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연설할 수 있게 초대해주시고 또 이런 멋진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편해문 씨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록 각자가 대표하는 문화권은 달라도 특정한 목표 없이 아이들 스스로 주도하고 이끌어나가는 자유놀이의 보편적인 필요성을 우리 모두 굳게 믿고 있습니다. 각자의 나라에서 우리는 제한된 놀이 가능성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제가 드리는 몇 가지 제안이 매력적인 공간 창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을 불러들일 장소가, 아이들이 자꾸만 또 오고 싶어 하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이 안에만 있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놀이는 밖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복잡하고 재미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상황을 TV 시청 시간과 빡빡한 일정 탓으로 돌립니다.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놀이터가 지루합니다. 뉴욕 시에 있는 이 놀이터 역시 대부분의 미국 놀이터가 그렇듯이 카탈로그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 경우 2012년 이곳을 짓는 데 개인 기부금 210만 달러(약 25억 원)가 들어갔습니다. 이곳의 기대 수명은 15년입니다. 색깔이 참 요란도 합니다. 활동은 뻔해 보이고요. 아이들은 위로 올라가거나 양옆으로 가거나, 아니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동작의 반복이라 어떤 아이도 100퍼센트 성공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굳이 또래들과 접촉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협동해서 이루어낼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최근 들어 여기에 다양성이 추가되었습니다. 주로 등반 연습용 장비의 형태를 띱니다. 올라가는 동작과 뱅글뱅글 도는 동작을 추가해 아이들에게 활기를 주지만 대부분의 놀이 공간은 여전히 땅바닥에 바짝 붙여놓은 괴물 같은 기구에 중점을 둡니다. 이 단 한 점의 기구가 모든 활동의 중심을 이룹니다. 놀이터 바닥에는 대개 고무 표면재가 깔려 있습니다. 단조롭고 지루한 이 표면재 때문에 놀이터 비용이 두 배로 늘어날 때가 많습니다.
‘기둥과 마룻바닥’ 또는 ‘기둥과 발판’으로 불리는 이 체계는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혁신적인 놀이터에서 기원했습니다. 뉴욕 시의 이 놀이터는 조경설계사 폴 프리드버그M. Paul Friedberg가 1970년에 설계했습니다. 수평적·수직적으로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활동의 여지가 많습니다. 외길은 없지만 기회는 많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이곳은 공동체 자원입니다. 오늘날의 이런 기성 놀이터 장비는 상호 연결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과입니다. 특별히 이 놀이터를 선택한 이유는 프리드버그의 놀이터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겨나는 놀이터일수록 아이들을 불러들일 도전 거리나 방법이 부족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동체의 중심축이 되기보다 울타리를 둘러친 채 아이들이나 아이를 동반한 어른들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물체가 너무 식상해지면 아이들은 이를 좀 더 재미있게 만들 방법을 모색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발견해냅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이 정자를 보십시오. 아이들은 이 정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근처의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스릴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의 이 보기 드문 그네처럼 장비가 어느 정도 혁신적인 경우에도 아이들은 정해진 그네 보다 두 다리 사이에 발판을 끼우고 높이 올라가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몇십 년 전 옹호자들은 통제된 놀이터에서 모험을 찾을 수 없으면 아이들은 끔찍한 곳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모험을 찾으려 한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학교 정문 밖의 난간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이 여학생들은 애초의 용도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교 놀이터에는 지겨운 장비와 단조로운 안전 바닥재(여기서 바닥은 아이들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합니다)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아이들은 다른 어디에서도 충족할 수 없는 실험 욕구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놀이터 모델이 계속 복제되는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미국인들은 소송이라면 무조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법적 책임을 제조업체에 떠넘깁니다. 사회 전체에 걸쳐 뭔가 끔찍한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도사립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우리는 납치범과 피하 주사기를 불안하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하루 24시간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또 많은 경우 모래와 물을 아예 금지하거나 멀리합니다. 그러고는 묻습니다, 아이들이 왜 밖에 나가지 않냐고? 우리는 이미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진은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한 유치원의 외부 모습입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선 유치원이라는 용어를 0세에서 6세까지의 아동을 돌보는 보육 시설에 사용합니다. 아기들이 위쪽이 툭 튀어나온 이 개방형 현관의 보호를 받으며 유모차와 보행기에 타고 있습니다. 지금은 낮잠 시간입니다. 아기 때부터 아무리 궂은 날씨에도 유모차를 타고 밖에서 지내기 때문에 노르웨이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 밖에 나가고 싶어 하며, 나이를 먹어서도 밖에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미국에서는 아기 때는 아이들을 무조건 안에만 있게 합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해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안에서 지내게 합니다. 또 기온이 살짝만 내려가도 안에서 지내게 합니다.
더욱이 우리 미국인들은 아이들을 밖에서 더 많이 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물을 때도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곰곰이 되짚어보고 아이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다음 그런 특징들을 물리적 공간에 옮겨놓으면 어떤 모습을 띨지 생각해야 합니다. 1930년대에 러시아에서 개발되었지만 몇십 년이 지나서야 외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한 이론이 요즘 들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론은 상상놀이를 하면서 큰 아이들이 어린아이들 손을 붙잡고 배움과 성숙의 길로 인도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이론가들은 아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위험 감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성공하려면 아이들은 먼저 실패해봐야 하고, 또 서로 협력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위험은 특히 부모들에게는 끔찍한 개념입니다. 이것은 위험 감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입니다. 여기서의 결과는 치명적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이로운 위험 감수는 인자하고 유용합니다. 심리학 교수 엘렌 산세테르Ellen Beate Hansen Sandseter는 뭔가 위험한 일 또는 그녀가 ‘위험한 놀이’라고 부르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칠 가능성이 아주 약간 있지만 그래 봐야 매우 경미한 부상으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산세테르가 지적하듯이 위험한 놀이에는 위험해 보이는 도구를 주의 깊게 사용하는 것, 빠른 속도로 가는 것,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사라지거나 숨는 것이 있습니다. 위험한 놀이는 가변성을 띠는 뭔가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평가를 하고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심리학 교수 산세테르와 그 동료는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는 연구를 통해) 위험한 놀이는 발달의 필수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우리 인간은 선천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무력하기만 한 유아기 때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이런 두려움은 차차 없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고난 두려움을 희석하고 극복합니다. 위험 감수 활동을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두려움은 유용한 수준을 넘어 병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소식은 아이들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위험을 놀이터 설계에 통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세테르는 위험한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기쁨에 겨워 웃고,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친다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계속 반복하고 싶어 합니다. 이는 놀이터가 위험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아이들은 행복해하면서 놀이터를 자주 찾게 되리라는 걸 뜻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의 경험이 매번 달라져야 합니다. 로마에 설치되었던 이 임시 작품이 그 말이 사실이라고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지붕을 씌운 로마의 한 박물관 뜰에 전시되었던 이 뜨개질 작품은 일본계 캐나다인 섬유 예술가 토시코 맥애덤Toshiko Horiuchi MacAdam이 만들었습니다.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든 이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부 꼭대기에 이르려면 몸을 들어 올려 섬유 벽을 따라 기어가야 합니다. 꼭대기에 이르면 천장 근처의 제일 높은 표면을 가로지르며 내달리거나 껑충껑충 뛸 수도 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기는 어려우며, 수행하는 방법 또한 많습니다. (저도 올라가보려고 해봤는데 입구에서부터 걸려 아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동이 그네를 사용하면 빠른 속도로 즐길 수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르셀로나의 이 십 대들은 학교 건물 맞은편의 유아용 놀이터로 우르르 몰려가 그네에 올라탑니다. 그러고는 몇 명까지 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높은 데까지 얼마나 빨리 날아오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십 대들이 더 어린 학생들에게 맞게 제작한 장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보여주듯이 이 아이들은 스릴을 맛보기 위해 장비를 잠시 빌렸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패기만만한 젊은 설계사들이 도시 놀이 공간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베이스BASE는 젊은 프랑스 조경설계사들이 설립한 다재다능한 회사입니다. 그곳 설립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놀이터는 해당 지역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뭔가 특별한 걸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놀이터는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는 신분증과도 같습니다.” 이런 입장을 회사 방침으로 삼아 그들은 파리의 새 놀이터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놀이터는 파리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습니다. 입찰 조건은 1970년대에 지은 목조 놀이터의 흔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리 시는 현명하게도 경쟁 회사 일곱 곳에 작업에 임하면서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가치, 예를 들어 위험 감수, 아름다움, 안전 같은 기준에 순위를 매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파리 시는 지역 공동체의 집단들과도 함께 일했습니다. 이 지역은 최근에 이민 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시 당국은 그들에게 새 놀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위험’이었습니다. 그 뒤 베이스 설계사들도 ‘위험’을 순위표 맨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들은 제대로 된 짝을 만났습니다.
결과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6세 이상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이지만 나이가 많은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구역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목표는 컴컴하고 무서운 목조 돌출부 아래에 이르는 것입니다. 방문객들은 목조 경사로를 통과하며 스스로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 놀이터는 당분간 지향성을 띠게 됩니다. 성공 여부는 누구도 점칠 수 없습니다. 그 다음 층에 이르면 달라진 경사와 비스듬한 나무 틀, 특이하게 놓인 들보와 그물이 특징을 이루는 이 흥미로운 공간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무사히 그곳에 이르면 또 다른 층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 층에는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좌석은 부모들이 굳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도록 숫자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올라가는 용도의 탑을 보게 됩니다. 탑을 통과하면 아이들은 공원의 맨 꼭대기이자 두 번째 출구에 이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이전 놀이터에 있던 가파른 놀이터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성격의 놀이터를 추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빠르게 미끄러져 내릴 수도 있고, 돌출된 구조물 밑이나 탑 안에 숨을 수도 있습니다. 안전 기록은 인상적입니다. 2008년에 놀이터가 문을 연 뒤로 응급실을 찾은 아이는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눈 위가 살짝 찢어지는 부상으로 말이지요. 그 아이는 아침에 그런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갔는데, 그 날 오후 다시 놀이터에 왔습니다.
건축계에서 BIGBjarke Ingels Group은 뜨겁게 주목받는 회사입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놀이를 설계에 통합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절로 용기가 납니다. 브야르케 잉겔스Bjarke Ingels와 율리엔 데 스메트Julien De Smedt는 ‘높이 움직이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위험한 놀이를 2004년에 설계한 해양청소년회관Maritime Youth House에 통합해 넣었습니다. 이곳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습니다.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기복을 이루는 널찍한 목조 지붕입니다. 설계사들은 이 지붕을 ‘사회적 카펫’이라고 부릅니다. 이 지붕에는 경사가 25도가 넘어 아이들이 높은 지형을 여행할 때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파른 지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지붕을 지쳐 달려 내려가면 바로 코앞에 깊은 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잉겔스는 평소 해오던 몇 가지 생각을 칼베보드 다리에 적용했습니다. 다리 공사는 코펜하겐 재개발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결과 말을 잘 듣는 다리가 탄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다리가 도심 상업지구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소 지향성을 띠는 높다란 인공 암벽과 울타리를 친 판자 산책로가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좀 더 가면 여러 층의 계단과 가파른 경사로들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은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릴 수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하우겐 요아르Haugen Zohar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 회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 큐브는 노르웨이 트론헤임Trondheim의 한 유치원에 있습니다. 이 지역 공동체는 퍼센트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공사를 발주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뜻 으스스하고 불길해 보이는 큐브는 천연 동굴에 들어가는 노르웨이의 전통을 반영합니다. 응급 상황에는 교사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큐브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내부 역시 어두컴컴하고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침하며, 겨울이면 미끄럽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하루를 마감할 무렵 보호자가 자신들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같은 회사 하우겐 요아르가 같은 도시 트론헤임에 또 다른 공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불구덩이로 이 역시 퍼센트 미술을 통해 공사 의뢰가 들어왔으며, 설치 장소 역시 지역의 한 유치원입니다. 원래는 아이들이 아침 일찍 들어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아이들은 한낮에도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오두막 안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려고 눈옷을 겹겹이 껴입고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불 주위에 둘러앉아 불을 존중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굽는 법도 배웁니다. 뭔가 위험한 것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과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입니다.
위험한 놀이는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경험을 통제합니다. 어른들에게는 비교적 낮아 보이는 바위 같은 물체가 어린아이들에게는 때로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시스터 시티즈 파크Sister Cities Park는 도시의 주요 광장 한 곳 근처의 커다란 교통섬에 있는 조그만 공원입니다. 이곳에는 자그만 연못과 탑처럼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정해진 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스스로 경로를 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은 재미와 흥미를 보탭니다.
이 울퉁불퉁한 바위들도 아이들에게 도전을 제기합니다. 이 돌들은 제 고향 뉴저지 프린스턴의 한 공원에 있는 모래 구덩이를 빠짐없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 작은 소녀(두 살)가 한 손에는 새 들통을 또 한 손에는 새 삽을 들고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어떤 데는 자기 키보다도 높은 돌 울타리에 이르러 아이는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 한순간 머뭇거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아이는 장난감을 모래에 집어 던지더니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정말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위험한 놀이의 정수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겁니다. 아이는 바위를 보고 두 손에 뭘 들고 바위에 오르려고 했다가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겁니다. 아이는 재빨리 평가를 했고, 해결책을 찾아냈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했고,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그것도 놀랍도록 짧은 시간에 말이지요. 이런 종류의 활동은 기성 장비 위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위험 감수는 시행착오와 그 뒤의 궁극적인 성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심리학자들이 아이들에게는 철저하게 계산된 이로운 위험 감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도전받는 걸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단번에 성공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힘든 일을 하길 원합니다.
이곳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샌프란시스코의 덜로리스 파크Mission Dolores Park입니다. 놀이터 끄트머리의 테라스를 두르고 아름답게 조경을 한 옹벽은 이곳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이 벽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쪽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벽에 올라탈 수도, 벽을 따라 걸을 수도, 벽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방문할 때마다 기술을 향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옹벽은 몇십 년 전 문을 연 놀이터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벽에 오르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벽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공원 당국은 지하 화장실을 짓기 위해 벽의 길이를 줄여 테라스 높이에 맞췄습니다. 짧아진 벽은 예전만큼 길지는 않지만 여전히 도전을 제기하며, 지금은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조경설계사 스티븐 코흐Steven Koch가 처음부터 원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옹벽은 규모와 아이들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뭔가를 말하는 듯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기존 지역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훨씬 더 규모가 작은 벽을 봤습니다. 이 벽은 다소 지루한 놀이 장비 세트 양쪽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몇몇 아이들이 벽으로 기어 올라가 그 위에서 껑충껑충 뛰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벽은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결과를 점칠 수 없는 놀이와 위험 감수의 정신은 똑같습니다.
나지막한 풀 언덕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보스턴 외곽에서 일하는 조경설계 회사 그라운드뷰Ground View는 이곳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널찍한 미끄럼틀을 설치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좀 더 느슨한 기회를 주기 위해 나지막한 풀 언덕을 조성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 언덕을 활용해 미끄럼틀에 접근하거나 아래로 뛰어 내려가거나, 아니면 언덕을 따라 내처 달릴 수도 있습니다. 토리노의 나지막한 콘크리트 벽과 보스턴의 풀 언덕 둘 다 아이들을 공공 놀이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저렴한 개입입니다.
우리는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의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면서 아이들의 발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놀이 장비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고릭Goric 사에서 제작한 뉴욕 시의 이 스테인리스 강철 돔은 스테인리스강으로 100%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높이는 지상에서 약 2.7m 정도 됩니다. 저는 스스로 꼭대기에 오르는 기술을 터득할 때까지 매일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십대들은 얼마나 빨리 꼭대기에 이를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스스로를 시험합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은 뛰거나, 주저앉거나, 엎드리는 등 재미있게 내려가는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이 경우 해가 쨍쨍 내리쬘 때는 차양을 쳐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독특한 장비나 공간 중에는 기성 장비보다 가격도 저렴하면서 환경적으로도 더 건강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불구덩이는 순전히 건축 현장에서 쓰고 남은 목재로 만들었습니다. 역시 노르웨이에서 나온 이 큐브 또한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재활용 물질로 만들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재료에 래미네이트를 입힌 뒤 손으로 깎아 다듬었습니다. 시스터 시티즈 파크의 돌들은 구입한 게 아닙니다. 브라이언 헤인스Bryan Hanes와 그의 조경설계 팀이 재활용한 겁니다. 그들은 근처 예술 박물관이 주차장을 만들려고 땅을 깊이 파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돌들을 공짜로 얻어와 시스터 시티즈 공원의 토대로 활용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뜻하지 않은 용도 전환의 뛰어난 사례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어린이 박물관은 자기 구역에서 이 하수관을 발견하고 숨고, 내달리고, 기어오르는 장소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수관을 깨끗이 씻은 다음 페인트를 칠해 땅바닥에 고정했습니다.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설계 회사 수페루세Superuse Studios는 안 쓰는 풍차 날개를 놀이터의 중심축으로 활용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수명을 다하고 폐기처분되는 이런 풍차 날개가 해마다 수천 개씩 나옵니다. 폐기처분되는 풍차 날개를 용도 전환함으로써 설계사들은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종합 환경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균형을 잡고, 달리고, 높이 오르고,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는 그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풍차 날개 내부는 조용한 친목과 호젓함을 원하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입니다.
‘찾아’내거나 버려진 물질의 또 다른 재활용 사례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 건축가 집단 옐렌&요르트Helen&Hard는 해안가 석유 채굴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의 십 대와 함께 예오파르크Geopark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곳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낙서를 할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수심이 깊은 항구 바로 옆의 울타리를 치지 않은 지역은 위험하다는 의식을 더욱 증폭합니다. 이곳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끌어당깁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연령대에만 맞춘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흥분을 더욱 고조시킵니다. 숨을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최상의 놀이터들은 설계사를 기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 놀이터를 지을 생각이 있다면 이 방법을 진심으로 권합니다.)
저는 또 고물의 힘을 믿습니다. 고물이라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모험놀이터를 떠올립니다. 사진은 1950년대에 개장한 영국 모험놀이터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선 진정한 협동과 세대 간 결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쿄의 모험놀이터를 보고 저는 황홀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모험놀이터는 아마노 히데아키天野秀昭 씨와 이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험놀이터 경험은 매번 달라집니다. 모험놀이터는 저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뭔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평소에는 만질 수 없는 물체, 예를 들어 나무, 낡은 타이어, 버려진 싱크대 같은 것들을 다룹니다. 참가자들은 톱과 드릴과 불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미국의 상설 모험놀이터 수가 최근 들어 두 배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가 아니라 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맨 처음 놀이터는 197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 세계 다른 놀이터의 퍼센티지를 따라 이곳의 안전 기록도 부러움을 살 만한 수준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모험놀이터를 하나 더 추가하려는 공동체가 몇몇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런 추세는 새로운 정서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놀이 경험에 관한 한 우리는 아이들을 속여 왔다는 자각과 아이들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주는 놀이 지역이 필요하다는 인식 말입니다.
그러한 자각과 인식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놀이터의 물질을 조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모험놀이터에 바치는 찬사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이제 ‘느슨한 요소’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석유 산업에서 나온 폐자재로 예오파르크를 그려내 보인 바로 그 옐렌&요르트가 또 다른 작업을 통해 느슨한 요소라는 모험놀이터 정신을 구현해냈습니다. 그들은 지역 자동차 산업에서 나온 폐기물을 활용해 스웨덴에 전시되었던 임시 설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마음껏 조작하고 재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아이들의 스크랩스토어’Children's Scrapstore도 같은 개념을 빌려와 깨끗한 폐기물과 통합한 사례입니다. 이들은 철사를 감았던 나무 얼레, 버려진 키보드, 폴리에스테르 필름 등을 수거한 뒤 작은 컨테이너 선적선에 실어 아이들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중에서 마음껏 골라 가지고 놀며 각자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깨끗한 폐기물은 (이론적으로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주로 학교 운동장으로 갑니다. 그 결과는 아주 놀랍습니다. 아이들은 파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탐험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이 결과를 알 수 없는 기회에 호기심을 보이면서 놀이터에선 싸움이 줄어들고 교실로 돌아오면 활기가 넘쳐납니다.
‘방 안의 코끼리’(※중요하지만 언급하기 꺼려 애써 모른 척하는 문제를 빗대는 영어 표현)가 크게 어른거리며 다가와 논의와 조사가 필요한 추세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놀이터이고, 또 하나는 전자장치가 있는 곳입니다. 먼저 자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연 결핍을 다룬 리처드 루브Richard Louv의 책은 우리의 아픈 데를 건드렸습니다. 출간 이후 이 책은 자연놀이운동의 촉매로 기능해왔습니다. 장비가 아예 없거나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가운데 아이들이 나무나 널빤지 같은 자연 재료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생각은 저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자연환경이 주는 변화와 다양성을 보고, 느끼고, 만지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요. 문제는 장비나 구조물 주변에 식물 몇 가지 심어놓고 ‘자연놀이터’라고 광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입니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장비를 가지고 나무와 통나무인 척 가장합니다. 아이들을 바보로 아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역겨운지 모릅니다. 이 괴상한 인조 물체 세트 안에서는 살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습니다.
몇몇 아주 훌륭한 놀이터는 자연 부패나 자연재해에서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안 쓰는 물질과 느슨한 요소는 잔가지와 노끈으로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저희 집 근처의 주간 캠프에서 아이들이 짓는 ‘마을들’입니다. 그 자체로는 자연 캠프가 아니지만 이곳 일상 활동의 대부분은 건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캠프 첫날 건물을 짓기 시작해 여름 내내 계속 고치고 추가합니다(캠프 철이 끝나면 이 인상적인 구조물들을 허물어야 한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은 나무로 가득한 환경을 돌아다니며 무엇이 쓸모 있고 쓸모없을지를 평가합니다. 아이들은 가까이 있는 것을 그저 사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곳은 덤불이 많은 공원에 유용한 모델입니다.
다른 자연놀이터들도 부러지거나 파손된 나무를 껍질을 벗겨 놀이에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뉴욕 브루클린의 광활한 프로스펙트 파크Prospect Park 안에 있는 도널드&바버러주커 자연탐험지역Donald and Barbara Zucker Natural Exploration Area입니다. 주커 탐험지역은 순전히 나무, 모래, 물 펌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요 공원의 공사비를 대고 있기도 한 프로스펙트파크얼라이언스Prospect Park Alliance는 2012년 태풍 샌디가 휩쓸고 지나간 뒤 곤경에 직면했습니다. 두께가 더러 120~150c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 오백여 그루가 쓰러져버린 겁니다. 미국 북동부 지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곳 역시 하늘소 무리가 창궐했습니다. 이는 곧 남아나는 나무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공원 당국은 이 손실을 처리할 혁신적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들은 쓰러진 나무들 중 제일 흥미로운 것들을 골라 껍질을 벗긴 뒤 탐험 지대에 배치했습니다. 전체 놀이 구역을 조성하는 데 약 6개월의 작업 기간과 2십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갔습니다(설계와 건축 모두 공원 측에서 직접 해결했습니다). 이곳에는 나무 그루터기들에 빙 둘러싸인 모래 구덩이가 있는 모래 방을 비롯해 ‘방들’이 몇 개 있습니다. 껍질을 벗겨 모래 구덩이 중앙에 거꾸로 세워놓은 나무 한 그루의 스산한 모습은 태풍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일 큰 나무들은 근처 지역에 따로 배치했습니다. 태풍 샌디가 마치 어제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지만 실은 신중한 계산의 결과인 이 거대한 나무들은 균형을 잡고, 숨고, 달리고,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몇몇 나무들은 땅에 고정해놓았지만 너무 커서 굳이 고정하지 않아도 움직일 염려가 없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이곳의 규모와 다양성은 정말 놀랍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깊숙한 분지 바닥에 위치한 이 탐험 지역은 울타리가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고집 센 꼬마도 언덕을 오르거나 도로 근처의 어디로든 가기 전에 막아설 수 있습니다.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 이 공간에 들어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도전을 제기하는 바위들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전자장치는 자연의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장치는 계속되는 폭력이며, 따라서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자연’에 입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제조업체들은 (그들이 플라스틱 나무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자신들도 ‘상영시간’을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 전자장치는 밀라노 말펜사Malpensa 공항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뜀박질에 반응하는 바닥의 스크린을 보면서 차라리 그 주변의 벽을 기어오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확장된 놀이 공간이 아니라 비행기 탑승 전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는 목적의 공간입니다.
전자장치가 실제 놀이터에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훨씬 더 괴롭습니다. 영국 잡지 『가디언』의 비즈니스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 팀 스메들리Tim Smedley는 스페인의 신생 회사 ‘하이브리드 플레이’Hybrid Play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이 회사는 “실물에 컴퓨터 이미지를 덧대는 방법으로 증폭한 현실을 사용해 놀이터를 비디오 게임으로 바꿔놓는다. 커다란 빨래집게처럼 생긴 무선 센서는 놀이터 장비 어디에나 부착할 수 있다. 아이들이 놀면서 놀이터를 스마트폰 상에서 이루어지는 비디오 게임으로 바꿔놓으면 센서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이 회사 모토는 “놀이터를 비디오 게임으로 바꿔놓는 하이브리드 플레이”입니다.
저는 이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게임 과학기술의 외피를 놀이터에 덧씌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학기술을 놀이터나 공원에 끌어다 붙이는 것은 아이들이 주도하는 자유놀이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디자이너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의 책 『현실은 깨졌다』Reality Is Broken: Why Games Make us Better and How they Can Change the World를 읽고 나서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것, 예를 들어 스릴, 모험심, 미지의 느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의외성, 경쟁자들 사이의 동지애 같은 요소들에 빠져듭니다. 그런 특징들을 신나고 창의적인 공간에 통합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놀이터 너머로 눈을 돌려 아이들이 노는 지역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어른들의 공간과도 이음새 없이 섞여드는 좀더 보편적인 지역 안에 통합해 넣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놀이경관playscapes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어쩌면 놀이경관은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놀이경관은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줄지도 모릅니다. 놀이경관은 어른들이 지금처럼 아이들 주변을 맴돌지 않고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홀짝이며 여유를 즐기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조경설계사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는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지겨워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뜰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불러들일 방법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붙잡아둘 방법도 찾아내야 합니다.
영국의 텀블링베이 놀이터Tumbling Bay Playground와 팀버 로지Timber Lodge Playground는 매우 훌륭한 모델입니다. 이곳은 자연, 자원 재활용, 독창적인 예술 작품, 부모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맴돌지는 않는 공간 등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아주 많이 통합해내고 있습니다. 이렉트 아키텍처Erect Architecture와 조경설계 회사 랜드유즈 컨설턴츠Land Use Consultants, LUC가 설계했습니다. 원래는 런던 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퀸엘리자베스 공원의 일부로 놀이와 가족 활동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처에는 새로운 주택 단지도 들어섰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어린나무로 만든 이 ‘동굴’을 비롯해 아이들이 들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연 재료들이 있습니다. 간이 스낵바 팀버 로지도 처음부터 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건축가들은 너무 눈에 띄지 않으면서 보호자들이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모래와 물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제일 어린 방문객들을 위한 이 첫 번째 놀이 장소에서는 모래가 완충재 역할을 합니다. 좀 더 큰 아이들은 균형 잡기와 탐험이라는 추가 도전을 제기하는 돌 형태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길은 방향만 제시할 뿐 군림하지 않습니다. 도중에 아이들은 흔들다리와 먼지가 있는 ‘계곡’으로 샐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쓰러진 참나무가 옹벽 역할을 하는 스콧파인 삼림 지대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벽 위로 기어올라 속이 빈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기어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근처의 조각품은 올림픽 대회를 위해 주문 제작한 것입니다. 헤더 모리슨과 아이번 모리슨Heather & Ivan Morison의 「십자가와 동굴」Cross and Cave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두 개의 성형 콘크리트 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아이들의 놀이처럼 일정한 틀이 없이 제멋대로입니다. 높이 오르는 것과 관련해 몇몇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반색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가 죽고 마는 뭔가도 있습니다.
스페인 수도의 마드리드리오Madrid Río 계획 또한 도시 놀이전경의 빼어난 사례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도 모여드는 곳 근처의 공간에 거주하면서 그 공간을 활발하게 사용합니다. 아이들이 소외된 느낌이 아니라 ‘다 큰’듯한 기분을 느낀다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의미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어른도 다른 우주로 추방된 듯한 기분을 더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경설계 회사 웨스트 8West 8과 스페인 건축가 팀이 설계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이 계획의 원래 목표는 강 양쪽의 보기 흉한 고속도로를 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나서 시는 남아 있는 공간을 공공 지역으로 활용하면 도로가 갈라놓은 이웃들을 하나로 결집해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오솔길, 조깅로, 연주회 장소,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장소, 카페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놀이터도 열다섯 곳 있습니다. 그 중에 울타리를 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모두 산책로와 조깅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연령 구분도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비입니다.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를 통해 보기 드문 작품을 선보여온 리히터 슈피엘게뢰테Richter Spielgeräte에서 제작했습니다. 제가 이 회사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는 손으로 깎아 다듬은 나무를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고, 또 하나는 등반 장비 대부분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린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미끄럼틀 언덕은 인기가 매우 높습니다. 아이들은 폭과 경사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석판을 통과하거나 타넘으며 꼭대기까지 오릅니다. 이 콘크리트 테라스는 근처에 있던 낡은 분수 부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곳은 일부러 길을 찾아가기 힘들게 배치했습니다. 공원을 개장하고 나서 처음 일주일 만에 아이들이 콘크리트 연석과 덤불을 짓밟아 뭉개놓았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은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엄청난 인파가 공원으로 모여들어 몇 시간씩 머물다 간다고 전합니다.
우리는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텀블링베이와 마드리드리오 같은 계획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에는 이런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부모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 나면 부모들은 자연히 그런 곳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놀이터의 다른 후원자들에게 아이들은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유놀이를, 이로운 위험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을, 상호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명한 설계사를 고용하면 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들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알려야겠지요. 거기다 부모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지역을 덧붙인다면 아이들과 그 가족이 계속 다시 찾는 공간, 모두가 만족하는 놀이경관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 아이들이 요구하는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수전 솔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