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아프리카 평전
지리적 구분에 불과한 대륙의 명칭을 책의 제목으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대륙을 꼽는다면 단연 아프리카일 것이다. 그 이유는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아프리카가 다른 대륙에 비해 단순하고 동질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로 아프리카는 어느 대륙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선 유전적으로 아프리카만큼 다양한 대륙은 없다. 예전에는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조상이 각각 다르다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인류의 단일 기원설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즉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사는 인류는 조상이 같다. 유라시아와 남북아메리카의 모든 인류는 10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벗어나 서남아시아와 터키에 정착한 소규모 집단을 기원으로 한다.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그 원초적 ‘모집단’의 규모는 겨우 50명가량이었다고 한다. 이 50명이 지금 세계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이다(물론 그 밖에도 많은 집단이 아프리카 밖으로 나왔겠지만 그들은 다 멸종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뒤집어보면 놀라운 결론이 나온다. 당시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소집단들보다 훨씬 더 많은 토착 인구가 있었고, 그만큼 유전적으로 다양했다. 그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프리카인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인류는 조상이 같은 만큼 유전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반면, 아프리카 내의 인류는 다른 데로 이동하지 않고 그곳에서 내내 진화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돌연변이도 많다. 언뜻 생각하면 다른 지역의 인류는 피부색과 눈동자 색, 머리카락 모양, 체구 등이 다양한 데 비해 아프리카 인류는 다 비슷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 반대다(아프리카 바깥의 인류에게 외모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아프리카를 벗어난 뒤 10만 년 동안 각 지역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오늘날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부족(마사이족)과 가장 작은 부족(피그미족) 모두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사실 아프리카의 다양성은 인류에게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아프리카는 예나 지금이나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우선 연평균기온이 가장 높다. 기본적 열에너지가 충만한 만큼 다양한 생명이 생존하고 진화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아프리카는 지금도 열대우림이 많지만 과거에도 지구상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오랜 기간 많은 지표면이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
인류가 출현하고, 식생이 무성하고, 열대우림이 지배적인 아프리카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특성에 기인한다. 아프리카는 다른 어느 대륙보다도 지질학적으로 안정적이다. 아프리카를 이루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은 무려 36억 년 전부터 늘 변함없이 그 상태로 존재해왔고, 판게아가 갈라지기 훨씬 전인 11억 년 전에 지금과 같은 세 개의 강괴로 굳어졌다. 이렇게 지질이 안정된 상태로 오래 존속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금과 다이아몬드처럼 오래된 지질에서만 생성되는 광물이 산출되며, 다른 지역에 비해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드물다.
이런 아프리카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프리카는 무척 오래된 땅이라는 것이다. 지질도, 식생도, 환경도, 지리도, 인간도 어느 대륙보다도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역사는 인간과 생물과 지리를 모두 포괄하는 ‘시원始原의 역사’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하나는 아프리카를 다른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 ‘다른 대륙’이란 말할 것도 없이 유럽이다. 이를테면 로마 시대에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를 제국의 영토로 거느린 역사, 중세에 이슬람권 북아프리카가 유럽 세계와 맞선 역사,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 선원들이 서아프리카를 따라 남하하는 과정,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분할하는 과정 등을 중심으로 아프리카가 지나온 길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깥에서 본 아프리카’이므로 온전한 아프리카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인이 본 아프리카의 역사다. 이 경우에는 대개 아프리카가 근대 시기 서구에 당한 침탈의 역사가 강조된다. 인류의 고향이고 늘 자급자족 체계의 순수하고 순결한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던 아프리카가 서구에 의해 강제로 개방되고 속살이 뜯겨나간 역사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식이다. 주로 서구로 유학을 가서 진보적 사관을 배우게 된 아프리카 출신 학자들이 바라보는 역사다. 나름대로 주체적인 관점이므로 이것을 바깥에서 본 아프리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눈’으로 본 아프리카의 참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프리카를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기보다 공동 운명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관점은 주로 아프리카의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호흡이 짧다는 문제가 있다.
이 책은 그 두 가지 방식과 무관하다. 우선 지은이의 경력이 색다르다. 지은이는 유럽 태생이지만 열여덟 살 때 남아프리카로 이민을 간 뒤 20대 중반부터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10년을 살았다. 또한 그는 사진기자로서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대 아프리카의 숱한 분쟁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는 유럽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셈이다. 게다가 사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기자의 경력을 가진 만큼 그는 아프리카를 대단히 객관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유럽 중심주의나 제국주의의 시각에 물들지 않았을뿐더러 아프리카 민족주의 같은 이념에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이 책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인간이 아니라 자연으로 시작한다. 지은이는 아프리카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고 일대기를 기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인물의 일대기라면 앞부분에서 생김새, 체구, 부모, 출신 가문 등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대륙의 외양, 탄생 과정, 내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출발한다(사실 아프리카에 살았던 인간은 아프리카 전체 역사에서 일부분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그냥 아프리카의 역사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빅 히스토리big history’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의 역사’는 대륙의 형성, 지리와 기후,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등장이 원대한 파노라마처럼 소개된 뒤에, 즉 이 방대한 책의 4분의 1 분량이 훌쩍 지난 뒤에 비로소 서술된다.
그 ‘인간의 역사’도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예컨대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어느 나라와 민족이 패권을 잡았다든가 하는 식의 역사는 이 책에서 비중이 거의 없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역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제국이나 중세 서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송가이 제국에 관한 설명은 다 합쳐도 몇 쪽 되지 않는다.
지은이의 의도는 일반 역사의 관점이 아니라 더 폭넓은 문명사의 관점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보려는 데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사건들의 근저에 면면히 흐르는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것이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라는 이 책의 성격에 더 충실한 방식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상식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목적을 위해 이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비경제적일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관한 총체적 인식을 얻고자 한다면, 아프리카의 정체를 통찰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 노력의 출발점이자 목적지가 될 것이다.
2013년 여름
남경태
프롤로그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 인류가 존재했던 증거는 동아프리카 적도 부근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뼈의 화석이나 석기도 그 증거가 되지만 특히 뚜렷한 증거는 진흙 바닥에 화석으로 남은 발자국이다. 300만 년 전 어른 둘과 아이 하나가 그 진흙 바닥을 걸어갔다. 뒤편에서 재와 연기를 뿜어내며 폭발하는 화산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세 사람은 현재 세렝게티 평원으로 불리는 숲과 초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인류의 조상은 동물에게 의존해 살았고 동물과 환경을 공유했다. 그들은 초라한 존재였다. 그 수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몸집도 크지 않았고 400만 년 동안이나 지표면 이외에서는 살지 못했다. 그들의 시대가 끝날 무렵 두뇌가 크고 발명의 재주를 가진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에게서 진화해나왔다.
약 10만 년 전 현생인류 집단들은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발명의 재능을 지닌 덕분에 그들은 생존이 가능한 모든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다. 9만 년 전에는 시나이 반도를 지나 동부 지중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4만 년 전에는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로, 3만 년 전에는 유럽으로 들어갔다. 1만 5,000년 전에는 베링 해협을 건넜고, 1만 2,000년 전에는 남아메리카 남단에까지 이르렀다. 마지막 남은 거주 가능한 큰 땅덩어리인 뉴질랜드로 이주한 것은 700년 전이었다.
1970년대 초에 인간은 달에까지 갔다. 그 모든 눈부신 성과는 바로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재능 덕분이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지표면의 22퍼센트를 차지한다. 사하라 사막만 해도 미국만큼이나 넓다. 미국, 중국, 인도, 뉴질랜드를 전부 아프리카 안에 집어넣을 수 있으며, 대서양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상당 부분을 합쳐도 아프리카의 면적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인구밀도는 다른 대륙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낮다. 아프리카 전 인구를 합쳐도 아프리카 면적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도의 인구보다 적다(상세한 수치는 858쪽 참조).
대륙의 종단거리도 꽤 길다. 남쪽 희망봉에서 북쪽 카이로까지의 거리는 7,000킬로미터이고, 서쪽 다카르에서 동쪽 아프리카의 뿔(현재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가 있는 뿔 모양의 지역-옮긴이) 끝까지의 거리도 이와 비슷하다. 나일 강은 수원에서 어귀까지의 길이가 6,695킬로미터로 세계 최장이며, 콩고 강(자이르 강)과 나이저 강도 길이가 4,000킬로미터가 넘는다. 특히 콩고 강 유역의 면적은 370만 제곱킬로미터로, 인도 전체의 면적(329만 제곱킬로미터)보다 더 넓다. 세계적으로 그보다 넓은 유역은 아마존 강 분지(705만 제곱킬로미터)밖에 없다.
아프리카는 크기도 크기려니와 그 위치도 인간을 위한 생태적 잠재력의 견지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극대륙은 면적이 1,400만 제곱킬로미터나 되지만 아무것도 주는 게 없다. 반면에 아프리카는 적도에 걸쳐 있고 많은 것을 제공한다.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안정적인 육괴이며, 인간을 포함해 무수한 동식물 종이 진화한 요람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인류가 이 대륙의 풍요한 생산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생물 종들은 아프리카의 풍부한 잠재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현대 문명과 기술 문화는 인간이 이룬 성취의 축도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1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소집단들이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다 해도 현재 대다수 인류가 꿈꾸는 물질적 생활방식이 발달할 수 있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명의 공식적 지표들―야금술, 농경, 문자, 도시의 창건―은 전부 아프리카를 벗어난 장소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물론 질적인 판단은 아니다. 아프리카 외부의 영향이 없었다 해도 아프리카에서 자체적으로 현대 문명과 기술 문화에 못지않은 문명과 문화가 진화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실제로 외부 영향이 들이닥치기 이전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사회들이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 평화로이 문명화된 생활을 누렸으며, 이러한 사실은 아프리카가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문명, 문화, 기술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일시적인 것은 아니더라도―인간 환경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는 생물학과 더 관련이 깊다. 그러나 여기에도 인간 또는 인구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견지에서 설명되어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의 지배자들이 기원후 2세기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의 인구는 5,760만 명에 달했다. 문헌으로 전하는 기원후 14년 로마 제국의 인구는 약 5,400만 명이었다. 비슷한 시기 인도의 인구도 로마 제국에 못지않았을 것이며, 남북아메리카와 오스트랄라시아의 인구도 그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온 현생인류는 불과 100여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10장 참조), 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전 세계에 걸쳐 무려 2억 명으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수적 팽창은 인간의 뛰어난 번식력에 기인한다(14장 참조).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간 인구가 그렇듯 눈부시게 팽창했다면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인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10만 년 전 이주민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떠날 때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인구는 100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0장 참조). 기원후 200년에는 2,000만 명으로 늘었는데, 그 절반 이상이 북아프리카와 나일 강 유역에 거주했고(이들이 기원후 14년 로마 제국의 인구에 포함되었다), 사하라 이남의 인구는 1,000만 명이 못 되었다. 기원후 1500년 아프리카 인구는 4,7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인구 규모가 거주 환경의 잠재력과 맞아떨어지는 안정적인 ‘생물학적 균형’ 상태를 이루었다. 그 반면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구는 계속 늘어 3억 명을 상회했다.
편차는 뚜렷하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구가 10만 년에 걸쳐 수백 명에서 2억 명으로 증가하고 기원후 1500년경 3억 명을 넘어서는 동안, 아프리카의 인구는 10만 년 동안 1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증가하고, 기원후 1500년경에는 4,700만 명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혈통에서 진화한 두 집단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두 집단은 아프리카에서 그전까지 400만 년 동안 진화를 통해 재능과 신체적 특성을 물려받았다.
이주 인구가 그토록 급속히 성장한 이유는 뭘까? 혹은 다른 방향에서 그 편차를 생각해본다면, 아프리카 인구가 이주 인구처럼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유전상의 계승은 동일하고 두 집단의 역사가 달라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는 아프리카 자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이른 지질학·생물학·생태학·인류학적 발전과정을 추적하면 그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아프리카와 바깥 세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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