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의 가치를 확인하는 여정
모든 일은 하나의 생각에서 나와 이루어진다. 그 생각이 올발라야 역사의 흐름이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이었다.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 나라에서 선거가 있었다. 물론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2012년의 선거들이 주목받았던 이유는‘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민중의 대규모 자각, 이후 들불처럼 번진 99퍼센트의 함성 ‘오큐파이 운동’의 열기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대규모 각성이 2011년 ‘희망버스’로 집중되었고, 이는 ‘분노하라’, ‘점령하라’를 넘어‘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99퍼센트의 갈망으로 이어졌다.
변화의 시기에는 하나의 생각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 싶었다. 인간 삶의 기본을 갖춰줄 수 있는 전문가의 식견을 얻고, 그 식견을 통해 대중이 마음의 눈을 뜨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 전문가는 지혜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혜를 갖춘 눈 밝은 석학을 만나고자 살피고 또 살폈다. 그렇게 세계의 지성들을 만나는 인터뷰길에 올랐다.
세계적 석학이라는 명성을 가장 우선으로 꼽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스승은 있지만, 이 책의 밑거름이 된 이번 기획에서는 외부에서 조망하는 시각을 담고 싶었다. 한 시대는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한 자본의 세계화라는, 약자의 보호막을 해체하는 신자유주의 태풍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수 없다. 그렇기에 큰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짚어내는 시간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읽어내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지혜를 갖춘 세계의 지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놈 촘스키Noam Chomsky,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피터 싱어Peter Singer, 코넬 웨스트Cornel West,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등 일곱 분이었다.
놈 촘스키 선생과는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고통받는 다수가 이윤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에게 표를 주며 자신의 권력을 넘기는 현대의 민주주의, 이것이 과연 다수를 위한 제도인지 묻고자 했다. 그의 설명은 막힘이 없었고, 답 또한 분명했다. 로버트 서먼 선생을 찾은 이유는 완성 가능성이 있는 변혁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 같은 피의 혁명, 즉 ‘뜨거운 혁명’의 시효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파해왔다. 뜨거운 혁명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억압을 불러오기에, 개인 내면의 혁명을 통해 평화의 힘을 키워 비폭력적인 ‘차가운 혁명’으로 세상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이 두 학자를 만났을 당시, 한국에서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는 한편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와 있었다.
4·11 총선에서는 야권의 예상과 달리 보수여당이 승리했다. 그때 미국 민주당의 주요 싱크탱크를 운영했던 조지 레이코프 선생을 만났다. 한국의 정치권에서 무성하게 이야기되는 ‘프레임’을 세상에 확산시킨 분이다. 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제기하는 그 프레임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프레임을 앞세우는 정치권과 언론이 생존권 투쟁의 현장을 외면하는 것이 선거 전략상 효과적인지도 묻고 싶었다. 레이코프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한 프레임은 고정된 매뉴얼이 아니었고, 특히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중요한 지적이 내게 와 닿았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봄에 만난 선생과의 인터뷰를 복기하면서 다시 한 번 이 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선생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교육’이야말로 미래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당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상징되는 자살인구 증가의 배경을 설명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면 이 두 문제가 함께 풀리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려봐 왔다. 3년 전 밴쿠버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을 통해, 밴쿠버 교육청에서는 ‘명상’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 명상을 활용하는 힐링 프로젝트를 취재하면서 수많은 미국의 학교와 사설 교육 프로그램에서 명상을 이용해 학생들의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행복의 조건을 이론으로 풀어내며 덴마크, 핀란드 등의 창의력 교육에 조언을 해온 칙센트미하이 선생은,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우리의 교육은 학생 스스로 행복을 찾아내도록 돕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리학의 거성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인 피터 싱어 선생과는 동물권, 빈곤, 그리고 역사적으로 좌파가 실패해온 이유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를 통해 재발견한 것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토종의 가치’였다. 과거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나누며 생존해온 그 방식들 속에 현대 문명의 종말을 막아내는 해법이 있다는 혜안이었다. 일곱 학자들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이는 아마도 코넬 웨스트 선생일 것이다. 그는 2012년에 ‘빈곤 투어’를 하며 미 전역을 돌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엄청난 대중이 모여서 미국이 안고 있는 인종 문제, 신자유주의로 인해 더욱 깊어지는 빈곤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강력한 저항 의지를 모아냈다. 그는 가난이야말로 현대판 노예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역사를 바꾸어나가는 도도한 흐름은 오직 민중의 자각이라고 답하며 끈끈한 연대를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환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 선생은 땅을 지키는 대지의 어머니로서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온 인물이다. 그는 땅을 일구어 식량을 얻고 생존해온 인류의 생활이 파탄나지 않도록 씨앗을 살리며 지구를 지키고 있다. 시바 선생을 찾아간 가장 큰 이유는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설명을 들려줄 지혜를 갖춘 분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인터뷰 기획의 계기가 되었던,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치를 설명해주는 분이다.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의 작은 뒤틀림도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봄부터 겨울까지 꼬박 ‘깨어나자 2012: 석학을 만나다’ 인터뷰에 전념했다.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며 느낀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 책 곳곳에 밝혀두었지만, 그들에게 한국인은 세계사에 큰 자취를 남긴 위대한 국민이라는 점이다. 그 어른들이 한국인을 이렇듯 올려다보는 근거는 삼성도, 위대한 건설현장의 업적도, 소비의 주체가 되어 국력을 과시한 관광단이나 문화사절단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중의 투쟁의 역사였다.
우리가 지나온 민주화와 계급투쟁의 길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었다. 우리는 고작 100년 동안 엄청난 산맥 같은 전환들을 이뤄냈다.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온갖 질곡 속에서도 하나하나 인간의 가치를 완성해왔다. 때론 후퇴하고 함정에 빠지고 모순에 걸려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미워하면서도 버리지는 않았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권교체를 염원했던 이들은 극심한 자기부정을 경험했다. 자살하는 노동자 활동가의 영정과도 마주해야 했다. 촘스키 선생께 마지막으로 건넨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때 보았던 그의 얼굴을 기운 잃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선생의 표정은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 당신이 답인데……’라고 반문하는 듯했다. 그리고 선생이 직접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절망하고 주춤했던 이들에게 억압을 끊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대오를 이끌던 푸른 옷의 노동자, 넥타이 부대뿐 아니라 바로 이들을 지탱해주었던 모든 삶의 주역들이 역사는 발전한다는 증거를 세계인에게 제출했던 것이다.
이겨낼 수 있으리만치 만만해 보이던 가난이 이제는 오히려 나만 가로막는 큰 벽으로 다가온 시절이다. 하지만 이 벽에는 나 혼자 부닥친 것이 아니다. 성장에 취하여 잠시 풀어진 사이 모두 부자의 덫, 구조의 덫에 걸려버렸다. 역사 속에서 늘 있어온 고난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 두려운 가난을 벗어나고자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각자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러나 선택을 하는 대다수가 바라보는 지점은 비슷하다. 너도나도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기는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며 연대를 확대해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성취해온 대로 또다시 다수의 삶을 지켜낼 변화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려고, 더 멀리 보려고 안경알만 닦아왔던 내게 석학들이 꺼내준 것은 거울이었다. 내 안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결국 답은 내 안에 있고,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답도 우리 한민족이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이 우리의 가치를 확인해보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단 한명의 독자라도 그 석학의 지혜에 화답한다면, 세상은 한층 나아지리라 믿는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 Peter Singer
탐욕이 가져온 문명의 위기
옛것의 삶, 거꾸로 가는 산업화에 희망이 있다
안희경
한국의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후, 지난 50여 년 동안 가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선善으로 추구해오던 가치가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가치가 되기도 했죠. 다시 공동의 이익을 위하는 가치를 추구하기란 구조가 변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피터 싱어
자본주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많은 양의 재화를 값싸게 생산하죠. 왜냐하면 성과급을 적절히 이용해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고, 남보다 창의적이어야만 인센티브를 받아 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저는 이보다 나은 생산 시스템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본주의가 적절히 제어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러한 가치 기준이 계속 팽창합니다. 모든 것을 단기적 가치로 바꿔낼 겁니다. 숲의 가치는 그 안에 있는 자원이나 목재만으로 판단되고, 그 아름다움이나 그 속에 사는 동식물의 생활 터전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상품 가격으로 환급될 수 없는 것은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무가치하다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단지 이런 경제적 이익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안희경
그러면서 자연은 오로지 개발 대상이 되고, 또 우리는 이런 개발이 곧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집니다. 성장 속에서 개인의 생활도 윤택해질 거란 희망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요. 갯벌을 메우고 강을 개발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
우리는 어떤 사회가 좋은지를 경제 규모나 또는 경제적으로 만들어내는 수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삶의 질로 판단을 내려야 해요.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요소에는, 가령 예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강과 같이 잘 보존되고 보살펴지는 자연환경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받고 생태적 환경이 유지되는 것이 지속적인 경제성장보다 더욱 삶의 질을 좋게 만들어주는 거죠. 개발을 하게 되면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자연 서식지들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곳은 궁극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해야 할 귀중한 가치일 텐데 말이죠.
제가 한국에 갔을 때 고층으로 올라가는 수많은 개발 현장을 보았습니다. 사람들도 알 겁니다. 이렇게 외형적으로 마구 뻗어나가는 것을 더 이상 좋아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왜냐하면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인 경제 상태로 이끌 수 있는지 배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어떻게 조절할지도 배워야 하고요. 성장만을 원하는 그 욕망도 어느 지점에서는 멈춰야 합니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귀중한 자원을 돌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외형적인 개발을 막아내며 자신들의 땅을 지켜낼 거라고 믿어요.
안희경
인간에게 이타적인 본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의 책을 보면서 가장 선명하게 다가왔던 예가 헌혈이었습니다. 당장의 혜택이 없어도 기꺼이 피를 나누는 행위는 이윤에 따라 행동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시장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죠. 더불어 어떤 문화에서는 인류뿐 아니라 전 우주를 살피는 윤리적 안목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전통적 생활양식에도 저녁밥을 짓기 전에 이웃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지 살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밥을 짓지 못하는 이웃이 있으면 십시일반으로 나누려는 보살핌이죠.
아메리카 인디언의 옛 가르침은 현대인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나무가 죽고, 마침내 온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다음에야 인간은 돈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일갈은 현대인들이 개발 경쟁 속에서 공멸로 가고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이타적 본성을 깨울 수 있을까요?
피터 싱어
전통적인 텍스트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확실히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불교의 가르침 속에 있는‘지각할 수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 사상’을 좋아합니다. 불교철학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에 더 나은 관계의 기반을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일부 서구적 생각들이 갖는 인간과 동물 사이를 분리해내려는 경향을 메워줄 수 있다고 봐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파생된 이 같은 사고를 보완해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맹자의 가르침을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배고픈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잘 설명하고 있어요. 맹자가 양혜왕에게 한 말입니다.
“왕께서는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을 놓고‘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내 탓이 아니라 무기 탓이다’라고 하시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곳에 정부의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시장이 조절할 것이다 또는 자연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타인이 배를 곯고 있는 것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악에 대항하면 그 악을 막아낼 수 있고, 착한 정의를 이루고자 하면 그 선을 행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안희경
선생께서는 빈곤 지역을 열정적으로 돕고 계십니다. 한국에서도 해외 구호에 대한 지원이 늘어가는 추세인데, 한편에서는 국내에 먼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피터 싱어
네, 한국에도 아직 빈곤이 있죠. 그래도 저는 다른 나라들이 겪는 극단적인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에 하루 1,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극단적인 상황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보다 기아로 고통받는 지역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한국의 가난에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 한국이 절대 빈곤선의 위험에 빠진 이들을 돕는 일에 우선 나서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죠. 같은 액수의 돈도 빈곤 국가에서는 더 오랜 시간 힘이 됩니다. 500달러를 한국에 있는 한 가족에게 줄 경우, 아마 일주일에서 한 달 생활비 정도일 거예요. 이 돈을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주면 어떨까요?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 500달러는 한 가계의 1년 수입보다 큽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돈이죠. 꼭 돈이 아니어도 그 동네에 깨끗한 물이나 위생에 필요한 시설을 갖춰줄 수 있고, 의료 지원이나 학교 설립을 거들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주 적은 돈으로 가능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 돈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고요.
안희경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네 옛말이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일종의 방관적 심리 혹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 앞서 효과를 따져보는 경영적 심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피터 싱어
실험 사례가 하나 있어요. 르완다 난민촌의 난민 1500명을 살리기 위한 성금을 모으자고 하면서 전체 인원수를 계속 바꿔 말했습니다. 그 결과, 1만 명 중 1500명이라고 했을 때보다 3000명 중 1500명이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은 기금이 만들어졌죠. 저는 우리가 살릴 수 있는 그 생명만 바라봤으면 합니다. 생수 한 병을 줄이면 한 아이가 하루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우리가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면 세상은 더욱 폭력적이 될 겁니다. 절대빈곤에는 단지 물질적 결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의 결핍, 힘없는 자의 설움이 함께하죠. 뺏고 빼앗기고, 경찰도 손쓰기 어렵습니다. 부패와 성폭행이 만연하고요.
사람들은 가난할 때 아이를 많이 낳아요. 그리고 교육시키지 않죠. 왜냐하면 아이가 교육을 미처 받기 전에 죽을 거라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도 아이를 많이 원합니다. 적어도 하나둘은 살려서 자기가 늙었을 때 보호받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이것은 또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는 분명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안희경
선생께서는 개인의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시는데, 지진으로 더욱 피폐된 아이티를 보면, 자연재해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다국적 자본에 의해 경제구조가 자급력을 잃었습니다. 산업화 속에서 농사를 포기하다 보니 결국 경제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식량난까지 겪는 빈한한 처지로 떨어졌습니다. 아이티 수도의 가난한 지역에선 강간, 범죄가 일상이 됐고요. 이런 구조적 모순에 빠진 곳에 그 문제점을 들추기보다 돈을 보내는 일은, 오히려 부자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이 경제구조를 이용해 얻는 이익을 보장하는 것 아닐까요?
피터 싱어
아이티는 오랫동안 매우 가난하게 지내왔어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정부들이 되풀이돼왔고요.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정부와 엮이는 다국적기업들은 제겐 장물아비로 보입니다.
그런 다국적기업들과 장물아비들이 다른 점은 국제법과 정치적 역학관계가 다국적기업을 소유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좌파들이 제게 부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난도 합니다. 그런 부자들이 구호기금을 내놓고 스스로 위로를 받도록 하니까 그들을 인정하는 거라면서요.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하지만 각자 바라는 혁명적 방식이 성공하기 어렵다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현실적 방법을 더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그래도 긍정적이에요. 세계은행이 절대빈곤 기준으로 제시한 액수가 하루 1달러 25센트입니다. 이 이하의 수입을 버는 사람이 14억 명이고요. 1981년에는 19억 명이었어요. 열 명 중 네 명이 절대빈곤선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네 명 중 한 명으로 줄었습니다.
안희경
나머지 세 명이 조금씩 자기 몫을 내놓는다면 한 명을 살릴 수 있겠네요.
피터 싱어
우리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전쟁을 했고, 르완다에서 그리고 나치 치하 유럽에서 인종청소를 했어요. 그렇지만 장기 추세 속에서 전쟁과 폭력은 가라앉는 경향을 보입니다. 1945년 이후 강대국들이 직접 충돌하는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매년 피할 수 없는 가난 속에 죽어가는 아이들의 수는 1960년대에 2000만 명이 넘었는데 오늘날에는 약 800만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지금의 인구는 1960년대의 두 배가 넘으니, 비율로 보면 절반에서도 훨씬 더 격감한 거죠. 가난 속에서 신생아들이 어쩔 수 없이 말라리아, 홍역, 설사로 죽는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이는 지구적 빈곤을 막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계속 성과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예시라고 봅니다.
안희경
선생은 국제생명윤리협회를 만들어 이끌고 있습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는 매우 어려운 주제를 놓고 온 미국인들이 토론을 했습니다. 바로 줄기세포 연구였죠. 한국에서는 복제양 탄생 성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바이오 연구를 미래의 주요 산업이라고 내세웠지만, 생명윤리적 논쟁이 국민적 안건으로까지 퍼지진 못했습니다.
피터 싱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든 나라가 반드시 토론하고 짚어봐야 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토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논쟁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접근합니다. 그러니까 초기 배아의 지위를 염두에 두고, 줄기세포를 취하는 실험을 초기 배아를 파괴한다는 데 집중해서 바라봅니다. 저는 이런 점이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고 여깁니다. 저는 초기 배아를 지각 있는 존재인 유정有情·sentient being으로 보지 않습니다. 초기 배아에는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배아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미국의 논쟁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조정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그런 관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논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미국 사람들보다 현명하게 접근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오산업에서 나오는 성과를 의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토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돈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혜택을 차별하지 말고 공공보건차원에서 접근해야 해요.
안희경
불교의 주장 중 “의식이 깃드는 시기를 연기緣起가 일어나는 생명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초기 배아를 유정중생有情衆生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초기 배아를 지각 있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선생의 입장과 통한다고 봅니다.
피터 싱어
국제생명윤리협회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을 갖지 않습니다. 다양한 주제와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데 목적을 두죠. 매우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떤 공식적인 의견을 갖지 않을 겁니다. 생명윤리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를 늘려나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일부 나라에서는 생명윤리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자의 생명윤리에 관한 견해를 검열하고 삭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아요. 더 다양하게 접근하는 대중과 함께하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안희경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를 중시하는 선생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에게 차별 없이 접근하는 태도를 다시 확인합니다. 윤리, 도덕성 같은 덕목은 주로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누가 윤리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피터 싱어
모두입니다. 저는 우리가 단 한 명의 위대한 윤리적 지도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윤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며 사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면 이해가 싹틉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 1달러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일이 어떤 건지 궁금증을 가져봅시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가 죽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요? 조금만 형편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죽진 않을 겁니다.
공장식 축사에 갇혀 있는 동물이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따로 윤리적인 지도자가 있을 필요가 없죠. 모두 그렇게 물어볼 능력이 있으니까요.
안희경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피터 싱어
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주는 도움의 양을 엄청나게 늘릴 겁니다. 지구의 빈곤을 줄일 거예요. 나는 공장식 축사를 없앨 겁니다. 그래서 동물이 비록 도살되어 고깃덩이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짐승다운 생을 살게 하겠어요. 그리고 나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겁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의료 서비스가 이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삶을 절박하게 이어가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사용되는 것을 볼 겁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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