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의 말
권두섭 (변호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
민주노총 법률원이 설립된 지 10년, 성대한 기념식은 하지 못했지만 지난 10년간 법률원이 함께했던 노동자들의 투쟁의 기록을 남겨보자는 생각에 이 책이 기획되었다. 그렇게 줄거리도 없이 ‘한 문장의 기획’으로만 되어 있던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은 오준호라는 작가를 만난 덕분이다. 그는 드문드문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필자와의 인터뷰를 정리하고 사건마다 100쪽이 넘는 준비서면과 변론 요지서(판사도 읽기 힘든 분량이다.), 그 밖에 각종 판결문과 참고 자료 들을 읽었다. 그리고 어려운 법률 문장으로 된 사건 서면과 기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거나 혹은 난해한 법률 용어로 가득한 일본식 문어체의 기이한 책으로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2002년 2월 1일, 네 명의 변호사를 포함한 여섯 명의 구성원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총연맹의 민주노총 법률원 외에도 금속노조 법률원,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그리고 창원과 대전에 지역 법률원을 두고 30여 명이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한 일이라곤 법률원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는 필자와 책에 등장하는 변호사, 노무사 외에도 많은 변호사, 노무사, 빛나지 않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송무 지원 간사 들이 있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노동 사건들은 법률원이 함께해온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의 극히 일부이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노동 기본권을 배제하는 사법제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그 시작으로 2부 1장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골랐다. 오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거나 소리 없이 병들어가고 있다. 기업 살인도 살인이다. 기업이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서 사용자는 증거자료를 숨기고 노동자는 오직 자기의 힘만으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1차 소송을 중심으로 다루었고 현재 2차 집단 소송이 진행 중이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임선아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의 조지훈 변호사가 함께하고 있다. 5년이 넘도록 사건의 중심에서 거대 기업 삼성과 싸워온 이종란 노무사는 정신적으로 지쳤을 것인데, 오늘도 쉬지 못하고 피해자를 만나러 다니고 조사를 한다.
이어서 우리 사회 노동 문제의 화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하청 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1부 2장의 주식회사 예스코 불법 파견 사건, 2부 5장의 이랜드-뉴코아 사건, KTX 여승무원 사건,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사건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노동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가져가지만, 그리고 노동관계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지만 노동법의 책임은 지지 않는 자들, 재벌 대기업 원청 업체의 민낯이 드러난다. 노동자는 있으나 문제를 책임질 사용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 기간 만료의 이름으로 언제든 쓰다 버려지는 존재가 되어버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1부 1장의 화물연대 집회 대규모 연행 사건, 2부 4장의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해고 사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택배 노동자의 노동자성이 보장되었다면 노사 합의서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78명의 노동자가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종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재능교육 노동조합의 해고 노동자들은 오늘 이 시간에도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노동조합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간접고용이 가짜 사용자를 내세워 진짜 사용자가 숨어버린 문제라면, 특수고용은 노동자를 사업자로 둔갑시켜 노동법의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동 기본권에 대한 검찰 공안 조직과 법원의 사고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있다. 바로 2부 9장의 건설노조 공갈 협박죄 구속 사건이다. 노동조합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노동 기본권이 숨 쉴 공간이 있을까. 이에 저항하는 투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최저임금과 결합된 사건이 2부 2장의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집단 해고 사건이다. 당시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노동자들은 무사히 복직할 수 있었지만 아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통해 저임금 간접고용 청소 노동자의 현실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파업할 권리를 불온시하고, 법 제도와 법원은 이를 범죄화한다. 2부 3장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6장의 철도노조 파업 사건, 7장의 언론노조 파업과 MBC노조 파업 사건이 이를 보여준다. 2부 3장은 뜨거운 사회 현안인 쌍용자동차 문제의 배경을 쉽게 풀어쓴 좋은 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2009년과 2010년에 있었던 언론노조 파업과 MBC노조의 파업 이야기만 담았지만, 2012년까지 이어진 MBC, YTN, KBS, 국민일보 등 언론 공공성 수호를 위한 언론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도 있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신인수 변호사를 중심으로 장종오, 이주현, 조세화 변호사, 공지연, 한혁 국장이 정부와 검찰의 탄압이 집중된 언론노조 투쟁을 함께했다는 점을 꼭 밝혀두고 싶다.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타임오프 제도, 복수 노조 창구 단일화 제도의 내용과 현실은 2부 8장의 KEC 파업 사건에서 살펴볼 수 있다. 2부 10장의 전교조 시국 선언·정당 후원 사건은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이념적 공세와 탄압이 맞물려서 진행된 사건이다. 이어서 지난 2월 22일 정부는 전교조에 대한 노조 설립 신고 취소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기가 막힐 뿐이다.
책에 나오는 몇몇 사건들은 종결되었지만 노동 사건은 여전히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거꾸로 서 있는 법에 맞서 높은 하늘에 올라가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필자가 만난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 노동조합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하면서 행복해했다. 동료 조합원들과 함께 울고 웃었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았다. 어떤 속박에서 해방되는 길로 비로소 들어섰다고 했다. 능력의 부족으로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혹여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그런 행복한 기억을 담은 기록을 또 다른 책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민주노총에서 일하기 전까지 내게 노동조합이란 책에서 배운 대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노동자들로 조직된 단체라는 의미가 전부였다.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된 지 14년째를 맞이하는 지금 노동조합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자본과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인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용자 앞에 개인인 노동자는 인격적으로 종속된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노동을 통해서 받는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 해고되는 순간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의 생존권도 모두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되는 노동자에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있어야 노동자는 비로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생긴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는 투표도 참여하기 어렵다. 독한 화학약품을 마시면서도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도망칠 수도 없다. 이건희 씨의 아들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 산다. 그중 대부분이 노동자가 된다. 한국 사회는 1,700만 명의 노동자와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필자는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자가 다른 모든 권리를 포기해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 노동자는 자주적이고 건강한 노동조합이 있을 때만 비로소 헌법에 열거된 그 많은 기본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노동자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
3장 노동자의 변호사들이 걸어온 길
‘로펌’과 민주노총 법률원의 차이
민주노총 법률원은 다른 법률사무소 또는 로펌과 무엇이 다를까? 일단 법률원은 노동조합의 부설 기관으로 노동 사건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노동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사무소는 적지 않다.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다른 법률사무소들이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거나 해결한다면, 민주노총 법률원은 사건을 일으키는 일도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권두섭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보통은 소장訴狀이 당사자에게 날아온 후에 그 사람이 변호사를 찾아오면 사건 수임이 이뤄지죠. 그런데 우리는 노조가 투쟁을 시작하면 아예 그 전부터 만납니다. 이러저러한 탄압이 예상되는데 그때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거냐, 회사 측이 불법으로 몰아갈 텐데 어떻게 대처할 거냐, 이런 것부터 해서 회사 측과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상담하고 함께 준비하죠. 그러다가 파업 들어가서 체포되고 해고되고 손배(손해배상 청구) 들어오고 하면 그땐 소송까지 맡는 그런 구조거든요.”
즉 법률원은 노동 사건 재판만 맡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돕는다. 재판이나 소송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변호사와 노무사가 투쟁 현장이나 파업 현장에 직접 달려가서 법률 서비스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파업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화장실 문을 잠근다든가 할 때 그것이 부당노동행위임을 현장에서 바로 지적한다. 또 법률원은 노동법 제도의 입법이나 개선 과정에도 참여한다. 그러니 법률원이 사건 해결만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킨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단, 법률원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하기 위해서이다.
“파업만 하면 구속, 형사처분……. 파업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겁니다. 노동조합 간부 하면 전과가 별처럼 붙는 나라도 그렇고요. 아직도 검사나 판사들은 파업을 형사처분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죠.”
권 변호사의 말처럼 우리 사회의 법과 통념은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언제 해고당할지, 언제 감옥에 갈지 불안해한다. 법률원은 그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응원하여 당당히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법률원 변호사들은 무척 바쁘다. 수십여 건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하고,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교육 업무나 정책 업무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노동자들과의 상담도 수시로 잡힌다. 노조도 없이 일하다 부당노동행위를 당하고, 어디다 하소연할지 몰라 무턱대고 민주노총으로 찾아오는 노동자들이 많다. 물론 이런 법률 상담은 모두 무료다. 만약 대형 로펌이라면 상담은커녕 예약하고 다시 오라는 이야기나 들을 것이다. 하지만 법률원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률원 변호사들에게 조용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근무 환경은 그림의 떡이다.
큰 집회라도 있는 날이면 오늘은 어느 경찰서로 갈지 긴장해야 한다. 연행자가 발생하고 구속영장이 떨어지면, 한밤중이라도 접견을 가고 영장 실질 심사를 맡아 또 며칠간 밤을 새워야 한다. 특히 회사가 여름휴가 철을 노려 직장폐쇄를 하는 등 노조를 탄압하면 법률원도 휴가를 반납하기 일쑤이다. 한 예로, 2012년 여름 안산의 자동차 부품 업체 에스제이엠에서 회사 측이 용역 경비 업체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직장폐쇄를 감행한 적이 있었다.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들은 아무도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다.
법률원이 만들어지기까지
민주노총 법률원이 처음부터 번듯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권두섭 변호사가 사법연수원에 있던 1998년 여름, 민주노총에 외부 실습을 가고 싶다고 연수원 측에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는 민주노총이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을 때라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한국노총에서 실습을 해야 했다. 그 뒤로 권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노동법학회 회원들과 자발적으로 민주노총을 찾아갔다. 주로 일주일에 세 번씩 법률 상담과 관련된 자원 활동을 했다.
IMF 직후라 일은 무척 많았다. ‘회사에서 잘렸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상담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권 변호사는 학회 총무라서 다른 학회원들이 빠진 일정을 대신 채우기도 했다. 연수원을 졸업할 때쯤 자연스럽게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싶었고, 권 변호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민주노총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두섭아 너 채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최초의 민주노총 소속 변호사가 탄생했다.
권 변호사가 민주노총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 민주노총 법률원을 만들자는 제안이 민주노총 내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 하반기부터 권두섭 변호사가 ‘법률원 설립 프로젝트’를 맡았다. 처음에는 경륜과 명망이 있는 노동 변호사들을 초빙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아직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안에서 변호사 활동을 한다는 것이 낯설던 때였다. 변호사들이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최초의 멤버를 모으는 일부터 암초에 부딪쳤다.
권 변호사의 회상이다.
“제 연수원 동기 중에 강문대 변호사라고 노동 법률사무소 ‘한울’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당시 민주노총에는 증거자료에 찍는 도장도 없을 때라, 재판 대응을 해야 할 때 문대 형 사무실에서 도장이나 용지를 빌려 쓰곤 했어요. 가서 보면 강문대 변호사는 사건에 치여서, 사건이 80건 뭐 이래서, 밥 먹듯이 밤을 새우고 이건 뭐 인간의 삶이 아닌 거야. 저도 일 있으면 그 사무실 가서 같이 밤새우고 하다가 말을 꺼냈죠. ‘형, 민주노총 법률원을 만들려고 한다, 급여는 절반도 안 되겠지만 한번 같이 해보지 않겠냐.’ 강 변호사가 ‘그래 같이 해보자.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거 같다.’ 이래서 맨 먼저 강문대 변호사가 합류했죠.”
그 다음으로 합류한 사람이 권영국 변호사이다. 권영국 변호사 역시 파란만장한 이력의 소유자다. 권영국 변호사는 ‘풍산금속’이란 회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고되고 감옥 생활만 4년이나 했던 활동가였다. 노동운동 경력 때문에 취업 길이 막혀버리자 사법시험을 쳐 늦깎이로 합격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권두섭 변호사의 고향 선배이지만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2년 후배였다. 그가 연수원을 졸업하면서 노동 변호사로 진로를 찾을 때 민주노총 법률원 설립이 추진되던 참이어서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더불어 권영국 변호사의 연수원 동기인 김영기 변호사도 합류하여 최초 4인의 멤버가 의기투합했다.
2002년 2월 1일, 민주노총 법률원의 개소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멤버들이 시끌벅적한 걸 싫어하다 보니 떡과 과일 몇 접시 돌리는 것으로 행사를 치렀다. 법률원장은 연배도 있고 노동운동 경력도 있는 권영국 변호사가 맡았다. (권영국 변호사는 2005년까지 법률원장을 역임했다.) 법률원 이름은 ‘여는’으로 정했다. 네 사람의 성격상 색깔이 너무 튀지 않는 이름을 찾았는데, ‘여는’은 앞에 뭐든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는 이유였다. 새날을 여는, 노동 해방을 여는, 인간 해방을 여는.
강문대 변호사는 법률원에 있다가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했을 때 단병호 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강 변호사는 법률원 생활 동안 자신의 바람과 달리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그건 강 변호사의 경험과 능력 때문인데, 권두섭 변호사는 그때만 해도 소송 경험이 별로 없었고 권영국 변호사와 김영기 변호사는 연수원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강 변호사에게 사건이 제일 많이 몰렸던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무실 공간은 내줬어도 예산은 지원해줄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사무실 재정은 오로지 사건 수임료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권 변호사는 민주노총 법률원이 설립된 당시를 야근의 연속으로 추억한다. 설립 직후부터 2002년 발전노조 파업, 같은 해 보건의료노조 파업 등 굵직한 사건이 이어졌고 한 해 연행자 수도 천 명이 넘을 정도였다.
“일하다가 밤 11시쯤 되면 김영기 변호사가 ‘라면 드실래요?’ 하고 물어요. 라면 끓여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피곤하면 사무실에서 자려고 조립식 야전침대를 두 개 사놨어요. 등받이를 천으로 대놓은 거요. 그런데 네 명이 다 야근을 하면 둘만 그걸 쓸 수 있잖아요. 침대를 못 차지하면 의자를 서너 개 붙여 자기도 하고……. 일은 많고 경험자는 적고, 투쟁은 또 날마다 있고 연행도 많고. 정말 사람 사는 게 아니었죠.”
법률원의 진짜 개소식은 따로 있었다. 법률원 설립 직후 터진 발전노조 총파업이었다. 이때 변호사들이 호되게 고생했다. 발전노조는 조합원만 5천 명에 이르는 대형 노조인데, 정부가 발전 산업을 매각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발전노조와 함께 철도공사, 가스공사 등 다른 대형 공기업들도 ‘공기업 사유화 저지’를 걸고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언론과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을 마비시키는 행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압박에 밀려 동시 파업에 들어갔던 가스공사와 철도공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업을 풀었다. 발전노조만 파업을 이어갔고, 법률원은 권영국 변호사를 주심 변호사로 정해 대응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명동성당의 발전노조 농성장에 아예 터를 잡고 법률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발전노조 집행부의 지침에 따라 5천여 조합원들은 전국 곳곳으로 산개했다. 일손을 놓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경찰은 조합원들이 흉악 범죄자라도 되는 양 집요하게 추적했고 강원도부터 충청도까지, 목욕탕과 공원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연행했다. 연행 소식이 법률원에 속속 전해져 왔고, 너무 먼 곳이라 변호사들이 당장 접견을 갈 수 없을 때는 경찰서에 전화를 해 조합원들에게 법률적 조언을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경찰과도 매번 싸워야 했다.
“조합원들이 폭력적 행동으로 회사 업무를 방해한 것도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연행합니까? 그런 연행은 불법입니다. 석방하세요.”“아, 연행한 게 아니라 임의동행*한 것뿐입니다.”
* 임의동행 - 피의자의 동의를 구해 수사 기관까지 동행하는 것. 피의자의 승낙이 전제이며 피의자의 신체적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러면 변호사들은 “그런 식의 임의동행 역시 불법”이라고 전화통에 대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발전노조는 38일간 버티다가 파업을 철회했다. 파업을 완벽한 성공으로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이어진 회사 측의 탄압, 징계 및 해고 조치는 막을 수 있었다.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계속 투쟁하고 법률원도 잘 대응하여 노조 위원장 한 명을 빼고 해고자 전원이 복직되었다. 법원은 회사가 청구한 막대한 손해배상(425억 원)을 기각했고 반면 회사 측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는 인정했다. 법률원은 첫 사건으로 호된 개소식을 치르긴 했지만 결과는 훌륭한 편이었다.
노동자의 곁에 남아 있는다는 것
창립 이후 법률원의 역량은 나날이 발전했다. 뛰어난 변호사와 노무사들이 꾸준히 들어왔고,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과 함께 노동 입법에 참여한 경험도 늘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다. 우선 재정적인 불안정이다. 민주노총 소속이지만 법률원 재정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소송을 통해 얻는 수임료가 수입의 대부분인데, 찾아오는 노동조합들 형편이 다들 고만고만하다. 노동조합에 법률 자문을 하고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다.
외부 로펌들은 사건 수임료가 높다. 사건의 난이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임료가 5백만 원, 1천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만약 노동조합이 규모가 크다면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노조는 대개 힘도 있고 회사와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소송 자체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노조가 힘이 없을수록 회사의 탄압도 심해지고 그러다 소송까지 가게 된다. 이런 노조에 재정적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법률원의 수임료는 사건의 난이도에 따라 150~250만 원 선인데, 노조가 이 정도의 수임료도 내기 힘들어 별도의 수익 사업(일일 주점, 장터 같은)을 벌여 갚기도 한다. 집단 소송을 맡게 되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그중에도 수임료를 도저히 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노동자들이 있어, 재정적 불안정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안정된 선진국은 어떨까? 권 변호사는 독일 노총의 예를 든다. 독일 노총은 각 산별 노조*들이 재정을 분담하여 법률원을 운영하고, 조합원의 노동 사건은 모두 무료라고 한다. 독일 노총에서 고용한 변호사 수는 360여 명이다. 현재 민주노총 법률원은 변호사 14명, 노무사와 송무 지원 간사들까지 합쳐 30여 명쯤 된다. 변호사만 놓고 보면 스무 배도 넘게 차이가 난다.(물론 독일 노총은 조합원이 6백만 명이 넘어 민주노총보다 열 배 가까이 크므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 산별 노조 - 산업별 노동조합의 줄임말. 기업이나 직종, 숙련이나 비숙련의 구별 없이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가 속한 노동조합을 뜻한다. 이와 대조적인 형태로 기업별 노동조합이 있다.
변호사 네 명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민주노총 법률원은 지금 서울과 지역에 다섯 곳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식구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법률원을 같이 만든 최초 멤버 가운데 권두섭 변호사만 남았다. 지금까지 많은 변호사와 노무사 들이 법률원을 거쳐 갔다. 물론 법률원 밖에서도 그들은 인권 분야와 노동 분야 등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원이 이직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변호사들은 3년을 버티는 사람이 적다. 왜 변호사들은 법률원에 오래 있지 못할까?
“열정이나 책임감 이런 건 확실히 넘쳐요. 그런데 여건 자체가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할까요. 소송만 하면 참 편할 텐데, 소송만 있나요? 전화 상담하고 현장 상담하고 접견 가고, 사람이 자기 계획에 따라 오늘은 이 서면 쓰고 내일은 무슨 약속 잡고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갑자기 누가 연행되었다 하면 하던 일 다 미뤄놓고 영장 실질 심사에 매달리고, 그 일 하느라 주말 사라지고. 이런 게 스트레스를 주죠. 물론 그런 경험으로 성장도 하지만, 몸에서 뭔가 뽑히는 기분이라고 할까. 여유가 있으면 서면 하나를 써도 공부를 더 해서 더 잘 써볼 텐데, 논문 하나라도 더 읽어볼 텐데, 이런 생각이 들죠.”
한편 법률원 사람들은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활력도 얻지만, 노동자들이 길고 고통스런 싸움을 하는 동안 종종 그 고통이 전이되는 경험을 한다. 파업 투쟁은 일시적이지만 해고 무효 여부를 다투는 소송은 몇 년씩 이어진다. 노동자는 몸과 마음, 인간관계까지 큰 상처를 입는다. 심하면 자살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힘들어하면 그들을 돕는 변호사와 노무사들도 힘겹다.
2007년 이랜드-뉴코아 노동조합 투쟁 당시 뉴코아 노동조합을 지원하던 변호사가 있었다. 당시 회사 측은 노조를 악마 보듯 대했고 노조 역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노조 간부들이 민주노총 건물에서 수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밖의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탄압에 대해 간부들에게 계속 연락하고, 간부들은 담당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가 노조 간부들의 심리 상담까지 해주게 되었는데, 그런 시간을 1년쯤 보내고 나니 변호사 본인이 정신적으로 지쳐버린 것이다. 그는 법률원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고, 한 달을 쉬고 난 후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권 변호사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최초의 열정도 시들게 된다. 그렇다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법률원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몇 년 전 법률원 멤버들의 재충전을 위해 안식 휴가 제도가 만들어졌다. 변호사, 노무사, 송무 지원 간사 누구든 6년 근속 시 6개월의 유급휴가를 보낼 수 있다.
초창기에 법률원을 지탱한 것은 멤버들의 무한한 열정이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 노동조합에 대한 신념, 노동 변호사로서의 자긍심, 뭔가 제대로 해보겠다는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이 모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정만이 법률원 최대의 무기는 아니다. 10년의 경험 속에 노동 사건에 필요한 전문적 역량이 상당히 축적되었다. 권 변호사는 신입 변호사들에게 “변호사는 의사와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의사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의료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듯, 노동 변호사들도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과 법정 싸움에 대한 전문적인 실력이 필요하다고. 권 변호사는 장래 법률원 내부에 연구소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이전까지 민주노총 법률원은 노동자의 편에서 일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해 노동 사건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집단임을 의미한다. 한 예로 『월간 노동법률』이 뽑은 ‘2011년 10대 노동 판례’에는 법률원이 주심이었거나 공동으로 대응한 사건이 무려 일곱 개나 된다. 그동안 법률원이 승소한 사건에는 노동법 해석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 사건들도 여럿이다. 앞서 본 예스코 사건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부터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노무사 들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대표적인 10가지 노동 사건을 살펴볼 것이다. 변호사들의 이야기는 복잡한 사실 사이에 숨은 노동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알려주고, 노동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사건의 현장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법과 노동의 현실로 들어가 보자.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