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지나간 천 년의 마지막 세기 냉전 동안에도 그랬듯이, “인권”이라는 단어를 늘 입에 다는 정치인, 미디어, 활동가들은 지금도 인간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우리 시대의 규범 어휘 가운데 민주주의나 자유시장에 필적할 만큼 상위에 있다. 그리고 인권은 궁극적인 규범의 준거점인 것처럼 사용될 때가 많다.
몇 년 전에 민족주의와 윤리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은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을 적확하게 포착하지 못해 많은 곤란을 느끼면서, 민족주의의 긍정적이고 자기결정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그때 인권이 존중되는 한 민족주의는 용납할 수 있다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 곤경의 해결책이 나왔다고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았다 ― 마치 민족주의의 의미는 오리무중인 반면에 인권의 의미는 수정처럼 맑기라도 하다는 양.
모호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으로서 인권을 너무나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권이라는 것이 자체로 간단하고 자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것이 간단하고 자명한가? 우리가 “인권”이라고 일컫는 것이 뭔지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 있는가? 해석이 여러 갈래라고 할 때 2 더하기 2는 5가 아니라 4이듯이 옳은 해석과 그른 해석이 있는 것일까? 게다가 인권의 개념이 우리의 역사에서 비교적 새로운 편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시몬 베유*는 말한다 : “고대 그리스 인들은 권리라는 사고방식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을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정의라는 이름만으로 족했다.”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 : 프랑스 철학자. 데스텡 정부와 미테랑 정부에서 보건장관을 지낸 여성정치인 시몬 베유Simone Veil, 1927년 생와 혼동하지 말 것.
그리스 고전의 전통을 베유보다 더 많이 공부한 현대의 학자 마사 누스바움도 말하기를, 인권 개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그리스 스토아주의자들이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리스 사회에도 로마 사회에도 기본적 인권이라는 관념이 계발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그들도 인간의 평등은 중시했지만, 그 때문에 노예제를 비판하지는 않은 것이다.
정치의 문제에 관해 그토록 깊은 성찰을 보여줬던 그리스 인들이 왜 인권의 개념은 없었을까? 로마인들은 로마 시민에게는 단지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의 개념을 결부시키면서 왜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베유가 언급하는 정의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가? 그리스 인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의미했던 내용의 일부와 우리가 권리,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의미하는 바가 같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대답하기 무척 까다롭다. 특히 인권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개념으로,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 자체에 고유한 것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는 권리를 가진 피조물이라는 고유한 속성이 있고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없었을 정도로 우리와 그리스 인들은 “본성적으로” 다른 것일까? 아니면 그리스 사람들이 자기들은 유럽의 야만인들 또는 아시아의 “비합리적”* 족속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만큼 우리와 그리스 인들이 다른 것일까? 혹은 인권이 거기에도 있었는데, 단지 그리스 인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뿐일까 아니면 애당초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인식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영어 단어는 nonrational로서, 불합리적irrational이라는 뜻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아시아를 불합리라고 하면 이치에 어긋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서양의 이치로 아시아를 재단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저자의 의도는 아시아 문명은 서양의 합리성 개념과 상관없으므로, 부합하는지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인권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런 종류의 “권리 담론”은 언제 시작했을까? 어디서 시작했을까? 누가 시작했을까? 왜 시작했을까, 또는 그런 담론을 입에 담은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권리 담론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기도 하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기도 하는 여타 규범적인 개념들과 권리 담론은 어떻게 얽히기 시작해서 지금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런 방면으로 사고를 진행하려면 시간과 공간에 공히 민감해져야 한다. 예컨대 권리 담론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사용했던 (“정의”와 같은) 다른 개념들에서 인권과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인권의 개념은 과거 사람들의 뇌리에 전혀 없던 무언가를 표상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한 문화에서는 인권 담론을 볼 수 있고 다른 문화에서는 볼 수 없을 때, 그래도 두 문화 사이에 비슷한 개념들은 있다고 봐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그런 답들로부터 우리는 인권 개념의 보편성 또는 상대성에 관해 무엇을 알게 될까?
참으로 복잡한 질문들이고 논제들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사항은 아니다. 개념 형성과 실천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논지 가운데 하나는 20세기의 인권 현황은 아쉬운 대목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결함은 냉전을 구성했던 정치적 배열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배열과 교차한다. 사실은 소위 “제3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철의 장막” 안과 바깥에서 공히 인권이라는 수사법은 인권을 침해하는 실태를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로 사용된 경우가 너무 많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실천적 왜곡들을 염두에 두고 인권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지적으로 건강한 인권의 개념, 동시에 인간에 대한 지배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을 종식시킬 수 있을 만큼 정당성의 근거로 봉사할 수 있는 인권의 개념을 자아낼 길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구체적인 물질적 투쟁, 이론가들의 어휘들, 그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활약한 배역들의 언설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검토한다. 18세기 말 인권에 관한 위대한 문서들에서 그런 상호작용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볼 것이다.
제1장은 17세기 디거스*의 영수 제라드 윈스탠리의 요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생활필수품에 대해 모든 사람이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서양의 전통에서 위대한 이론가 네 명, 홉스, 로크, 루소, 그리고 칸트의 작품을 검토한다. 그들의 저술이 인권에 관한 우리의 근대적 사유에 기여한 측면을 살필 것이다. 다음으로는 18세기 말에 혁명적 행위자들이 인권에 관해서 작성했던 획기적인 진술들을 고찰한다. 미국 독립선언서, 미국 헌법과 수정헌법 처음 10조항(권리장전), 그리고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문 등이다. 이 문서들은 이론적이든 선언적이든 보편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제1장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인권이라는 발상을 거부한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마무리한다. 버크, 벤담, 마르크스의 사례를 살펴보고, 아울러 이성에 근거한 인권이라는 사고방식을 흄의 사상이 어떻게 암묵적으로 파괴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디거스Diggers : 17세기 영국 혁명기에 나타난 급진개혁파. 제라드 윈스탠리Gerrard Winstanley, 1609~1676는 그 지도자였다. 토지의 평등 분배와 농업공동체의 건설을 주창했다.
제2장에서는 20세기로 이동한다. 여기서는 20세기의 현상 가운데 인권이라는 이념과 실천에 대해 유난히 비우호적이었던 것들을 논의한다. 전체주의의 발흥, 전례가 없는 규모의 인종청소, 그리고 세계대전 등이다. 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국가들의 대표 사이에 합의된 국제 문서의 형태로 응집된 인권에 대한 대응을 살펴본다. 이러한 문서들의 내용에 관해 1960년대 중반에 출현한 이견들을 검토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20세기 후반에 제안된 인권 개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작용했던 다양한 근거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신앙과 믿음이 근거인 경우도 있고, 이론적이지만 비합리적인 근거도 있고, 합리주의적인 근거도 있었다.
제3장에서 나는 인권에 관해 제2장에서 논의한 바와는 다르게 생각할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하나의 가치 또는 개념을 가지고 인권의 토대로 삼으면 안 된다고 보는 방법이다. 나는 이를 “전체론적”* 방법이라고 부른다. 이 주장은 11개의 명제로 표현되며, 각 명제에 관해 상술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들을 발전론적 순서에 따라 열거하면, 인간의 잠재력, 상호결정 또는 자기결정, 물질적 및 문화적 맥락과의 일치, 지배, 투쟁, 그리고 사회적 인정이다. 제3장의 말미에서는 그 앞에서 이뤄진 개념적 명제들과 주장들에 입각해서 볼 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 그리고 다양한 피해자들의 표와 함께 간략한 논의가 제시된다.
* 전체론holism이란 사회, 집단, 공동체 등이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개인들의 단순한 합에 불과한 것은 아니고, 전체라고 하는 속성이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이는 전체라는 것은 자체의 속성을 따로 가지지는 않고, 모든 집합은 단지 원소들의 합과 같다고 보는 개체론individualism과 대척된다. 전체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론적 시각과 관련되는 하나의 입장이고, 전체주의totalitarianism는 현실에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에,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단, 개체론자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전체주의와 친해지기 어려운 반면에 전체론자 중에는 전체주의로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 필즈처럼 방법론적 전체론를 취하면서도 전체주의에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제4장은 제3장의 말미에서 얼개 수준으로 제기된 인권 보유자와 인권 침해자의 문제를 더욱 깊게 탐구한다. 특히 서양에서 권리의 보유자는 개인에 국한되는 것처럼 종종 논의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펼쳐질 것이다. 어떤 종류의 집단이나 공동체가 인권을 타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국가 이외의 존재들도 인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상향식” 접근법으로 먼저 효과와 피해자들을 살피고, 그 다음에 누구 또는 무엇이 침해자인지를 결정하는 순서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가 개진될 것이다.
제5장은 사회적 인정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데, 경제와 노동의 영역에서 그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주목할 것이며, 아울러 경제와 노동이 궁극적으로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첫 번째 부류의 인정은 분배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두 번째 부류의 인정은 참여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노동자를 비롯해서 배제당하거나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주장할 때, 동시에 그 권리가 어떻게 시행되어야 할지에 관해서도 발언권이 인정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부터 상호결정 및 자기결정이라고 하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부류의 인정에서 더욱 중요하다. 마지막 부류의 인정은 참여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작업과정을 실제로 소유하며 통제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형태의 인정이야말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천명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선언과 가장 일관적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인정이 발현될 수 있는 통로로서 어떤 제도적인 형태가 있을지 내가 생각하는 바들을 개진할 것이다.
제6장은 근대국가와 인권을 살펴본다. 국가 이외에도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난 세기 동안에 벌어진 인권 침해의 주요 사례들은 국가권력의 행사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국 영토 안이든 바깥이든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행사를 거부한 때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국가는 인권에 관련해서 모순적인 입장에 처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권과 근대국가는 함께 태어났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 공화국의 탄생이 그랬다. 그 후 많은 국가들이 유엔의 각종 선언문들과 국제 협약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인권에 서약하고, 자기네 헌법에 인권 조항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인권 침해의 주범은 국가들이고, 여기에는 자유주의 입헌국가들마저 포함된다. 이 장에서는 근대국가의 이와 같은 양면적이며 모순적인 본질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근대국가들이 가담하는 여러 가지 과정들을 살펴본다. 사람들에 대한 분류와 구별, 헌법의 확립, 그리고 무엇보다 폭력과 강제가 그런 과정들이다.
제7장은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행위들을 보다 경험적으로 탐사해 들어간다. 시민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근대국가는 관찰과 정상화로 대체했다고 했던 미셸 푸코가 옳았냐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인권을 향한 투쟁에서 세계를 이끈다고 자처하며 다른 국가들의 수행 실적을 체계적으로 판단할 책임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주로 검토해 보면,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불균형적으로 겨냥해서 신체에 대한 지독한 인권 학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개인의 인권과 동시에 공동체 또는 집단의 인권이 침해된 것이다. 공산주의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그리고 최근에 나온 테러리즘과의 전쟁 등, 미국에서 “전쟁”이라는 수사는 그러한 권리 침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 엘리트들이 즐겨 사용해왔다.
결론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주장들을 요약한다. 특히 세 가지 점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1) 자유, 평등, 박애는 각각 인권의 골조를 지탱해 주는 핵심적이며 불가분의 규범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인식해야 한다. 2) 이러한 가치들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시행할 것인지에 관해 문화적 경계선을 넘나드는 자아비판적 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3) 인권의 전체론적 개념과 부합하는 형태의 제도 발전을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시작부터 상서롭지 못했던 새 천년에서 인간의 실존이 지난 천 년보다 실질적으로 더욱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되려면 이 세 가지 모두가 요청될 것이다.
결론 다음에는 두 개의 부록이 뒤따른다. 첫 번째 부록은 일리노이 주 디케이터 시에서 노동의 조건을 급격하게 변경하려고 했던 초국적기업에 대항해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를 전한다. 노동자들이 졌고, 공동체는 분열되었으며, 초국적기업의 권력이 증명되는 와중에 일부 노동자들의 삶은 황폐해졌다.
두 번째 부록은 일리노이 주 어바나-샴페인의 독립미디어센터에서 월간으로 발행하는 신문 <더 퍼블릭 아이The Public i>에 기고했던 기사로서, 2001년 9월 11일 사건이 지니는 함의를 나의 전체론적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글이다. 이 글은 테러 공격이 있은 지 약 10일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보복을 개시하기 훨씬 전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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