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본질
땅 한 필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숲, 평야, 늪지대 아무 땅이라도 괜찮다. 처녀지 상태의 이 땅은 여러 식물로 덮여 있다. 이 식물들은 박테리아, 곰팡이, 효모 등의 미세 동물군, 그리고 곤충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각종 동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식물은 햇빛을 영양분으로 바꾸는 생산자 역할을 하면서 우리 모두가 들이쉬는 산소를 만들어 내고, 모든 생물의 생명 원천인 표토를 건강하게 유지한다. 이를 가리켜 ‘다년생 혼작perennial polyculture’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식물이 여러 해 동안 살면서 섬유질로 된 몸속에 탄소를 격리하고,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뿌리 체제를 흙 속에 형성하기 때문에 ‘다년생’이라고 부른다. ‘혼작’이라는 용어는 수없이 많은 식물이 함께 협조하고 경쟁하고 기여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다년생 혼작은 자연이 표토를 형성해 보호하고, 각종 생명이 더 많은 생명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농업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자. 땅 한 필지에서 다시 시작하자. 인간은 그 땅에 살고 있던 모든 것을 박테리아까지 다 없애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인간에게 필요한 아주 소수의 식물 종을 심는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땅에 옥수수, 콩, 밀 등의 곡물 중 딱 한 가지만 심는 것이다. 동물이 죽어 간다. 많은 경우 멸종 지경까지 이른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1491년 미국에는 6천만~1억 마리 정도의 들소가 살고 있었다. 현재 남은 들소는 35만 마리에 불과하고, 집에서 기르는 소와 피가 섞이지 않은 순종 들소만을 고르면 1만 2천~1만 5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늑대도 42만 5천~100만 마리에 달하던 것이 이제는 1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땅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들 중 일부는 이름을 지어 주기도 전에 멸종해 버렸다.(물론 이는 서구 기준이다. 원주민이 부르는 이름은 있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 대목초지는 원래 크기의 2퍼센트로 줄어들었고, 3.6미터가 넘던 표토는 이제 몇 센티미터 남지 않았다.
일년생 단일 경작을 기본으로 하는 농업은 다년생 혼작과는 완전히 반대 개념이고, 자연이 하는 일과도 완전히 반대의 일을 한다. 표토를 파괴하는 것이다. 스톨은 “흙의 질이 나빠지는 것은 농업이 환경에 주는 피할 수 없는 상처”라고 말한다. 또 톰 폴슨Tom Paulson은 “지구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농업은 땅이 상처를 치유할 시간을 주지 않는 재해다. 땅을 빈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든다. 온갖 생명이 거기서 자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싶어 하고, 풀은 초원에서 살고 싶어 한다. 물은 습지를 만들고 싶어 안달한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빈터를 가만 내버려 두면 그 자리에 금방 미국자리공이나 나무딸기 등이 자라나고, 뒤를 이어 슈막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단풍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등이 차례로 들어설 것이다. 5년 안에 빈터는 어린 나무로 덮이고, 10년 후면 톱으로 자르지 못할 정도로 자란다. 이것이 바로 땅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자기 몸을 살아 있는 초록 식물이라는 갑옷으로 둘러싸는 것.
그러나 공격하는 상대가 인간인 경우, 이 녹색 갑옷으로는 역부족이다. 농업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학자 다니엘 힐렐Daniel Hille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자연에 대한 침해이고, 따라서 환경에 혼란을 초래한다. 자연 발생적인 생태계를 인공적인 것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농부가 논에 쟁기질을 하는 순간부터 사실상 기존 생태 질서에 선전 포고를 하는 셈이다. 특정한 작물을 기르기 위해 농부는 이제 거기 사는 모든 생물을 유해한 잡초와 해충으로 보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제거한다. 그러나 열린 공간에서는 야생 생물 종이 빼앗긴 영토를 되차지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므로, 농부의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농업은 바다를 만날 때까지 퍼져 나가 온 세상을 정복했다. 이제 남은 땅이라고는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너무 가파르거나, 너무 건조해서 농업에 이용할 수 없는 땅들뿐이다.
사실 농업은 제대로 된 전쟁이 될 수 없다. 숲, 습지, 목초지, 비, 흙, 공기 등이 농업에 대항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오히려 인종 청소 같은 것이다. 침략자가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원주민을 완전히 쓸어 내 버리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청소, 생물학적 학살이다. 힐렐은 “문명의 역사에서 칼날보다 쟁기의 날이 훨씬 더 많은 파괴를 가져왔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은 폭력적이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농업으로 생산되는 음식은 한입 한입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생태계를 뿌리째 집어삼키는 농업
학교 다닐 때 ‘세계 기아의 정치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이미 비건 생활을 4년이나 한 때였으므로 세계 기아의 해결책에 관해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이 문제에 거의 백치 수준이었다. 농경학을 전공하고 양을 기르고 있던 교수의 말을 듣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쟁기를 흙에 대는 순간, 흙은 퇴화하기 시작한다.”
온 인류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사람 수가 너무 많았다. 적정 인구보다 수십억이 초과한 것이다. 이 많은 수를 먹여 살리는 데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은 농업밖에 없다.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땅을 계속 개간해서 인간만을 위해 그 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표토가 파괴된다. 흙이 건강하지 않으면 식량도 없고 생명도 없다.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종국에 가서는 엄청난 기아가 닥칠 것이었다.
“쟁기질이 된 흙은 햇빛, 비, 바람에 노출된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슬라이드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그중에는 메소포타미아 사진도 들어 있었다.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의 메소포타미아는 현재의 이라크에 자리했다. 독자 중에도 이곳 사진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아마도 미군과 함께 전쟁터에 파견된 기자의 관점에서 찍은 것이지 사막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농경학자의 눈으로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강’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다. 두 강 사이의 땅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이제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이름을 쓸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소금 범벅의 황량한 땅에는 고대 관개 수로의 흔적이 어지럽게 종횡무진하고 있다. 오래전 이곳에는 풍성한 수확을 내는 밭과 과수원이 있었다. 현재 상황이 이렇게 열악해진 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이 연약한 환경을 착취했기 때문이다. 숲을 베고, 화전을 일구고, 목초지를 형성하고, 개간을 하고, 수로를 짓는 행위를 대를 물려 가며 계속했기 때문이다. 한때 융성했던 메소포타미아 도시는 이제는 건축물이 누적되어 생기는 언덕에 불과하다. 거기서 융성하고 몰락한 문명이 있었다는 물리적인 흔적을 담은 벙어리 타임캡슐이 된 것이다.
인더스 문명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인도, 파키스탄, 호주, 러시아, 미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이집트, 캐나다 등의 지역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이미 소금 범벅에 말라 갈라져 있거나 아직은 그렇지 않더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지중해 연안 지역도 한때는 숲이었다. 레바논에 실제로 삼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이제는 레바논 깃발에만 과거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지만 말이다. 이스라엘, 레바논, 그리스, 키프로스, 크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 튀니지, 스페인 동부 지역에는 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표토의 깊이가 1미터 이상 됐었다. 보호해 주는 나무가 없어지자 흙은 바다로 쓸려 내려갔다. 이제 남은 것은 건조한 바위에 매달린 채 햇빛에 말라 들어 가는 깡마른 관목과 가끔 찾아오는 염소뿐이다.
우티카라는 도시는 파괴의 정도를 잘 보여 주는 예다. 우티카는 바그라다스 강 하구의 항구 도시였다. 그러나 언덕 위에서부터 강을 타고 내려온 흙이 하구에 쌓여 더 이상 항구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버려진 도시 우티카는 이제 바다에서 7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10미터 높이로 쌓인 퇴적물 아래에 묻혀 있다. 힐렐은 “우티카는 아프리카 북부에 건설된 로마 제국 대도시가 겪은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설명한다.
레바논의 문명은(뒤를 이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메마른 바위 언덕만큼이나 황폐해지고 말았다. 농업, 계급 제도 발생, 삼림 파괴, 표토 파괴,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이루어진 폐쇄적 피드백 체계가 점점 가속화해 생태적 군집 단위를 파멸로 몰아갔다. 이렇게 파괴된 생태계는 아마 다시 빙하기가 닥치기 전에는 회복되기 힘들 것이다. 레바논은 지중해 제일의 해상 무역상이었던 페니키아 인의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경작 가능한 땅은 삼나무가 자라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삼나무는 훌륭한 목재다. 특히 잘 썩지 않는 성질 때문에 배를 건조할 때 많이 사용했다. 특정 지역의 나무를 한꺼번에 모두 베어 내는 개벌(皆伐)이라는 벌목 방식은 맥섬Maxxam이나 플럼 크리크Plum Creek 같은 현대 벌목 기업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페니키아 인들도 개벌에 능했다. 나무가 많이 없는 메소포타미아와 로마에서는 페니키아 목재를 흔쾌히 사들였다. 성경 『열왕기』에는 솔로몬 왕이 삼나무를 베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기 위해 수천 명의 노동자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신전과 궁전을 짓는 데 ‘필요’해서다. 이 건물들은 왕과 성직자 계급을 필두로 한 계급 제도를 가진 농경 문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다음 단계로 경사진 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경작법은 흙이 바다로 쓸려 내려가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을 초래했다. 그 결과 농경 문화의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가 도래한다. 페니키아 인들은 아프리카 북부, 사르데냐, 시칠리아, 스페인을 식민지화했다. 식민지 표토를 착취해 생산한 식량을 페니키아의 산업 생산물(주로 유리와 색소)과 교환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페니키아가 쇠약해지고 그리스가 강성해졌다. 그리스도 어김없이 자기 땅을 파괴했다. 한때 식물로 빼곡했던 땅은 헐벗은 바위로 뒤덮인 지형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자기, 벽돌, 금속 등의 산업 생산물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숲을 파괴했다. 또 수레와 전차, 무역용 선박을 만드는 데도 목재가 필요했고, 무력 정벌을 위한 군함 건조에도 당연히 목재가 들어갔다. 그리스 인들은 또 숲을 태워 목초지를 만들고 동물을 키웠는데, 결국 지나친 방목으로 그 목초지마저 파괴했다. 힐렐은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한 부분을 인용한다. “급류가 깊은 주름을 남기며 언덕을 할퀴고, 우렁찬 뇌성을 지르며 산 위에서부터 내달려 검은 바다로 뛰어들면, 가지런히 갈아 놓은 논은 헛된 꿈이 되고 만다.” 전쟁은 땅에 대한 마지막 모욕이었다. 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던 전쟁에서 이긴 편은 상대방 숲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표토가 모두 유실되고 나무는 다시 자랄 수 없었다.
강어귀에 축적된 표토는 늪지대를 형성했다. 늪지대에서는 모기가 자랐고, 모기는 인간의 혈액 세포에서 살 곳을 찾은 새로운 유기체의 매개가 되었다. 말라리아는 문명이 낳은 많은 병 중의 하나다. 저널리스트 리처드 매닝Richard Manning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차례차례 다른 지역까지 퍼진 열대 숲의 파괴는 모기가 번성하는 데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따라서 말라리아는 농경 사회의 질병이다.” 매년 70만~270만 명이 말라리아로 죽는다. 아프리카에서는 1분에 2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다.
그다음에 로마 제국이 들어왔고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농업과 산업을 위해 땅을 개간하고, 표토가 유실되고, 강 하구언이 침적토로 막히고, 강의 근원에서부터 물이 말라 갔다. 스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느 생태계에서나 이용 가능한 물의 대부분은 표토에 들어 있다. 표토가 없어지면 물은 제일 가기 쉬운 곳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그 결과 땅이 마르고 기후가 변화한다.” 강 아래쪽에서는 침적토로 인해 말라리아 모기가 자라는 늪지대가 더 많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오스티아, 파에스툼, 라벤나와 같은 항구가 못쓰게 되었고, 버려진 밭들은 황량하게 방치되었다. 이 모든 것이 노예처럼 일한 인간의 노력과 고통의 산물이다.
로마 제국의 자연 훼손은 자국 영토의 경계를 훨씬 넘어섰다.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온 곳은 어디나 같은 훼손 과정을 반복했다. 비대해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과도한 경작과 목축을 행했다.
이 비대해진 권력의 이름은 로마 제국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를 압도하는 농업, 환경, 경제, 사회적 거대 조직이 될 수도 있다.
한때 북아메리카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이론적으로는 다람쥐가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메인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갈 수도 있었다고 한다. 강수량이 적어지는 지역에서부터 대목초지가 시작되어 2천 마일이 넘는 지역을 뿌리와 뿌리가 연결된 풀이 뒤덮었다. 우기가 되면 범람하는 강이 있어 부드러운 풍요의 홍수가 땅을 쓰다듬었고, 습지에서는 길고 느린 한숨처럼 물이 흘러나왔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대목초지의 99.8퍼센트가 사라졌다. 일리노이 주에는 한때 대목초지와 숲, 사바나 초원이 2200만 에이커에 달했었다. 네브래스카 주의 톨그래스 목초지도 98퍼센트가 소실됐다. 이제 아메리카들소가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곳은 어디에고 없다. 옥수수, 밀, 콩이 그 땅을 모두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농업이 행하는 생물학적 청소를 모면한 거의 유일한 동물은 쥐,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인데, 이들마저도 매년 추수 기계에 수십억 마리씩 죽음을 당한다. 채식주의자가 직접 낫을 들고 나가 수확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밥상에는 이 동물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생명도 중요하고, 당신의 밥상에 오르는 곡물을 기르고 수확하기 위해 유전학적으로 생존 가능한 단계를 이미 넘어설 만큼 수가 줄어든 수많은 동물과 함께 이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콩으로 만든 버거의 광고에는 “이제는 소와 당당하게 눈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과연 아메리카들소와도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종이 유지될 정도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종 개체 수의 5퍼센트가 필요하다. 현재 남아 있는 아메리카들소는 1퍼센트다.
그 대신 이제 우리에게는 농업이 남았다. 인디애나 주는 한때 200만 에이커가 넘는 대목초지와 숲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제는 여기저기 쪼개진 지역을 다 합쳐도 1천 에이커가 전부다. 또 니사나무와 늪사시나무가 자라는 수천 에이커의 늪지대도 있었다. 늪사시나무는 미국 삼나무의 친척이지만 아무도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방패가 되려 하지 않는다. 니사나무는 마멋, 칠면조, 곰, 사슴, 여우, 너구리, 다람쥐, 그리고 많은 종류의 새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중요한 나무로 500년 이상 살 수 있다. 아직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시대부터 살아 있던 니사나무 숲이 소규모지만 몇 군데 있다. 보통 생명력이 아니다. 미국 니사나무 중 32미터 키에 뻗은 가지의 지름이 17미터, 둘레가 8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나무는 물속에서는 숨을 쉬지 못한다. 나무뿌리는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사나무와 늪사시나무는 물 위로 스펀지 같은 조직을 길러 인간처럼 공기 중에서 산소를 흡수한다. 화이트리버 국립 야생 보호 구역 소속 생물학자 리처드 하인스Richard Hines는 이들 나무가 “실제 숨쉬기를 한다”고 말한다.
생물 종으로서의 나무와 풀에 애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식물을 감정이 있거나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심금과 양심을 울리는 동물이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나무와 풀이다. 아메리카 대륙, 아니 지구 전체에 일어난 일은 그 규모가 너무도 커서 얼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숨을 아직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면 알수록 비탄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 농업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농업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은 공기, 신, 진보, 혹은 개인,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생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질문할지조차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톱과 쟁기 날에 이미 죽음을 당한 땅을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시 지역에 살고 있다. 책에서 얻은 정보는 있다. 지옥 같은 공장형 축산의 폐단과 곡물의 미덕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책들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검은제비갈매기나 스웨인슨휘파람새, 큰흰죽지 들오리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우리 입에 음식이 들어오기까지 누가 죽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농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파괴가 너무도 완벽하게 이루어져서 세상이 원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차를 타고 인디애나 주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네 번이나 해 봤지만 그곳에 한때 숲과 늪지대가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인디애나를 여행하면서 늪지대는 왜 없을지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도 늪지대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학교 등록금을 마련하는 의지의 소녀 이야기를 담은 진 스트래턴포터Gene Stratton-Porter의 소설 『림벌로스트의 소녀A Girl of the Limberlost』(1909)를 읽은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림벌로스트 늪지대는 1만 3천 에이커에 달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습지대 1만 2천 에이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림벌로스트 주립 유적지에는 1년에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오는데, 이 중 3분의 2가 늪지대를 보고 싶어 한다. 이곳 관리자 베키 스미스Becky Smith는 그때마다 “이제는 늪이 없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흙, 멸종한 생물들, 강. 그들의 죽음이 당신의 음식에 들어 있다. 농업은 육식성이다. 농업이 먹는 것은 생태계다. 생태계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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