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어를 오가는 까닭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가 체계적으로 규범화되어 있고,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으며, 순수하다고 상상한다. 규칙은 문법책에 적혀 있고, 단어의 뜻은 사전에 수록돼 있고, 모든 말소리에는 정확한 발음이 정해져 있다고 말이다. 물론 언어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언어학자들은 이들 규칙이나 의미, 발음 따위가 라보브의 r에서 보듯이 사회적으로―즉 지역, 계급, 성, 사회 상황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에 의해―변이를 보이는 방식들을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방언학은 사회언어학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언어에는 뚜렷하고 안정적인 하위 변이형들이 있다. (무엇이 ‘방언’이고 무엇이 독립적인 ‘언어’인가 하는 것 자체부터 언어학적으로는 명확하지 않으며, 대개 정치적으로 구분된다. 이는 뒤의 장들에서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순수한 언어의 수호자들은 방언을 완전히 거부하진 않을지 몰라도 흔히 무시하기 때문에, 방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기술하는 일은 사회언어학자들의 몫으로 남곤 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사회언어학자들은 예컨대 남부 영어라든지 케이전* 프랑스어, 스위스 독일어, 다마스쿠스 아랍어 같은 비표준 변이형들을 설명할 때는 엉성하다든지 나태하다든지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문법과 발음을 지닌 방언 또는 언어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 문법과 발음은 표준 글말(이는 문자 기록이 많다는 이점이 있다)만큼 안정적이진 않아도 일관성이 매우 높다. 라보브는 “대학교 밖에서 공업화학자로 10년 남짓 일하면서 나는 일상 세계가 다루기 힘들긴 해도 일관성 있게 그러하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혼란을 본 곳에서 그는 질서를 보았다.
* '케이전(Cajun)'은 루이지애나 주 일대에 정착한 프랑스계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케이전 말은 프랑스어 아카디아Acadia 방언을 기반으로 하고 인디언 말과 스페인어, 영어 단어들이 섞여 있다. 아카디아란 캐나다 동남부 노바스코샤 주와 뉴브런즈윅 주를 일컫는데, 이곳에 살던 프랑스계 주민은 18세기 아메리칸 인디언과의 전쟁 중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표명을 거부한 탓에 강제 추방되어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이주했다.
사회언어학자들이 언어의 ‘코드 전환code-switch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보자. 이는 말하는 도중에 두 개의 다른 언어나 방언 사이를 오가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뉴욕 지하철에서 나는 라보브가 제시한 아래의 예와 비슷한 말들을 종종 듣는다.
Por eso cada, you know it’s nothing to be proud of, porque yo no estoy proud of it, as a matter of fact I hate it, pero viene Vierne y Sabado yo estoy, tu me ve hacia mi, sola with a, aqui solita, a veces que Frankie me deja, you know a stick or something, y yo aqui solita, queces Judy no sabe y yo estoy haci, viendo television, but I rather, y cuando estoy con gente yo me …… borracha porque me siento mas, happy, mas free, you know, pero si yo estoy con mucha gente yo no estoy, you know, high, more or less, I couldn’t get along with anybody.
언뜻 보면 뒤범벅 같아도 실은 나름대로 체계적이며 흥미롭다. 언어 코드의 전환에 관한 연구들은 거기에 내재한 규칙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문장에서 문장으로 넘어갈 때만 코드를 바꾼다. 또 어떤 사람은 문장 안에서 사실상 아무 때나 코드를 바꾼다(위의 예문). 후자가 더 무질서해 보이지만, 사실은 두 언어를 다 잘 하고 자신의 이중문화 정체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화법이 매우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들이 입증한 바에 따르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전환은 가령 스트레스가 많았던 일을 얘기하는 경우와 같이 감정적인 순간에 이루어질 때가 많다고 한다. 위에 예시한 어느 뉴요커의 말에서 스페인어는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수단인 듯하다(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아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스페인어로 한참 말하다가 ‘happy’와 ‘free’에서는 영어로 전환한다(그 부분을 영어만으로 하면 “I feel more happy, more free, you know”다). 아마 영어 단어 ‘happy’와 ‘free’는 미국인의 특징적 소망을 담은 말들인 만큼 거기 실린 느낌이 스페인어의 해당 단어인 ‘feliz/contenta’ 및 ‘libre’의 내포와는 좀 다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구상에서 미국 말고 다른 어떤 나라가 “행복 추구”의 권리를 건국을 선언하는 문서에 명기했는가?*
* 미국 독립선언서는 창조주가 부여한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대표적인 예로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들고 있다.
위층의 말과 아래층의 말
위와 비슷하게 번잡하거나 마구잡이 같아 보이는 다른 언어 현상들도 실은 연대를 추구하는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방법인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많은 미국인이 마치 죄라도 고백하듯이 내게 털어놓는 행동이 하나 있다. 뭔가 하면, 가령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같은 곳을 여행할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의 말씨를―때로는 그 리듬과 어휘까지도―어설프게 흉내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유난히도 카멜레온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씨까지 바꿔가며 현지인처럼 말하려 드는 스스로가 비굴하고 바보 같아 보인다고 했다. 사실 이런 일은 언어와 관련된 다른 많은 현상들이 그렇듯이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사회언어학자들은 여기에 ‘조정accommod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해보라. 목소리가 특별히 조용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내 목소리도 덩달아 조용해지지 않겠는가. 시속 150km쯤으로 얘기하는 사람과 마주하면 십중팔구 내 말의 속도도 올라갈 테다. 대화 상대자와의 연대를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이 같은 속도나 성량의 변화를 유발한다. 여행자의 말씨 바꾸기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투나 어휘의 선택 또한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면 내 어투가 평소보다 구어적이 되고 느슨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시적으로나마 그들 집단에 합류한 듯이 느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정이라는 동전에는 반대쪽 면이 있다. 의도적인 거리 두기가 그것이다. 학생들을 호되게 꾸짖거나 실망을 표할 때 나는 일부러 더 공식적이고 딱딱한 태도를 보인다. 내가 교수이고 그들과는 사제 관계에 있으므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투덜거리는 직원에게 사장이 목청을 높일 때에도 이런 종류의 거리 두기를 볼 수 있다. 여기엔 ‘우리는 같지 않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소리를 칠 수 있고 너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 위와 같은 조정의 두 형식 혹은 측면을 각기 수렴convergence(상대방과 가깝게 보이려는 것)과 분기divergence(상대방과의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라고 한다.
이와 같은 언어 선택들이 정체성 및 정치와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는 언어학자들이 ‘양층언어 상황diglossia’*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특히 분명해진다. 전형적인 양층언어 상황에서는 같은 언어의 두 변이형이 한 사회에 나란히 존재하는데, 아이티의 표준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리올 프랑스어가 그런 예다.** 두 변이형에는 각기 역할이 정해져 있다. 하나는 ‘상층의’, 즉 위세 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하층의’, 구어체의 말이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쪽의 말을 사용하면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간주된다. BBC 저녁 뉴스에서 심한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쓴 것에 비할 수 있을까. 두 변이형의 역할은 확연히 다르다.
* '양층어 상황', 혹은 그냥 '다이글로시아/디글로시아'라고도 한다.
** 아이티 크리올어는 18세기 프랑스어에 바탕을 두고 몇몇 아프리카어와 아랍어, 스페인어, 영어, 아라와크어 등이 혼합된 언어다. 크리올어Creole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의 유럽어가 노예로 잡혀온 아프리카인들이나 태평양섬 주민 등이 사용하는 토속어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현지 모국어"를 지칭한다(『사회언어학사전』).
아이들은 하위의 변이형 즉 하층어를 모어母語로 배운다. 양층언어 문화에서 하층어는 가정과 가족, 거리와 시장의 언어이며 우정과 연대의 언어다. 이에 반해 상층어를 제1 언어로 쓰는 사람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상위의 변이형 즉 상층어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고, 공식적인 연설이나 강연, 고등교육, 텔레비전 방송, 설교, 종교 전례, 그리고 글에 쓰인다. (하층어는 표준 표기 체계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양층언어의 사례로는 스위스 독일어와 표준 독일어, 구어체 아랍어(지역적으로 여러 모습을 띤다)와 고전/표준 아랍어, 아이티 크리올어와 표준 프랑스어, 그리고 그리스어의 두 변이형 디모티키dhimotiki(‘민중의’라는 뜻)와 카타레부사katharevousa(‘순수한’이란 뜻) 등이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하층어’들이 사회적으로 낮을 따름이지 언어적으로도 낮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밑바닥의 황폐한 은어 같은 게 아니라 고도의 규칙성을 지닌 언어들이어서, 언어학자들은 가령 아랍어의 현대 팔레스타인 방언의 문법을 정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리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양층언어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층어는 ‘진짜’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진짜 언어로 간주하는 것은 상층어인데,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간 뒤 이를 외국어처럼 배워야 한다. 이전엔 그 말을 사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층어에 대한 태도는 다양하다. 스위스에서는 표준 독일어를 알아야 경제활동에 제대로 참여하고, 각종 글을 읽고, 텔레비전을 즐기고, 이웃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큰 국제무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웃한 저 두 나라의 독일어 사용자는 9,000만 명으로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 400만 명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러나 스위스 독일어, 즉 독일어의 스위스 방언은 자부심의 상징으로서 스위스와 이웃 나라들을 구분해준다. 신문의 개인 광고들은 종종 스위스 독일어로 게재된다(현지인들은 이 언어를 ‘Schwyzerdutsch[슈비처뒤치]’, 혹은 이것이 지방별로 미세하게 변형된 이름으로 부른다). 스위스 독일어는 지방에 따라 다시 조금씩 달라지며, 이들 방언은 해당 지역이나 도시에 대한 충성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스위스 사람들은 양층언어 상황을 별 갈등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스위스 독일어가 저급함과는 무관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티의 경우, 표준 프랑스어와 이제는 고도의 규칙성을 갖춘 그들 자신의 프랑스어(아이티 크리올어)의 관계에 대해 아이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약간 더 복잡하다. 정치와 경제에서 권력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표준 프랑스어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옛 식민국의 언어이기도 하므로, 아이티 사람들은 소수를 빼고는 크리올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상류층의 일부는 크리올을 모른다고 부인하지만, 그럼에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크리올어를 써야 아이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하층어인 디모티키(민중 그리스어)와 상층어인 카타레부사(고전 그리스어에 가깝다)의 관계는 더욱 명백하게 정치적이다. 20세기에 국민들이 디모티키의 여러 형태들을 모어로 쓰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하층어인 이 말에 공식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 사용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은 맹렬히 반발했고, 특히 1921년 성경을 디모티키로 번역하자 폭동까지 일어났다. 1967년 군사 쿠데타로 그리스를 손에 넣은 대령들은 민중 그리스어의 공식적 확산을 중단시켰다.
이후 민주주의가 회복되면서 디모티키도 복권됐다(‘dhimotiki’, 영어로 ‘demotic’은 ‘민중, 서민’을 뜻하는 ‘demos’와 어근이 같다). 한때 고대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의 실용주의적 타협의 산물로 여겨졌던 카타레부사는* 이제 독재 정치와 결부되기 시작했다. 승리는 기본적으로 디모티키 즉 민중 그리스어에 돌아갔다. 그리스인인 내 제자 마리아는 그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마리아의 할머니는 딸인 어머니에게 카타레부사로 적힌 그리스 신화를 읽어줬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리아를 기를 때 그 책의 내용을 즉석에서 디모티키로 옮겨 얘기해주었다. 대부분의 젊은 그리스인들처럼 마리아도 카타레부사로 쓴 글을 읽기는 하지만 말로는 할 줄 모른다.
* 카타레부사는 19세기에 지역 방언에서 외국어의 요소들을 정화하고, 고대 그리스어의 어근과 민중 구어의 굴절어미를 많이 이용하여 그리스어의 형태론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태어났다. 20세기까지 정치, 공문서, 학문과 문학, 뉴스 방송 따위 공식적이거나 격식을 차려야 할 일에 주로 사용됐고 일상어로는 거의 안 쓰였다.
그러나 민중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관한 그리스인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리스어가 쇠퇴하고 있다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마리아는 카타레부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하층어’의 화자들이 ‘상층어’를 언급할 때 흔히 쓰는 말들로 그것을 묘사한다. 더 복잡하고 표현이 풍부하며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으로 카타레부사는 “복잡한 수학 문제와 화사한 색채를 구사하는 화필의 만남” 같은 것이다. (상층어가 ‘복잡하다’고 하는 것은 하층어들에선 단어의 어미들이 세월에 부식되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마리아는 자신의 언어인 디모티키와 관련해 민주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서, 많은 그리스인에게 주중 가장 중요한 시간인 교회 미사 때 카타레부사만을 사용하는 현실에 좌절감을 표한다. 본디 신약성경은 카타레부사와 가까운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것인 만큼, 그리스인들이 미사에서 그 언어를 고수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많은 신도들은 성직자가 그들에게 하는 강론 등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결국 민중어가 승리했지만,*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정치적 불안이 언어에 대한 태도와 맞물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는 1981년 다수 언어를 사용하는, 훗날 유럽연합EU으로 확대된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으나 무역과 원조, 통합에 따른 번영을 다른 많은 회원국들만큼 이루어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그들에 뒤처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 그리스어에 섞여들곤 하는 카타레부사의 낱말들과 어구들은 그리스가 주변 지역에 군림했던 영광의 시대를 상기시키게 마련이다. 그 언어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리스가 여전히 무시 못할 나라로 남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테다.
* 민중 그리스어는 1976년에 카타레부사를 제치고 그리스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