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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새끼’, ‘초딩’에서
‘잼민이’, ‘금쪽이’까지
어린이에 대한 멸칭과 혐오 표현의 사례들
─ 난다
어릴 적에 ‘초딩’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비아냥대는 말투로 “너 초딩이냐?”라고 하거나, 때로는 화를 내며 “초딩처럼 굴지 좀 마라” 같은 식으로 말하는 걸 경험하곤 했다. ‘나는 초등학생인데 초등학생처럼 굴지 말라는 건 뭘까? 어른스럽게 행동하라는 뜻인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는 종종 “급식들은 꺼져라”, “애새끼들이 뭘 안다고 설치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주로 학교에서의 부당한 폭력과 억압 등 청소년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실태에 대한 고발, 우리 사회와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고 행동하자고 하는 활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불쌍한 어린이를 도와 주세요’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저런 반응들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이런 말들이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데 쓰인다는 것을 느꼈다.
초딩, 급식(충), 미자, 잼민이, 금쪽이 등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을 부르는 말들이 참 많다. 완전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같은 식이다. 문제는 이 수많은 ‘별명’이 그저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어린이·청소년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혐오 표현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다.
유구한 어린이·청소년 혐오 표현의 역사
어린이·청소년 혐오 표현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시대에 따라 유행어가 바뀌고 단어가 바뀌고 새로운 말이 등장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가지 짚어 보자.
우선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사용되었던 ‘초딩’이 있다. ‘초딩’은 초등학생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초딩’, ‘중딩’, ‘고딩’은 각각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일컫는다. 주로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되며 200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일종의 줄임말이자 신조어인데, 계속 쓰이다 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이를 활용해서 대학생, 직장인을 ‘대딩’, ‘직딩’으로도 표현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똑같이 ‘딩’이 붙은 줄임말이라 해서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직딩직장인, 대딩대학생은 말 그대로 직장인인 사람, 대학생인 사람을 부르는 말로 받아들여지지만 초딩, 중딩의 경우는 그저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초딩’은 쉽게 비하와 무시의 의미를 담아 사용된다. 우리가 ‘초딩’이라는 말을 주로 언제 사용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본인을 직접 소개할 때 “저는 ‘초딩’입니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초딩’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님, 초딩이세요?”, “너 초딩이지?” 하고 묻곤 한다. 이 질문은 상대방이 정말 초등학생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서 물어본다기보다 상대방이 예의가 없다고 느껴질 때, ‘무개념’하거나 유치하다고 생각될 때 상대방을 ‘초등학생/중학생 수준’이라고 칭하며 비꼬기 위한 것이다.
‘초딩’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들을 배제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모집하거나 할 때 대놓고 “초딩 사절”이라는 문구를 걸어 놓은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온라인 외에도, 실제로 초등학생들을 만났을 때
“초딩/애들은 가라”라고 하거나 “PC방에 ‘초딩’들 많아서 너무 싫다” 같은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이때 ‘초딩’은 어른들이나 좀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쉽게 내쫓을 수 있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이다.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같은 어린 사람들이 예의가 없고 개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또 ‘초딩’은 게임을 못하고 여러모로 실력이 부족하기에 그런 걸 지적하고 배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어린 사람이 예의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음에도 ‘초딩’이라는 말은 그 집단 전체를 평가, 비하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도 예의가 없는 행동을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초딩’이라고 부르며 무시한다. ‘초등학생’이 멸칭, 욕이 되는 셈이다.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소위 ‘진상’인 사람들의 언행을 무심코 ‘어린 사람’에 비유하는 것은 결국 어린이·청소년을 ‘부족하고 불완전한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강화될수록 '어린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도 더 서슴없이 쓰이게 된다.
초딩보다 더욱 뚜렷하게 혐오를 드러내는 단어로는 ‘급식(충)’이 있다. 이 표현은 2010년대 초·중반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청소년들을 ‘급식충’이라고 칭하는 말이 나오면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라는 말이 너무 대놓고 비하하는 어감이다 보니 ‘급식’이라고 순화(?)해서 쓰이기도 한다.
사람을 ‘벌레’라고 부르는 것이 충격적이긴 하나,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충’이라는 말을 붙여서 누군가를 ‘벌레’라고 비하하고 혐오하는 문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어린이·청소년을 왜 ‘급식’과 연결시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2010년대 초반, 초등학교 무상 급식 정책이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이후로는 초·중·고 학생이라고 하면 바로 급식이 연상되게 된 것이다. 또한 ‘(무상)급식’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부르는 것에는, 그 사람이 사회에 ‘기생’하여 ‘공짜 밥’을 먹는다는 의미, 자유와 선택권 없이 주는 대로 밥을 먹는다는 의미 등이 연결된다. 비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상 급식 먹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감옥에 가라는 또는 노숙인이 되라는 의미이다. 즉, 누군가를 ‘급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그 사람들이 평일 하루 한 끼를 급식으로 먹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진술이 아니며 분명한 비하의 맥락을 담고 있다.
혐오 표현에 먹는 것이 연결되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특정 문화권의 사람을 그 사람이 먹는 특징적인 음식이나 향신료, 식재료와 연관해서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급식충은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혐오 표현이다. 급식충이라는 말은 초딩에 비해서 더 조롱하고 비하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신조어가 탄생하고 어린이·청소년을 가리켜 많이 쓰이게 된 것은 그만큼 어린이·청소년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적 존재’에 대한 낙인찍기
어린이·청소년을 부르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이름으로 ‘잼민이’와 ‘금쪽이’가 있다. ‘잼민이’는 2020년 무렵부터 쓰인 말로, 어린이·청소년, 특히 어린이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퍼졌고, ‘초딩’, ‘급식’을 대신해 쓰이는 일이 늘었다. 이 단어는 인터넷 방송의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TTS 중 남자 어린이 목소리의 캐릭터 이름이 ‘재민’이었던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은 ‘잼민이’라고 직접 부르거나, 어리거나 귀엽거나 유치한 모습을 가리켜 ‘잼민이 같다’라고 하는 식으로 쓰이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금쪽이’의 유래는 2020년부터 방영된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TV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2006년부터 약 10여 년간 방송되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 일상생활이나 타인과의 소통 및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자녀와 양육자부모 등의 고민을 듣고 전문가가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식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상담 대상자에 해당하는 어린이를 부르는 호칭이 ‘금쪽이’인데, 금쪽같이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금쪽이’가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를 부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잼민이는 어린이를 전반을 일컫는 표현이고, 금쪽이는 어린이 중에서도 일부 집단에 대해서만 쓰이는 표현 같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화하고 문제적 존재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이 두 표현은 비슷한 점이 많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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