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밤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보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한 끼 밥을 먹을 때 눈을 감고 가만히 기도드렸습니다. 막막합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꽉 막힌 제 화두가 4대강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그릇의 밥을 비우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방구들에 몸을 눕히며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시 눈을 뜨는 아침을 맞이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어떤 시인은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한 걸음 걷는 걸음에도 역사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제게는 고통스러운 신음성과 아우성뿐입니다.
마당에 나와 앉아서 아침 해바라기를 합니다. 어디에서인지 바람이 불어와 처마 끝 풍경 소리로 노래합니다. 내 눈먼 두 귀는 다만 풍경이 우는구나 그뿐입니다. 아무래도 제 기도는 지극한 간절함에 가닿지 못하는가 봅니다.
스님, 아픈 무릎은 견딜 만하신지요. 저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의 1년이 넘게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무릎도 잘 굽히고 걷는 데 불편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화계사에 계실 때 하는 일 없는 사람이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없다며 보일러도 틀지 않은 냉랭한 방에 겨우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자는 따뜻한 구들방, 스님을 떠올리면 날마다 하는 일 없이 죄만 지으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늦은 동치미를 담갔습니다. 씨앗을 조금 늦게 뿌려서 무가 채 자라지 못한 것을 그간 밤이면 보온 덮개를 씌웠다 낮에는 열어 놓기를 거듭했더니, 제법 씨알이 굵어져서 무를 뽑고 추위로 땅바닥에 납죽 엎드려 있는 붉은 갓도 캐서 한 항아리 담가놓았습니다.
그렇게 즐겨 드시던 승소, 동치미 국수 생각나시면 슬쩍 건너오십시오. 작은 텃밭에 고수나물도 자라고 있고요. 가으내 햇빛에 말려 놓았던 애호박고지 물에 불려 들기름에 살짝 볶다가 육수를 붓고 자박자박 만든 애호박고지나물도 만들어놓겠습니다. 또 있습니다. 처마 끝에 곶감들이 마무리 손질을 기다릴 만큼 다 되어가고 있고요. 고들고들 잘 마른 무말랭이도 매콤달콤하게 무쳐서 한 단지 준비해놓았습니다.
어제 동짓날, 가까이 지내는‘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지인들과 모여 팥죽을 끓이고 농사짓는 친구가 묵은쌀을 내서 만든 절편과 시루떡과 집집마다 가지고 온 반찬을 나누며 저녁나절을 보냈습니다. 저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슬쩍슬쩍 눈시울을 찍어 내리는 이들도 있었고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자리였지만 어수선한 남북관계와 4대강 이야기는 천근만근 짓눌리듯 쿵쾅거리는 포탄 소리와 콰르릉거리는 굴착기의 기계음으로 내내 무거웠습니다.
스님, 곧 매서운 추위가 몰려올 것입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건강하시고요. 너무 용맹정진하시지 말고요. 스님께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공양하고 싶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녕히.
꿈틀거려야지
매화 꽃봉오리가 눈에 띄게 부풀어 보인다. 대한 지나 입춘,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삶도 또한 저처럼 어김없는 것이겠지. 머지않아 씨앗들이 깨어나고 연둣빛 초록이 대지에 찬란할 것이다.
다시 또 봄이라니, 지난겨울 나는 어찌 지냈는가. 배고프면 밥을 짓고 잠이 오면 이불을 폈다. 이따금 아랫마을 친구들이 산에 간벌하는 일로 일당을 받으며 고맙게 실어다준 나무토막을 쩍쩍 도끼질하여 장작을 패기도 했다. 미적미적 게으름을 피우다가 방구들이 식으면 아궁이에 장작 몇 개, 불 지펴 넣었다. 낑낑거리며 참다가 문밖에 나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오줌발을 세우는 일, 달리 뭘 했을까.
겨울 편지를 쓰던 밤이 있었다. 밤새 눈은 내리고 그 눈길을 걸어 편지를 부치러 가던 날이 있었다. 기억들은 까마득한 어린 날의 추억처럼 멀다. 원고 청탁서의 끝 약력란에 나이 한 살을 다시 또 더한다. 산다는 일이 결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한 그릇의 밥과 물, 그리고 나이를 먹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바람 불지 않아도 동백이 진다.
뚝.
뚝.
동백은 어쩌자고 한겨울에 피어나 저렇게 각혈처럼 목숨을 놓는 것인가. 동백의 숲에 들어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삶의 어질머리 순간 나 또한 저 동백을 닮아야 하리. 그렇게 살기가 어디 쉽겠는가, 내 열망일 것이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의 한결같은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다.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덕을 지으라는 뜻일 거다. 사는 동안 나를 나누고 또 나누고 사랑으로 가득해지는 삶, 덕을 쌓으라는 것.
그러나 대덕의 삶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 다만 그에 가까워지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절차탁마해 나가야겠지. 그러다 보면 혹 가까워질 수도 있으리라. 동백처럼 절정으로 타올라 순간 생의 모든 것을 탁 놓아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혹 그렇지 않은들, 또한 그런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부단의 강물처럼 최선을 다해 보내야겠지.
생각지도 않은 겨울 산행을 하게 되었다. 지리산 자락 악양에 들어와 살기 전에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지리산 산행을 했으나 정작지리산 자락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부터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산행을 하지 못했다.
왜 그런 것일까. 모악산에 살고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악산에 살기 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산행을 하던 것이 그곳에 13년 사는 동안 안내 등반과 단식을 하면서 두어 번, 고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올랐을 뿐 산에 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산을 나와 다른 대상으로 분리하여 사는 것과 한몸이 되어 사는 삶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 여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삶이 이타의 경계를 짓지 않는, 대상과 분별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천부당만부당한 말이지만.
겨울 산행은 처음이었다. 눈 쌓인 지리산, 산 위쪽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데 산행을 시작한 성삼재에는 자욱한 구름 안개와 겨울비가 추적거렸다. 그러나 어찌 이 반가운 겨울비를 탓할 수 있겠는가.
지리산 주변 곳곳의 마을 저수지들은 60년 만의 가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바닥을 다 드러내고 있는 형편이어서 마음 한구석이나마 간절하게 오시는 겨울비를 탓할 수 없었다. 노고단을 올라 비로소 능선을 따라 걸었다.
삼도봉을 넘어 연하천에서 1박을 하고 세석으로 가는 길, 눈보라를 맞으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다가 형제봉이라는 바위를 만났다. 악양에도 형제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행 중에 만난 형제봉은 거대한 바위 산봉우리가 형제처럼 솟아 있는 곳이다. 그 까마득한 바위 위에 모진 목숨으로 바람을 타며 서 있는 소나무라니.
벽소령 대피소를 지나 세석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촛대봉을 거쳐 장터목으로 향한다. 비틀비틀 몸이 날아가는 강풍을 온몸으로 버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더딘 발걸음과 무거운 몸을 끌고 가는 길, 그만 내려가고 싶었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웠다.
장터목에서 잠시 쉬며 물으니 영하 20도가 넘는다고 한다. 이번 산행길 최후의 식사, 꿀맛 같은 라면으로 마지막 점심을 마쳤다. 제석봉을 건너 천왕봉으로 오르는 내리막길에서 참 눈부신 풍경 눈꽃 상고대를 만나고, 천왕봉에 오르면서부터 바람은 흔적도 없이 잠잠해졌다. 이번 산행의 고마움으로 하모니카 한 곡을 제석봉 자락에서 불어드렸는데 그래서였을까.
드디어 눈앞에 다가왔구나. 천왕봉, 이제 저 산만 오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인생도 그렇다. 희로애락, 일희일비, 삶의 비탈길을 오르면 언젠가는 세상의 생명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평한 내리막길이 나타나겠지.
겨울 지리산 산행을 하며 다시금 깨닫는다. 통천문 지나 천왕봉 아래, 저 아래 내가 살고 있었구나. 살아온 인생역정이 주마등처럼 피어올랐다. 기쁨과 회한과 씁쓸함과 빛나던 청춘의 사랑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나를 백 번 천 번 나누고 나눔의 세상을 위하여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야 하리라. 그 만고불변의 진리를 망각하고 사는 인간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설치류들, 이 땅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진드기…….
욕망이, 욕심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 나누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기적인 자아에 빠진 마음들이 새해에 주고받는 덕담까지 바꾸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집안 두루 화목하고 건강하세요” 대신에 “돈 많이 버세요. 부자되세요”, “싸장님 대박나세요” 등과 같은 천박한 말들을 내뱉게 만든 것이다.
그와 같은 천박한 말들을 방송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고 있는 작태라니, 어찌 나라가 이 꼴이 되지 않겠는가. 경제경제경제, 돈돈돈 하는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다. 그러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어찌할까나. 다시 이 땅을 온통 구정물 통, 아수라장으로 만들 운하를 만든다는데, 피와 눈물과 수많은 죽음으로 일구어진 민주주의의 나무는 잘려지고 송두리째 뽑히는데, 생명들의 신음성, 아우성과 외마디 비명 소리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묻고 또 묻는다.
너, 어찌할 것인가.
방문을 열고 나간다. 문밖은 다시 눈보라. 나는 청매화나무 아래 오줌발을 세우다가 바라본다. 청매화 작은 꽃봉오리에 푸른 기운이 다부지다. 희망이며 사실이다. 그래 다시 꿈틀거리는 것이다. 겨울이 가고 있다. 봄이 온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