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씻어 먹는 쇼티
밥 넬리는 고구마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편지를 마치자마자 관찰을 하러 늘 갔던 장소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원숭이 무리는 이미 바위에서 노는 데 흥미를 잃은 터였다.
빌헬름과 그레고어는 둘이서 함께 어깨에 바구니를 이고 뭍으로 왔다. 밥 넬리는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바구니에는 고구마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아기 원숭이들이 달려왔다. 그레고어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암컷 아기 원숭이 한 마리가 바구니를 넘어뜨렸다. 아기 원숭이는 깜짝 놀랐다.
고구마는 모랫바닥으로 떼굴떼굴 굴러갔다. 아기 원숭이들은 불그스레한 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구마를 쪽쪽 빨아 먹거나 아삭아삭 씹어 먹고, 고구마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후비기도 했다. 아기 원숭이 한 마리는 고구마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고구마 두 개를 파란 하늘을 향해 번갈아 던져 올리더니 다시 잡으려고 했다. 고구마 두 개 중 하나는 모랫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밥 넬리는 그 모습을 보고 곡예를 떠올렸다.
원숭이 무리는 아기 원숭이가 하는 짓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지치고 배가 불러 모래 언덕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별안간 쇼티가 나타나 아기 원숭이들을 손짓으로 불러 모았다. 아기 원숭이들은 곧장 쇼티를 빙 둘러쌌다. 쇼티는 쉿쉿 소리를 내며 나지막이 뭔가를 설명하는 듯 보였다. 원숭이들은 쇼티를 따라 고분고분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의 끄트머리가 이제 막 마른 모래를 적시고 간 후였다.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 가운데 특히나 어린 것들이 겁을 집어먹었음을 알아차렸다. 예기치 않게 높은 파도가 밀려와 자기들을 집어삼키고 너른 바다로 휩쓸고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 무리에서 그런 식으로 아기 원숭이가 사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에게 자신의 놀라운 발상을 전해 주었다. 쇼티는 모래투성이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더니 눈을 내리깐 채 다시 뱉어 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뱉어 냈던 고구마를 주워 들고 바닷물에 깨끗이 씻었다. 쇼티는 어린 원숭이들의 눈앞에서 깨끗해진 고구마 조각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 맛있다는 듯 입술로 주둥이를 핥아 보였다. 그러니까 쇼티는 거기 서서 어린 원숭이들에게 모래로 더러워진 고구마보다 물로 씻어 낸 고구마가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말이다.
밥 넬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원숭이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물론 그는 원숭이들이 서로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거나 가르쳐 주는 데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밥 넬리는 쇼티가 지저분한 고구마보다 깨끗한 고구마가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해 깜짝 놀랐던 것이다. 쇼티는 지저분한 고구마의 맛과 깨끗한 고구마의 맛을 모두 알고 있었다. 밥 넬리는 쇼티의 바위에 깨끗한 고구마를 가져다 놓았다. 그 후 그레고어 무리가 고구마를 모래사장에 던져 더러운 상태로 먹었다.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에게 깨끗한 고구마의 맛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기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한두 걸음 더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고구마를 부지런히 물속에 담가 깨끗이 씻은 다음, 파도 위로 솟아오른 큼지막한 바위 위에 올려 두었다.
아기 원숭이들은 저마다 엄마한테 달려가 깨끗한 고구마를 자랑스레 보여 주며 엄마가 보는 앞에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아기 원숭이들이 주먹만 한 고구마를 쥐고 흔들 때 어미 원숭이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미 원숭이 한 마리가 아기 원숭이의 성화에 못 이긴 척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미 원숭이는 고구마를 두 번 세 번 더 베어 물더니 끝내 고구마 네 개를 한꺼번에 먹어 치웠다.
그 암컷 원숭이는 예쁜 루이제였다. 밥 넬리는 그 원숭이를 그렇게 불렀다. 루이제가 다른 암컷 원숭이들보다 예뻐서가 아니었다. 이따금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바닷가를 따 라 산책하는 모양새가 다른 원숭이들한테 주목받고 싶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기 원숭이들은 기뻐했다. 다른 어미 원숭이들도 루이제를 따라 새로운 먹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미 원숭이들은 아이들이 씻어서 가져다준 고구마를 몽땅 먹어 치웠다. 이제 어미 원숭이들은 고구마 한두 개를 입으로 잘게 쪼개어 물기가 있는 고구마 조각을 갓난아기 원숭이들이 빨아 먹게 했다.
밥 넬리는 그 광경을 단 일 초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그마한 게 한 마리가 샌들 가죽에 매달려 있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자그마한 게는 샌들 가죽과 살갗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살짝 그의 발꿈치를 깨물기까지 했다. 밥 넬리는 쇼티가 먹이를 씻는 것을 이해했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렇게 씻은 고구마를 다른 원숭이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오로지 나이가 가장 많은 우르반, 이고어 그리고 카를만이 먹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먹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밥 넬리는 동이 트기도 전에 고구마가 든 두 번째 바구니를 쇼티의 바위로 가져다 두었다. 그는 고구마 덕분에 원숭이 무리 사이에서 쇼티의 서열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오늘 다시 쇼티가 고구마를 나누어 줄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쇼티의 서열은 높아질 것이다.
여느 아침처럼 꼬마 원숭이는 발길을 바위 쪽으로 향하더니 바위 사이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어제 원숭이 무리가 바위를 점령했던 것이 다행히도 쇼티가 좋아하는 장소에 찾아가는 기쁨까지 망쳐 놓지는 않은 듯했다.
밥 넬리는 꼬마 원숭이가 보물 창고에서 고구마가 가득 든 바구니를 다시 찾게 되어도 놀라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동물은 원인을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밥 넬리는 여전히 세 개의 바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밥 넬리는 곧 쇼티가 바위에서 모래사장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제처럼 고구마를 가득 든 두 손으로 가슴을 꼭 누른 채로. 오래 지나지 않아 아기 원숭이들이 자기들의 작은 영웅 주위로 모여들었다. 쇼티는 어제보다는 훨씬 익숙한 몸짓으로 새로 발견한 먹이를 나누어 주었다.
쇼티는 하루 종일 고구마를 나누어 주느라 분주했다. 매번 다시 바닷속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그리고 바위와 해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뭍으로 고구마를 날랐다. 밥 넬 리가 두 번째 바구니에 넣은 고구마를 쇼티가 원숭이들한테 나누어 주는 일은 저녁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건장한 원숭이 한두 마리가 바위에 있는 바구니를 통째로 해변으로 옮겼더라면 일은 훨씬 쉬웠으리라. 어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 고구마를 배가 부르도록 충분히 받았다. 쇼티는 지치지도 않고 바위로 잽싸게 달려가, 혼자서 두 손으로 고구마를 날라 원숭이 무리의 식탐과 배고픔을 달래 주었다. 직접 바위로 가서 보급품을 챙길 생각을 하는 원숭이는 아무도 없었다. 밥 넬리는 꼬마 원숭이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쇼티는 바위를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 두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쇼티는 고구마를 제 손으로 직접 나누어 주는 것을 즐겼다. 근사한 새 먹이를 나누어 주는 것은 오로지 자기뿐이었다. 밥 넬리의 계획이 성공한 듯 보였다.
밥 넬리는 그날 마침내 이 원숭이 무리의 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세어 볼 수 있었다. 여태 그렇게 많은 원숭이가 한꺼번에 바닷가에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밥 넬리가 센 원숭이는 모두 아흔세 마리였다. 처음 보는 암컷 원숭이 다섯 마리가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도 보았다. 원숭이들은 아직 어렸는데, 밥 넬리가 아는 어미 원숭이들의 딸들인 것 같았다. 그는 원숭이들을 위해 하나하나 성호를 그었다. 나중에 예쁜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원숭이들은 서로서로 더없이 평화롭게 지냈다.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모두 새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었다. 그사이 다들 고구마를 손수 씻어 먹었다. 고구마가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곧장 씻어 내곤 했다. 아기 원숭이들이 어미들에게 씻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어미 원숭이들은 그것을 나이가 좀 더 든 아들들에게 일러 주었다. 그 녀석들은 다시 어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렇게 고구마 씻는 법은 아기 원숭이들로부터 어미를 거쳐 청소년과 어른 원숭이들한테로 퍼져 나갔다.
저녁이 되자 고구마를 입에 대지 않은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원숭이 무리 전체가 고구마를 맛보았다. 우르반과 이고어, 카를을 빼놓고 말이다. 고구마가 동날 무렵이 되자 그 셋은 마침내 다른 원숭이들처럼 고구마를 손에 쥐기는 했지만, 모래가 묻어 더러운 것을 그대로 먹었다.
암컷 원숭이 세 마리가 우르반과 이고어, 카를한테로 고구마를 가져가 구덩이를 판 다음 녀석들의 발밑에 고구마를 내려놓았다. 힐데가르트와 게르트루트, 우르줄라가 바로 그들이었다. 발터가 이틀 전에 거울을 갖다 바친 것과 똑같은 모양새였다. 나이 많은 세 원숭이는 낯선 먹이를 씻지 않은 채로 주둥이에 쑤셔 넣었다. 고구마를 먹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새로운 먹이가 입맛에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이 많은 원숭이들도 자기 자리에 앉아서, 쇼티가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들어가 고구마를 물로 깨끗이 씻어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한테 씻은 고구마를 나누어 주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발밑에 놓인 고구마를 으득으득 모래 씹는 소리를 내며 먹었다.
밥 넬리는 그 세 마리 원숭이가 마침내 몸을 일으켜 바닷가로 향하기를 온종일 기다렸다. 쇼티한테 고구마를 건네주고는 씻어 오게 시키려고 말이다. 녀석들이 손수 고구마를 물에 담그는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우두머리가 할 일은 무리를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일이지, 고구마를 물에 씻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숭이 무리 전체가 모래가 묻지 않은 깨끗한 고구마가 더 맛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로지 나이 든 원숭이 세 마리만이 아무것도 모르는 양 행동했다.
밥 넬리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원숭이들이 잠자리를 찾기 훨씬 전이었다. 그는 다시 데이비드에게 편지를 썼다. 불안한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석유램프의 노란 불빛이 흐르는 대나무 탁자에 앉았다. 펜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밥 넬리는 데이비드에게 오늘 하루 관찰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이 든 원숭이들이 씻은 고구마를 먹는 것을 고집스레 거부한 일을 전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우르반과 이고어, 카를이 고구마를 씻어 먹으려 하지 않고 모래가 묻은 그대로 주둥이로 가져간 이유가 뭔지 아니?
아빠가 어느 편지에서 이상하게 생긴 계단을 그린 적이 있잖니. 그 계단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렴. 카를이 맨 위에 있는 왕좌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마리는 그 바로 밑, 가장 높은 계단에 앉아 있단다. 쇼티는 맨 아래, 제일 낮은 계단에 웅크려 있고말이다. 이제 너도 그 이유를 알겠지.
무리에서 가장 약한 녀석들은 세 우두머리에게 뭔가를 알려 줄 수 없단다! 다 자란 어른 원숭이가 나이가 지긋한 세 원숭이의 눈앞에서 고구마를 깨끗이 씻은 다음 젖은 채로 갖다 바쳤더라면 우르반과 이고어 그리고 카를도 분명 그것을 받아먹었을 거야.
그런데 이 웃기는 쇼티란 녀석은 아기 원숭이들이랑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나 하지. 클 생각은 않고 말이야. 쇼티는 다른 청소년 원숭이들만큼 몸집이 크거나 강하지 않아.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한테나 씻는 법을 보여 줄 수 있단다.
오늘은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쇼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히 알게 된 하루였단다. 우두머리들은 쇼티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어. 쇼티 녀석은 우두머리들한테 뭔가를 보여 줄 만한 서열이 아닌 거지. 그게 분명 자기들한테 이익이 되는데도 말이야!
어쩌면 녀석들이 보기에 쇼티는 자기들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지도 몰라. 쇼티는 평범한 청소년 원숭이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니까. 우르반과 이고어, 카를은 저 꼬마 녀석이 다른 동물들한테 공격을 당하거나 그 밖의 위험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레고어가 쇼티 옆에 버티고 서서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장담하건대 청소년 원숭이 녀석들이 쇼티의 손에서 고구마를 낚아채 갔을 거야. 아기 원숭이들만이 저 꼬마 녀석을 좋아하는 것 같구나. 그러니 쇼티가 아기 원숭이들한테 씻는 법을 가르쳐 주었겠지.
아마도 그래서 쇼티는 아기 원숭이들과 함께 놀고 장난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나 보다. 쇼티가 다가가면 좋아하는 건 아기 원숭이들뿐이니까. 나머지 무리에게 쇼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존재지. 고구마도 그 점을 바꿔 놓지는 못했어. 저 꼬마 녀석은 정말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저 녀석은 너와 할머니 그리고 이따금 아빠와도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야. 어쨌든 우리는 쇼티를 저렇게 깔보지는 않을 테니까.
데이비드,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빠에게 쇼티는 꼭 좋은 친구처럼 친근해져 버렸단다. 그사이 녀석을 꽤 오랫동안 주의 깊게 살펴봐 왔기 때문만은 아니야. 녀석이 다른 원숭이들과 달라서 가깝다고 느끼는 걸 거야.
아빠가 아마 열한 살, 열두 살 때쯤이었어. 모두 학교로 애완동물을 데려와서 아이들 앞에서 소개해야 했지. 아이들은 대부분 고양이나 개를 데려왔단다. 어떤 아이가 작은 은색 새장에 담긴 카나리아를 데려왔던 기억도 나는구나.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으면 마음에 드는 동물을 한 마리 골라 이야기해야 했지. 우리 집에서는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았고, 나는 동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단다.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가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들 눈치챌지도 몰라 두려웠거든.
그리고 나는 집에서 나만의 애완동물을 기르지 못해서 얼마나 슬펐는지.
밥 넬리는 편지를 끝내지 않은 채 간이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쳐서 잠들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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