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평범한 시민들은 2백여 년이 넘도록 서구 정치 무대의 중요 행위자였다. 18세기에 그들의 전위부대는 세계 전역에 울린 총성*과 더불어, 그리고 국민 총동원령**에 민첩히 응함으로써, 정치적 삶의 공간을 성공적으로 열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수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유권자, 시민군, 납세자, 배심원 그리고 시민 행정가─비록 오늘날에는 정실인사patronage employees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긴 하지만─로 충성스럽게 봉사했다. 시민들은 서구가 세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할 수 있도록 국가에 행정력과 강제력 그리고 추출 능력을 제공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 이 문구는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시 “콩코드 찬가”에 나오는 시구다.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콩코드는 미국과 영국의 군대가 최초로 전투를 치른 지역으로, 에머슨은 이 전투에서 영국군에 맞서 싸운 농부들의 총성을 “세계 전역에 울린 총성”으로 묘사한 바 있다.
** Levée en masse를 번역한 것으로, 1793년 프랑스대혁명 전쟁 와중에 국민의회가 외국군대의 침입에 맞서 내린 국민 총동원령을 말한다.
시민들은 그 대신 법적 권리, 연금, 그리고 잘 알려진 바대로 투표권을 포함한 다양한 보상을 받았다. 투표권의 역사는 종종 고통스러운 대중투쟁의 결과로, 원하지 않던 지배자들로부터 정치 참여의 기회를 쟁취하는 과정으로 기술된다. 하지만 이런 봉사와 보상 사이의 암묵적 교환은 시민들을 더 깊고 완전한 정치적 삶으로 이끌었다. 시민 행정가들은 활력 있는 정당 조직의 대들보가 되었다. 수천만의 평범한 시민들이 정부의 세입 기반에 포함되면서, 대중의 순응을 장려하고 이해 갈등을 중재할 대의 기구와 정치제도의 힘도 함께 커졌다. 국가가 시민군에 의지할수록 참여의 폭도 넓어졌다. 싸워야 할 시민들이 투표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평범한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했던 것은 대중의 정치 참여를 넓히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제 시민의 시대는 끝나 가고 있다. 오늘날 서구 국가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 없이도 군대를 모으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어떤 면에서 이런 변화의 징후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이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했다. 건국 초기 예외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른다. 대중민주주의는 엘리트들이 정치의 장을 장악하기 위해 비엘리트들을 동원해야 했던 방식이었다. 반면 현재의 경향이 ‘개인적’인 이유는 새로운 통치 기술들이 대중을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개인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 popular는 라틴어 populus를 어원으로 하며, populus는 영어의 people, 불어의 peuple에 상응하는 의미다. people은 한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소수의 엘리트나 통치 계급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맥락에 따라 인민, 시민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popular democracy를 시민 민주주의로 번역할 경우 ‘civic’의 의미로 오인될 수 있고, 인민 민주주의로 번역할 경우 한국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다른 함의를 전달할 수도 있어 ‘대중민주주의’로 번역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평범한 미국인들은 시민에서 ‘고객’customers(워싱턴 정가에서는 흔히 이렇게 부른다)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변해 왔다. 이 ‘고객들’은 집단으로 정치과정이나 통치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유받지 않는,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개별 수혜자들이다. 예컨대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Al Gore의 ‘연방 정부 성과 평가 위원회(이하 평가 위원회)’*의 보고서를 보자. 평가 위원회는, ‘기업형’ 정부라는 관점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조차 그 설치를 승인했던, 클린턴 시기 몇 안 되는 기구 가운데 하나다. 보고서는 미국 국민을 언급할 때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시민을 정부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으로 간주한다. 보고서는 제2장 “고객 제일주의” 서문에서, “많은 사람들은 연방 정부에 고객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고객이 있다. 바로 미국 국민들이다.”라는 고어의 말을 인용한다. 시민이 고객으로 변형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시민들은 정부를 소유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반면 고객은 정부로부터 쾌적한 서비스를 받는 존재로 간주될 뿐이다. 게다가 시민들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창조된 집단적 존재로,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하지만 고객은 시장에서 개인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개별 구매자들이다. 고객들의 경험 속에는 집단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집단 동원이 빠져 있으며, 이와 같은 경험의 부재는 단순히 포토맥 강[워싱턴 정가]을 따라 유행하는 의미상 변화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고객 친화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항상 친절하고 좀 더 ‘이용자 친화적’이 되도록 교육받는다. 공공 기관들은 고객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고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 위원회 보고서는 고객이 연방 정책의 내용과 집행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 연방 정부 성과 평가 위원회National Performance Review, NPR는 1993년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이 앨 고어 부통령을 책임자로 지명해 연방 정부의 활동을 평가하고 정부 개혁 의제를 검토하기 위해 구성한 위원회다. 그 활동 결과를 담아 제출한 보고서의 명칭도 NPR이다. 위원회의 명칭은 1998년 ‘정부 혁신을 위한 범정부 협의회’National Partnership for Reinventing Government로 바뀌었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직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미국에서 시민의 역할이 퇴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전국적인 뉴스 매체들은 소위 여론전이, 플로리다 선거인단 25명의 투표 결과를 둘러싼 법 제도 투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명백한 착각이다. 각 후보들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수십 명의 대리인을 고용했다는 점에서 여론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후보들 가운데 누구도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확실히 어떤 후보도, 대규모 시위와 저항을 조직하라는,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 같은 정치 활동가들의 요구에 관심이 없었다. 두 후보가 간헐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비친 것은 대중의 열정이 일어나길 바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주요 정치 동맹자들의 결의를 다지고, 부유한 기부자들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선거 비용을 대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었다. 앨 고어와 조 리버먼Joe Lieberman은 대중에게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채, 정치자금 기부자들에게 전화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공화당 자금 담당자들도 마찬가지로 미국 전역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 앨 고어는 이 전투에서 대중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11월 28일, 대선에서 여론의 역할을 묻는 텔레비전 리포터의 질문에 대해, 고어는 “나는 이 문제에서 [여론이] 중요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는 선출직 공직 후보자의 입에서 나온 상당히 중대한 발언이었다.
플로리다 전투 과정에서 언론 매체는 두 정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총력전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역설했다. 물론 다른 나라라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탱크나 군대는 거리에 없었다. 부통령 관저 밖에 시위대 수십 명이 있었을 뿐이다. 전국 언론 매체들은 정치적 소요의 부재가, 미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법의 지배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은 존중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집권을 둘러싼 투쟁 과정에서 대중의 정치 정서가 표출되지 않고 어떤 종류의 대중적 정치 행위나 저항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 정치적 안녕의 징후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수백 명, 기껏해야 수천 명의 정치 지도자와 활동가들만이 누가 권력을 가질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에 참여했을 뿐이다. 아마 또 다른 수십만 명은 텔레비전에서 그 전투를 관전했거나 정기적으로 신문 기사를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플로리다 전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암시하듯이 그들은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대중이 자신의 감정을 거의 표출하지 않았고 시위자들도 별로 없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인들이 그만큼 성숙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투쟁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정치과정에서 시민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더 강한 확증이 필요하다면, 9・11 테러 공격 이후 뉴욕과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라. 부시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가라앉히라고 했고, 위기에 직면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요구한 본분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는 시민들에게 애국가를 부르고 애국적인 생각을 하며, 무엇보다 쇼핑을 하라고 조언했다. 다른 말로 하면, 정부는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시민들은 경제나 부양하고 방해되지 않게 얌전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2백 년도 더 전에 미국인들은 전 세계에 총성을 울리며 정치의 장에 들어섰다. 오늘날 정치의 장에서 그들은 전 세계에서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손에 쥔 존재로 간주될 뿐이다.
옮긴이 후기
정치 동원과 정치 참여
이 책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정치 동원politicalmobilization이며, 이 용어는 저자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정치 동원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 행위다. 동원은 참여와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정치 엘리트의 동원의 노력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시민은 동원의 노력에 반응해 참여할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도 있다. 또 시민은 꼭 정치 동원이 있어야만 참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 엘리트의 동원이 시민의 참여를 확장하는 민주정치의 핵심 기제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들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의 절정기가 가능했으며, 동원이 줄어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운사이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정치 동원이 없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고 참여도 불가능했던 평범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의 세계에서 사라져 갔다. 반면, 동원 없이도 참여가 가능했던 시민들은 소송과 로비, 관료 집단에 대한 개인적 접근을 통해 이익 옹호 단체 활동가로, 탈물질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시민 단체 활동가로, 공익 소송을 주도하는 법률가와 대표 원고로, 정부의 복지 서비스 전달자로 참여의 형태를 변형하면서 정치의 세계를 독점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용된 ‘정치 동원’이라는 말은 중하층의 시민들을 정치에 불러들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이해된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정치가 유권자를, 정당이 특정 사회집단을, 이익집단이 이해 당사자를 ‘동원’하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강제적 동원에 대한 경험이 그 중요원인 가운데 하나라면, 민주화 이후 정치 동원의 확장을 선호하지 않는 권력과 정치 엘리트들이 만들어 낸 법과 제도, 정치 담론이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다. 독재 권력에 의한 강제적 동원과, 이념과 정책을 통한 민주적 동원을 같은 의미 체계에서 해석하게 만듦으로써 ‘동원’을, 정치를 나쁘게 만드는 불순한 어떤 것으로 치부하게 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동원’이라는 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정적으로 취급되는 현실은 특별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경쟁하는 정당, 정치 엘리트를 한 축으로 하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과점적 대안 가운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를 다른 한 축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정당과 정치 엘리트의 행태를 묘사할 핵심적인 언어가 배제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자체가 왜곡되는 것이다. 마치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부재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유권자의 참여만으로 정치가 작동하는 것 같은 허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이미지는 그들이 정치 공간 안에서 감당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실제보다 비중이 약하거나 의미 없이 간주되도록 함으로써, 더 큰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유권자 스스로 정치의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치 엘리트들이 정치 동원을 통해 유권자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간과하게 만든다.
이런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유권자의 ‘자발적 참여’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으로 칭송받아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깨어 있는 시민’은 자발적 참여와 행동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인 구호들이다. 이 구호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당의 정치 동원을 제약했던 장벽들이 온존하는 환경에서, 자발적 참여의 힘으로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자 했던 절실함을 담았다. 분단 상황에서 구조화된 오래된 이념 체계, 권위주의 시기에 만들어진 정당 조직의 불균형적 발전, 민주화되었지만 여전히 정당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가로막는 정치 관련 법・제도와 규범들은 정당의 정치 동원을 구조적으로 제약했다. 이런 조건에서, 정치 동원이 없거나 약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했던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에 호응했고 정당정치의 힘의 균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역설은, 구체제의 유산으로부터 정치 동원을 제약받았던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스스로 정치 동원을 중단하거나 정치 동원의 대상을 제한하면서 발생했다.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정치 세력과 그 후예들이, 민주화 이후 정당의 정치 동원을 제약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은 구체제 집권 세력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으로, 정당의 정치 동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경로 대신, 서로의 정치 동원을 제약함으로써 경쟁의 조건을 균등화하는 경로를 채택했다. 민주화 이후 정치 관련 제도들을 바꿀 때마다, 구체제 야권 세력들과 그 후예들은 선거 규칙과 정당의 조직 및 정치자금 제도를 더욱더 정치 동원에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선거에서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점차 협소해졌고, 일상적인 시기에 정당이 유권자를 대면할 수 있는 조직은 축소되었으며, 정치자금의 모금 주체로서 정당의 기능도 함께 쪼그라들었다. 그 정점을 보여 주는 것이, 2004년 정치 관련 법 개정이었다.
오에이치피OHP 필름 두 장을 겹치듯이 이 두 가지 현상을 겹쳐 놓아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의 정치 동원은 터부시되고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며 점점 더 동원을 제약해 온 상황에서,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만이 정치의 공간을 독점할 때, 그 이면에 동원되지 않으면 참여조차 불가능한 시민들의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개인으로서도 정치에 참여할 능력을 가진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정당의 중요한 동원 대상이며, 정치의 공간에 자기 자리를 가진다. 반면 정당도 동원을 포기했고 혼자서는 ‘자발적 참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나 능력이 없는 시민들은 점점 더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어떤 시민들은 정치에 불만이 있으면, 혼자서도 언론에 폭로할 수 있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관료와 의회에 로비를 할 수 있다. 혹은 자신처럼 능력을 가진 동료 시민들을 조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시민들은 동료 시민들과의 유대, 소통이 없으면 정치 정보를 해석할 수 없고, 정치 행동에 감히 나설 수 없으며, 시간과 돈과 품이 드는 소송은 생각할 수도 없다. 불만이 있어도 다른 동료 시민들을 조직하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으며 방법도 알지 못한다. 이들과 함께 정치 정보를 해석하고, 조직화 비용을 감당하며, 행동에 나섰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지원이 없다면, 이들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때 미국 민주주의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 주었던 것이 정당과 정치 엘리트의 동원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법을 바꾸어 노동조합을 조직해 집단행동에 나서기 쉽도록 했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법적인 구제를 받도록 보장했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치 정보를 제공했다. 이런 도움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고,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 시민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안을 모색했으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평범한 유권자들은 정치에 불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들은 다르지 않다. 그런 정당과 정치 엘리트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자리 정치 비평과 정치로부터의 철수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권자 2명 가운데 1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어떤 빅 브라더가 불순한 의도로 기획하고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 동원의 노력을 해태하거나 포기한 것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시민과 고객
이 책에 따르면, ‘시민은 국가를 소유한 권리의 주체인 반면, 정부의 고객이 된다는 것은 제공되는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 개념은 집단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것인 반면, 고객은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구매하고 제공받는 존재’일 뿐이다. 또한 시민은 동료 시민들 간의 유대를 통해 권리 의식을 배우고 행사하지만, 고객은 동료 시민들과의 네트워크 밖에서 개인으로서 국가와 관계를 맺는다. 시민은 정치에 불만이 있을 때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지만, 고객은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민이 주체가 되었던 대중민주주의는 집단 동원을 핵심적 정치 기제로 했지만, 고객으로 해체된 개인민주주의는 동원 없는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과 같이 변모되기 전 미국의 시민, 시민권 개념 자체가 낯설다.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었을 때 동료 시민들과의 유대 속에서 대안을 강구하고 집단의 이름으로 정치와 정당에게 당당히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 또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정책 등을 통해 반응하는 정치 엘리트가 정치의 세계를 지배했던 경험 자체가 부재하거나 극히 일부 시민들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아주 짧은 시기 동안 노동조합・빈민조합・철거민연합 등이 집단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이들의 행위가 사회적 의제가 되었던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시민’이 아닌 ‘민중’이었고, 그들의 행위는 당연한 ‘시민권’의 행사가 아니라 많은 경우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집권과 국정 운영을 위해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이들의 요구를 입법・정책・예산으로 반영하는 방법이 아니라 법을 고치고 정책을 바꾸면서까지 불법화하며 무력화했다.
더 나아가, 이해관계를 공유한 동료 시민들의 결사 자체도 <국가보안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 법령들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시민들은 동료 시민들의 결사와 집단 행위를 보면서, 부당한 이익 침해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지지함으로써 내가 속한 집단의 결사와 집단 행위를 지지받을 수 있는 유대를 형성해 내기도 전에, 불온한 이념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불법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검열하도록 훈육되었다. 지난 25년간의 변화라면, 불온한 이념의 경계가 조금 느슨해지고 불법 결사의 기준이 약간 완화되었으며, 허용되는 집단 행위의 목록이 좀 길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집단의 동원과 참여는 어딘지 불온하고 위험하며 ‘올바른’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
반면, 개별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친숙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공공 기관들이 앞다투어 ‘고객 제일주의’를 말하고, 공무원들은 대기업의 사원 교육기관에 입소해 고객 우선의 마인드를 교육받는다. 정부 공익광고에서 시민을 고객으로 격상시키는 겸손한 공무원의 모습이 등장하고, 공공 기관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즈음 언제부턴가 동사무소를 비롯한 공공 기관의 공무원들이 과거의 거만하고 군림하는 태도가 아닌 상냥스러운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고, 한국의 시민들은 그들로부터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20세기 미국의 시민들은 권리의 주체로 대접받으며 살다가 자기도 모르는 순간 서서히 고객의 지위로 내려앉았다면, 한국의 시민들은 ‘국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도록 훈련되었다가, 어느 날부터 상냥히 웃어 주고 만족도를 물어 주며 ‘○○○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고객’의 지위로 올라선 것 같다.
한국과 미국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겪어 온 역사적으로 다른 경로는, 앞으로 국가와 시민, 정치와 시민의 관계에 관한 섣부른 예측을 조심스럽게 한다. 또한 한국의 정부와 미국의 정부가 시민을 고객으로 변형하는 과정의 외형은 비슷하지만, 그 실제 내용의 차이는 크다. 19세기 후반 혁신주의 시대에서 발원되어 20세기 초중반 격렬한 대중 동원의 시대에도 면면히 이어진 개인민주주의의 제도와 철학과 관행이 오늘날 미국 정부의 ‘고객’을 만들었다면, 불과 25년 남짓한 민주주의 경험의 어느 지점에서 제도와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정부의 언어와 행태로부터 급조된 것이 한국의 ‘고객’들이다.
공공 정책의 다양한 민영화와 아웃소싱 제도, 개별 고객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 유형의 발달 과정 속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고객만들기’가 진행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그것은 아직 많이 어설프다. 복지 정책이 포괄하는 시민의 범위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서비스 전달 네트워크 밖에 놓인 시민이 훨씬 많고, 바우처 제도나 선택 서비스 등의 유형도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공공 정책의 민영화와 아웃소싱은 급속도로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은 공공 부문의 소관으로 남아 있다. 이런 느슨함과 어설픔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시민의 미래에 대해 아직은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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