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책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살아남은 책이 고전이다. 그러니 고전만큼 힘이 센 것도 없으며,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다음에 추천할 동양철학 분야의 고전은 모두 2,000년도 더 된 헌책 중의 헌책이다. 이 책들은 어떤 이유로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졌을까? 고전을 읽을 때는 늘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모름지기 고전이 성립된 시대를 살피고 고전의 작자가 당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마음을 써야 한다.
더불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저자와 만나는 일뿐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변화하는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읽고 난 뒤의 나는 읽기 이전의 나와 다른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어떤 나를 만날 것인가.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설렘을 가진다면 당신은 비로소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어떤 책은 바늘처럼 당신을 찌르고, 어떤 책은 당신을 생각에 잠기게 할 것이고, 어떤 책은 당신의 무릎을 치게 하고, 어떤 책은 당신을 눈물짓게 할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일상의 이야기
공자의 『논어』
『논어』는 공자B.C.551~B.C.479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일종의 언행록이다. 다시 말해 공자가 한 말이 제자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제자의 제자 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로 기록된 것이 『논어』다. 그러니 공자는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스스로 자신이 한 말을 정리한 적도 없으니 『논어』를 읽는 것은 성인으로 덧칠한 공자의 권위에 기대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그 말이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지금까지 전해져 왔다.
하지만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논어』의 내용은 막상 일상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논어』에는 기적이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읽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상식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 『논어』다.
배움의 기쁨을 담담하게 말하는 대목,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는 대목,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논어』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성실한 일상인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한 이야기가 동아시아 사회에 수천 년 동안 대다수의 지식인들에게 전승되고 재해석되면서 삶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에서 새삼 일상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였던 정이는 “『논어』를 읽고 난 뒤 조금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두 구절 얻어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읽은 뒤 좋아할 줄 아는 이가 있고, 급기야 자신도 모르게 춤추는 이가 있다.”고 했다. 『논어』를 읽는 사람이 새겨둘 만한 말이다.
강렬한 시대정신, 인간에 대한 신뢰
맹자의 『맹자』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가득하고, 임금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가득한데, 백성들에게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있다.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다.” 이 문장은 『맹자』의 한 대목을 옮긴 것으로 양나라 혜왕을 만났을 때 맹자가 한 말이다. 맹자는 왜 이처럼 당시의 지배자와 백성들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했을까? 진정한 실패는 생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산이 충분한데도 굶주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맹자B.C.372?~B.C.289?가 살았던 시대는 이전보다 생산력이 수백 배 늘어난 풍요의 시대였지만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생존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자고나면 전쟁이 일어나는 폭력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맹자는 여러 나라의 임금들을 찾아다니며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인 왕도를 권고하고, 혁명을 경고하고, 성선설을 주장했다.
왕도란 무엇인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부터 보살피는 정치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맹자는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다. 임금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면 임금을 바꾸고, 사직이 제 역할을 못하면 사직을 갈아엎는다.”고 했다. 임금답지 못한 임금을 갈아치우는 것이 혁명이다. 이 세상에 통치자와 나라가 있는 이유는 오직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린다.
폭력이 난무하던 혼란의 시대,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맹자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강렬한 시대정신,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는 책이 『맹자』다.
은둔한 현자의 말 없는 가르침
노자의 『도덕경』
노자는 도무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은자다.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기 전에 81장 5천여 자의 글을 남겼는데 그게 바로 『도덕경』이다. 이 책의 특징은 시대를 나타내는 말이나 사람이름을 비롯한 고유명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가 빠져 있는 글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도덕경』은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유례없는 세계대전을 두 차례 겪었던 20세기 독일의 작가 브레히트는 도덕경을 노자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읽었고, 2,000년 전 진나라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한비자는 노자를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읽었다. 그래서 『도덕경』을 읽을 때는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노자는 만물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인위적인 기준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체의 차별에 반대하는 평등주의자다. 또 강함보다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전쟁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반전 평화주의자이며, 인간이 만든 화려한 채색이나 아름다운 음악은 인간의 순수성을 상실케 하는 해로운 것들이라 비판한 문명비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를 약하게 하고 싶다면 반드시 짐짓 강하게 해 주고,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다면 반드시 일부러 주라.”는 말에서 술수와 계략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또 ‘물러남’과 ‘부드러움’을 강조하지만 그런 태도의 결과가 항상 승리자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노자는 “성인은 물러남으로써 앞서 나간다.”, “천지는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공을 이룬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이야기한다. ‘물러남’, ‘소유하지 않음’, ‘부드러움’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앞서 나가고’, ‘공을 이루고’, ‘이기는’ 결과로 나타난다. 무욕을 이야기하면서 실은 더 큰 욕망을 이야기하고, 무소유를 이야기하면서 기실은 모두 다 차지하는 소유의 극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도덕경』을 만물의 근원인 도에 관한 한가로운 사색이나 삶의 이치를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으로만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어지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적을 거꾸러뜨리고 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권모술수를 기록한 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수도 있다. 한비자가 노자에 주목한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자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 같은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도덕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노자의 말이 어둠의 술책이 될 수도 있고 삶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으니. 당신의 선택은?
소리없는 음악과 끝나지 않는 이야기
장자의 『장자』
『장자』는 철학우화집이다. 작자인 장자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우화를 창작했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낮잠이나 자겠다고 하고, 모든 사람이 이익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갈 때 홀로 자유를 찾아 방황했다. 그는 백정이 소를 잡는 동작에서 삶을 구원하는 이치를 찾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로 하여금 지고至高의 도를 말하게 한다. 온갖 시비와 차별을 가차 없이 부수어버리는 장자의 우화는 각종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당연히 이런 은유와 상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간파하지 못하면 『장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장자는 왜 이런 식의 글쓰기를 택했는가? 그 이유는 우화라는 게 본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치적 박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우화에는 사람뿐 아니라 여러 동식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구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와 메추라기가 한 이야기에 등장하고, 까치와 오동나무가 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수십만 년을 사는 거북이와 수백만 년을 사는 상고시대의 대춘나무가 등장한다. 또 꿈속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림자의 그림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죽음이 삶과 같은 몸이라고 이야기하다가 급기야 아내가 죽자 노래를 부른다. 또 실제로는 절대 만날 일이 없을 고대의 제왕 요임금과 은자 허유를 이야기 마당에 불러내기도 하고, 형용불가능한 기형인들의 커다란 행복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유명한 나비의 꿈에서는 자신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장자는 이런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소리없는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하고, 꿈속의 꿈과 그림자의 그림자를 불러내 우리를 커다란 깨어남으로 인도한다. 그러는 동안에 옳고 그름, 크고 작음, 아름다움과 추함, 온갖 시비와 차별의 경계가 무너져 하나가 되는 도의 세계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장자를 읽을 때는 모름지기 터무니없는 상상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장자』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역사의 주인공
사마천의 『사기』
『사기』는 전쟁에서 패배한 장수 이릉을 옹호하다 궁형을 받고 치욕적인 삶을 이어갔던 사마천이 기록한 총 130권 52만 6천여 자의 방대한 역사서다. 그런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열전」의 기술 순서가 참으로 이상하다. 맨 앞에 굶어 죽은 자가 서 있고, 돈을 벌어 치부한 부자들이 맨 뒤에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마천이 부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 사마천이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를 테면 정의와 우정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열전의 맨 앞에 놓여 있는 「백이열전」은 정의를 위해 굶어죽은 사람에 관한 기록이고, 두 번째 편 「관중안영열전」은 참다운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역사를 움직여 가는 주체를 개개의 인간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사기』에는 사상가와 웅변가·위인·호걸을 비롯하여 문인이 있는가 하면 장군과 병법가가 있고, 유학자가 있는가 하면 자객이나 협객이 있고, 절의를 숭상했던 애국지사가 있는가 하면 나라를 망친 간신이나 작은 일에 목숨 거는 졸장부가 등장한다.
역사는 지배자나 뛰어난 장수 혹은 권력자 같은 주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편의 조연이나 힘없고 천한 자가 같이 어울려 형성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애초에 운명적으로 결정된 역사의 주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사기』를 펼칠 때는 다양하게 생동하는 개개인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 「관중안영열전」을 읽을 때는 관중이 아닌 포숙을 보아야 하고, 안영뿐 아니라 안영의 마부와 그 아내까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회음후 한신에게 밥을 준 촌 할머니와 그를 자기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한 동네 백정도 놓쳐서는 안 된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싶다면.
지금까지 소개한 다섯 종의 책은 모두 2,000년이 넘도록 전해져 온 불멸의 지혜가 담겨 있는 고전이다. 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일찍이 고전을 두고 ‘과거의 모든 영혼이 잠을 자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니 고전을 읽는 일은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여러분의 독서를 통해 이들 고전은 수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