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동조, 이견, 그리고 정보
대체로 동조는 현명한 행위다. 우리가 동조하는 이유는 종종 정보의 부족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정보 가운데 하나다. 만약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치 않다면,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경험의 원리로서 ‘군중을 따르라’는 견해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는 어디에 살 것인지, 무엇을 먹을지, 흡연을 할지 말지 혹은 법으로 금지된 약물을 사용할지 말지, 어떻게 다이어트를 할 것인지, 고소할 것인지 아닌지, 의사에게 갈지 말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법에 복종할 것인지, 이사할 것인지 말지 그리고 이사한다면 어디로 할 것인지 등에 관해 사람들이 내리는 이런저런 결정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때문에 서로 다른 집단들이 극단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놀랍도록 서로 다른 행위를 하거나 상이한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상당수의 독일인은 체리를 먹은 후에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나쁘다고 믿으며, 또한 청량음료에 얼음을 넣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체리를 먹은 후에 차가운 물을 마시는 것을 즐기고, 미국인들은 얼음을 넣은 청량음료를 애용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동조로 말미암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정보를 사람들이 얻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 동조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따르고 침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피그스 만 침공이 이뤄졌고, 투자클럽의 회원들이 커다란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재치 만점의 우화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따르기만 했기에, 사람들은 두 눈에 멀쩡히 보이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본문에서 우리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일반 사람들이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처신한다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부정의, 억압, 집단 폭력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거의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아랍 정부들이 잔혹 행위를 저지른 것과 관련해 이라크 반체제 인사인 카난 마키아Kanan Makiya가, “마음만 먹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아랍 지식인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의 곳곳에서 강조하겠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이익을 보호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인으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에 좀 더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만,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에게만 이익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나서거나, 집단적 합의에 내포되어 있는 모순점들을 밝히고자 한다면, 그들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직장을 잃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적어도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경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런 위험은 아주 위협적이다. 현대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자이며 종교적 관용의 옹호자이고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위험을 맨 처음 경고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이집트 언론인 파라그 파우다Farag Fouda는, 이집트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일주일 만에 살해되었다.
건강한 사회는 그런 희생을 감소시키거나 없앤다. 미국의 법원은 회사 내에서 벌어진 범죄행위를 밝히고자 경찰에 협조하기로 동의한 피고용인을 고용주가 해고하지 못하도록 해왔다. 이런 결정은 애사심 없는 피고용인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탈법을 밝혀 그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에서 이익을 얻게 될 많은 사람을 위한 조치다.
이견이 항상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허튼소리를 하는 사이비 목소리들까지 격려할 필요는 없다. 명예로운 이견 제시자의 명부에는 갈릴레오, 마틴 루터Martin Luther,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엘리자베스 스탠턴, 간디,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저명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목소리의 명부도 있다. 여기에는 히틀러, 레닌, 미국 노예제도의 옹호자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역사적 걸물들이 있다.
이견dissent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견해에 반대하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해 보자. 이렇게 정의한다면, 이견은 아마도 칭송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서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일을 할 때, 이견은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에 관해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다면, 우리는 사이비 과학자들의 어리석은 이론들을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의견이 올바른 답으로 수렴되어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집단 영향〔압력 ─ 옮긴이〕으로 말미암아 잠재적으로 생산적일 수 있는 이견이 줄어들 수도 있다. 대학 교정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문제는 중요하고 아주 잘 알려진 사례다. 많은 집단과 조직들이 자신들만의 정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설은 그 집단 내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에게는 문제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권리와 제도를 통해 동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다양한 관행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조직들은 일군의 사람들에게 악마의 변호인 역할 ─ 제안된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론을 제시하는 역할 ─을 하도록 한다. 다양성을 구축하는 이런 관행은 동조에 대한 인간의 경향을 상쇄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관행은 숨겨진 정보를 드러내고 이견을 보호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정보가 출현할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점은 전시戰時나 평상시 모두에 해당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고위직을 역임했던 루터 귤릭Luther Gulick은 연합군의 승리와 주축국들의 패배를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위대한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문제점과 기존 정책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견을 제기함으로써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이견과 꼼꼼한 검토가 가능했던 이유는 지배적인 생각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법이 처벌하지 않았고, 사회적 압력과 같은 비공식적인 처벌 역시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단 영향과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유해한 효과를 잘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펴볼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실마리를 던져 준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강조하고 있는 이견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정치 이론에 반하는 측면도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여러 정치 이론들은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정치 이론의 사례는 존 롤스John Rawls다. 그는 근본적인 이슈들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시민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중첩적 합의”의 가치를 강조했다.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합의에 입각한 해결책보다는 법적 다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 문화의 한 특징인 “당사자 중심의 법률 만능주의”에 대해 탄식해 왔다. 여기서 롤스가 제기한 문제를 다루거나 소송 만능주의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동의 및 합의를 강조하는 주장들이 많은 문제를 간과해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조와 동의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에 대해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 적은 게 아닌가 싶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