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실례되는 말일지 몰라도 히사이시 씨는 아주 ‘멀쩡한 사람’입니다. 직접 만나 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겁니다. 세계 어디서나 예술가란 일단 ‘이상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제 생각에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예술가든 아니든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지요.
대화해 보면 알겠지만 히사이시 씨는 아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차근차근 생각하고 그 결과를 잘 다듬어서 표현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 대화를 나눠도 질리지 않습니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는데요. 그런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이 서로 비슷해서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무릎을 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음악은 논리성이 강합니다. 일부 음악은 정서에 강하게 호소하므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클래식은 특히 논리적인 경향이 큽니다. 음악적 재능, 그중에서도 작곡의 재능과 수학적 재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서구에서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온 사실이지요.
히사이시 씨의 조리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좋은 음악을 듣는 기분입니다. 히사이시 씨와 대화하며 음악과 언어가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대담 중 아주 감명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대중성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교한 논의가 압권이었지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현대 사회는 소위 ‘대중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는 예술가든 학자든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 팔리기만 하면 그만인 것도 아닙니다. 잘 팔리니까 질이 높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잘 팔리지 않으니까 질이 높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히사이시 씨 본인이 그 점을 의식하고 고군분투하기에 문학이나 애니메이션 전문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문 특이한 관점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히사이시 씨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사전에 좋아하는 곡을 말해 달라고 해서 페르골레시Pergolesi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를 요청한 기억이 있습니다. 왜 이 곡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천주교 학교였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음악에서는 교육이 큰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음악이 아직 부족하던 시대에 자랐습니다. 전쟁 중과 종전 후의 시기였기에, 가장 먼저 따라 배운 것도 형이 틀린 음정으로 부르던 군가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 그 노래가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오곤 합니다. 비틀즈The Beatles는 저보다 한 세대 이상 지난 후에야 유행했고 재즈나 록과도 인연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레코드판이 SP현재의 LP 레코드판이 등장하기 이전의 규격.였는데, 누나와 형이 그것으로 클래식을 듣곤 했지요. 그래서 제게 클래식이란 SP판의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어간, 묘하게 정겨운 멜로디입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갑자기 피아노를 배운다고 한들 배울 마음이 생길 리가 없지요. 좋은 음악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듣는 귀가 어느 정도 밝아지지 않으면 어떤 음악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아주 편리해졌습니다.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껏 음악이 이렇게 풍족했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제 저는 일할 때 거의 항상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다른 일을 하는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특히 곤충 표본을 만들거나 관찰할 때는 귀가 할 일이 전혀 없어서 음악으로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원고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후안 다리엔소Juan d’Arienzo가 연주하는 탱고를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고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도 전혀 모릅니다. 그저 읽기 답답한 글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할 뿐입니다. 다리엔소를 안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전철을 탈 때는 눈이 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습니다. 제 문화생활은 그 정도인 것 같네요. 연주회도 가끔 시간을 내서 갈 뿐이고 다른 공연을 볼 기회도 적습니다. 시간이 나면 산속에서 곤충을 채집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사는 야만인 같네요.
하시아시 씨는 그런 저와 잘 대화해 주었고 그 결과로 이렇게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요로 다케시
제1장
음악에 감동하는 인간
명곡은 뇌를 방해하지 않는다
히사이시
요로 씨는 음악을 자주 들으시나요?
요로
그렇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공연장에 가본 지는 오래됐네요. 집에서 CD나 아이팟으로 듣는 게 다예요.
히사이시
아이팟도 쓰시는군요.
요로
밖에서는 안 쓰지만요. 밖에 있을 때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건 눈을 감고 걸어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고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요(웃음). 주로 집에서 채집한 곤충을 연구하거나 무언가 생각할 때 음악을 듣지요.
히사이시
클래식을 들으시나요?
요로
네. 기본적으로 뭔가 하고 있을 때 음악을 듣기 때문에 좋아하는 곡을 고르기보다는 일에 방해되지 않는 곡을 고릅니다.
히사이시
모차르트의 곡 같은 것 말인가요?
요로
그렇지요. 모차르트는 방해가 되지 않아요. 가사가 있는 곡이라면 탱고 같은 것을 듣습니다. 스페인어를 모르니까 ‘아, 목소리가 좋네’라고 느끼는 데서 끝나요.
히사이시
가사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군요.
요로
정말로 집중할 때는 아무것도 귀에 안 들어와요. 그래도 생각하는 도중에 문득 의식이 다른 곳을 향할 때 귀에 들리는 음악이 듣기 좋으면 됩니다. ‘좀 들어 봐!’하고 강하게 호소하는 음악은 잘 안 맞아요(웃음).
히사이시
미야자키 하야오 씨도 콘티 작업을 할 때 항상 음악을 틀어 놓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집중해서 듣지는 않는다고 하시네요(웃음).
요로
그건 듣지 않는다기보다 아마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의식하지 않을 뿐이지 영향은 받고 있을 겁니다.
히사이시
뇌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음악이 어떤 건지 저도 아주 잘 이해가 돼요. 어떤 면에서는 제가 작곡가로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니까요.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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