저는 이걸 강조합니다. 일류 인생을 살자. 왜? 일류 대학 나오고 일류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인생은 꼴찌 인생 비슷하거나 금방 쓰러져서 망해가는 경우가 많아요. 좀 오래 살더라도 세상을 망가뜨리면서 자기 혼자 잘났다고 그래요. 최근에 우리 사회를 보면 그렇잖아요? 별로 능력도 없고, 철학도 없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끌고 가니까 지금 국민들이 세월호에 타고 고통을 받고 있죠. 죽은 아이들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어른과 아이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인류 대학이나 인류 직장이 아니라 인류 인생을 살아야 해요.
그럼 어떻게 인류 인생을 사는가? 첫 번째는 내 꿈을 가져야 해요. 그 꿈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내 끼에 충실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하고, 내 진심의 마음이 가는 것을 잡아서 해야 해요. 두 번째는 그 꿈에 걸맞은 실력을 쌓기 위해서 강원도로, 제주도로, 조치원으로 국내외를 망론하고 쫓아다닐 필요가 있어요. 실력을 쌓기 위해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야 해요. 실력을 쌓은 다음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나라를 망가뜨리면 안 되잖아요. 저 높은 곳에 있는 도둑놈 집단들처럼 살지 말고요. 세 번째가 사회 헌신이에요. 내가 배우고 느끼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같이 공유하는 거죠. 배워서 남 주자는 거예요. 이렇게 꿈을 발견하고 실력을 쌓고 사회에 헌신하면서 살면 일류 인생이 되고, 여기 있는 모든 친구들이 일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 질문
강수돌
작가님은 고교생 때 경쟁사회 속에서 어떻게 생활 하셨나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놀았어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동아리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인생을 읽고 토론하고 그랬어요. 그때 목표는 어떤 대학을 가는 게 목표였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갔는데 대학에 가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과연 보편적인 삶일까, 아니면 극소수만을 위한 삶일까? 그 생각을 하면서부터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대학가서 배웠던 공부의 내용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잘 갈구어서 돈을 많이 벌어볼까?’ 이런 것 들을 가르쳐 줬어요.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게 아니야. 이것은 ‘일부만을 위한 공부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주는 연구자가 되어야겠다고 맘을 먹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국내에서 공부하는 게 부족해서 독일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3년 동안 공부해서 독일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 30년을 공부한 결과 여러분을 만나러 이 자리에 오게 되었어요.
경쟁 없는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유토피아나 있을 법한 얘기 같아서요.
쉽지 않다는 것은 저도 알죠. 몰라서, 철이 없어서 팔꿈치 사회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조금만 역사의 필름을 돌려보자고요. 여러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가 시골에 살았을 때 농사지으면서 품앗이와 두레,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고 이웃사촌으로 살아간 시절이 있었죠. 그 때는 지금처럼 팔꿈치로 밀치는 게 아니었어요. 오늘날은 집안의 보안을 위해 세콤을 설치하잖아요. 예전에는 세콤 없었어요. “여보시오, 우리 장날 구경 갔다 오니까 좀 봐 주세요.”, “예, 봐 드릴게요.” 그게 이웃사촌 간에 있었던 세콤 시스템이에요. 오늘날에는 돈 주고 해결하죠. 오늘날에는 온갖 의료보험, 생명보험 각종 보험이 돈벌이 사회에 편입되어있죠. 예전에는 마을에 누가 아프면 마을 사람들이 약초뿌리를 캐와 “이걸 달여 먹으면 나을 거예요.” 했죠. 이웃 사람들이 공동체로 다 풀어냈죠. 팔꿈치 사회 이전에 있었던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는 분은 인도 북부에 있는 라가티 마을을 방문하고, “우리의 미래가 오래전부터 있었네”라고 하면서 『오래된 미래』라는 책도 썼잖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분명히 경쟁사회 맞아요. 그것도 피 비린내 나는 경쟁사회에요. 근데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바람직한 것인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안 행복하잖아요. 원래 공부는 재미있어야 되는 거예요. 시도 쓰고, 내가 새로 알았던 지식에 대해서, 이슬람 문화를 몰랐다가 새로 알거나, 건축이나 집에 관한 것, 소설 등 각종 문학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새로운 깨우침을 얻고, 그래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인생을 마무리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배우는 과정이 진정한 공부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의 학교 시스템에서는 주로 줄 세우기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틀들이 강하다고 해서 진리인 것이냐? 일제가 강하다고 진리였나요? 제국주의는 진리가 아니잖아요.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 중심의 전쟁에 대해 ‘강한자가 진리인가?’라고 물어볼 수 있죠. 아닐 수 있잖아요.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 비로소 바른 세상은 가능하다. 바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 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일훈
사물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데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 갈 때 오른쪽 인도로 갔잖아요. 그럼 집에 올 때는 반대편으로 왔어요. 왜냐면 내가 걸어간 방향의 인도가 지루했어요. 그래서 학교 지각도 많이 했어요. 어떤 날은 이 길로 가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와서 가기도 하고, 버스도 두 정거장 걸어가서 탔다가 세 정거장 걸어가서 타기도 하고, 처음부터 걷기도 하고, 좌우지간 뭔가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그 길은 항상 똑같은 길이죠. 집과 학교는 정해져 있잖아요. 내가 집과 학교를 바꿀 수 없으니 오고 가는 길이라도 바꿔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 건축과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멋진 디자인이 실려 있는 잡지는 보지마라. 아무리 봐도 그렇게는 안 된다. 왜냐면 거긴 세계적인 작품이 실려 있잖아. 하지만 당신은 아직 동네 건축가도 못됐는데 왜 자꾸 그걸 보냐? 그런 것 보지 말고 내 말을 한 번 들어 보라.”고 했어요.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상상력을 불어내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 글쓰기에요. 글쓰기와 디자인의 속성이 비슷하거든요. 발상을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제가 권한 방법은 이거였어요. 매일 보이는 세상 일, 사물 중에 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하루에 한 가지 씩만 생각하고 노트에 적어라. 당신 마음에 안 드는 것, 불편한 것, 고치고 싶은 것, 다르게 생각한 것을 하루에 한 가지 씩만 적어라. 1년이면 365개가 모일 거고, 4년 동안 그 기록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금방 훌륭한 건축가가 될 수 있을 거다. 근데 제가 시도한 방법에 의하면 100가지를 넘지 않아요. 단순한 일상에서요. 전 그 백가지 대학시절에 고민한 그 백가지 바꾸고 싶었던 걸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들 궁금하고, 불편하고,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은 늘 의심하고 적으세요. 그리고 늘 생각하세요. 권합니다. 그럼 사물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건축가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 인가요?
많은 건축가들이 저하고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 멋지더군요.”라고 할 때 기분 좋게
느끼는 건축가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럴 때 이 사람‘이 나를 야유하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 건물이 아주 디자인이 좋더군요.”라고 할 때도 저는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칭찬인지 구별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이런 찬사도 있어요. “선생님 작품에 가봤어요. 궁금했거든요. 정말 건축이 예술이더군요.” 그런데 건축은 원래 예술이에요. 선생님한테 “혹시 선생님이세요?”라고 한다면 얼마나 불쾌하겠어요. 건축이 원래 예술인데. 건축가로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그 집의 주인이 저를 칭찬할 때, 아주 고맙다고 할 때가 아니에요. 내가 나쁜 건물을 설계해 줬어도 그 집 주인은 그 사람 한 사람만은 나에게 고마워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의 직능이 보편적으로 적용된 게 아닐 수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고문하는 시설을 설계한 건축가도 있잖아요. 고문하는 사람들은 건축가가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효율적인 고문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보람 있는 것은 개인화 시켜서 말할 수 없어요.
제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그 집의 소유와 관계없는 동네 사람들이 “그 건축물이 들어서서 주변이 좋아졌어요.”라고 할 때에요. 또는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설계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쓰면서 좋아할 때, 그 때가 가장 건축가로서 보람을 느끼죠.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그 무대는 인천 만석동이죠. 가난한 동네입니다. 거기 있는 기찻길 옆 공부방이 제 건축 작업이거든요. 저는 그 가난한 동네에서 제가 건축한 공부방이 유익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홍성군에 있는 풀무학교 아시나요? 그 학교는 학교도서관을 동네에다 지었습니다. 학교도서관을 학교에다 지으면 학생들만 쓰잖아요. 그런데 그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학교 기념 도서관을 동네 한가운데다 짓자고 결정하고 저를 찾아왔어요. 일을 부탁하기에 제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학교 도서관이 지역으로 나간다면 도서관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공부 안하는 사람이 올 수 있는 도서관이 더 좋겠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어슬렁거려도 되는, 외부의 바람은 통하지만 눈비를 안 맞는 회랑을 크게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그 회랑에서 그림 전시회, 할머니 장터, 마을 잔치 이런 게 열리는 거예요. 책과 관계없이. 왜? 책을 읽는 사람도 동네 사람이고, 동네 행사에 참여한 사람도 동네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책이 동네로 들어간 거예요. 그런 큰 프로그램을 소화한 그 도서관(밝맑도서관)을 저와 관계없는 사람이 다녀와서 “동네에 유익하고 쓰이고 있더군요.” 라고 말할 때 굉장히 보람을 느낍니다.
이옥수
성장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챕터 별로 시점을 다르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틀을 깨자는 취지로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제 숙소로 찾아와 주세요.
이희수
이슬람에 대해 깊이 있게 많이 알고 계신데 혹시 이슬람 신자신가요?
저는 가톨릭 순교자 집안의 장손으로, 우리 집안에서는 순교자가 많이 나왔고, 최초로 18세기에 천주교인이 된 집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추기경이나 주교들로 임명 되면 우리집에 항상 인사를 오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슬람 지역에 가면 ‘자밀’ 이라는 이슬람 이름을 씁니다. 이슬람 지역에 가면 하루 5번씩 철저히 예배보고, 단식기간이 되면 철저히 단식합니다.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회에 간 건데 내가 가진 종교적 도그마와 선입관, 고정관념으로 거리를 두고 본다면 그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없고, 그 사람들도 결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남을 이해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틀에 박힌 종교적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슬람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모태 신앙인 가톨릭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쓴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양대에 들어오면 제가 필독서로 읽히는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우리 속에는 다중적인 정체성이 있는데, 너는 기독교, 너는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서로가 원수처럼 죽고 죽이는 것이 오늘날 모든 세상의 문제이거든요. 자기 신앙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나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슬람 국가에 가면 아주 훌륭한 이슬람 신자이고요,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원래의 종교에 충실하기도 한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 지역에 건축회사나 건설회사가 많이 진출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도와줬는데 그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국사람 좋아합니다. <겨울연가>가 아랍을 두 바퀴 돌았고, 이란에서는 <대장금>의 6개월 평균시청률이 90%를 상회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미친 듯이 한국 물건만 골라 팔아주고, 한국 문화에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적대적 이해당사자가 만들어 놓은 생각과 고정관념으로 우리가 이슬람을 버리고 간다면, 과거의 테러 지원국을 버리고 간다면 그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 수는 없겠죠. 테러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의 무리들은 과감하게 혼내줌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90%가 넘는 건강한 친구들은 함께 끌어안아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그런 균형 감각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