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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한테 잔소리 한 바가지 듣고 간신히 나왔어요”
“아이고 아내 눈치 보지 않고 자주 만날 수는 없을까?”
“책 모임 어떨까요?”
2019년 여름이 기울고 가을로 접어드는 9월 중순, 아저씨 3명이 동인천역 삼치집에 모였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좀 더 유익한 모임으로 발전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우리는 곧바로 독서 모임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은 만나야 은혜롭다는 말에 공감하여 격주 모이기로 하고, 술기운 반 설렘 반으로 왕년에 무협지 좀 섭렵했던 형님을 독서 모임 리더로 즉석 추대를 하였습니다.
리더 형님은 무거운 주제의 책으로 모임을 하면 금방 흥미를 잃을 수 있다며, 가급적 재미있고 가벼운 책을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무협지나 만화책을 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면 우리 모임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으로 소설을 읽되 고전과 최근 소설을 번갈아 가며 읽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또 하나는 전세계 소설을 다 읽어보자는 큰 포부로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부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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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설 속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여 나의 이야기를 하곤 했고, 우리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독서 모임을 하면 할수록 점점 수다쟁이가 되어갔고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서 늘 말없이 살던 아저씨들은 독서 모임을 은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휴무일이면 텔레비전 앞에 누워있던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책이라면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던 우리가 매주 책을 읽으면서 보람을 느꼈고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고개 숙인 40~50대라는 말처럼 사실 우리 아저씨들은 무기력하게 사는 존재처럼 느껴졌었습니다. 그저 가끔 모여 술 한 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이나 하는 것이 소소한 낙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족들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모이지 못하는 신세였지만 독서 모임을 하면서부터는 조금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 모임은 가을과 겨울을 지나 2020년 새해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이 있으니 한 번 지원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제안했더니 좋긴 한데 우리 인원이 소수라 가능하겠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면 회원을 조금 더 늘려 지원하자는 의견으로 각자 한 사람씩 회원을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회원 수는 두 배로 증가해 6명이 되었고,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당당히 지원했습니다. 독서동아리 이름이 있어야 등록을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아재들의 책잡수다’라고 정했습니다. 아저씨 6명이 모여 책이란 매개체를 가지고 수다를 떨고 밥을 나누니 ‘아재들의 책잡수다’는 우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처음 해본지라 많이 서툴고 부족했던지 우리는 보기 좋게 탈락했습니다. 조금 실망했지만, 회원 수가 늘었다는 것을 위안 삼아 계속해서 독서 모임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회원의 직업도 다양해서 학원강사, 방역, 학원 차 운전, 목재소, 건축 철거, 병원 경비, 부목사 등 각자의 다양한 삶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인원이 늘어나 시간을 정하는 것이 조금 더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 풍성함이 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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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되어 우리의 모임이 점점 활기를 띠고 있을 때, 저에게 독서동아리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인천 지역에 지원대상 한 팀이 포기했는데 대신 참여해 보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회원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즉시 답을 하였고, 그때부터 지원사업의 모든 일은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나자 우리의 사적인 취미 모임이 괜히 공적 모임인 것 마냥 약간의 부담을 갖게 되었지만, 책임감은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지원금으로 책을 구매하여 나누고, 저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저희 길잡이 선생님이 중년 아저씨들만 모이는 책 모임은 유일하다며 모범적인 독서 모임이라고 칭찬해주시고 저자 강연도 참석해주셨습니다. 여름에는 서로 휴가를 맞춰 1박 2일로 독서 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우정은 점점 더 깊어지고 독서 모임이 우리 삶에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회원도 한 명 더 늘어 우리는 행운의 7명으로 구성되었고, 다음 해인 2021년에도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지원하여 모임의 숙성도도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대면으로 모였던 우리 모임은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재들은 함께 만나 떠들고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온라인 공간은 그것을 담기에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의 책임과 의무감이 코로나19 기간에도 계속해서 모일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했습니다. 매달 두 권의 소설을 꾸준히 읽었고 서로 읽고 싶었던 다양한 나라 작가의 책들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류 작가들의 책은 아재들의 고정관념들을 흔들기에 참 유익했습니다.
2022년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우리 모임도 대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온라인 모임이 편리한 부분이 있지만 역시 독서 모임은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고 나누어야 제맛입니다. 올해는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만 계속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다른 독서동아리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외부의 동기유발 없이도 모이는 것 자체가 좋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이 우리 모임의 뿌리를 든든히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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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전 세계 작가의 소설 300여 권을 읽었고, 올해 말까지 읽어야 할 소설을 이미 다 정해놓은 상태입니다. 책꽂이에 내가 읽은 소설책이 한 권씩 꽂힐 때마다 뿌듯하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중년 아재들이 책을 읽는 기쁨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겪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고, 내가 듣고 싶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를 만나고, 그 안에서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울고 웃고 감추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책은 우리의 또 다른 세계이자 관계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재들은 술도 좋아하지만, 이제는 술보다 책을 더 선호하는 책잡수다들이 되었답니다.
이제 허접한 후기를 마칩니다. 비록 3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으나 우리 모임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와 같은 분들에게 독서를 통해 분명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