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이방인의 도래
아마존 토착 원주민들의 태곳적 확실성과 상대적 평온함, 그리고 고립은 1500년을 기점으로 영원히 산산조각 났다. 이상한 배들이 그 커다란 강의 어귀에 출현하더니 며칠 동안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에스파냐인 비센테 야네스 핀손의 배들이었다. 이 노련한 뱃사람은 1492년 당시에는 콜럼버스의 카라벨선 라니냐호의 선주이자 선장이었다. 이제 8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다시 대서양을 횡단해 브라질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강 어귀에서 소금기 없는 흙탕물을 처음 목격했을 때, 그는 그곳이 인도의 갠지스 강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거리를 거슬러 올라간 후 원주민들을 만났는데, ‘울긋불긋하게 몸을 칠한 많은 사람들이 마치 평생 동안 환담을 나눈 사람들처럼 호의를 품고 배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 작은 교전을 벌였고, ‘커다란 독일인들보다도 큰’ 서른여섯 명의 사람들을 붙잡아 노예로 끌고 갔다. 이것은 이곳의 원주민 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고난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였다.
야네스 핀손의 배들은 원주민 부족들이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카누보다 몇 배 더 클 뿐이었다. 그렇지만 에스파냐인들이 인디오indio, 즉 인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그곳 소수의 원주민들은 배를 구경하고 분명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이방인들의 배는 갑판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끈보다 훨씬 굵은 밧줄이 걸려 있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캔버스 천 돛으로 추진되었다. 이 때문에 훗날 한 부족은 그들의 신화에서 돛단배를 타고 도착한 최초의 백인들의 선단을 날아다니는 개미 떼로 그리기도 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선원들이 그들의 몸을 어떤 자재, 즉 천으로 가린 방식이었다. 또 그들은 얼굴에 보기 싫은 털을 기르고 있었고 이 털은 때로 검은색이 아닌 괴상한 빛깔이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실질적으로 체모가 전혀 없는 데다가 대부분은 피부에 나는 털을 모두 뽑아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칼은 어김없이 검은색이다.)
원주민들 사이에 가장 선풍적인 충격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방인들의 금속 연장이었다. 야네스 핀손이 다녀가고 몇 달 후에 온 포르투갈인들은 그보다 더 남쪽에 상륙하여 이 새로운 땅에서 첫 미사를 드리기 위해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인 페루 바스 데 카미냐는 이렇게 썼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목수를 구경하러 왔다. 십자가보다는 목수들이 십자가를 만들 때 쓰는 금속 연장을 보러 온 것 같았다. …… 그들한테는 금속으로 된 게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쐐기 모양의 돌을 나뭇조각에 고정시킨 후 그것을 나무 막대기 두 개 사이에 단단히 묶은 도구로 나무와 판자를 베었다.’ 카미냐의 생각은 전적으로 맞았다. 금속 도구의 절삭력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은 강렬한 흥분에 휩싸였다. 텃밭으로 쓸 빈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고달프도록 베어 넘겨야 하는 숲이 울창한 세계에서 이것은 기술적 경이었다. 1500년부터 오늘날까지 500년 동안 금속 날은―나이프와 마체테machete부터 도끼와 톱에 이르기까지―어떤 고립된 부족이든 그들과 접촉할 때면 널리 통용되었다. 그러한 도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원주민들이 최초로 이방인들과 접촉하고 금속 날을 한 번 보고 나면, 백인들과 거래를 하든 아니면 그들을 습격해서든 그것을 간절히 손에 넣으려 했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아마존을 본 모험가는 피렌체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던 것 같다. 1499년 메디치 제후들의 세비야 주재 대리인이었던 베스푸치는 몇몇 에스파냐인들에게 합류해 대서양을 건너도 된다는 윤허를 받았다.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들의 선단은 갈라졌고, 이 이탈리아인은 카라벨선 두 척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강물이 탁한 커다란 강 어귀를 탐사했으나 강둑에 숲이 우거져서 상륙하지는 못했다. 그다음 남동쪽으로 방향으로 돌렸지만 이번에는 역류에 밀려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베스푸치가 남쪽으로 얼마나 항해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한데 이는 그가 측량사로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브라질의 대서양 해안에 부여한 좌표값은 대서양을 태평양의 먼 바다로 가져다 놓았을 것이다. 그의 명성은 그로부터 3년 후에 포르투갈 선단의 승객으로 참가한 한 여행에서 기인한다. 그는 브라질 땅의 인디오들 사이에서 3주를 지낸 후 자신이 목격한 경이들에 대해 신이 나서 쓴, 그러나 부정확한 보고를 메디치가의 주인들에게 보냈다. 대체로 그러한 보고서들은 유럽의 군주들에 의해 기밀로 유지되었으나, 베스푸치의 편지는 출판되었고 재빨리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당대 기준으로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섬이 아니라 ‘신세계’라는 사실을 처음 기술한 사람이었다. 로렌의 지도제작자는 새로운 발견인 ‘문두스 노부스Mundus Novus’를 보여주는 지도에 그의 이름의 이형異形인 ‘아메리카’를 적어 넣었는데, 새로운 인쇄술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했기에 그 이름이 고착되었다. 그렇게 해서 두 대륙은 변변찮은 뱃사람이자 부정확한 항해가, 떠벌이기 좋아하는 기록자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틀림없이 모든 기행문 작가들의 수호성인이리라.
다음 40년 동안 아마존Amazonia의 삶은 평소와 같이 이어졌다.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이따금씩 이뤄진 교역에서 유럽인들은 매력적이지만 불안정한 붉은 염료를 함유한 브라질나무 즉 카이살피니아 에키나타Caesalpinia echinata를 주로 가져갔고, 이 나무가 새로운 땅에 이름을 부여했다. 이외에도 뱃사람들은 앵무새와 다른 이국적 동식물, 약간의 노예를 데려갔다. 그러나 이 ‘신세계’와 그곳의 원시적인 부족들은 귀금속이나 진주, 보석, 직물, 상아, 향신료 같은 값나가는 상품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기록된 역사 이전의 아마존 사람들
아마존 지역에 관한 기록된 역사는 야네스 핀손의 짤막한 보고서와 함께 1500년에 시작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이미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번성해왔다. 인간이 언제 최초로 아마존 강에 도래했는지 그리고 이곳의 초기 인류가 어떻게 농경과 토기, 정교한 족장사회를 발전시켰는지를 둘러싼 이론들과 격렬한 논쟁들은 뒤의 장들로 미룰 텐데, 그때가 되면 우리는 현대 고고학자들이 (그들에게는) 고생스러운 이 땅에서 어떻게 증거들을 조금씩 이끌어내는지 보게 될 것이다.
서기 16세기경 아마존 분지 전역에는 다채로운 부족들로 구성된 만화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의 마을은 커다란 강들의 둑을 따라 상당한 거리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내륙에 위치한 더 고지의 숲terra firme에서는 대부분 한시적으로 마을에 거주하거나 완전히 유목적인 채집 생활을 영위하며 서로 멀찍이 떨어져 살아갔다. 만약 정착지가 너무 커지면 서로 갈라져서 부족의 일부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동했다. 이주는 숲속의 빈터와 물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자급자족적인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부족들은 고립되어 살았지만 일부는 이웃 부족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가끔씩 부족 간 전쟁도 벌어졌는데 오래된 원한 관계에 따른 것이거나 아니면 여자나 아이와 같은 훌륭한 상품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자연히 일부 원주민들은 호전적이어서, 싸움에 나가고 전리품으로 머리를 수집하며 영예를 추구하는 젊은 전사 집단과 여러 호전적인 관습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한 초창기 유럽인은 ‘그곳에는 사람이 매우 많고 땅도 아주 넓지만 그들의 수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만약 지속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지 않다면 ……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원주민들은 모두 사냥과 낚시질을 열렬히 좋아했다. 남자들은 페커리와 맥부터, 새와 원숭이, 악어와 뱀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냥감을 찾아내고 추적하고 죽이는 데 굉장히 뛰어났다. 그들은 활과 화살, 그리고 (일반적으로 아마존 강 북부에서는) 끄트머리에 쿠라레를 바른 바람총과 짧은 투창을 이용해 사냥했다. 20세기 프랑스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들 사냥의 아름다움에 흥분했다. 그에 따르면 남자의 무기는 그의 남자다움의 상징이며 그는 그의 능력과 행운으로 평가받는다. ‘인디오들은 매우 민첩하고 솜씨가 뛰어나며 그들의 몸짓은 아주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그들은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들에게 ‘사냥은 항상 모험이다. 때로 위험천만하지만 끊임없이 활기를 불어넣는 모험이다. …… 숲에서 동물을 추적하는 것, 자신이 사냥감보다 더 영리함을 입증하는 것, 동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화살 사정거리 안까지 접근하는 것, 화살이 쉬익 공중을 가를 때 나는 소리와 곧 이어 동물을 맞혔을 때 나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 것, 이 모든 것은 일생 동안 무수히 체험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첫 사냥 때처럼 짜릿하고 신선한 기쁨이 된다. [인디오들은] 사냥을 싫증내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으며 그 무엇보다도 사냥을 사랑한다.’
여자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으며, 작은 텃밭을 가꾸거나 식용 가능한 애벌레나 곤충을 채집했다. 그들은 요리를 담당했고 물론 아이들도 돌봤다. 남자들은 사냥이나 낚시를 하거나 빈터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었다. 그러지 않을 때는 각종 물건이나 장신구를 만드느라 바빴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사냥과 낚시, 싸움을 위한 무기였다.
아마존의 언어들
언어는 부족들의 이동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이다. 아마존 인디오들 사이에는 십수 가지의 언어 ‘줄기’가 존재한다. 유럽인들이 대서양 연안에 상륙했을 때 조우한 최초의 언어는 투피어(혹은 투피-과라니어)였다. 이것은 남쪽의 파라과이 평원부터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 전역과 멀리 아마존 강과 아마존 강의 주요 지류 주변까지 거대한 원호를 그리며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분포하는 언어였다. 이 원호 양단에서는 여전히 투피어를 사용한다. 투피어는 오늘날 파라과이의 제2의 언어이자, 브라질 남부 일부 부족들과 아마존의 남쪽 지류 깊숙이 브라질과 페루 땅에 자리 잡은 투피 부족들이 쓰는 언어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투피-과라니어를 브라질 전역에서 그들의 링구아 제랄lingua geral, 즉 ‘공용어’로 삼았다.
브라질의 심장부, 아마존 강 본류의 남쪽은 제어를 사용하는Je-speaking 부족들의 본거지인데 뭉뚱그려 카야포족, 샤반테족, 팀비라족으로 알려진 부족 집단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 제어 사용 집단은 투피어 사용 집단보다 물에서 떨어져 생활하며 따라서 숲과 풀이 무성한 평원과 관목 지대로 구성된 브라질의 중앙 고원을 아우르는 또 다른 거대한 원호 지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제 전사들은 굉장히 무거운 통나무를 어깨에 지고 이어달리는 경주를 통해 신체를 단련한다. 그들은 워낙 빨라서 사바나의 사냥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는 곤봉이다. 제어와 연관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타 부족들은 아마존 바깥, 브라질 북동부의 내륙과 그보다 더 먼 남쪽에 살았다.
카리브 해의 섬들에서는 아라와크어와 카리브어를 사용하는 부족들 사이에 격렬한 경쟁 관계가 존재했다. 아라와크어(혹은 아루아크어)는 플로리다부터 중앙아메리카까지 카리브 해 인근 전역과 아마존 분지에 분포하며 남미 원주민 언어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였다.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때 아라와크어 사용 부족들은 콜롬비아에서 발원하는 거대한 강들을 따라 북서부에서 아마존 유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아나 연안과 호라이마 내륙, 아마존 강 어귀 주변에도 정착해 있었다. 카누를 타는 기동성이 매우 뛰어난 일부는 멀리 싱구 강, 주루아 강, 푸루스 강, 우카얄리 강 같은 남쪽 지류까지 가서 정착했다. 다른 아라와크 부족들은 아마존 분지의 최남단까지 내려갔다. 일부는 페루 남부 마드레 데 디오스 강 유역에 정착했고 일부는 오늘날의 볼리비아 땅인 그란데 강 근처 대평원에, 소수는 아마존 강 너머 상부 파라과이에 정착했다.
카리브어 사용자들 또한 북쪽 방면에서 들어왔다. 그들의 이름을 딴 바다의 섬들에서는 오늘날 거의 멸족했지만 기아나 전역에는 상당한 규모의 카리브어 사용 부족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는 특히 기아나와 브라질 북단의 마쿠시족과, 수리남과 브라질의 티리오족을 들 수 있다. 카리브어 사용 부족들은 멀리 싱구 강과 타파조스 강 같은 아마존의 남쪽 지류들에서도 발견된다.
다른 어족으로는 브라질과 콜롬비아 사이의 숲에 사는 투카노안족과 그들 남쪽에 브라질과 페루 사이 있는 파노안족이 있다. 그러나 많은 부족들은 다른 어느 주요 언어와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언어학적으로 고립된 언어를 사용한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사이의 야노마미족과 마데이라 강 어귀의 무라족, 브라질 남서부의 남비콰라족, 마투 그로수 주의 보로로족, 아라과이아 강의 카라자족, 파라과이 강 근처의 과이쿠루족(오늘날 카디웨우족), 그리고 다른 많은 부족들은 독자적 언어를 사용한다.
내가 추정하기로는 1500년에 유럽인들이 도래했을 때 아마존 저지에는 4백만이나 5백만 명의 원주민이 (그 가운데 3백만 명은 브라질에) 4백여 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내가 제시한 수치는 최초의 접촉을 기술한 보고서들과 신빙성 있는 원주민 세계의 파괴 속도, 그리고 생존한 원주민들의 숫자와 위치들에 근거해 산출한 것이다. 나의 추정치는 다양한 유형의 지역들의 인구 수용 능력을 외삽 추정하기보다는 지역이나 유역, 나라별 인구 추계를 합산한 것이다. 이 수치는 다른 인구통계학자들의 추정치 범위의 중간에 위치한다.
고귀한 야만인
인간의 창의성과 수 세기에 걸친 경험에 의지해 원주민들은 아마존이 빚어낸 다양한 거주 공간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그곳의 삶에 적응했다. 그들은 강과 호수를 따라 온갖 유형의 숲과 바르제아varzea 침수평원, 세라도cerrado 관목 지대, 그리고 안데스 산맥의 생물 종이 풍성한 운무림cloud forrest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최근의 연구는 아마존의 수렵채집인들이 페루나 멕시코의 도시 생활자들보다 키가 더 크고 건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물고기와 사냥감, 채소로 구성된 그들의 식단이 농업에 의존하는 도시 거주민들의 식단보다 더 균형 잡혔기 때문일 것이다.
브라질 인디오에 관해 쓴 최초의 포르투갈인 페루 바스 데 카미냐는 1500년, 포르투갈 국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참으로 이 사람들은 착하고 단순함 그 자체입니다. …… 주님은 그들에게 훌륭한 남자답게 건강한 신체와 잘생긴 얼굴을 주었습니다.’ 비록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곡물을 재배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오로지 밀과 채소만 먹는 우리보다 더 튼튼하고 잘 먹습니다. …… 그들의 신체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통통하며 아름답습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마을의 오두막과 더불어 인디오들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또한 신기한 나무들과 동물들, 새들을 숱하게 열거하면서 아마존 생태계의 풍요로움에도 혀를 내둘렀다. 그는 ‘지상의 낙원에 가까이 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적었다.
비록 수백 가지의 민족과 부족들이 풍성하고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지만, 그들은 넓게 보아 대체로 유사한 생활 방식과 체격, 심지어 기질을 공유했다. 베스푸치는 원주민들이 유럽에서와 같은 일체의 정부 기구의 개입 없이 목가적 삶을 영위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법률이나 종교가 없고 자연에 따라 살아간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모르며 사유 재산도 없는데 모든 것이 공동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국이나 주 같은 경계도 없고 국왕도 없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으며 각자는 그 자신의 주인이다. …… 그들은 매우 왕성하게 자손을 낳지만 재산을 갖지 않기 때문에 상속인도 없다.’ 다른 초창기 연대기 작가들도 이와 유사한 관찰 내용을 전했다. 군주정, 귀족, 교회, 사법 제도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불필요한 것 같았다. 에라스무스, 모어, 몽테뉴, 루소, 볼테르, 심지어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급진적 발상들을 놓치지 않았고, 그것들을 계급과 독재적인 정부, 기성 종교에 반대하는 전복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했다.
통제받지 않은 낙원에서 살아가는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관념은 얼마간 오류가 있었다. 사실, 원주민들 사이에도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었고 그들이 거대한 족장사회를 발전시킨 경우는 특히 그랬다. 그들은 굉장히 보수적이었고 모든 활동과 생애 주기의 모든 단계를 좌우하는 불문의 행위 규범이 있었다. 오두막 안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전혀 누리지 못한 채 이웃과 가깝게 한 마을에서 살아가려면 사람들은 공동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냥과 농사, 오두막 짓기, 삼림 개간, 기념행사 같은 많은 활동들은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유별나거나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거나 혹은 누군가가 악령에 들렸다고 여겨질 경우 제의적인 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또한 아마존 주민들에게도 종교적 관념이 있어서 식물에 대한 공인된 지식을 보유한 샤먼이 시술하는 신앙 요법과 종교 의식, 다채로운 신화를 갖고 있었다. 모든 부족은 각자 다른 형태의 매장 방식이 있었고 조상에 대한 존숭은 보편적이라 할 만했다. 원주민 부족들은 유럽인들처럼 무자비하게 호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많은 전투를 벌였다. 결국 그들도 일부 철학자들이 상상하는, 국왕도 법률도 교회도 없는 유토피아의 ‘고귀한 야만인’들은 아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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