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 매우 기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고 저를 초청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이런 강연 자리에 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는 마음으로 해보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관찰하고 그것을 놀이터에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바로 ‘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은 놀 공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아이들을 잘 알아. 더는 들을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나도 한때는 아이였으니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우리의 어렸을 때 기억은 윤색되고 퇴색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못합니다. 저도 좋은 아빠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다른 아빠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잘 관찰하고 그것을 자기 아이를 돌보는 데 참고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요즘 아이들이 과거의 우리와 달리 아주 좋지 않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변하지 않는 그 자체로 있습니다. 변한 것은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과 이 세상 그리고 어른들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컴퓨터를 가지고 놉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바뀐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대로입니다. 아이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자기만의 길을 찾아서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이런저런 것을 지시하면 아이들은 도대체 ‘왜?’라고 되묻습니다. 우리는 항상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고 뭐든지 막으려고 애씁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왜?’라고 항상 되묻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놀 장소를 스스로 잘 찾습니다. 어른들이 놀았으면 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놀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도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놀 때 가장 쉬운 길로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노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항상 좀 더 어렵게 놀 방법을 선택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담장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려 하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 놀이의 남다른 특성입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어떤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제 했던 놀이를 오늘 다시 하지 않고 오늘 했던 놀이를 내일 다시 하지 않으면서 항상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로부터 많이 배워야 합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결코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놀이터가 없어도 아이들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언제든 무엇을 가지고든 놉니다.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디서든 어떻게든 언제든 무엇이든 가지고 노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기서 놀지 마! 저기서 놀아! 놀이터에 가서 놀아!” 놀이터는 이처럼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놀이터가 다들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요? 어떤 연령대 아이들이 그곳을 필요로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어른들이 만들어준 놀이터에 아이들은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놀이터에 어떤 연령대의 아이들을 놀게 할까가 아니라 놀이터에 아이들만의 비밀스러운 장소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가입니다. 놀이터에 놀고 있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입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는 것은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놀면서 배운다는 것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놀이터전문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놀이터에 관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40년 동안 2만 개 가까운 어린이 놀이터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인지 아직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떻게 만들면 안 되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놀이터를 계속 만들어 가면서 배우는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입니다. 놀이터를 잘못 만들었다고 그것이 죄악이거나 그른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잘 만들었다고 믿었던 놀이터도 지금 다시 보면 안전문제와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한 요소가 있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무엇이 가장 좋은 놀이터인지 모릅니다.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잘못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 수 있을까요. 저 아이들은 불량한 아이들일까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놀고 있는 것을 안전 전문가들이 본다면 정말 위험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기에 아이들이 노는 곳이 매우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슬라이드를 보여 드리는 까닭은 아이들이 위험을 어떻게 무릅쓰는지 그것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 뒤쪽에는 제가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아주 멋진 놀이터가 있음에도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지 않고 여기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한테 제가 만든 놀이터보다 이곳에 특별한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가장 큰 까닭은 아이들이 여기서 다른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좋은 놀이터가 있어도 여기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여기로 오고 그리고 여기서 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아이들은 제가 만든 놀이터보다 이 놀이터처럼 보이지 않은 곳에 무언가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놀이터란 건축적인 완성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아이들끼리 만나 교류하며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예입니다.
도대체 놀이터란 무엇이고 나아가 좋은 놀이터란 무엇일까요. 놀이기구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놀이기구는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놀이기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저는 놀이기구에 대한 생각이 여러분과 다릅니다. 놀이기구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들을 위한 것입니다. 좋은 놀이기구가 있는 곳이 좋은 놀이터가 아니란 것은 분명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놀이기구의 기능에 순응해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놀이규칙을 만들어서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놉니다.
놀이터를 만들 때 어떤 아이들, 또는 어떤 연령대의 아이들이 왔으면 하고 만듭니까. 또 어떤 아이들이 오지 않게끔 합니까. 나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오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오면 항상 이렇게 외칩니다. “조심해! 그거 하지 마! 이렇게 하라니까!” 이렇게 명령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지 못합니다.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을 놀이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대상, 장난감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항상 간섭하고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놀이를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부모들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과 만나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높이 올라갔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조금 내려오고 들어보았더니 무거우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러다가 떨어질라, 넘어질라 잔소리를 쉼 없이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을 놀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어른도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떨어져 봐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돌무더기 가까이 놀면서 돌은 날카롭고 돌조각이 때론 튈 수 있음을 스스로 배웁니다.
저는 전세계의 많은 놀이터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하는 유일한 일은 아이들 놀이를 관찰하는 일입니다. 그곳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감시하고 지시하는 것을 봅니다. 엄마는 열심히 그네를 밀어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엄마가 놀이터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여길 디뎌라 저길 디뎌라 일일이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놀이기구를 놀이터에 설치합니까?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해서 자신의 방법을 시험하고 탐험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놀이터에 와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많이 할수록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가 되어 위험에 아이들을 빠뜨립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이건 너무 무거워, 이건 너무 높아, 여기서 떨어질지 몰라 등등을 아이 스스로 판단해서 경험해야 합니다. 놀이의 위험 정도, 어려운 정도는 다 다릅니다. 어떤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자기 등 뒤에서 보고 있거나 하면 뒤에서 나를 잘 받쳐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행동보다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떨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좀 무리한 놀이일지라도 스스로 판단해서 노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이들은 기어오르는 놀이기구를 사용할 때도 스스로 판단과 결정을 통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결정해야 합니다. 놀이기구란 것은 대부분 어리석고 바보 같은 물건들입니다.
놀이터의 안전에 관해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안전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놀이기구는 항상 안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독일에서도 안전은 무척 중요한데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오히려 위험하고 오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무엇이 왜 위험한지를 정확히 알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하면 위험한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전검사는 정말 중요하지만 창의성을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창의적인 일이고, 즉흥적인 일이고, 실수도 하고, 실험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놀 수 있을 만큼 놀이기구는 튼튼해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안산의 놀이터 두 곳을 가보았습니다. 한 곳은 놀이기구가 부서져 있었습니다. 누가 이것을 망가뜨렸을까요. 아이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절대 놀이기구를 파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고장 낸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나는 왼손잡이에다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핸디캡이 오히려 평생을 놀이터디자인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하는 강연이 걱정스럽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저의 원고란 것은 다른 것은 없고 보시다시피 그림뿐입니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어떻다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스스로가 장애인인 줄 모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항상 같은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남다른 개성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눈여겨보고 그것에 맞는 것들을 아이들이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뭐든지 부수고 망가뜨린다고 아이들을 나무랍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파괴하지 않습니다.
여기 차도 아이들이 파괴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차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이 차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제공하는지 보십시오. 아이들이 얼마나 차 안에서 즐겁게 놀고 있습니까. 이렇게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건축가나 놀이터 디자이너는 엉뚱하게도 이런 모형 자동차를 만들어 놀이터에 내놓습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여기 만들어놓은 차는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차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쓸 만한 부품들은 어른들이 다 뜯어가고 뼈대만 남은 진짜 차를 좋아하지 이런 나무로 만들어진 차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거짓을 안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차가 아닙니다. 이런 모형은 차로서 기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평생 이런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은 나무로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나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놀이기구에 따라 고무도 쓸 수 있고 철도 쓸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놀이기구를 만들 때 “어! 이것은 정말 로맨틱하고 좋아 보이는데! 맞아 아이들한테는 이런 로맨틱한 장난감을 줘야 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맨틱하다는 말은 아주 잘못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줄 때는 항상 실제적인 것, 사실감이 있는 것, 살아있는 생생한 것을 만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안전에 대한 저의 생각은 아이들을 항상 주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것이 아이들 안전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담장이 높은 놀이터가 있습니다. 부모는 밖에서 안에 있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자기 마음껏 놉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엄마들은 항상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아이들을 감시하는 데 방해되는 것들이 있다면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늘 주시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누군가가 주시하고 있을 때 불편하고 놀이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볼 필요는 없지만 들을 필요는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어떤 위험에 빠져 소리쳤을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충분합니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때 부모들은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곳은 아주 좁은 공간에 만든 놀이기구입니다. 흔히 근사한 놀이기구가 있어야 좋은 놀이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놀이터는 언덕 아래에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 속에서 소리 듣고 냄새 맡는 등 5감을 느낍니다. 나아가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낄 수도 있는 좋은 놀이터입니다. 이 안에 들어가면 뭔가 숨은 듯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고 흙과 풀 냄새가 납니다.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저는 놀이기구가 없는 놀이터에 대해 큰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때 거리는 전쟁의 잔해가 널린 매우 어수선하고 위험한 모습이었지만 저는 생애 가장 좋은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은 고대 로마 유적 형태의 놀이터인데 제가 만든 놀이터 가운데 가장 좋은 놀이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들은 이런 놀이터를 아주 싫어합니다. 여기 말고 저기 좋은 놀이터에 가서 놀자고 아이를 끌고 갑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여기가 좋아 여기서 놀다 가겠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한국 놀이터에 가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날씨는 더운데 놀이기구는 왜 모두 플라스틱입니까? 아이들이 어떻게 놀 수 있을까요? 햇볕이 내리쬐는 놀이터에 그늘은 왜 없지요? 어느 곳이나 놀이터가 똑같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놀이터 중에 잘 못 만들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중앙에 비슷비슷한 놀이기구 하나가 떡하니 들어서 있더군요. 아이들보다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일 뿐입니다. 한국의 놀이터는 어리석음 그 자체였습니다. 놀이터와 놀이기구를 만들 때는 철저히 어린이의 정서와 시선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현재 그렇게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온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 오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유럽은 이천 년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겨우 이백 년의 역사만 있는 나랍니다. 중세 성을 모방한 디즈니Disney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터를 한국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왜 한국은 미국의 실패한 거지 같은 놀이터를 베껴와 한국의 놀이터 본보기로 삼을까요.
놀이터를 만들 때 남이 만든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든 성을 본뜬 모양의 놀이터나 영국에서 만든 피터팬 배 같은 모양의 놀이터는 그냥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놓은 것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생각에서 나오는 놀이와 놀이터가 중요합니다. 어떤 특정 형태나 모양이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디로 기어오르는지, 어디에 많이 숨는지, 이런 것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데코레이션 놀이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놀고 싶은 대로 몸을 움직여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두고 아이들로 하여금 ‘아! 우리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생기도록 놀이터를 만들어주세요. 아이들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놀이터에서 만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한국은 농가나 탑, 절과 같은 훌륭한 건축 문화가 있는데 왜 어리석은 플라스틱 뭉치에 불과한 외국의 놀이터를 모방하여 놀이터를 만드나요. 이처럼 한국에 플라스틱 덩어리 놀이터만 넘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나라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서울 여러 곳에서 빼어난 디자인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이터는 왜 하나같이 똑같은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 문화와 아이의 눈으로 놀이터를 만들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이 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애쓰는 것 아닌가요. 강하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한국 아이들은 자신의 주체성에 맞는 것을 보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높낮이가 일정한 넓은 열린 공간이 있는 놀이터와 놀이기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놀이기구에 집착합니다. 놀이터 한가운데 놀이기구를 멋지게 만들어 떡 하니 꽂아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놀이기구가 가운데 우뚝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놀이기구도 좋습니다. 놀이터에 놀이기구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흔히 놀이터를 떠올리면 놀이기구를 생각하지만 저는 거꾸로 놀이기구를 불가피하게 만들어야 할 경우는 놀이기구를 놀이기구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애씁니다. 공간만 주면 그것으로 놀이터는 충분합니다. 좋은 색채가 있으면 더 좋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놀이기구보다는 자연 소재로 만든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더욱 활발하게 자신들의 놀이를 만들고 마음껏 뛰놉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으로 놀이공간을 만들어주어도 아래 사진처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곳에서 놉니다. 큰 잔디밭을 만들어 아이들이 그 안에서 맘껏 뛰놀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해가 지나고 다시 가보니 아이들은 가운데 잔디밭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잔디밭을 둘러싼 울퉁불퉁한 언덕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뛰어다니고 눈이 오면 미끄럼을 타고 소리 지르며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놀이공간을 창조해가고 있었습니다. 미끄럼틀, 그네와 같은 것은 엄밀히 말해서 놀이기구가 아닙니다. 이런 것이 없는 놀이터를 보면 아이들 엄마들은 놀이기구는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놀이기구는 놀이터에 필요 없습니다. 똑같은 형태의 놀이기구를 아이들은 지루해하고 싫어합니다.
플라스틱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도 첫 번째 놀이기구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 놀이기구를 설치하더라도 조금씩 다 다른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돌 같은 것입니다. 이런 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이 안전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재질에 맞게 제각각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멘트로 만든 난로인데 아이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집입니다. 매우 안전한 놀이기구입니다. 다음 놀이터 사진 또한 제가 이탈리아에 만든 콘크리트로 놀이기구입니다. 비슷하게 보여도 다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놀이기구는 어떤 영원성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아주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약 20년 전부터 놀이탑을 만들었습니다. 이 탑은 다양한 놀이기능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대로 올라가 놀 수 있고, 큰 아이들은 큰 아이들대로 자기 나름의 놀이를 만들어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가 만든 이 탑을 다른 많은 회사와 공장들이 모방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왜 너희 것을 만들지 않고 모방하느냐고 했더니 자신들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놀이기구이든지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하고 다르게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가 봅니다.
이 놀이기구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놀이기구입니다. 휠체어를 탄 아이도 즐겁게 높은 곳에 오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정말 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아주 행복하게 놀았습니다. 다음 놀이터는 아이들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터인데 엄마들은 밖에서 볼 수 없게 했습니다. 이것은 영국에 있는 다이애나 황태자비 기념 공원에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이것은 배 모형입니다. 그런데 그냥 시각적으로 보기만 하는 배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놀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배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나무 위에 오두막집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것은 너무 무겁고 위험하고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저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집이 있습니다.
놀이터를 만들 때 지나치게 친환경적인 사고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연에 가깝게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그런 것만으로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은 세련되고 테크니컬한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려고 하루에 만 명 정도씩 숲으로 향하게 한다면 그 숲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는 테크닉이 발달할 것입니다. 테크닉을 활용한 놀이기구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뉴욕 과학박물관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테크닉을 포함한 놀이기구도 만나야 하고 자연 속 놀이터도 만나야 합니다.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자연도 만나게 해야 하지만 실제 삶과 관련 있는 기술과 과학도 만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독일도 아이가 하나뿐인 집이 많은데 놀이터에 가야 친구를 만나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이터를 만들 때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합니다. 나무는 좋고 플라스틱은 나쁘고 철은 좋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저도 실내놀이터를 만들 때는 철보다는 나무를 더 많이 씁니다. 무엇을 사용하든지 서로 다른 것들을 잘 어울려 아이들을 위한 것들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연과 인공적인 것이 놀이터 안에 잘 어울릴 때 좋은 놀이터입니다. 좋은 놀이터란 서로 스며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비밀스러운 곳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법을 깨우치는 데 선생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것은 물을 가지고 노는 놀이기구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가지 놀이방법으로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놀면서 상호작용하고 교감하고 사회화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에 이 놀이기구의 의미가 있습니다.
펌프질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날씨가 매우 더운 곳입니다. 저쪽에서 한 아이가 펌프질을 힘껏 하면 4~5m 떨어진 곳에서 물이 뿜어 나오는데 그쪽에서 다른 아이들이 놉니다. 이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적 관계를 합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힘센 아이가 놀이의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고루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아이들이 서로 역할과 힘을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다툼이 심한 곳이었는데 이 놀이기구가 그런 것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힘이 약한 아이와 강한 아이가 함께 놀 때 서로 떨어져서도 서로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놀이기구를 만든 원리입니다. 힘센 아이는 펌프질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힘을 마음껏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놀이기구도 만들고 일도 하고 여러 가지 것을 합니다만 자연적인 힘과 원리에 충실해 놀이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특히 생태적인 관점을 놀이터와 놀이기구 만드는 원리로 삼습니다.
이것은 콘크리트로 미로와 거울을 이용해 만든 놀이기구인데 아이들은 여기서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로 놀이터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미로에 빠져 불안을 느끼기보다는 이곳 어딘가에 출구가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마한테 감시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놀이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러한 것을 충족시키는 놀이기구입니다. 폐쇄된 공간은 아이들에게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된 공간이 거울을 통해 개방적으로 극복된 놀이기구입니다. 이것은 플라스틱과 고무로 만든 놀이기구입니다. 이러한 재질들도 사용하기에 따라 매우 이로운 놀이기구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폐쇄된 곳에서도 아이들이 재미난 놀이를 찾아낼 수 있게 고려한 놀이기구입니다.
저는 또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기구가 필요한지도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저도 장애아를 위한 놀이기구를 만들기는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장애 전용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보통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놀 수 있어야 합니다. 휠체어를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시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공 놀이터는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도 목발을 짚고 올라갈 수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아이들의 신체적 특징은 달라도 그 아이들의 놀고 싶은 마음은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이 놀이기구는 휠체어를 탄 장애 아이들이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놀이기구입니다.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배 위에 올라 물 위 체험을 하는 것은 장애 아이에게 아주 남다른 경험을 줍니다. 장애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함께 놉니다. 장애아들을 다른 세상으로 옮기려고 하지 말고 우리 사는 세상으로 데려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플라스틱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에 만든 놀이기구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이 회전목마에 장애아를 가진 엄마가 아이를 태웠을 때 무척 좋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최고의 재료는 플라스틱입니다. 이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놀이기구인데 두드리면서 소리의 반향을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이것을 쇠로 만들었다면 아이들은 아마 듣기 싫어했을 것입니다.
저는 학교 운동장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의 학교 운동장은 놀기에 알맞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곳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학교 운동장입니다. 이 학교는 꽤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운동장을 새롭게 바꾸어주었더니 아이들은 여기서 사회적 관계를 배웠습니다. 이것은 학교 구석에 설치한 아이들이 만들고 칠한 의자입니다. 이곳은 어른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위 사진처럼 과거에는 너무 외지고 으슥해서 아이들을 가지 못하게 막았던 공간을 이렇게 만들었더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이런 구석진 곳이 아이들한테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을 나누는 데 아주 쓸모가 있습니다. 저는 학교 운동장이 교도소 마당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훤히 열린 공간이라 아이들이 숨을 곳이 없어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만든 이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놀다가 몸에 묻은 흙이나 먼지를 떨어낼 수 있는 자동 세차기의 모양을 한 놀이기구입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다음은 공간이 좁은 곳에 알맞은 탑 모양의 미끄럼틀입니다. 다음은 여러 가지 놀이 기능을 모은 복합놀이기구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가지 놀이적 기능과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테크닉이 결합한 놀이기구입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여러 놀이를 만들어 놉니다. 다음은 가로 6m, 세로 12m의 놀이기구인데 그 안에 여러 놀이기능을 품고 있습니다. 넓고 큰 놀이기구나 놀이터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놀이기구가 꼭 땅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에 맞게 허공에도 있고 다양한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놀이터는 엄마가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 소리는 들을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좋은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제가 놀이기구를 만드는 원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감과 육감을 이용하여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놀이기구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진은 10층 높이나 되는 아주 큰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를 짓는 데는 테크닉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꼭 친환경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모양의 박물관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필요한 것은 놀이 환경입니다. 놀이기구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반드시 놀이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기념물 모양의 놀이기구도 필요합니다. 아래 사진은 아이가 올라가면서 팔과 다리에 힘을 주면 새의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아이가 위에 올라가면 힘이 작용해 새가 천천히 날갯짓하며 움직입니다. 이처럼 안전이 허락하는 한 아주 복잡하고 만들기 어렵게 보이는 놀이기구도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놀이기구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어떤 것을 아이들로 하여금 촉발하게 하고 그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놀이기구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균형 잡기를 배울 수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매우 무겁고 큽니다. 엄마들이 보면 좋아하지 않을 놀이기구입니다. 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아이들은 힘과 몸무게를 이용해 균형을 잡아보고 그 힘이 전달되어 큰 회전축에 전달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놀이기구에 쓰인 것들은 모두 다 오래된 공장의 못 쓰는 부속들입니다. 아이들은 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기술과 자연의 힘에 대해서 배웁니다.
우리는 항상 놀이터를 만들 돈이 없다고 합니다. 독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돈을 씁니다. 그러면서 놀이터에 쓸 돈은 없다고 합니다. 빌딩을 세우면 그 앞에 비싼 조형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놀이터를 만들 수 없을까요. 저는 40년 동안 놀이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여기 놀이터에 관심을 두고 오신 분들은 더욱 오랫동안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놀이터를 만들 때 제가 말씀드린 부분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켜서 하는 교육이 아니라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깨우치게 되는 그런 놀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삶을 살다 보면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면서 이런 것을 극복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지 구분해야 합니다. 한국의 아이들이 미래에 강한 아이들로 자랄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편해문 정리)
· 어린이와 시민과 행정의 파트너십으로 만든 1호 기적의놀이터 ①② | 편해문
· 내가 꿈꾸는 놀이터 | 귄터 벨치히
· 우리는 왜 모험놀이터를 만들었고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 | 아마노 히데아키
· 아이들이 요구하는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수전 솔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