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우리의 과제는 동시에 둘을 함께 수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문체혁명. 아까 말씀드린대로 세 살 배기도 알아듣고, 시골 마을에 까막눈인 어르신들도 알아들을 말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참된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난다.
그런데 우리는 문체혁명만 가지고는 안 되요. 동시에 문화혁명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기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문화 밖에는. 문화라는 평화적 무기 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해요. 제도적인, 폭력적인 무기들은 다 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문화혁명을 해야 하는데, 문화혁명이 좋은 것은 뭐냐면 춤추고 노래하고, 같이 어울리고 즐기는거죠? 그게 문화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손발 놀린다, 부지런히 몸 놀린다, 그런 말이 있죠? 그래서 손발을 놀게 하고, 몸을 놀게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부지런히 손발 놀리고 부지런히 몸 놀리고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요?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 되요. 그래서 부지런히 손발 놀리고 몸 놀려가지고 우리가 먹을거 입을거 잠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그렇게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한테 남은 유일한 길은 현재 문화혁명입니다.
제가 문화혁명에 대해서 조금 부연을 하겠습니다. 1966년에 중국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동원해가지고 대대적인 문화혁명을 일으키죠? 그래서 중학교부터 전부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15, 16살 이상 된 학생들을 전부 시골로 쫓아보내서 농사를 짓게 하거나 작은 공작소에서 일을 하도록 만들어요. 어떤 사람들은 길게는 10년, 4년은 아주 짧고, 6~7년, 10년 가까이 다 거기 시골에서 농부들과 땀 흘려서 일하고, 작은 공작소에서 일을 합니다. 지금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이 삼권을 다 장악했죠? 군사권 장악하고, 정치·경제 다 장악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1969년에 한 17살 됐을 거에요. 시골로 갑니다. 하방됩니다. 아버지가 꽤 높은 벼슬을 했는데도 하방을 합니다. 그래서 시골에 7년을 있으면서 공산당원이 되려고 다섯 번을 입당원서를 냈는데, 다섯 번째인가 당원이 되요. 그리고 중국과 소련이 국경 분쟁이 있어가지고 긴장관계가 있을 때, 그 때 청화대학교 화학과인가 화공과인가를 다니다가 군대에 지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련군과 대치하는데 같이 앞장을 서요. 문화혁명 세대, 농민들 틈에서, 노동자들 틈에서 같이 땀 흘려 일하던 세대가 지금 중국 공산당의 고위층과 중견층을 딱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회주의 시장 경제라는 괴물 경제를 움직이고, 빈부 격차가 그렇게 심해지고 문제가 많은데도, 60년 이상 그 괴물 경제를 유지하면서 미국하고 맞짱 뜨자고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도시에서 머리만 굴리고 외국 문물 받아들여서 가짜 문화를 진짜 문화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식량자급률이 전에 25%였다가 22~23%로 지금 떨어져있습니다. 잡곡 자급률은 5%도 안 됩니다. 이제 보리밥 먹는 사람 없습니다. 옛날 저 어렸을 때는 쌀밥 어디 먹어봤어요? 명절 때나 먹었는데. 전부 보리밥 먹었는데, 요즘에는 보리밥 먹으라고 하면 기절할 거에요. 근데 식량 자급 없이, 자주 독립 국가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기로는 맞짱 뜰 수 있어요. 중국 공산당이 당시의 장개석 정권하고 싸울 때, 미국에서 최신무기를 대줘서 무기는 장개석 정권이 엄청나게 더 많았어요. 그런데도 맞짱 떠서 이겼거든요? 총칼로 위협을 하면 그건 견딜 수 있어요. 그렇지만 식량을 무기로 삼아가지고 ‘너 굶을래, 우리말 들을래?’ 하게 되면 자기는 굶겠다고 단식 투쟁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노부모가 있고 자식들이 있는데 못 버팁니다. 굴복할 수밖에 없어요. 식량무기가 가장 큰 무기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전에 김대중 정권 때도 경제 정책을 담당하고 자문을 했었던 분하고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앞으로 어떤 민주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우리 아이들, 중학교 이상 아이들 반 이상을 시골로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큰 위기에 부딪힌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안 그렇대요. 미국은 농민이 전체 인구의 2%도 안 되는데, 먹고 살고 식량 수출까지 한다는 겁니다. 근데 지금 미국 농촌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리고 땅이 얼마만큼 삽시간에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도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미국의 제 51준가, 52주가 되가지고 미국으로부터 계속 식량을 갖다 먹으면 된단 말이냐. 북녘이 왜 저렇게 식량난에 부딪힙니까? 식량을 자급한다고 산에 나무 다 베고, 산꼭대기까지 옥수수를 심어요, 콩을 심어요. 다른 것을 심고. 그러니까 한번 장마가 지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지는 거지요. 남녘과 북녘이 저 사람들이 이렇게 38선을 갈라놓지 않았다면, 힘센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갈라놓고 찢어놓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생명 자원의 측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어요. 삼면이 바다고, 70%가 산지고, 식량 자급을 전통적으로 해왔고. 다시 이 생명자원들을 이용해가지고 우리가 일어서야 합니다. 더 이상 힘센 나라들의 부추김에 따라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인가요? 소련이 우리의 벗이에요? 중국이 우리의 벗이에요? 미국이 일본이 우리의 벗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식민화시키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장본인들입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미국에 붙고, 어떤 사람은 중국에 붙고, 어떤 사람은 소련에 붙고, 어떤 사람은 일본에 붙어요? 그래서 형제들의 가슴에 총과 칼을 들이대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하는 것은 겁 없이 하는 거죠. (일동 웃음) 자연사인 나이이기 때문에(일동 웃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마세요.
어쨌든 중국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심지어 베트남 같은 나라까지 전에는 식량 수출국이었어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였고. 근데 지금 인도와 중국이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로 국가를 발전시킨다고 방향을 돌린 이래로 전 세계의 식량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어요. 앞으로 식량 값은 다락처럼 오를 거고 그것은 무기가 될 겁니다. 근데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머리만 굴리라고 계속 해서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서 딱딱한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느라고 강시와 좀비가 되어있어요.
변산 공동체에서 실제로 우리 아이들, 자라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에 3시간만 학과 공부를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탈춤, 풍물, 택견, 해동 검도 같은 것도 배우고, 텃밭 가꾸기 하고 바다 살림, 산 살림도 익힙니다. 그리고 목공, 천연 염색, 그리고 그릇 빗기 다 익힙니다. 그 아이들이 꼭 자기가 대학 가고 싶다 그러면,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이 워낙 다르니까, 자기가 제도 교육 과정을 따라 1년만 공부하게 되면 다 원하는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학부모들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녀요. 3시간 이내로 머리 쓰게 하면 그 아이 전부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간다. 그렇지만 4시간 이상 머리를 쓰게 하면 아무도 못 간다. (일동 웃음) 그러니까 놀려라, 놀되 뒹굴거리고 놀게 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몸 놀리고 손발 놀리면서 생명의 시간을 자기의 삶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도록 해라.
상생이라고 그러죠? 서로 산다는 말. 제가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건데요, 곡식들과 채소와 우리 농사짓는 사람들은 서로 상생 관계입니다. 일반 야생초들과는 달라서 사람 손을 탄 곡식이나 남새의 씨앗, 채소의 씨앗들은 약합니다. 그대로 씨 뿌려놓으면 훨씬 야생풀이 먼저 자라가지고 영양분 다 빨아 먹어버리고 햇볕 가려버리기 때문에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적당하게 씨 뿌리고, 김 매주고, 거두고, 그걸 먹고, 그 가운데서 일부는 남겨서 이듬해 씨를 뿌립니다. 곡식 씨앗은요, 채소 씨앗도 그렇고, 한해만 묵혀버려도 발아율이, 싹 트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버립니다. 해마다 거둬서 다시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그 곡식이나 채소의 씨앗도 살아남고 사람도 거기에서 거두어서 남는 걸로 살아남고. 그래서 그렇게 상생관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줘야합니다. 우리는 못 배웠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힘을 길러줄려면. 그리고 농사일은 혼자 못합니다. 여럿이 도와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도울 수 있는 힘을 길러줄려면 우리 아이들 전부 어떻게 해야 해요? 도시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 시골로 쫓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생적인 문화를 시골에서 풍물과 탈춤과 그 밖에 일과 놀이에서 생겨나는 자생적인 문화를 지키고 또 새로 만들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엄두가 안나죠? 근데 제 나이 쉰 세 살에 시골 농사꾼이 됐어요. 우리 아버지가 까막눈 농사꾼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뜻을 세우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일을 거들게 했는데, 그 교육효과가 40년 넘어서 나타났어요. 교육의 효과라는 건 때로 그렇게 더디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들어가는 것이 아이들한테도 행복하고 부모들한테도 행복합니다. 시골에서 살아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제 얼굴 불행해보입니까? 행복해보이죠? 그리고 70살 늙은이같이 안보이죠? 제가 술을 잘 마십니다. 막걸리를. 그래도 절제를 합니다. 1년에 한 사나흘은 안 마셔요. (일동 웃음) 여러분이 변산에 농사 거들러 오시면, 3박 4일 이상이고, 숙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하고 오셔야합니다. 근데 오시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몸이 뚱뚱하신 분들은 하루에 다섯 끼 먹으면서도 날씬해질 수 있습니다. 아침, 오전참, 점심, 저녁참, 저녁 다섯 끼 먹습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막걸리도 마십니다. 그러면서도 날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망하면 나중에 다이어트 공동체로 바꾸자고 말을 합니다. (일동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